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 가족 면담. (4 ) >
6.
-어머니?
새기족이 성기사에게 말했다.
성기사는 어디론가 눈길을 던지고 있었다. 새기족들도 바위에 물갈퀴를 놓은 채 꼬리를 팔랑, 퍼드득, 물장구를 치며 똑같은 장소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왜 요정족들이 있는 곳에 관심을…?
“아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다. 부모 자식 이야기를 하고 오랬더니 저 사람은 정말 어쩔 수가 없군.”
-.......
성기사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려 있었다. 그것이 새기족들의 불안감을 자극했던 모양이다.
-저희는 어머니에 대해서는 많은 걸 알지만, 저 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요. 좋은 분인가요?
“슬픈 사람이다.”
성기사는 간단히, 백작을 그리 정의했다.
“그리고 맑은 사람이지.”
그리고 성기사는 생각에 잠겼다. 잠깐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는 것 같았다.
오래는 아니었다.
"음."
성기사는 바위가에 벗어두었던 투구를 들었다. 철컥. 말없이, 그녀는 다시 투구를 썼다.
투구 속에서는 세상에서 들려오는 잡담이 걸러졌다. 세상에서 현혹해오는 빛깔이 좁아졌다. 걸러지고 좁아진 시야는, 자기가 해야 할 일들만 떠올리기 충분할 정도로 작았다.
“새기족들이여.”
성기사는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위섬이 가라앉은 강물에는, 빠짐없이, 새기족들이 헤엄치거나 가만히 배영하고 있어, 성기사를 올려다보는 인어의 숫자는 단숨에 수만이 되었다.
“어수룩한 나를 위로해주고, 내 과오를 예쁘다고 칭찬해줘서 고맙다. 너희가 오늘밤에 들려준 이야기들, 너희가 어두운 물을 가로지르는 풍경을, 나는 일생 마음속에 간직하겠다.”
-떠나시려는 건가요, 어머니?
“가끔 찾아오겠지만.”
성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어쩔 수 없다."
-.......
침묵이 흘렀다.
새기족들이 사는 강물이나 바닷물은 언제나 불규칙적으로 넘실거렸다. 새기족은 서로 몸을 꽉 잡고 귓속말로 소곤거리는 습성이 생겼다. 이번에도 그들은 동족의 어깨를 살며시 잡아, 한 명이 한 명에게, 다시 한 명이 열 명에게, 소곤거림이 전염되었다.
-어머니.
소곤거림이 끝나고.
새기족을 대표하여 어느 인어가 말했다.
-저희도 데 려가주시지 않을 건가요?
"......."
-탑이라는 곳이 있다 말씀하셨어요. 우리에게도 곧 보이게 될 장소라고 하셨어요. 어머니의 고향이 그곳이라면, 저희도 어머니를 따라 그곳으로 가도 괜찮지 않을까요?
-저희는 물을 사랑해요. 하지만 저희가 헤엄칠 수 없는 땅을 조금 더 사랑해요. 만일 그곳이 어머니가 살아가는 땅이라면, 더 사랑하게 될 거예요.
-저희를 데려가주세요.
성기사는 말이 없었다.
말없이 칼자루를 매만졌다.
“탑에는, 비열한 사람들이 많다. 나는 너희가 그런 자들로 인해 상처를 받지 않길 원한다.”
-어떤 비열한 사람들이요?
“너희가 단지 꼬리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너희를 생선이라고 부르겠지. 그것도 웃기는 농담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너희의 기분이 나빠지길 원해서 생선이라 부를 거다.”
-.......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망칠 수만 있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무척, 무척 많아. 그러니….”
-어머니.
새기족들은 서로를 마주보았고, 다음 번에는 성기사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은 이곳에도 많아요.
성기사는 입을 다물었다.
-우리들 사이에도 많아요.
-약한 사람들.
-아픈 사람들.
-자신이 괴롭기 때문에 남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은 세상에 많아요.
-그런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나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있을 것이에요.
-그들 너머가 아니라.
-우리 사이에.
새기족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러니 그것은 우리가 어머니의 세상을 보아서는 안 될 이유가 될 수 없어요.
“나는……."
성기사가 주저한 순간.
“잠깐만요.”
누군가가 성기사의 어깨를 잡았다.
부드러우면서 배려가 넘쳤지만, 단호한 의지가 서린 손이었다.
성기사는 이런 식으로 자기 어깨를 잡는 사람을 한 명밖에 몰랐다.
