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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자살헌터-143화 (143/400)

143화.  < 옥상. (2) >

‘누구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누가 김율 건으로 물고 늘어지는 거냐!’

김율에겐 일가친척이 없다. 없는 거나 다름없다. 김율의 따돌림은 그가 친구를 사귀기도 전에 이뤄졌으며, 그러기에 김율을 도와줄 사람은 전무했다. 내가 괜히 희생양으로 김율을 낙점했겠는가!

‘아무튼 김율한테 따져야 돼. 놈이 뭔가를 알고 있을 거다. 뭐라도.’

나는 급히 학교 뒷편으로 뛰어갔다. 지금이면 김율이 사육장의 짐승 새끼들을 돌보고 있을 때. 나는 김율의 스케줄은 시간별로 꿰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육장에서 닭 모이를 나눠주는 김율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래. 너는 거기 있어야지.’

자기보다 약한 짐승한테 먹이를 나눠주는 거로 간신히 자존심을 채우는 녀석. 나는 김율이 사육장에 집착하는 이유를 그런 식으로 이해했다. 결국 인간이란 짐승이어서, 약한 짐승은 강한 짐승에게 봉사할 수밖에 없다.

[당신의 몰입률은 현재 100%입니다.]

학교 역시 저 사육장과 똑같다. 조금 더 크기가 큰 사육장. 그리고 이곳에서 나는 김율보다 더 강한 짐승이었다.

“야! 김율!”

나는 으르렁거렸다.

“너 무슨 짓거리를 한 거야!”

김율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반응조차 안 했다. 마치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계속해서 모이를 나눠줬다.

‘하. 설마 지금 날 무시한 건가?’

기가 찼다. 나는 걸어가서 김율의 어깨를 우악스럽게 잡았다.

“야, 이 새끼야. 사람이 부르면 대답을……!”

김율이 뒤를 돌아보는 순간,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이어폰이었다. 나는 김율이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챘다.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이어폰에선 클래식 음악이 요란하게 울렸다.

"......."

눈이 마주쳤다.

나는 흠칫했다.

김율의 새까만 눈동자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뭐……."

한순간이지만 말문이 막혔다.

나 자신도 말문이 막힌 이유를 알기 어려웠다. 김율의 눈물을 본 적이 처음이어서? 그럴 수 있다. 아무리 집요하게 괴롭혀도 김율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니까. 바로 그런 점이 ‘손님’들의 가학심을 더 자극했을 거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누구야.’

낯설었다.

‘누구야? 이 녀석?’

김율의 눈이 지나치리 만치 생소했다. 시선이 멀었다. 내가 아닌 나 너머의 무언가를 바라보는 눈동자. 김율은 내게 어깨가 잡힌 채 묵묵히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조차 지상이 아니라 다른 어딘가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너……."

“아름답군.”

김율이 입술을 열었다.

“뭐?”

“노래 말이다. 내가 듣고 있는 음악이다. 어느 귀머거리가 작곡한 음악이지.”

따다다, 단-

이어폰에서 소리가 흘러내렸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리듬. 하지만 나는 이 거지가 무슨 수로 MP3를 구했는지 수상쩍을 뿐이었다.

“이 귀머거리가 살면서 받았을 치욕과 저주에 대해 생각한다. 누군가는 그를 귀병신이라고 욕하지 않았겠는가. 저 귀병신을 보라고 낄낄 웃지 않았겠나.”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야, 너…?”

“슬프군. 상처는 유구하여 수백 년 전의 어느 누군가도 모욕스러운 삶을 감당한 게다. 천 년 전에도 그러했겠지. 천 년 뒤에도 그러할 것이다.”

이 새끼, 미쳤나?

“세상에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은 없다. 오직 상처 입은 자에게만 아름다움이 보인다. 삶이 망가진 사람만이 아직 망가지지 않은 삶을 보고 다행이라 여기지. 망가져도 견디는 자에겐 눈물을 흘린다.”

김율의 시선은 허공에 걸려 있다.

