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자살헌터-169화 (169/400)

169화.  < 주인과 친구 사이. (2) >

주인主人.

"......."

나는 지그시 상대방을 보았다.

이단심문관이 단순한 비유나 상징으로 주인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는 건, 방긋방긋 웃는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때로는 소년이며 때로는 청년인 이 남자는 농담을 할 줄 몰랐다.

그런데도 캐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나 해서 여쭙지만. 이단심문관 씨, 저를 주인으로 섬기겠다는 소리는….”

“당신의 명령에 복종하겠습니다.”

이단심문관은 즉답했다.

“당신이 죽이라는 적을 죽이겠습니다. 당신이 살리라는 적을 살리지요! 말씀드린 대로, 저의 판단을 당신의 판단에 물리고 저의 행동을 당신의 행동에 맞추겠습니다.”

이단심문관이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에 올렸다. 집사를 흉내내듯 절도 있는 자세로.

“저는 제법 쓸 만한 도구입니다!”

"......."

“좋은 도구의 장점은 [성능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자랑은 아닙니다만 군벌을 숙청하고, 내부를 단속하며, 집단을 하나로 유지시키는 데 저만큼 쓸모 있는 도구는 없겠지요! 사왕. 당신은 언제나 저의 성능을 믿고 쓸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해.

이단심문관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저는 절대로 바뀌지 않습니다]라고.

“저를 써주십시오!”

이단심문관이 활짝 웃었다.

그, 자신의 불변성에 확신을 품은 모습에, 나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저릿했다.

「감정을 얻은 저는 좀 장난꾸러기가 되는군요!」

왜냐면 나는 이단심문관이 달라졌던 모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는 감정을 느끼는 것에 중독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늘 이런 기분 속에서 사는 걸까요?」

오직 나 혼자만.

이단심문관 본인조차 겪지 못한 일면을 나는 홀로 기억한다.

목련이 희어서 지는 나무 아래, 이단심문관은 중얼거렸다.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이때 이렇게 했더라면. 그런 생각 속에 표류하며, 방랑하며, 그럼에도 그렇게 살아가는 걸까요.」

「그러기에 이토록 당신들은 아름답고, 이다지도 사랑스러운 것이겠지요.」

「만약 저도 당신들처럼…….」

이단심문관은 그때 말을 다 잊지 못했다.

그가 목구멍 아래로 삼킨 문장의 말미를, 나는 능히 짐작했다.

[만약 저도 당신들처럼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더라면. 조금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많은 싸이코패스를 만나본 나이기에 알 수 있다.

싸이코패스인가 아닌가를 가르는 경계선은 세 조각의 어절로 이어져 있다.

‘만약 저도 당신들처럼.’

그 말을 입에 담은 순간부터.

내게 이단심문관은 단순한 싸이코가 아니라, 어쩌다 지금의 인생을 살게 되어버린 남자로 비추었다.

“……이름.”

나는 입을 열었다.

“네?”

“당신 이름이요. 이명이 아니라 본명. 검성 어르신의 이름은 마르쿠스 칼렌베리고, 독사의 이름은 랴오판이죠.”

그리고 백작의 본명은 ‘니샤’다. 부지불식간에 성기사가 백작을 본명으로 부른 적이 있었다. 다만 백작이 내게 직접 알려준 적은 없었기에, 나는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척했다.

아직 나한테 본명을 밝힌 동료는 검성과 독사. 두 사람뿐이다.

“이단심문관 씨. 저는 당신의 이름을 알고 싶습니다.”

“아핫.”

이단심문관이 눈을 깜빡였다.

“그건 명령입니까?”

“명령이 아니라 부탁이라면 이름을 말해줄 수 없어요?”

“예!”

“왜요?”

“저는, 아니. 저희는 옛날에 흑룡주와 약속을 했습니다. [우리는 바깥세상을 버리고 온 몸. 국적, 재산, 인연, 모든 것을 사해(死海)에 흘려보낸 이방인들. 그러므로 바깥세상이 우리에게 붙인 이름표 또한 지워버리자. 서로를 부를 때, 오직 탑에서 얻은 이름만을 입에 담자.]"

과연.

‘그런 약속이 있었구나.’

새삼스레 내가 탑의 원년 멤버가 아니란 사실이 와닿았다.

“흑룡주는 바깥세상에 복합적인 감정을 품고 있으니 말입니다! 증오하고, 경멸하면서도, 바깥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갈구합니다. 아하핫. 아마 우리 중에서 제일 감정이 격한 인간이겠지요!”

이단심문관이 왼눈을 찡긋 감았다.

“아무튼 검성은 우리 조직에서 탈퇴했습니다. 약속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독사는 애당초 그런 약속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성격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약속을 중히 여깁니다. 사왕. 제가 바깥세상에서 지녔던 이름을 꼭 알고 싶다면….”