[사왕(死王)이 강림합니다.]
7.
“너무 그렇게 겁먹으실 것 없습니다, 선배님.”
“……사왕.”
성기사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내가 겁을 먹다니, 무슨 뜻인가?”
나는 답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성기사 자신도 그런 ‘평범한’ 사람 중 한 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기족이 알 날이 올까봐 두려워하는 것 아니냐거나 하는 식으로 말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다만 쾌활하게 말했다.
“이런 건 어떨까요.”
“어떤 것?”
“새기족 아이들을 단번에 우리 탑으로 초대하는 대신, 11층 이후. 아이김 제국으로 유학을 보내주는 거예요. 거기에도 인어들 살잖아요.”
“아."
성기사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내지 못할 법하지. 그때 성기사는 공략에 참여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일이 있었다.
당시, 나는 한 명의 용사로서 아귀를 거둬들였다. 하지만 아이김 제국은 이 사실을 아직 몰랐다. 그들은 마녀를 잡겠다며 다종족 연합군을 꾸리고 쫓아왔는데, 그중에는 이런 인물도 있었다.
『소첩이 보기에 결국 지금 문제되는 사항은 간단해요. 저,』
『청년이 정말로 시황제의 전인인지. 저 여인네가 정말로 마녀인지. 이것들만 확인하면 끝나는 문제예요.』
『이것은 인어의 현왕께서 내려주신 영혼의 보옥.』
『여기에 핏방울을 떨어트리면, 그 피의 주인이 [선한 영혼]을 지녔는지 [악한 영혼]을 지녔는지 알 수 있답니다!』
다들 알다시피 나는 쿨하게 내 피를 보옥에 뿌렸다.
『아? 어, 어라…?』
『어, 어떻게……. 영혼이 어떻게 이토록…. 대체 얼마나 되는 생명을 구해왔으면, 이렇게나 새하얀, 이건… 이건 그야말로……!』 『이분은…… 빛이십니다……!』
샤이닝 공자.
그것에 내가 등극한 순간이었다.
“거기 15층에 사는 인어들이 저한테 엄청 호의적이거든요. 제가 진짜 신의 사도인 줄 알아요. 아니, 뭐, 거기 신은 [수호의 여신]이고 이 수호의 여신은 반짝이가 되어 제 허리춤에 있으니 딱히 틀린 분석도 아니지만….”
허리춤에 차인 칼집이 들썩였다. 자신을 좀 더 챙겨 달라는 항의 시위 같았다.
내가 탑주도 만나랴 아이들도 잘 키우랴 동료들 사이도 중재해주랴 배후령과 농담 따먹기도 하랴, 일이 참 많다. 반짝아. 좀만 더 참아다오. 언젠가 스핀오프로 ‘반짝반짝 여신님의 탑 1층 식사일기’ 같은 너 주연의 미식 여행기가 나올 지도 모르잖냐.
어쨌든.
“요는 저한테 굉장히 호의적인 인어들이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거죠.”
"......."
“일종의 튜토리얼처럼. 새기족들한테는 꽤 적당한 유학지가 되어주지 않을까요?”
성기사는 내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다리를 놓아줄 수 있나?”
“당연하죠. 인맥이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지 다를 때를 위해서 있겠어요?”
“사왕… 아니, 김공자.”
성기사의 표정이 바뀌었다.
워낙에 표정 변화가 적은 터라, 나조차 그냥 [기분이 좋으시구나] [기분이 딱딱하신가] 정도로만 표정을 읽을 수 있었는데, 이번에 성기사가 내보인 표정은 너무 적나라하게 다 읽혔다.
“예를 표하지.”
“아니아니. 고마워하실 건 없고요. 당연한 일을 해주는 것 뿐인데요 뭐.”
“김공자. 아니, 빛공자. 그대는 정말이지 착하구나.”
“아하하… 제가 좀 착하기야 하죠. 음, 아무튼---”
“착하고 또 잘생겼구나. 사람의 인생은 얼굴에 드러나게 마련이라던데 그런 이치였나.”
“아니… 제가 좀 생기기야 했는데요, 그러니까 그런 걸로 굳이”
“심지어 목소리도 아름답군. 지금 당장 가수를 해도 어울리겠어. 이것이 내츄럴 본 싱어인가. 싱공자.”
“싱공자요? 음… 어… 선배. 저기요?”