“세상을 전부 아름답다 여기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필히 세상의 모든 것에 망가져본 사람일 것이다. 지옥에 사는 자들만이 세상을 찬미한다. 나는 귀머거리의 노래에서 그의 모욕된 삶을 생각한다.”

“어디서 병신 같은 말들을 주워듣고… 야, 너. 무슨 짓거리를 했어?”

나는 김율의 멱살을 잡았다. 꽈악! 김율은 몸이 흔들리면서 사료봉투를 놓치고 말았다. 땅바닥에 떨어진 봉투에서 누르스름한 모이들이 쏟아졌다.

“내 손님들한테 뭔 짓거리를 한 거냐고! 재활용 새끼야!"

"......."

김율은 그제야 이쪽을 보았다.

“나는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 사왕(死王).”

“사……, 뭐?”

“그저 내가 버린 것들이 무엇이었는가 보고 있다.”

김율은 건방지게도 내 손목을 잡았다. 난 어이가 없어서 김율의 손아귀를 털어내려 했다.

꿈쩍도 안 했다.

‘어?’

그리고 김율은 간단히 멱살을 풀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당황하여 재차 손을 뻗었지만, 탓! 김율이 내 손목을 쳤다. 경로가 비틀어졌다. 나의 손은 방향을 잃고 꼴사납게 허공을 휘저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손이 빗나간 것이다.

“..어?"

나는 멍하게 김율을 바라보았다.

“안타깝군.”

김율이 담담하게 모이봉투를 주웠다.

“[김율]은 분노하고 있다. 김율이 원하는 것은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다. 더 정확히는, 물리적 폭력보다 훨씬 더 깊은 복수를 원하고 있지. 그리고 [나]는… 김율의 마음을 이루어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너, 너. 너 무슨 짓 한 거야!? 어, 무슨 개짓거리를 하는 거냐고!”

“김율은 자신이 겪은 모든 것을 네가 고스란히 겪기를 바란다. 복수란 그런 것이다. 자신이 떨어진 지옥의 깊이에 상대방을 떨어트리는 것이다. [김율]은 그렇게 생각하며.”

김율이.

아니,

“[나] 역시 그 의견에 동의한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기다려라, 김율의 살해자. 날은 저물고 가야 할 길은 멀다. 참 멀다. 다시 보는 것은 그 이후로 하지.”

김율은 사료봉지를 든 채 유유히 걸어갔다.

“야! 야! 너 거기 서! 거기......!"

그때 바지주머니가 부우웅 울렸다. 핸드폰에 문자가 도착한 것이다. 아마도 고객 중 누군가가 부재중전화 내역을 보고 답장했겠지. 나는 김율이 걸어가는 방향을 곁눈질하면서 얼른 휴대폰을 확인했다.

+

다신 나한테 연락하지 마라.

연락하면 죽여버린다.

+

나는 황당했다. 당황해서 문자를 보낸 손님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몇 번이나 통화해도 받지 않았다.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뭐야….’

다음날이 되어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오히려 더 나빠졌다.

“으, 은서야.”

교실에 등교하자 친구 한 명이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김율 놀이]에 수십 번이나 출연한 친구였다. 사람을 때리는 손맛이 찰져서 고객님들한테도 꽤 인기가 좋았다. 친구 본인도 자신의 인기에 심취했는지 은근히 즐기곤 했다.

“왜?”

“너, 너한테. 전해달라고 하는 쪽지가 있어서.”

친구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뭔데 그래?”

“이거……. 미, 미안.”

친구가 내 책상에 쪽지를 올리고 도망치듯이 멀어졌다. 나는 눈썹을 찡그리고 쪽지를 펼쳐 보았다.

그곳엔 악필로 글이 적혀 있었다.

[황은서는 쓰레기장에서 산다. 실내화도 교복도 전부 재활용해서 쓴다. 유일하게 재활용 안 되는 쓰레기가 있는데 그게 바로 황은서다.]

"......."

