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자살헌터-157화 (157/400)

157화.  < 신이 되다. (3) >

3.

[‘사냥감 탐색’을 구입합니다.]

[5 종족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현재 당신이 가진 종족 포인트는 865입니다.]

“크르르르!"

나는 숫소의 가죽을 물어뜯었다. 생긴 건 소를 하나도 안 닮았고, 등껍질에 고슴도치처럼 가시까지 달린 동물이었지만, 내가 얘를 소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었다.

-음머어!

울음소리가 딱 소거든.

-음머! 음머어어어!

숫소가 가냘픈 비명을 질렀다. 마지막까지 몸부림을 치며 반항했지만 소용없었다. 내 이빨과 발톱, 무엇보다 고블린들이 찌른 죽창엔 숫소도 버티지 못했다.

쿠웅!

숫소가 쓰러졌다.

나와 함께 사냥에 나선 고블린들은 신나서 발을 동동 굴렸다.

-키르륵! 케!

-케륵, 케케고, 고르륵!

[‘사냥’에 성공했습니다!]

[이 사냥감에 대해 완벽히 알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이 동물을 사냥하는 것으로는 종족 포인트를 얻을 수 없습니다.]

[사냥 경험이 최대치에 달했습니다. 더 이상 사냥으로는 종족 포인트를 얻을 수 없습니다.]

‘쩝, 이 근방 사냥은 이걸로 쫑났네.’

-좀비야… 그만 나가자… 제발… 빼먹을 거 다 빼먹었잖아….

‘좋아, 그럼 이제 채집 갑시다!’

-젠장!

그런 목가적인 나날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더 이상 채집으로는 종족 포인트를 확보할 수 없습니다.]

이제 고블린들은 더 이상 맨살을 드러내지 않았다. 고블린들은 빨간색 진흙이나 초록색 진흙을 써서, 어설프나마 현란한 그림들을 문신하고 다녔다.

그러자 어쩐 일인지 냄새까지 줄어들었다. 진흙에 소취 효과가 있는 건지, 원시 패셔니스타 특징의 힘인지 모르겠지만 된장찌개와 여름철 무더위를 쉐이크해서 시궁창에 가미한 듯한 악취는 이제 그만 안녕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정족이 ‘수렵채집인’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지정족들 사이에서 대형동물에 대한 두려움이 옅어집니다.]

[종족 포인트를 50 획득했습니다.]

[현재 당신이 가진 종족 포인트는 1015입니다.]

“고르.”

‘오케이.’

나는 만족스러워서 꼬리를 흔들었다.

‘이제 정말로 얘네한테 해줄 수 있는 건 거의 다 했다.’

고블린들은 진흙을 가지고 놀게 되었다. 무리를 이루어서 대형동물을 사냥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것이 시작점. 장차 위대한 [고블린 문명]이 꽃피우게 될 토양은 마련된 것이다.

‘더 얻을 수 있는 종족 포인트도 없어졌고.’

다른 동료들도 나와 사정이 비슷한 걸까?

[귀인족을 인도하는 독사가 클리어를 선언합니다!]

[순인종을 인도하는 검성이 클리어를 선언합니다!]

‘스테이지 클리어’를 선언하는 동료가 늘어났다. 제일 먼저 도깨비들을 다스리는 독사가 클리어를 선언했다. 검성이 그 다음.

나머지 동료들도 하나 둘씩 이번 스테이지를 마무리짓고 있겠지.

‘아아.’

나는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기왕이면 [문자]라거나 [오러] 같은 것도 전수해주고 싶은데. 이게 참….’

-왜? 전수해주면 그만이지.

‘해주고 싶어도 못 하니까 문제죠.’

사자의 아가리로 한숨을 쉬며 문명 상점을 쳐다봤다. 문명 상점에는 웬만한 아이템이 다 준비되어 있었다. 내가 고블린들한테 전수하고 싶은 것도 상점에 또렷이 표시되어 있었다.

‘아이템 검색. 문자(文字).’

문제는 그림 속의 떡이라는 것.

홀로그램이 사르륵, 움직이며 상품을 표시했다.

+

[문자]

설명: 종족이 글자를 발명합니다. 글자로 기록을 남기는 것은 구전(口傳)보다 한결 더 효과적입니다! 말하자마자 곧 증발해버리는 목소리와 달리, 글자는 시간의 흐름을 견딥니다.

가격: 4500 종족 포인트

※순인종은 해당 기술을 보유하고 시작합니다.

+

’젠장. 이런 미친 가격을 봤나….’

심해도 너무 심한 가격이다.

지금 내가 보유한 포인트가 1015. 사냥하고 뭐하고 하느라 이리저리 쓰긴 했다지만, 그걸 설령 한 푼도 안 쓰고 모았다고 해도 [문자]를 구매하기엔 쨉도 안 된다. 심지어 이렇게 값비싼 [문자]를 순인종은 처음부터 가지고 시작한댄다.

