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자살헌터-187화 (187/400)

187화.  < 염화(炎火). (2) >

3.

어두운 공간에 북소리가 울린다.

두웅…

아니, 북소리가 아니다. 둥. 발소리인 것 같지만 누구도 발을 움직이지 않으므로 발소리 역시 아니다. 두둥. 둥. 둥. 이미 외딴 무대에 떨어져 있던 배우들이- 외눈, 외팔, 외귀가,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휙, 고개를 돌린다.

그곳에 내가 있다.

온몸에 불을 두른 채 나는 무대를 기어나간다.

-와가르….

염제炎帝.

배우들이 어깨를 떤다.

-카르….

-케.

-카르카사….

두려운 떨림. 그 진동을 고스란히 헛바닥에 담아, 배우들은 그늘에 잠긴 뱀처럼 저들끼리 속삭인다.

-쉬.

-라크.

-구르.

작금의 언어가 아니다. 오래 전, 원시목 아래서 도토리를 줍던 시대. 아직 목소리와 말소리가 분간되지 않은 시절의 속삭임으로 배우들은 수군거린다. 쉬. 라크. 구르. 쉬. 라크. 구르.

-.......

불온한 속삭거림에 어느덧 관객들은 입을 닫았다.

고대에 조상들이 중얼거린 언어를 홉고블린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허나 이해하지 못할 뿐.

관객들이 숨을 죽였다. 자신들의 성대가 가장 자연스럽게 토해내는 불길함과 불안함을, 초록 피부의 짐승들은 느낄 수 있었다.

-쉬.

-라크.

-구르.

배우들이 겁 먹은 채 내 주변을 맴돈다. 쉬. 그들이 발걸음을 내딜 때마다 내 오러가 공명하여 음악을 연주한다. 라크. 발길이 느려질 때면 음악도 따라 느릿해진다. 구르. 발걸음이 내게 가까워질 때면, 음악도 서서히 격렬해진다.

-와가르.

어두운 무대에 나의 불길이 퍼진다.

[그렇다.]

나는 한 마리의 아름다운 야만처럼 네 발로 긴다.

[내가 염제다.]

그르렁, 거리는 신음이 입에서 흘러나온다.

가까이 다가오던 배우들이 멈칫하고 흠칫거린다.

[나는 세상의 불이다.]

목소리가 오러로 변질된다.

짐승과 같은 으르렁거림이 아가리에서 샌다.

[나는 성공한 자다.]

무대 바닥이 흔들리고, 시커먼 관객석의 공기가 떨린다.

피비린내 나는 오러.

선율은 기묘하고 리듬은 기이하다. 쉬-라크-구르. 기기묘묘(奇奇妙妙)한 음악이 울린다. 쉬-라크-구르. 세상을 모욕하고 사람을 조롱하는 비웃음에, 맨 앞줄에 앉은 관객들은 섬찟 어깨를 움츠렸다.

[나를 부러워하라. 질시하라. 숭배하라.]

내 입에서 흘러나온 건 기껏해야 쉭, 쉭, 혀가 날름대는 소리다. 그 이상의 말은 불요하므로. 나는 말로 말하지 아니하고 오러로 소리를 발한다.

[세상이란 나를 조금 더 태우기 위한 장작에 불과하다.]

쉬.

[나는 너희의 질투를 귀찮게 여긴다. 너희가 내 귀찮음을 알아보길 원해서다. 불은 혼자서 타오를 수 없는 법이다. 너희, 하찮은 존재들은 끝없는 땔감이 되어 나의 주변에 거해야 할 것이다.]

라크.

[나는 나의 성공을 비웃는다. 그리하여 성공하지 못하는 너희를 더욱더 크게 비웃는다. 나는 너희의 관심을 조롱한다. 그러므로 관심 받지 못하는 너희를 더욱더 크게 조롱한다.]

구르.

[나는 겸손한 자다.]

[나는 무심한 눈으로 만사를 훑는다. 담담한 낯으로 만생을 살핀다. 나의 성공마저 내 눈 앞에서는 그 열을 잃는다. 그러나 나는 누구 보다 성공한 인물이므로, 나는 너희에게 끊임없이 나의 성공을 상기시킨다.]

[무심한 눈.]

[담담한 낯으로.]

[그리하여 너희의 성공은 성공한 것이 아니게 된다. 성공하지 못했으므로 너희의 고생은 무가치해진다. 너희의 가장 큰 고생부터 너희의 가장 작은 성공까지, 모든 것은 내 앞에서 하찮고 하찮다.]

앞발을 내디딘다.

불길이 타오른다.

배우들은 깜짝 놀라 우스스 흩어진다. 도망친 것이다.

-와가르!

내 이빨에 웃음이 걸린다.

[너희는 마치 사람처럼 구는구나.]

[하지만 세상에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다.]

[유일한 사람의 이름, 그것은 ‘나’다.]

불은 거세어져 타오른다.

불길이 무대를 휘감고 객석을 집어삼킨다.

-힉

객석 사이사이에서 신음이 들려온다.

어떤 관객은 본능적으로 오러를 피어내어 내 불에 대항했다.