“착하고 잘생기고 노래도 잘 부르니 병역 면탈도 잘 할 것 같군. 한국에는 병역이 있다던데 군필자인가? 군공자.”
“아니 저 어릴 적에 모병제로 바뀌었거든요!? 그리고 연예인들이 군대 빼먹던 건 진짜진짜 옛날 이야기고요. 무엇보다 저 탑 랭커니까 징병제가 있었다고 해도 아마 국위선양 어쩌고로 군 면제 됐을 가능성이 높은데….”
“확실히 그렇겠군. 국가유공자.”
“네, 국가유공자로… 아니 아무튼 선배! 지금 저 놀리고 있는 거죠!? 혈화극 처음 만들던 그때처럼!?”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성기사는 시치미를 뚝 뗐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성기사는 그런 날 향해 살짝 웃더니 내 어깨를 잡았다.
당겼다.
"읏,"
자연히 나는 허리를 수그렸다.
그대로 내 목에 팔을 두르고서, 성기사는 내 얼굴을 새기족들에게 내보였다.
“사왕이다. 지정족들의 신이며, 우리 탑의 랭커. 보다시피 나의 후배고, 또한 벗이지."
새기족들이 재잘거렸다.
-사왕!
-지정족들의 신!
-어머님의 후배!
-어머님의 벗!
-국가유공자!
망할, 얼굴에 불이 날 것 같다.......
“하여, 사왕.”
성기사는 내 목에서 팔을 풀었다. 부드러운 미소가 그 입가에 맺혀 있었다.
“실로 좋은 의견에 감사를 표하마. 음. 사왕의 안대로 한 번 기획해보지.”
그리고 성기사는 빠르게 제안을 짜올렸다.
일부 유학생을 선발하여 [아이김 제국의 인어 폭포]에 보낸다는 것.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나 갈등을 관찰한 다음, 해결책을 만들어낸 다음, 유학생 규모를 점점 더 늘리겠다는 것.
그 다음에는 차차 유학처를 늘려, 최종적으로는 새기족들이 우리 탑의 1층 도시, [바빌론]에 초대한다는 것.
“후후.”
성기사가 작게 웃었다. 새기족들도 이 제안에 납득했는지 아무런 반대 없이 성기사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다른 세계의 인어라니 어떻게 생겼을까?” "바다가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호수에서 산대” “그렇게 큰 호수가 정말로 있어?” 하고 흥분했다.
꼭 수학여행을 가게 된 아이들처럼.
“정말로 인생이란 모르는 일이군.”
“네?”
“비록 비유에 불과하다지만 내가 아이들을 기르는 부모의 입장이 되어버리지 않나, 흑룡주와 화해해서 다시 친구가 되지 않나. 다른 길드장들과의 사이도….”
성기사는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보았다. 다만 그 시선은 내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정말로. 그런 일들이 있었는데 말이다.”
성기사의 목소리가 문득 멀어졌다.
옛날일을 회상하고 있는 것일까.
"......."
나는 이번에도 입을 다문 채 있었다.
인어들의 호수가 존재하는 탑 15층에 다다르기 이전. 탑 13층에 처음 내가 올랐을 적에, 우리들은 내부의 배신자를 맞이하여 분열했다.
분열했었다.
"......."
나는 그 배신자가 누구인지 짐작했다. 하지만 그 배신자를 밝혀내는 대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스테이지 자체를 바꿔버림으로써 깊이 파묻었다.
그때 배신자의 정체를 추궁하지 않은 것이 과연 잘한 일이었는지를 나는 이따금 의문으로 여겼으나, 지금 성기사의 옆 얼굴을 본 순간 흔들림 없이 생각할 수 있었다.
‘그래.’
그것은 잘한 일이었다.
‘그거면 된 거야.’
밀림에는 어느덧 새벽의 안개가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었다. 야자수 아래에선 이단심문관이 산와족들과 계속 뭔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단심문관의 표정은 진지했지만, 이따금 평소처럼 아하핫 웃었다.
또다른 한편에선 백작이 요정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일종의 충성맹세인 걸까. 아니면 부모가 자식한테 처음으로 보여주는 애정표현인 걸까. 아마도 양쪽 전부이겠지만, 백작은 미소를 짓고 있었으며 요정들은 행복해 보였다.
“고맙다.”
성기사는 말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너는 좋은 친구다. 김공자.”
"......."
“파트리시아.”
정적이 흘렀다.