종족 밸런스 실화냐.

-고블린을 고른 네 잘못이지. 낄낄.

순인종만 보너스를 가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순인종은 약과다, 약과.

백작이 다스리는 요정족, 즉 엘프는 처음부터 [마나 반응]과 [오러 반응]을 보유한다. 두 기술 모두 가격이 6200포인트를 자랑한다.

새삼 고블린들이 얼마나 열악한 조건에서 시작한 건지 느껴진다.

‘저는 물론 이 아이들이 미래에 승천해서 순인종이고 요정족이고 다 씹어먹을 거라는 사실을 믿습니다만, 좀 불쌍하네요.’

-불쌍한 건 네 대가리 아닐까, 좀비야?

‘딴 건 몰라도 진짜 글자만큼은 남겨주고 싶은데. 허어. 4500포인트까지 모을 방법이 없으려나……?’

또다시 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기족을 인도하는 성기사가 클리어를 선언합니다!]

성기사까지 클리어를 선언한 것이다.

이제 31층 스테이지엔 세 명밖에 안 남았다. 산와족을 다스리는 이단심문관. 흡혈종을 통치하는 흑룡주. 마지막으로 나.

‘으음.’

그쯤에서 난 고민을 끝내버렸다.

‘됐어요. 정공법으로 [문자]를 구입하는 건 관둡시다.’

-엉?

‘설령 4500포인트를 모았다고 해도 아까워서 못 사요. 이 귀중한 포인트를 아이템 하나에 쏟아붓다니. 그리고 언제부터 제가 정공법을 썼습니까? 항상 꼼수에 의지했지.’

-뭔 소리야?

‘제가 직접 얘네한테 글자를 가르치면 되잖아요!’

그 날부터 나는 고블린들의 두뇌와 혈전을 펼쳤다.

“크르륵, 고르. 아. 케르, 아.”

‘얘들아, 잘 봐라. A. 이게 A다.’

나는 땅바닥에 알파벳 A를 그렸다. 혹시라도 못 알아볼까 봐 발톱으로 큼직하게 새겼다. 하지만 내 주변에 모여앉은 고블린들은 머리를 갸웃거리기만 했다.

-케르르르?

-케케륵케르?

과연.

쥐뿔도 알아먹지 못한 눈치로군.

그러나 나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고르! 가아, 아, 케르, 아!”

‘잘 봐! A, A, 이게 A라고!’

나는 으르렁거리며 고블린들을 몰아붙였다.

고블린들이 놀라서 움찔! 어깨를 떨었다.

-가르…?

-고오, 고오?

고블린들이 일어나서는 어디론가 걸어갔다.

[지정족들이 당신을 두려워합니다.]

[당신의 영문 모를 행태로 지정족들이 혼란에 빠집니다.]

잠시 뒤, 고블린들은 오늘 아침에 잡은 숫소의 고기를 가져왔다. 먹기 좋게 바싹 태운 고기를 내 앞에 슬쩍 내민 것이다.

-케케륵케르…!

고블린들이 땅에 머리를 조아리며 울었다.

[지정족들은 당신이 노여움을 풀길 간청합니다.]

‘아니. 이것들이 진짜?’

이 엄마가 지금 그까짓 숫소 고기를 먹고 싶어서 너희한테 화내는 줄 아냐?

다 너희 잘 되라고 선행학습을 시키는 건데 왜 알아듣지를 못해?

맨날 고르륵 고르륵거리면서 놀기만 하면 나중에 옆집 엘프들이랑 이웃집 인간들이 너희를 잡아다가 몬스터 찜구이로 만들어버려요. 찜구이 되고 싶니? 어? 나중에 엘프들한테 경험치 파밍용 몬스터로 취급받고 싶어?

“크르르릉! 가아, 아, 카르!"

-케, 케르르륵….

나는 포기하지 않고 문자 학습을 시도했다.

그러나 결과는 대실패.

고블린들은 ABC를 익히지도 못했다. A까지는 어떻게든 외운 것도 같은데, ‘이게 도대체 뭐야?’ ‘몰라요…’ 저희가 이걸 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같은 표정들을 지으며 시무룩해졌다.

‘끄응.’

고블린 종족을 이끌면서 처음으로 난관을 느꼈다.

‘설마 고블린 지능으로는 글자를 익히는 게 불가능한가? 이상하다. 염제가 엘프들로 33층 깰 시점에 지정족도 분명히 글자를 썼던 거로 아는데…. 시대가 너무 일러서 지능이…? 그렇진 않을 텐데….’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런 식으로 ABC를 다 가르쳐봤자 얼마 안 가서 까먹을 게 뻔해.’

