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 옥상. (3) >
‘먼저 친구들을 다독이자.’
누군지 모를 개자식이 우리 그룹을 와해시키려 하고 있다.
‘당할까 보냐!’
협박 이메일을 받아서 잔뜩 겁먹어버린 이 쫄보들을 내가 능숙하게 다잡아야 한다. 괜찮다. 할 수 있다.
나는 교실로 돌아오자마자 그룹 아이들에게 말했다.
“야. 너희들 왜 이러는지 알겠지만 그러지 좀 마라. 친구끼리 서운하게 왜 이러냐? 어? 할 말 있으면 하고. 들을 말 있으면 듣고. 그러는 게 친구 사이 아니야? 응?”
그런데 얘들 반응이 미묘했다. 아무런 대답도 없이 자꾸 내 교실 책상만 힐끔거렸다.
가서 확인해봤다.
책상 서랍에, 쪽지가 수십 개나 구겨 넣어져 있었다.
"......."
쪽지 한 장 한 장이 전부 나를 비방하는 욕설. ‘어제 복도에서 인사해주니까 좋아 죽더라 아주.’ 누가 봐도 거짓말에 불과한 내용. ‘그거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한 거야! 제발 착각하지 마!’ 악의와 조롱밖에 담기지 않은 문장들이 널브러져 있다.
내가 교무실에 다녀 온 사이.
그 잠깐 동안 쪽지가 산더미처럼 쌓인 거다.
“이, 이 자식들……."
“쿡."
누군가가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휙. 웃음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로 쳐다봤다. 하지만 누가 웃은 건지 알 수 없었다. 교실에 학생이 너무 많았다.
“누구야! 누가 내 책상에 이딴 짓을 했어, 어?!”
“우, 우리가 한 게 아니야.”
친구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조금 전에 다른 반 애가 와서 쪽지를 한꺼번에 넣고 갔어….”
“다른 반?”
“어. 너한테 말 좀 전해달래. 다시는 연락하지 마라고.”
"......."
고객이다. 고객 중 한 명이 쪽지들을 버리고 갔다는 얘기다. 환장할 거 같다. 정체 모를 [범인]이 동급생은 물론이고 고객들까지 가지고 놀고 있다.
“은서야, 그리고….”
“그리고? 뭐?”
“네 등 뒤에….”
등 뒤에?
“등 뒤에 뭔데?”
“그, 그게. 그러니까.”
나는 앞뒤로 몸을 돌렸다. 고개를 꺾어서 내 등을 보려 했지만, 잘 안 보였다. 교실 이곳저곳에서 웃음소리가 흘렀다.
“풋…!”
"푸훕."
나는 팔을 구부려서 등을 더듬었다. 꾸짓. 뭔가가 잡혔다.
종이였다. 누군가가 테이프를 써서 내 등에 종이를 붙인 것이다.
나는 대체 뭐라고 써놨는지 보려고 서둘러 종이를 떼어냈다.
+
신서고 공식 쓰레기!!
+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글씨체로 그렇게 적혀 있다.
"......."
언제? 누가 붙인 건가. 담임한테 불려나갔을 때부터 이미 붙어 있었나? 아니면 방금 교실에 들어오고 나서 누군가가 몰래 붙인 건가?
하지만 그것을 밝혀낼 시간이 없었다.
“수, 수업 시작할게요….”
1교시가 시작된 것이다. 학교에서 가장 만만한 수학샘. 평소엔 한참을 떠들었을 동급생들이 이번엔 다들 모범생이 되기로 결심했는지 일제히 착석했다. 학생 전원이 말이다.
‘젠장.’
나는 마음속으로 이를 갈았다.
‘지금 여기서 난리치면 내 꼴만 우스워져. 확 교실을 나가버려? 아니야. 아니다. 그건 진짜 아니야. 내가 나가고 나서 얘들끼리 뭔 뒷담화를 깔 줄 알고. 씨발, 씨발… !’
결국 잠자코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숨을 죽여서 ‘쿡쿡’ 비웃는 놈들. 무표정하게 노트를 들여다보는 김율. 뒤늦게 교실로 들어와서 수학 선생한테 양해를 구한 다음 제자리로 돌아가는 반장.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씨발.’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범인에 대한 분노는 당연했다. 당연히 분노했다. 그렇지만, 범인 말고도 나의 친구들. 이 반의 동급생들에 대한 분노가 갑자기 끓어올랐다.