“그게 내 본명이다. 파트리시아. 앞으로는 다른 사람이 없을 때는 파트리시아라고 불러도 된다. 자경단원들이 듣게 되면 여러모로 편애 논란이 생겨날지 모르니.”
"......."
“네가 기른 아이들도 분명히 너를 이해해줄 거다. 미 아미고.”
성기사는 인어들이 물장구치는 개울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무거운 갑옷과 투구, 장갑을 벗어던진 다음 인어들 사이로 다이빙했다. [퀘스트 진행.]
[새기족의 투표가 시작합니다.]
첨벙!
[개표 완료.]
[2번 득표율: 01.32 퍼센트]
[1번 득표율: 98.68 퍼센트]
[1번 득표가 과반을 넘겼음을 알려드립니다.]
멀리서, 새기족들이 까르륵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과 함께 걸어가준 신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봤고, 자신을 등에 짊어주었다는 신의 이야기도 들어봤으며, 심지어 자신과 함께 춤을 추었다는 신의 얘기도 들어봤지만…….
자신들과 함께 헤엄을 쳐주는 신 같은 건, 오직 새기족들에게만 허락된 행복이겠지.
[스테이지 클리어.]
[42층 스테이지가 클리어되었습니다!]
야자수가 우거진 강물에서 신과 종족들, 부모와 아이들이 헤엄치는 광경을, 나는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그리고.
“우고르.”
낯익은 아이의 낯익은 목소리가 내 등 뒤에서 들렸다.
“애비여.”
우부르카로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단심문관과 백작, 성기사가 차례대로 스테이지를 클리어했으니 이제는 흑룡주와 내 차례지.
흑룡주는 대기실을 나오면서 ‘절대로 엿보지 마! 김공자! 엿보면 독살해주겠어!’ 하고 나한테 약속을 받아뒀다. 자기가 부모 모드로 흡혈종들이랑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모습을 절대 남한테 보이기 싫다나 뭐라나.
단순히 죽인다는 것도 아니고 ‘독살해준다’고 구체적인 방법까지 거론한 점에서, 아나스타샤의 진지함이 느껴졌다.
어쩌겠어?
만독불침 스킬도 없는 애송이는 짜져 있어야지.
“후우……."
하지만 아나스타샤와 달리 나는 전혀 안 부끄럽다. 내가 아이들이랑 얼마나 친한데? 오히려 내가 아이들이랑 오손도손 화목하게 담소하는지, 우리의 부모자식 사이가 어느 정도로 굳건한지, 다들 구경한 다음 부러워 해줬으면 좋겠다. 질투를 느껴주면 고맙겠다.
“오냐, 우부르카야---."
나는 천천히 등을 돌렸고, 양팔을 벌려 우부르카를 안아줄 계획을 세웠다.
이단심문관은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보임으로써 정신적 성장을 보여주었고, 백작은 아이들에게 몸소 취업처를 선사해주는 자본주의적 미덕을 과시했으며, 성기사는 언제나 아이들의 마음을 우선시하는 심성을 뽐냈다면.
나 김공자는 그야말로 하늘.
말하자면 스카이.
정신적 성장도, 자본주의적 미덕도, 심지어 심성마저도 보여줄 자신이 있는 거다.
당연하다.
다른 부모들과 다르게 나는 처음부터 [언젠가 아이들에게 내 본모습이 폭로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이다.
어찌 보면 인생에서 제일 큰 적이란 자기 자식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미 모든 걸 통찰하고 있던 나에게 지정족 아이들은 결코 적수가 못 된다.
‘우고르! 동료들이 왜 고블린을 선택하냐며 비웃을 때도 애비는 우리 지정족을 꿋꿋하게 골랐었던 건가……!’
라거나.
‘애비가 우리한테 문자와 문신을 전부 가르쳤다는 얘기는 전설로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머릿속 영상으로 관람하니 완전 감동이다! 우고르! 어쩜 애비는 우리한테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지 않은 게 없는가!’
라든지.
‘애비의 은혜는 하늘과 같아서 도저히 갚을 길이 없다…. 만일 애비가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대륙의 패자가 되기도 어려웠을 거고, 지금보다 훨씬 더 성미가 고약했을 거다. 애비야말로 참된 친구다.’
등등.
내 귓속에는 이미 우부르카를 비롯하여 수십만의 지정족이 ‘애비여! 애비여!’라고 찬송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이런 찬양에 대해서 나는,
‘에이. 무슨 소리니. 다 너희가 잘나서 이렇게 된 거지.’