나는 더 깊이 웃고- 음악은 더 크게 울린다.

[오직 나만이 사람이다.]

나의 화염이 관객의 오러를 간단히 잡아 비튼다.

그리고 여섯 갈래의 불길로 관객의 목을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 욱.......

맨 앞줄에 앉아 있던 관객이 경련했다. 서열 21위의 전사라 했던가. 그는 눈을 부릅끈 채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극장은 이미 불지옥이다.

[나는 나의 성공을 소개하며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도 이루지 못한 너희는 무엇인가?]

[무(無)조차 아닌 것.]

[무엇도 되지 못한 먼지일 것이다.]

염제의 웃음소리.

염제의 팔동작.

염제의 미소를 지은 채 무대를 돌아본다.

나와 시선을 마주친 배우, 외눈의 아리카가 움찔거린다.

[나는 여린 모가지를 드러낸 짐승들을 사랑한다.]

달려나간다.

외눈의 아리카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다.

[누군가를 믿는 순수. 스스로를 드러내는 순진.]

[이것들은 한 입에 삼킬 수 있을 만큼 부드럽다!]

아리카가 도망치려는 곳에 화염이 일어선다.

외눈의 아리카는 히익, 몸을 돌려서 도망친다.

나는 다시 한 번 불의 장막으로 그를 막는다.

사냥감을 몰아세운다.

-살려달라!

아리카가 입을 뻐끔거린다.

뻐끔거릴 뿐, 실제로 목소리가 울리진 못한다.

오러로 소리를 낼 수 있듯 막을 수도 있다.

나는 아리카의 비명을 도중에 낚아채, 찌부러트린다.

[왜 도망치는가?]

-살려달라! 제발….

[도망치지 마라. 나는 너의 아비다.]

아리카는 목이 쉬도록 외친다.

-제발! 살려줘, 죽이지 마…. 날 죽이지 마…!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관객들에게 닿지 않는다.

객석에서 바라볼 때, 아리카는 그저 처절하게 입을 뻐끔거리고 발버둥칠 뿐.

-.......

관객들은 숨을 죽인 채 무음(無音)의 단말마를 지켜보았다.

[아가야.]

어슬렁거리며 아리카에게 다가선다.

[나는 너를 헤치지 않는단다.]

불의 장막으로 아리카를 가둔다.

몰아붙여서, 운신의 폭을 좁힌다.

아리카는 작은 단칸방에 갇힌 어린아이처럼 주저앉는다.

-날 죽이지 마… .

[괜찮다.]

-제발….

외눈박이의 아이가 눈물을 흘린다.

-살려줘, 엄마….

그때.

아가리를 벌려 아리카의 목을 문다.

내 송곳니는 살갗을 파고들지 않는다.

대신, 오러가 살의를 품은 채 속살로 저며든다.

-아아아아아악!

아리카가 발악한다.

고통에 휩싸여 울부짖는다.

나는 더 이상 소리를 가두지 않는다. 비명이 터져서 극장에 울리도록 내버려둔다.

-아아악! 아아아아악!

지금까지 다만 침묵의 몸부림을 지켜본 관객들은, 돌연 터져버린 비명 소리에 몸을 움츠렸다. 도저히 ‘연기’라고 볼 수 없는 절명이 그들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무슨....

-저, 저거….

몇몇은 침을 삼켰다. 몇몇은 신음을 흘렸다. 뒷줄의 몇몇은 실제로 착각하여, 객석에서 일어나 극장 바깥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그러나 대다수의 관객들은 불길에 홀려 멍하니 무대를 쳐다보았다.

[나는 세상의 불이다.]

사냥은 멈추지 않는다.

불지옥 한복판.

나는 피에 취한 짐승이 되어, 다음 희생양을 찾아 달린다.

외팔의 유마르와 외귀의 사쿰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다.

-살려줘!

음악이 흐른다.

-쫓아온다! 괴물이 쫓아온다!

나는 잘못이 없다.

만일 내게 잘못이 있다면, 나를 태어나게 한 세상의 잘못이다. 나를 이렇게 만든 세계의 탓이다.

사람이란 세상이 구부러진 모양에 따라 굽이 흐를 뿐.

만들어진 대로 살아가기 마련인데, 거기에 내 잘못이 어디 있는가?

[춤을 추자!]

쉬, 라크, 구르.

[천하가 다 나의 무대다!]

쉬. 라크. 구르.

[너희는 나를 원망치 마라. 나 역시 너희와 같다. 너희처럼 세상이 낳은 존재에 불과하다.]

[단지 너희보다 강할 따름이다.]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잡아먹히는 것은 자연의 이치라, 너희가 탓해야 할 것은 내가 아니고 세상 아니겠는가.]

흐드러진 불꽃.

나는 야생이 되어 뛰논다.

마음껏 불을 토하고, 마음대로 이빨을 쑤신다.

-아아아아악!

외팔의 유마르가 쓰러진다. 외귀의 사쿰을 쓰러트린다.

괜찮다. 저들은 짐승이다.

사람에게 짐승은 고기에 지나지 않기에, 이건 살인(殺人)이 아니라 한낱 살육(殺肉)인 게다.