‘아니, 니들도 했잖아?’
억울했다.
‘설마 이제 와서 발을 빼려고? 지들도 김율 놀리고 패고 할 거 다 했으면서. 내가 김율을 따 시키라고 명령이라도 했냐? 지들이 알아서 따돌린 거 아냐.’
억울했다.
‘여기 자리 앉은 새끼들 중에서 한 번도 김율을 비웃어본 적 없는 놈이 어디 있는데. 동영상 좀 보여달라고 사정하고 부탁한 자식들도 많잖아. 왜 이제 와서 모른 척하려고 해?’
너무 억울했다.
왜냐면 나는 ‘애’를 썼다. 남들이 하지 않은 일을 구태여 노력해서 이루었다. 한 사람을 의도적으로 따돌리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은따를 왕따 만들고 왕따를 전따 만드는 거, 지들은 할 줄 알겠는가?
‘구더기, 아니. 거머리 같은 새끼들.’
나는 노력이라도 했다.
학생회 투고함을 이용해서 플랫폼을 만들었다. 부잣집 애들한테 선을 대었다. 여기 동급생 애들이 남들 공부하는 대로 공부하고, 남들 사는 대로 살려고 할 때, 나는 적어도 [장래]를 생각했다. 미래를 계획했다!
반면에 이 거머리들은 뭘 했는가.
‘내가 애써 만들어놓은 플렛폼에 무임승차한 주제에!’
똑같다. 남들이 비웃으니까 자기들도 비웃었다. 남들이 따돌려서 자기들도 따돌렸다. 이 놈들은, 이 자식들은 그냥 논리가 한 가지 밖에 없다.
[남들도 하니까] .
‘역겨운 새끼들.’
이래 놓고 모른 척하겠지. [남들이 했으니까]. [별 생각이 없어서].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그 따위 변명이나 지껄이면서 자기들도 김율 놀이를 즐겼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거다.
‘아니, 모른 척이 아니라 진짜 모를 거야.’
그냥, 얘들은 머리가 나쁘다. 멍청하다. 자기들이 뭔 말을 하고 뭔 짓을 하는지 기억조차 못한다. 이게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면 무슨 문제이겠는가? 그저 부화뇌동하는 얼간이들. 그러면서 지들이 마치 인간이라는 듯, 아무런 잘못도 없는 인간인 척 구는 놈들…….
‘억울해.’
억울하다.
‘이런 열등한 새끼들한테 왜 내가. 왜 나만.’
억울하다!
차라리 어떤 이야기 속의 용사처럼 정말로 정의로운 누군가가 있어, 그놈은 태어났을 때부터 여태까지 올곧게 살아온 놈이어서, 나를 찌르는 거라면 납득이라도 하겠다.
그게 아니잖나.
‘지금도 김율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한 놈은 한 명도 없지?’
없다.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억울하다. 이놈들이 그저 [범인]한테 이용당해서, 선동되어서, 딱히 깊은 생각도 없이 나를 찌른다는 게, 너무 억울하다.
나는[그런 칼]에 맞아서 죽기 싫단 말이다! 열등한 새끼들!
나는 그보다는 더 대단한 존재다!
부르르르르-...
바지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문자를 보내온 사람은 내 여자친구였다.
+
황은서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앞으로 다가오지 마.
끝이야.
+
"......."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대응할 틈이 없었다. 방법도 안 떠올랐다. [범인]은 내게 여유를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여자친구한테 연락을 했지만 받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 되어 찾아가도, 차갑게 노려볼 뿐.
바로 어제만 해도 나와 있으면 즐겁다며 웃었던 애가.
‘왜 그래…. 나 그냥 재미있는 놈이잖아….’
그 뒤로는 쉬는 시간이 되어도 화장실도 제대로 다녀오지 못했다. 두려웠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또 누가 와서 책상 서랍에 쪽지를 넣어버리면 어쩌라고!
‘씨발.’
점심시간이 되어도 나는 그냥 책상에 엎드려 자는 척했다. 난 멍청이가 아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동급생들이 나와 함께 점심을 먹을리 없다.
혼자 식당에 내려가서 밥을 처먹느니 차라리 자는 척 엎어지는 편이 낫지.