이단심문관이 가늘게 눈을 떴다.

“제게 명령해주십시오.”

"......."

“따르겠습니다.”

알 수 있다.

이건, 비단 이름을 말하느냐 마느냐의 문답이 아니다.

원년 멤버끼리 나눈 [약속]보다 내가 내린 [명령]을 우선시하겠다는 뜻.

나한테 충성을 맹세하겠다는 서약이다.

‘……책임질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내가 이 사람에게 다른 삶을 안겨줄 수 있을까. 싸이코패스를, 싸이코패스로 살게 된 자를 책임질 수 있을까. 의지는 있다. 욕심도 있다. 하지만, 내게 그만한 능력이 있는가?’

나는 가만히 이단심문관을 내려보았다.

아무 말도 없이, 이단심문관은 내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소르므윈 학원 이야기]에서 이단심문관을 개심시킬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실패했어. 기회를 놓쳤지. 라비엘을 돕는 데 힘껏이라서, 미처 이 아이까지 챙길 겨를이 없었다.’

만일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는 이단심문관에게 또 다른 인생을 마련해줄 수 있을지, 생각했으며.

‘할수 있다.’

답을 내렸다.

‘해주고 싶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직은 두 번째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지만.

찾아올 때까지는 당분간만이라도, 눈앞의 아이를 책임지자.

“당신의 이름을 말해주세요.”

이단심문관이 싱긋 웃었다.

“저의 본명은 밤볼리나(Bambolina)입니다.”

금빛 머리카락 아래로 웃음소리가 흘렀다.

“엄밀히 말하면 본명이라 말하기 힘듭니다. 애칭이라고 할까요!”

애칭.

“저는 어릴 적에 마피아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마피아들은 저를 종종 ‘아기 인형’이라 불렀고 그게 그대로 이름처럼 굳어졌습니다. 아. 밤볼리나는 인형이란 뜻입니다! 쿠크라(KyKna)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단심문관이 해맑게도 말했다.

“저를 가둔 조직은 불가리아에 본가를 두고 있었습니다. 굉장히 다방면에 촉수를 뻗은 조직이었지요. 저는 그런 조직의 사업에 쓸 수 있도록 훈련받았습니다.”

“있었다, 고 굳이 과거형을 쓴 이유는……."

“지금은 지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이단심문관이 방긋 웃으며 품속에서 자물쇠를 꺼냈다. 휙. 휙. 마치 볼펜이 굴러가듯, 이단심문관의 왼손 위에서 자물쇠가 이리저리 노닐었다.

“저는 11년 동안 감금되어 있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훈련을 받은 다음 침대에 눕는데, 문득 의문이 들더군요. [저 방문에 달린 자물쇠를 나는 열 수 있다. 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딸각.

이단심문관의 손에서 자물쇠가 쇠소리를 내며 열렸다.

“다시 생각해보니까, 없었습니다!”

그래서 탈출했다.

“제 전담 감시자를 죽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보스를 살해하지 말아야 이유도 없었지요!”

이유가 없으면 행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반드시 행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단심문관은 단연코 후자였다.

“두 명의 대간부와 네 명의 소간부 사이에 불화를 일으켰습니다. 의혹이 자라나도록 적당히 현장을 조작했습니다. 과연 반년이 흐르자 제 짓이 아닌가 의심받기 시작했습니다만, 아핫. 그땐 이미 조직이 절반은 괴멸된 상태였습니다!”

마피아의 아기 인형은 유유히 입탑(入塔)했다.

탑은 끔찍할 정도로 유능한 짐승을 얻게 되었다.

“...왜 하필 저를 주인으로 모시겠다는 겁니까?”

“첫 번째 이유는, 물론, 사왕이 저보다 유능하기 때문이고.”

이단심문관이 말끝을 천천히 늘어뜨렸다.

“두 번째 이유는…… 제가 망설였기 때문입니다.”

“망설여요?”

“으음. 예.... 뭐라고 말씀드려야 이해를 구할까요.”

드물게도, 이단심문관이 꽤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소르므윈 학원 이야기]를 클리어한 이후로 저는 다소… 이상해졌습니다. 평소대로 테러리스트를 처단하려고 해도 예전처럼 빠르게 집행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고작 1초 정도의 차이밖에 없었겠습니다만, 저에겐 바로 그 1초가 이상했지요….”

이단심문관이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 1초 동안, 저는 사왕과 함께 소르므윈 학원에서 보낸 풍경을 떠올렸습니다.”

"......."

“이상하지요?”

아니.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나는 마음속으로 놀라고 있다.

‘영향이 남았구나.’

