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7화. < 정파. (2) >
4.
원래부터 정파(正派)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었다.
-으음.
독사는 동굴을 나온 이후 줄곧 세상을 떠돌았다.
아름답다 알려진 곳. 절경. 비경.
하늘에서 폭포가 쏟아지는 곳에 가면 바위에 앉아 홀로 물을 맞아가며 폭포의 중력을 버텨보았으며, 하늘에 가장 가깝다는 곳에 올라 가면 아득히 펼쳐지는 하계(下界)를 사흘이고 나흘이고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이게 아닌데?
딱히 감흥이 없었다.
심장에 자리 잡은 [자신]이 아무런 반응도 안 했다.
독사는 무림맹주 남궁운의 조언을 떠올리며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텄다. 이거 텄구만…. 정파는 검에 자연을 담아내는 거라는데 난 암만 예쁘고 아름다운 거 봐도 별 감흥이 들지 않는다. 차라리 도시에서 인간들이 출퇴근하는 광경을 보는 게 더 심장에 와 닿겠어.
폭포의 웅장한 기세.
산꼭대기 아래에 펼쳐진 세상의 광활함.
무섭게 내리치는 벼락과 폭우.
-별로 안 땡겨. 이렇게, 오오오오옷! 대단하잖아! 역시 천무문주라고! ……같은 느낌이 전혀 없어. 완전히.
어느 쪽도 [자신]을 매혹시키지 못했다.
-아아, 역시 내가 마교(魔敎)로 갔어야 하는 거 아닌가? 김공자 그 놈은 운도 좋지. 왜 하필 짝짝이를 맞출 때 자기한테 딱 맞는 스승한테 붙어서는. 젠장….
출두 407일.
심장에 도사리는 [자신]이 말하는 것은 여전히 질투, 한탄, 탄식일 뿐. 검은색 덩어리. 꾸물꾸멀거리며 끈적한 점액이 흐르는 그것의 윤곽을 고스란히 느끼며, 독사는 발걸음을 옮겼다.
까앙!
저잣거리에서 들려온 그 소리는 처음에, 독사한테 들리지 못했다.
오랜 수련으로 단련된 감각. 날카로워진 오러는 물론 그 쇳소리를 감지했다. 하지만 몸의 감각이 반응했을 뿐, 독사의 저변에 똬리를 튼 한 마리의 [자기 자신]은 무관심했다.
까앙!
그가 지금 거니는 곳은 지정족의 고향, 구루였다. 김공자를 이기는 데 참고가 될까 싶어 이따금 독사는 구루에 와서 혈화극을 구경했다.
덕분에 독사는 케케륵케르가 라비엘한테 고백할 때 썼다는 대사 11종류를 전부 눈 감고도 암송할 지경에 이르렀다. 저 녀석들이 왜 저런 지랄을 떨까 가끔 의문스러웠으나, 생각해보면 지금 제일 지랄을 떨고 있는 건 [자기 자신]이란 사실을 자각하고 숙연해졌다.
까앙!
그리고 천천히.
까앙!
똬리를 말고 있던 [자기 자신]의 머리가, 쓱, 고개를 치켜들었다.
거리에서 돌아다니는 온갖 냄새와 향기가 맡아졌다. 쉬익. 쉭. 그중에 날서고 비린 냄새가 한 줄기 있었다. [자기 자신]은 코끝을 꿈틀거리며 냄새의 근원지를 찾았다.
까앙!
그곳은 대장간이었다.
시내에서 두어 뺨 떨어진 이곳엔 인적이 적었다. 아직 중앙 삼거리에 입성하지 못한 중소 극단들이 옹기종기 모였고, 아직 삼거리를 감당하기엔 살짝 쪼들리는 돈주머니를 가진 지정족들이 어슬렁거렸다.
까앙!
외딴 길가에 대장간은 세워져 있었다.
대장간은 세워져 있다기보다 아주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지붕은 군데군데 허물어졌다. 기둥은 삭았다. 어떤 기둥은 이미 중심을 잃은 사탑(斜塔)이 되어 아슬아슬하게 지붕을 밀어젖혔다.