‘그래도 한 놈쯤은 같이 먹자고 권유는 해주겠지?’
나는 책상에 머리를 박은 채 생각했다.
‘그러면 곧장 말해야지. 오늘은 속이 안 좋다고. 그렇게 거절해버리면 다들 알겠지. 황은서는 아무런 피해도 안 입었다고. 멀쩡하다고. 아니 오히려 토라진 것 같다고. 우리가 달래줘야할 것 같다고. 그렇게 다들 알아줄 거야.’
그럴 거다.
‘내가 그동안 너희한테 챙겨준 게 얼만데. 밥값도 꼬박꼬박 줬고, 동영상에도 출연시켜줬고. 친구끼리 싸우면 화해도 시켜줬고. 또....... 또.......'
없었다.
아무도 내게 식당을 가자고 권유하지 않았다.
"......."
학생들이 다 빠져나가고 없는 점심시간의 교실은 조용했다. 12시 45분의 을씨년스러운 정적. 복도에 돌아다니는 놈도 하나 없었다.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와 하얀 커튼들이 너울거렸다.
“개자식들….”
나는 중얼거리면서 일어났다.
“말은 할 수 있잖아. 어? 말이라도….”
문득, 바닥 모를 수치심이 들었다. 등 뒤에 쪽지가 붙은 걸 모른 채 돌아다닌 거. 거머리 같은 애들한테 비웃음을 당한 거. 문자로 차인 것, 모조리, 모든 것이 수치스러웠다.
“나쁜 새끼들. 사람도 아닌 새끼들….”
나는 동급생들의 책상 서랍을 하나하나씩 뒤졌다.
뒤적거렸다.
어쩌면 범인에 대한 증거가 있을지 몰랐다. 언제 나한테 쪽지를 보내라, 무슨 내용의 쪽지를 보내라는 등, 구체적인 지시사항이 숨겨져 있을지도 몰랐다.
‘제발 좀 있어라. 제발!’
그때였다.
“……황은서, 너 지금 뭐하냐?”
나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책상 서랍을 뒤져보는 도중이어서 자세가 엉거주춤했다. 돌아보니, 교실 뒷문에서 동급생 네 명이 서 있었다.
“어,"
나는 말을 더듬었다.
“그게. 잠깐.”
“잠깐? 잠깐 뭐?”
“잠깐 확인할 게….”
“넌 뭐 확인하려고 남 책상을 뒤져? 미쳤냐?”
아니.
“야, 황은서가 우리 책상 뒤졌어!”
“뭐?”
그게 아니야.
“남의 책상은 왜 뒤지는 거래…?”
“너 예전에도 이런 적 있는 거 아냐?”
내 말을 들어봐.
"와. 기분 더럽다….”
그런 게 아니다.
제발 내 말을 들어라.
너희는 지금 선동당하고 있다. 몰랐지? 너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용되고 있어. 그걸 알아야지. 너희는, 너희도 저지른 잘못이 있으니까 나는 너희랑 같은 편이야!
똑같은 팀!
한 팀!
한 팀이다!
날 공격하면 너희들 진짜 큰일난다. 진짜다. 내가 아니면 누가 너희를 위해주겠냐? 나는 너희를 위해서 김율 놀이를 개발했다. 너희를 즐겁게 해줬다. 너희들한테 유희를 제공했다. 누가? 내가!
나를 지켜라! 병신들아!
멍청하게 선동당하지 말고, 누가 같은 편인지 제대로 판단해! 이건 음모다. 음해다. 나는 억울하다. 이 쓰레기 새끼들아! 아무리 멍청하다지만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인지도 판단이 안 되냐.
의리도 없냐!
지금까지 같이 잘 놀았잖아. 너희도 김율 괴롭히면서 즐거워했잖아. 쓰레기장에 살면서, 쓰레기 수거하고 다니는 홀아버지랑 김율 저 병신을 마음껏 비웃었잖냐! 쓰레기들아! 왜 이제 와서 너희의 ‘대장’을 물어뜯으려 하냐!
‘억울하다….’
내가 점심시간에 서랍을 뒤졌다는 얘기는 순식간에 애들한테 퍼졌다. 그래, 뒤졌다. 까짓거 뒤진 게 뭐 대수라고. 하지만 동급생들은 [자신들이 김율을 괴롭힌 적 있다]라는 것보다 [황은서가 교실 책상을 뒤졌다]를 훨씬 더 심각한 짓거리로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억울해….’