‘이 아비는 너희가 번듯하게 큰 모습을 본 거로도 충분하구나….’
‘사랑한다, 아이들아…!’
하고 겸양을 떨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완벽하군.
이제부터 나는 빛이 아니다. 빛을 품은 하늘이다.
샤이닝이 아니라 스카이.
정진정명 스카이 공자로 거듭나게 될 영광의 순간이, 지금 펼쳐지리라.
나는 흑룡주에게 단련받은 영업용 스마일을 활짝 펼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의 열렬한 포옹을 예상하면서.
“자아, 어서 나한테 안기려므---.“
"애비여.”
열렬한 무언가가 있긴 있었다.
“등이 훤히 비었다.”
거대한 도끼가 열렬하게 내 가슴팍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어매, 시발!?”
팃!
그 일격을 피한 것은 순전히 내 드높은 경지 덕분이었다. 어쩌면 아까부터 나를 무진장 한심하다는 얼굴로 지켜보고 있던 배후령의 상판에서 뭔가 심상찮은 예감을 느낀 덕택일지도 모르겠지만, 설령 그렇다 한들 내 신묘한 보법이 없었다면 피할 수 없었을 거다.
“우거.”
도끼를 휘두른 우부르카가 면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퉤, 하고 바닥에 침을 뱉었다.
“애비의 몸놀림이 가히 숲속에서 노다니는 다람쥐를 방불하는군. 공격이 완벽하게 들어갔다고 생각했건만.”
“이, 이게 무슨 짓이냐! 우부르카!”
나는 당황하며 우부르카의 어깨 너머를 쳐다봤다. 우부르카를 뒤따라온 아이들, 이제는 심장뿐만 아니라 살결까지 붉어진 지정족들이 우글우글 서 있었다.
내 눈알이 심각하게 훼손된 게 아니라면 얘네도 손에 무기를 하나씩 들었다.
부모를 만날 때 장비하는 물품으로는 심히 부적절한 종류라고 할 수 있었다.
“감동적인 재회는!? 수천 년에 걸쳐서 너희를 돌봐주고 아껴준 내 영상을 본 거 아니냐!?”
“봤다.”
“봤는데 왜 도끼를 휘둘러!”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우부르카는 송곳니를 드러냈다.
“애비가 우리를 아낀다는 건 한참 예전부터 알고 있어서 이제 와서 영상으로 관람하든 별 감흥이 없다.”
“뭐, 뭐라?”
“생각해봐라. 우거. 우리는 심심할 때마다 극장에 가서 혈화극을 본다. 혈화극에서 매일같이 주제로 올라오는 게 애비의 사랑이며 시련이며 친구 이야기다. 애비가 주인공인 혈화극은 닳고 닳아서 이젠 모든 지정족이 눈 감고도 읊을 수 있다.”
"......."
“사람에게 역치란 게 존재한다는 걸 깜빡한 모양이구나, 애비여.”
이럴 수가.
이건 뭐, 그건가.
평소에 너무 사랑을 퍼주면 그 사랑을 오히려 당연스럽게 여겨서 부모한테 효심을 느끼지 못하는 그런 현상인가?
“마, 말도 안돼!”
“된다.”
부우우웅!
우부르카가 다시 한 번 도끼를 휘둘렀다. 이번엔 정성스럽게 오러까지 감싸서. 기룡(氣龍)을 흡수하면서 오러의 경지가 한 단계 성장 했는지, 안 그래도 돼먹지 못한 공격력이 우화등선했다.
“히익!? 애비 살려!”
“오오! 오늘 같은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우부르카의 이두박근이 두근두근 박동했다.
“나는 처음 만날 날에 애비한테 꼴사납게 패배했다! 성좌에 오른 뒤에도 애비한테 쳐발렸다! 그러나, 허나, 오늘은! 거북이 대가리를 찜쪄 먹은 오늘에 이르러서는, 드디어 애비에게 본때를 보여줄 것이다!”
“미친놈아! 두 번이나 졌으면 됐지 그걸 아직도 쪼잔하게 마음에 담아두냐!?”
“우고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건가, 애비여!”
[패륜을 꿈꾸는 근육돼지가 포효합니다.]
“오직 애비한테 한 방 먹이기만을 꿈꾼 화하평의회 의장이요, 사왕가의 무사장이자, 애비의 자식, 우부르카다!”
이 자식 닉값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