이단심문관이 금사매한테 완전히 몰입해버린 루트는 사라졌다. 소실되었다. 그러나 내가 새롭게 밟은 정사(正史)에서도, 이단심문관은 미약하게나마 금사매의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설령 몰입률이 10%도 안 되었다고 해도.

아니, 1%에 불과했다 하더라도.

작은 인형은 틀림없이 ‘감정’을 체험했다.

“사왕. 당신이 저의 망설임입니다.”

이단심문관은 말했다.

“당신이 제 인생에서 1초를 차지했습니다. 그건 처음 겪어본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당신이라면 저의 삶에서 1초와 1초를 이어서 언젠가 1분이 되고 1시간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단심문관이 화사하게 웃었다.

“지금이라면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을 인간에 대한 희망이라 부르는 것이겠지요. 사람은, 언제나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시간을 차지해주길 기다리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저의 희망입니다!”

“당신이 저의 시간을 차지한다고 해서, 제가 작아지는 것은 아닐 테지요. 예. 어딘지 모르게.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단심문관은 내게 자물쇠를 건넸다.

오래된 자물쇠는 녹이 슬어 있었다.

“그저 저라는 선율에 당신의 리듬이 더해질 뿐일 것입니다. 저의 단선율(單旋律). 제 단조로운 흥얼거림에 당신의 노랫말이 더해지지 않을까, 저는 간신히 비유로나마 상상하고 있습니다.”

나는 자물쇠를 넘겨 받았다.

“당신으로 인해 저는 음악이 될지도 모릅니다. 사왕. 저 같은 인간조차 말입니다.”

이단심문관이 미소를 지었다.

“당신을 저의 희망으로 삼아도 되겠습니까?”

"......."

무겁다.

무서운 말이다.

무거움과 무서움은 한끗 차이라서, 자칫 이단심문관을 짊어지는 걸 무서워하게 될지도 몰랐다.

나는 아귀(飯鬼)의 무게를 생각했다. 교인들의 무거움과 실비아 에비나일의 무게를 생각했다. 살천성의 무게에 대해 생각했다. 지정족의 무게를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그쯤에 이르러서, 나는 여기에 하나의 짐을 더하여도 되겠구나 생각했다.

“예."

이단심문관은 나의 동료다.

“당신의 희망이 되겠습니다.”

이단심문관이 짐승 같은 자라 해도 상관없다.

원래 인간이란, 다만 사람을 동경하는 짐승이므로.

눈앞의 아이도 나도 사람으로 향하는 길 위에 있다.

“제 허락 없이,”

나는 명령했다.

“누군가를 죽이지 마십시오.”

“네!”

“저의 허락 없이 사람을 고문하지 마세요.”

“네."

“제 허락 없이, 누군가를 감금하지 말아주세요.”

“알겠습니다!”

“고민이 들 때 제게 말씀해주세요. 대신 저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경멸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도 않을게요. 당신의 입장에서 생각할 테니, 밤볼리나. 저를 당신과 같은 사람으로 여겨주세요.”

"......."

이단심문관이 가슴에 양손을 모았다.

나는 처음으로 그가 [기도하고 있다]고 느꼈다.

“예. 저보다 유능한 분이여. 당신이 저의 희망일 때, 저는 당신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서열 4위. 만신전주(萬神殿主).

작은 인형은 내게 충성을 맹세했다.

“저는 이번 스테이지에서 탈락했습니다. 32층에 함께 가지는 못합니다. 지금 이 시간도, [신기루를 거니는 공녀]에게 부탁해서 임시로 마련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곧 끝나겠지요. 저는 바빌론에서 사왕의 명령을 깊이 유념하고 있겠습니다!”

“예."

나는 이단심문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얌전히 집을 지키고 있어주세요. 사이비 교주 씨.”

“아하핫-.”

이단심문관이 웃었다.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공자님!”

이단심문관의 신형이 녹아내렸다.

[이단심문관이 퀘스트 달성에 실패합니다.]

[이단심문관이 스테이지에서 탈락합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내 주변으로 다른 동료들이 나타났다.

검성. 흑룡주. 백작. 독사. 성기사.

나를 포함해서 6명이 된 공략조는, 서로 어리둥절하게 쳐다봤다.

“……뭔가 이번엔 클리어 선언을 하고도 조금 기다리게 됐네?”

흑룡주가 말했다.

“사왕. 당신이 제일 먼저 클리어를 발표했잖아. 지금까지 어디 있었니?”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냥요. 이단심문관이랑 작별인사를 나눴어요.”

우리가 걸어온 길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비록 말하지 않고 보이지 않더라도, 어디선가 누군가가 우리에게 영향을 받고 있다.

나는 자물쇠를 꾹 쥐면서 말했다.

"다들 고생하셨어요. 다음 스테이지로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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