맨날 나한테 [감독님, 감독님]이라고 실실 웃던 것들이. 범인이 살짝 협박했다고 해서 배신하다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교실의 즐거움을 위해 봉사했는데.
‘억울해서 죽을 거 같아….’
방과후가 되어도 달라진 건 없었다.
오늘 아침엔 그래도 친구들이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했다. 미안한 척이라도 했다. 하지만 점심시간에 그 일이 벌어지고 난 뒤로는, 그냥 눈빛이 달라졌다. 꼭 내가 죽일 놈이라도 된 것처럼 싸늘하게 쳐다봤다.
‘미친 새끼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억울하다.
억울해.
.......
“황은서.”
학생들이 다 떠나서 텅 빈 교실.
“미안한데 잠깐 나 좀 봐도 될까?”
반장이 말했다.
오늘, 반장은 유일하게 시종일관 무표정을 유지했다.
“뭐야…?”
“웬만하면 신경 안 쓰려고 했는데. 담임 선생님도 그렇고 반 애들까지 나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해서. 이래 봬도 반장이라, 신경 쓰는 척은 해야 할 거 같아.”
“하……."
이 새끼 또 괜히 참견하네, 라고 빈정거릴 수도 없었다. 점심시간 이후로 나한테 말을 걸어준 동급생은 반장이 처음이니까. 반장은 좋게 말하면 모범생이었고, 나쁘게 말해서 자발적 아싸였다. 아마 그래서 주변 분위기를 생깔 수 있겠지.
“무슨 일 있니?”
"......."
순간, 이 지옥 같은 상황을 타개할 탈출구가 엿보였다.
‘맞아. 반장이야.’
반장은 성적이 좋다. 선생들한테 알게 모르게 귀여움을 받고 있다. 동급생들도 반장은 잘 안 건드린다. 선천적인지 몰라도 반장은 약간 도도한 공기를 몸에 두르고 있어서, 말을 걸기도 쉽지 않다.
반장부터 설득해서 차근차근 상황을 반전시키자.
“어. 사실……."
그리고 나는 내가 얼마나 억울한 일을 당했는지 얘기했다.
내가 어쩌면 김율을 그동안 아주 조금 무시한 것도 같다. 그런데 내가 부잣집 여자친구랑 사귀는 걸 누가 아니꼽게 봤는지,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있다. 억울하다. 억울한데 반 애들이 내 말은 듣지도 않는다.
도와달라.
"......."
약 30분에 걸친 하소연을 반장은 무덤덤하게 들어주었다. 반장은 내 말을 막지 않았다. 반론하지도 않았다. 그저 평소와 똑같은 태도로 경청했는데, 그 자세가 고마웠다.
“그래. 그렇구나.”
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서 네가 억울한 건 알겠어. 정말 억울하겠다. 원래 애들이 자기 일 아니라면서 냉정하게 굴 때가 있지.”
“진짜 그런다니까.”
“하지만, 내가 도와줄 방법이 마땅치 않네. 이걸 어쩐다….”
반장이 고민했다. 고민은 오래 이어졌다. 별로 친하지 않은 나조차 반장이 깊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 두 사람모두 입을 다물었다. 한참이 지나서 반장이 고개를 들었다.
“아."
반장이 책상을 툭 쳤다.
“은서야. 이런 건 어때? 내가 보기에 결국 이런 문제는 은서 네가 김율한테 용서를 받으면 해결될 수밖에 없어.”
“김율한테…?”
“그래. 까놓고 말해서 다른 애들은 전부 부외자잖니. 당사자인 김율이 널 용서하면 딴 애들도 아무 소리도 못하지.”
"......."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듣고보니 맞는 말이었다. 다른 애들이 뭐라고 씹어대던 간에 김율이 한마디만 해주면, [나는 이제 황은서를 용서한다] 라는 말만 해주면, 동급생들이 뭐라 할 말이 없어진다.
“어… 그치만….”
문제가 있다.
“김율이 내 사과를 받아줄까? 안 받아줄 거 같은데…."
“걱정하지 마렴. 귀찮지만, 한 번 얘기는 해보지 뭐.”
반장이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좀 도와줄게. 황은서.”
무척 친절한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