내가 곧바로 반응하지 못한 건, 그냥,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다.

“하."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친구를 쳐다봤다.

“이게 뭐야…. 지금 장난 까냐?”

움찔. 다른 학생들 뒤로 물러선 친구가 움츠러들었다.

안 그래도 손님들이 엿같이 굴어서 밤새도록 스트레스가 쌓였는데, 친구란 새끼까지 저러니 가슴에서 울화가 끓었다.

“재활용이 너한테 이러라 시켰어? 야. 야. 나 봐라. 나 보라고. 아무리 친구여도 할 일이 있고 하면 안 될 일이 있지. 어? 김율이 너한테 이 쪽지 보내라고 시켰냐?”

친구는 아무런 말도 못했다. 여전히 겁에 질린 표정만 짓고 있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녀석한테 향하려는 순간, 또 다른 동급생이 내 책상에 다가왔다.

“황은서……."

“뭐?”

“미안. 이거.”

동급생이 책상에 던지다시피 내려놓은 것은 또 다른 쪽지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쪽지를 낚아채서 읽었다.

[나 우리학교 후배들이 너무 불쌍해. 황은서 널 선배라고 불러야 되잖아. 걔네 기분 생각해봤어? 양심 안 찔려?]

머리가 멍했다.

그 틈을 타서 또다시 세 명의 동급생이 쪽지를 던져두고 갔다. 앞선 두 명과 마찬가지로 이 녀석들도 여태껏 ‘김율 놀이’에 적극적으로 끼어든 애들이었다.

[황은서, 진짜 더러워. 수학샘보다 더 더러워 어떻게 된 게.]

뭐냐.

[충격! 교복을 안 빨아 입은 학생이 있다!]

도대체 얘들이 왜 나한테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너 냄새 진짜 심해. 진심 구려.]

어제 하루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다.

벌어졌는데, 나만 그걸 모른다.

무언가가 손님들을 전부 등 돌리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내 친구들을 협박해서 이딴 생쇼를 벌이도록 강요한 거다.

‘침착해지자.’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침착해져라. 침착하게 생각하자. 김율이 이런 일을 벌였나?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어제 좀 이상하긴 했지만, 아니야. 누구지? 누가 한 짓이지?’

그때였다.

“황은서!”

교실 앞문으로 담임 선생이 머리를 내밀었다. 학생들이 일제히 담임을 쳐다보았다. 담임은 교실 분위기를 한차례 훑더니, 날 발견하고 손짓했다.

“잠깐 나 좀 따라와봐.”

“저요…?”

“어이구, 그럼 우리 반에 황은서가 한 명 있지 두 명 있냐. 별일 아니니까 얼른 와. 아! 반장! 애들 휴대폰 거둬서 가져오고.”

나는 주춤거리며 담임을 따라 반을 나섰다. 반을 나서는 동안에 주위가 묘하게 조용했다.

싸했다.

마치 동급생들은 내가 무슨 이유로 불려나가는지 아는 것 같았다. 담임이 날 불렀다는 사실에 아무런 의문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아침부터 예습하는 범생이들만 노트를 들여 다볼 따름이었다.

“황은서.”

교무실.

“예…."

“너 혹시 뭐 좀 나쁜 짓 저지르고 다닌다거나. 그런 일 없지?”

담임은 태연하게 물었다. 정말로 별거 아니라는 말투였다. 교무실에서, 교복 입은 학생들이 인쇄하다 남은 이면지를 받으러 돌아다녔다. 선생들은 첫교시를 앞두고 프린터물을 정리하고 있었다.

“네?”

“나쁜 짓 저지르고 다니는 거 없냐고. 뭐 생각나는 거 없어?”

“아니요….”

심장이 뛰었다.

“없는데요?”

"흠."

담임이 머리를 긁적였다.

"야. 황은서. 어디 가서 지금 한 말 절대 떠들고 다니지 마라. 알겠어?”

“네….”

“이거 좀 들어봐.”