두웅!

북소리가 거세진다.

두웅!

핏빛 불꽃이 극장을 불사른다.

세 명의 배우가 모조리 쓰러지고 나서도, 내 포효는 멈출 기미가 안 보인다. 쉬! 라크! 구르! 관객들은 떨었다. 떨면서, 무대 위로 오러의 춤사위가 지글지글 끓는 걸 지켜보았다.

-읍......!

젊은 관객 하나가 졸도했다. 게거품을 흘리며 옆 사람의 어깨로 쓰러졌는데, 옆 사람은 온몸이 굳어 있어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두웅!

마침내 음악이 절정에 이른 순간이었다.

일단의 무리가 쾅, 거칠게 극장문을 열고 쏟아져 들어왔다.

-전원 정지하라! 화하평의회(火河評議會) 산하의 치안대다!

떡대 좋은 홉고블린들이 우르르 객석을 포위했다.

-전원, 정지! 전원 정지!

-이곳에서 집단살해 및 방화가 벌어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출동했다! 경고를 무시하고 움직이는 자는 불순분자로 체포하겠다! 그것이 기점이 되었다.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당겨진 공기가 픽, 끈처럼 끊어졌다.

그제야 관객들은 여태까지 멈추었던 숨을 간신히 내쉬었다.

-헉

-허어… 어, 후읍…!

곳곳에서 허물이 무너지듯 관객들이 주저앉았다.

허리힘까지 풀려버려 좌석에서 미끄러진 것이다.

"음."

나 역시 몰입이 깨져서 눈썹을 찡그린 채 치안대원들을 쳐다봤다. 도대체 얼마나 심각한 신고를 받고 쳐들어 왔는지 모르겠는데, 치안대 소속 홉고블린들은 사방팔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구조부터 해!

-방화범은 어디 있나!?

-무대 위에 쓰러진 사람이 있다!

홉고블린들이 배우들을 향해 허겁지겁 달려왔다. 외눈의 아리카, 외팔의 유마르, 외귀의 사쿰. 무대 위에 쓰러져 있는 세 사람을 보고 '사망자’로 착각한 것이다.

당연하지만 본 공연에 사망자 따윈 없었다.

-아니…. 잠깐만.

-부, 부축할 필요 없다. 난 멀쩡하다!

배우들이 손사래를 치며 하나둘씩 일어섰다.

-어디 다친 곳 없는가? 상처는? 머리는 괜찮은가?

-어, 없다! 완전 괜찮다!

-여기서 대량 학살이 벌어진다고 들었다. 범인은 어디로 도주했는가? 너희는 인질로 잡혀 있었는가?

-뭐....

외눈의 아리카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 학살이고 인질이냐. 그런 건 벌어진 적도 없다.

외팔의 유마르가 소리 질렀다.

-우리 연기 중이야! 미친놈들아!

치안대원들이 멈칫했다.

-…연기?

-그래! 공연 중이라고! 우리 극단이다! 극단 개소리! 여긴 극장이고, 한창 연극하던 도중이었어!

-.......

참고로 나는 멋대로 착각한 치안대원들에 의해 붙잡혀 있었다.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제압을 풀어버릴 수 있었지만, 하도 어이가 없어서 순순히 따라줬다.

치안대원들이 천천히 나를 돌아봤다.

-불이 났다고 신고를 받았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륵.

내 손가락 끝에서 오러가 피어올랐다.

“제 오러예요. 불을 닮았거든요.”

-……웬 짐승이 무고한 사람들을 물어뜯어 죽였다는데.

“제가 개새끼 역할을 맡았고, 거기 선배 배우들이 희생양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연극 도중에 당연히 제가 저분들을 쓰러트렸죠.”

즉.

"너무 연기에 실감이 나서 누가 신고해버린 모양이네요."

-.......

과연 이쯤 되니 치안대원들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경계심 대신에 당혹감, 살기 대신에 난감함이 치안대원들 표정에서 드러났다.

이미 관객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한 상태.

-뭐냐.

-누가 신고한 거냐…?

반응이 순식간에 격해졌다.

-공연은?

-설마 이대로 쫑인 건 아니지?

-어떻게 된 건가!

-저 등신 같은 치안대 쪼다들!

-맨날 들이닥치고 보는 습관이 또 나왔냐!

와글와글.

이곳저곳에서 불평이 들려오자 치안대원 책임자의 낯빛이 급속도로 안 좋아졌다.

나는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책임자한테 다가갔다.

“어쩌죠? 나리. 이거 아무래도 오늘 공연 망해버린 거 같은데.”

-어어….

“죄송합니다! 손님들! 불미스러운 일로 인하여 오늘 공연은 여기서 끝났습니다! 치안대의 [전원 정지] 경고에 따라 저희 극단 개소리는 멈추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치안대의 안내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퇴장해주십시오. 아, 그런데….”

나는 치안대원을 향해 활짝 웃었다.

“공연 환불은 책임져주십니까?”

-.......

관객들이 폭발했다.

도시의 연극계도 그날 폭발했다.

[너무 실감이 나서 신고를 당해버린 연극] 때문에.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