고블린들이 직접 의미를 느껴야만 한다. 이걸 왜 배우는지. 배우면 뭐가 이득인지. 안 그러면 기껏 문자를 전수한들,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전부 잊혀질 거다.

어떻게 해야 글자에 의미를 부여할까.

"......."

어?

잠깐만. 뭔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어쩌면 내가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건가?’

그래. 글자를 전수해준다고 하여 꼭 ABC를 가르칠 필요는 없잖은가!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켜서 포효했다.

“크르르륵!”

‘모여라!’

고기를 먹고 있던 고블린들이 흠칫거리면서 모여들었다. 다들 풀죽은 강아지처럼 귀가 아래로 내려갔다. 아마 저 표정들을 해석하면 또 이상한 거 하시려나?’ ‘우쒸, 나 이거 싫은데…’ ‘그냥 평소처럼 진흙이나 묻혀주시면 좋겠다’ 정도.

요컨대 좀 삐져 있었다.

“크르크르. 크르륵. 케케륵케르, 고르, 케.”

‘자자. 괜찮아. 내가 너희 좋아하는 거 알지?’

나는 앞발에 진흙을 묻혀서 고블린들 몸에 발라줬다. 간질간질. 그러자 뚱해 있던 고블린들도 입가가 좀 펴지기 시작했다.

-고르고륵.

-케르릅, 케르!

짜식들. 쉽게 삐지는 만큼 쉽게 풀리는군.

내 현란한 진흙 묻히기 솜씨에 고블린들의 꽁한 마음도 사르륵 녹아내렸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풀린 다음, 나는 고블린들한테 [문자]를 보여주었다.

‘자아! 봐라, 얘들아. 이게 진흙이다.’

다만 지금까지 와는 약간 다른 문자를.

나는 발톱으로 스윽스윽 뭔가를 그렸다.

■.

우선 네모를 그리고 안쪽을 새까맣게 칠했다.

그다음, 진흙을 뭉쳐서 ■ 옆에 쌓았다.

‘진흙. 이게 진흙이다. 알겠냐?’

-케르르특…?

고블린들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잘 모르겠단 얼굴이었지만 나는 개념치 않았다. 차근차근 시간을 들이기로 했다.

하루가 흐르고 또 흘렀다.

나는 고블린들에게 진흙을 발라줄 때마다 땅바닥에 ■를 그렸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고블린들의 몸에 글자를 문신 해주었다.

‘이건 낮이다. 하늘이 환하다.’

O.

‘지금은 밤이다. 하늘이 어둡다.’

●.

‘저건 태양이다. 눈 부시지?’

☆.

‘이건 달이다.’

★.

‘이건 물이다. 물. 시냇물.’

~.

‘물이 좀 깊으면?’

~~.