담임이 이어폰을 건넸다. 받았다. 이어폰은 담임의 컴퓨터에 연결되어 있었다. 딸깍, 담임이 마우스를 누르자 이어폰으로 어떤 녹음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야, 야. 아직 때리지 마! 무릎만 꿇려!

-에에. 이번에 투고해주신 분도 많았는데요. 리퀘스트해주신 다섯 분들 중에서 저희가 추첨해서 오늘 컨셉을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목덜미가 서늘했다.

-아, 오늘 선정되신 분은 퀸 님이시네요. 축하드립니다, 퀸 님. 다들 뭐해? 박수쳐, 박수.

-와아아아아!

내 목소리.

그리고 방금 나한테 쪽지를 던진 친구들 목소리였다.

-퀸 님 리퀘스트는, 어디 보자. 야아. 또 예산까지 주셨어요. 10만 원. 저희 배고프지 마라고, 밥값하라고. 그리고 우리 인기스타한텐 짜장면이랑 짬뽕 하나씩 섞어서….

딸깍.

담임이 녹음파일을 멈추었다.

“들었냐? 방금 목소리 들렸지?”

“네."

“어제 내 메일로 이거 녹음파일이 왔거든. 음질이 별로 좋진 않은데 이게 들어보니까 네 목소리 같기도 하고, 딴 애들 목소리 같기도 하고. 그래서 혹시나 싶어서 물어보는 거다. 황은서. 이거 너 아니냐?”

“아닙니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애써 지었다.

“그보다 퀸은 뭐예요? 뭐 연극이에요?”

“글쎄다. 나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들어봤는데 영 이상하단 말이지. 아무튼 기분이 나빠. 메일엔 [2학년 5반 황은서한테 들려줄 것] 이라고 적혀 있어서, 이게 너희끼리 장난을 친 건지 뭔지….”

미친. 이거구나. 이런 식으로 애들을 협박하고 다니는 거다.

다행히도 이 담임은 머저리였다. 녹음파일을 듣고도 이걸 애들 장난이라고 의심하는 인간이었다. 하긴 그런 머저리니까 지 반에서 뭔일이 벌어지는지도 몰랐겠지만. 나에겐 천운이었다.

‘이 따위 녹음파일로는 아무것도 못해. 그냥 공포탄이야.’

아마 친구들 중 어떤 새끼, 아니면 고객 중에 한 명이 녹음파일을 복사했겠지. 그렇게 복사한 파일로 장난질을 치고 있는 거다. 만일 녹음파일보다 더 결정적인 증거물을 가지고 있었다면 담임한테 그걸 보내지 않을 이유가 없을 테니….

‘문제는 공포탄에 애들이 쫄았다는 거군. 빌어먹을.’

담임은 나를 올려보았다.

“이거 진짜 너희가 친 장난 아니지?”

“아닙니다. 어, 근데 이거 다른 애들한테 말하면 안 되는 거예요?”

“안 돼, 절대 말하지 마. 아무튼 아니라니까 됐다. 교실로 돌아가라.”

“네."

나는 발소리를 죽이고 담임의 자리를 떠났다.

‘젠장. 젠장, 젠장!’

드르륵.

교무실 문을 연 순간, 맞은편에 서 있는 누군가와 맞닥뜨렸다.

"......."

반장이었다. 반장은 파란색 플라스틱 수거함을 품 안에 들고 있었다. 교실에서 거둔 핸드폰을 거둬서 온 것이다.

“아. 미안.”

반장은 평소와 똑같은 표정, 범생이다운 얼굴로 말한 다음 살짝 길을 비켜 섰다. 평소라면 나도 고맙다고 말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저 대충 눈을 마주친 뒤 복도로 나갔다.

‘어떤 새끼가 빼돌린 건지 몰라도 반드시 오늘 안에 족쳐주마! 개 같은 놈. 사람을 우습게 보고. 이건 장난의 수준을 넘었잖아. 어떻게 같은 반 친구한테 이런 짓거리를 해!’

드르륵.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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