‘물이 무진장 깊으면?’

~~~.

-케르르….

-케륵? 케르, 케?

처음엔 어리둥절해하던 고블린들도 천천히 나의 [그림 ]을 이해했다. 고블린들은 어째서 A가 ‘아’를 뜻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받아들이지 못했으나, ■가 ‘진흙’을 의미한다는 건 그럭저럭 알아들었다.

‘그래.’

애당초 나의 접근법이 잘못되었다.

‘고블린들에게 아직 세계는 작아.’

이 세계에서 고블린들이 알아보는 것은 얼마 없다.

광활하기 그지없는 세계이지만, 고블린이 이곳에서 보는 것과 느끼는 것, 맡는 것, 듣는 것은 정말로 한 줌밖에 안 된다.

-케륵.

하늘.

-케르륵.

땅.

-케르.

고기.

-케.

물.

고블린들은 자기 머리 위에 펼쳐진 푸른색의 무언가를 보았다. 자기가 밝고 서 있는, 딱딱하지만, 때로는 부드러운 무언가를 느꼈다. 지네고기가 익으면서 풍기는, 기분 좋은 냄새를 맡았다. 마시면 시원하고 뛰어들면 기분 좋은 무언가의 찰랑찰랑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고르!

기분이 좋으면 좋다고 말했고.

-케르르특….

싫으면 싫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고블린의 세계에는 대략 6개의 무언가가 있었다. 6개로 전부였다. 여섯 개의 세계를 표한하는 데엔 여섯 개의 단어로 충분했다.

수십 개의 ‘알파벳’보다는 여섯 가지의 ‘그림’.

그것이 지금 고블린들에게 필요한 글자였다.

쏴아아아아-

어느 날 비가 내렸다.

고블린들은 빗물에 몸을 씻으며 뛰놀았다.

나는 그런 아이들한테 어떤 글자를 보여주었다.

'물.'

~.

‘까만 하늘.’

●.

‘까만 하늘에서 내리는 물.’

●~.

'비'

나는 고개를 치켜들어 세상에 쏟아지는 빗물을 가리켰다.

고블린들도 내 고개짓을 따라 빗물을 바라보았다.

'비.'

-.......

얼마나 지났을까.

고블린들이 서서히 입을 열었다.

-케륵케?

-케륵케. 케륵케.

고블린들이 빗물을 가리켰다. 그리고 내가 땅바닥에 새겨놓은 ●~를 모방해서, 똑같이 생긴 글자를 흙바닥에 그렸다.

-케륵케!

‘비.’

고블린들은 이게 맞냐는 듯 내게 날 쳐다봤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한 차례 끄덕였다.

“고르.”

‘좋다.’

그 순간.

[지정족이 문자에 눈을 뜹니다!]

[지정족이 새로운 특성 ‘기록의 유산’을 얻습니다!]

눈앞에 글자들이 떠올랐다.

+

[기록의 유산]

랭크: E (A)

효과: 지정족은 그림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깨달았습니다! 자신들이 그리는 그림이 단순히 보기에 멋질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 문양에 의미를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정족은 알았습니다.

'O.'

이것은 지정족에게 하늘을 뜻합니다.

'■.'

이것은 지정족에게 진흙과 땅을 뜻합니다.

'O■.'

그리하여 이것은 하늘과 땅을 뜻하며, 이로써 지정족은 천지(天地). 즉 ‘세계’를 표현합니다.

'O■.'

그것이 지정족의 세계입니다.

이제부터 지정족은 그림 문자를 발전시켜 나갑니다. 지정족은 그들이 사랑하는 것을 그림으로 남길 것이며, 그들의 문자에는 그들의 삶이 담기게 될 것입니다.

이들에게 행운이 함께하기를.

※단, 역사의 전개에 따라 이 특성은 변화할 수 있습니다.

+

"......."

뭘까.

그림 몇 가지를 가르쳤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감격스러웠다.

-케륵케, 케륵케!

-케륵케르륵!

이제 고블린들은 나를 내버려둔 채 신이 나서 그림들을 그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묘하게 안타까웠고 기뻤으며, 어딘지 모르게 쓸쓸했다. 흐뭇함? 기특함?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흡혈종을 인도하는 흑룡주가 클리어를 선언합니다!]

보름이 지나자, 흑룡주마저 클리어를 선언했다.

이제 31층 스테이지엔 나와 이단심문관. 둘밖에 안 남았다.

‘이단심문관도 진득하게 뭘 가르치고 있나 보네.’

그동안 나는 고블린들에게 숫자를 가르쳤다.

처음엔 아라비아 숫자를 가르치려 했지만 도통 이해하지를 못해, 타협해서 로마 숫자를 가르쳤다. I. II. III. 간단히 작대기로 이루어져서 그런지 고블린들도 로마 숫자는 이해했다.

마음 같아서는 사칙연산도 가르치고 싶다만.

‘이 아이들, 빼기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군….’

고블린은 고블린.

6보다 큰 숫자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긴. 벌써부터 너무 많은 것을 바라면 안 되겠지.

‘이 정도면 가르칠 건 다 가르쳤네요. 그렇죠?’

-그런 거 같다, 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저도 떠날 때가 됐습니다.’

그날 밤. 고블린들이 잠에 곯아떨어진 틈을 타서 부족을 빠져나왔다.

내가 사라진 걸 알게 되면 고블린들은 무척 슬퍼하겠지.

하지만 이 흰사자의 몸을 부족 한가운데에 버려둔 채 31층을 떠날 순 없다. 고블린들을 공격해서 상처입힐지도 모르니까.

“크르. 고르르르

‘잘 있어라. 얘들아.’

나는 어린 고블린의 이마를 혀로 핥아주었다.

-고르르…

꼬마 고블린은 아무것도 모른 채 푹 잠에 들었다.

‘귀여운 것들.’

나는 고블린 정착지, [구루]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졌다. 시간이 흘렀다. 어두운 밤. 벌레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는 세상에서, 저 멀리, 고블린들의 구슬픈 울음이 들려왔다.

-케케륵… 케르…….

내가 사라진 걸 벌써 알아차린 걸까?

고블린들이 케케륵케르, 나의 이름을 울부짖고 있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더 빨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잘 살아라! 잘 크고! 나중에 더 멋진 모습으로 만나자!’

그리고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스테이지 클리어를 선언합니다!’

탑의 목소리가 반응했다.

[스테이지 클리어!]

[31층 스테이지가 클리어되었습니다.]

[보상 정산은 32층 진입 후 이루어집니다.]

[연쇄 계층 진행중 - 당신은 32층으로 강제 전송됩니다!]

싸아아아아!

하얀 빛이 내 눈앞을 감쌌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