시간이 훅 불면 곧 사라져버릴 곳.
까앙!
그곳에서 팔뚝이 우락부락한 대장장이가 망치를 휘둘렀다. 까앙! 벌겋게 달구어진 쇠가 망치에 맞으면서 불티를 뱉었고, 까앙! 조금씩 구부정하게 휘었다.
대단한 기술은 없었다.
눈길을 사로잡는 퍼포먼스도 없었다.
-여어. 주인 양반.
다만.
-망치질을 신기한 방식으로 하시네?
-후우.
대장장이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정말로 체구가 작았다. 귀인족은 물론이고 지정족보다 한창 작았다. 자신의 허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몸집을 가진 대장장이는,
-뭡니까. 귀인족 손님이세요?
작은 요정족이었다.
-필요한 거 있으세요? 참고로 무기는 안 만듭니다.
-엉? 무기는 왜. 지정족 대장간 산업의 꽃은 무기잖아. 특히 검. 지정족은 애들이 성년식 치르자마자 검 한 자루 선물하고, 그게 1년 안에 너무 써서 닳아버리면 또 새로 선물해주는 게 즐거운 풍습이라던데.
-아...
요정족이 땀을 마저 닦았다.
어딘지 모르게 시큰둥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손님이 귀인족이라서 하는 얘긴데 그거 좀 이상하지 않아요? 깬다고 해야 할까. 해괴해요. 우리 같은 소수종족한테도 잘해주고, 아무런 편견 없이 대우해주는 거야 고맙지만…… 그것까지 포함해서 진짜 너무 깨요. 음. 아시시죠? 제가 무슨 말씀을 하려는 건지.
-아 존나 잘 알지.
처음 만난 두 사람이건만 금세 친해져서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재수없지.
-네, 재수없어요.
두 사람이 까닥거리는 고개가 싱크로나이즈 했다.
한 명은 돈벌이가 생업인 주제에 어째선지 후줄근한 대장간을 운영하는 요정족이었고, 다른 한 명은 귀인족한들테 빙의하여 이리저리 여행하는 인간 헌터였지만. 어두운 과거와 시커먼 속내를 뒤로 한 채 두 명은 잠시 의기투합한 것이다.
-말귀를 알아듣는 손님이네요. 그래서 뭐 주문하시게요? 싸게 해드릴게.
-아.
그제야 독사는 여기 온 본래 목적을 떠올렸다.
새까매진 심장이 혀를 날름거리며 얼른 얘기하라고 재촉했다.
-딱히 뭘 사려는 건 아니고 그냥 신기해서 들렸달까.
-흐으음?
-수상한 놈은 아니니까 안심해라. 아무튼, 길 가다 네가 망치 두들기는 소리를 우연히 들었거든. 그런데 망치질 소리가 엄청 일정적이더라. 평범한 망치 소리인가 싶었는데 까앙, 까앙, 하는 간격이랑 강도가 완전히 똑같지 뭐냐.
그렇다.
1초, 아니 0.1초의 흐트러짐도 없이 망치소리는 연거푸 울렸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저 망치가 규칙적으로 울리는구나, 하고 넘어가겠지만 독사는 초인(起人)이었다. 쉽게 대장간의 이상성을 간파했다.
-혹시 그건가? 이렇게 허름한 대장간이지만 사실은 굉장한…….
-아, 거기 의자에 앉지 말아주세요. 의자가 하도 흔들려서 바닥에 고정해놨는데 바닥도 흔들려서요. 거기 15초 이상 앉으면 바닥이 무너져요. 제가 앉아서 15초였는데 손님이 앉으면 바로 땅구멍에 빠질걸요.
-……굉장한 실력을 갖추었다든지. 뭐랄까, 허접한 동네의 대장간에 사실은 천하제일의 대장장이가 숨어 있었다? 응? 그런 S급 기연(奇緣) 같은 거 아니냐?
독사는 두근거리고 있었다.
심장에서 쉭쉭 헛소리를 내는 [자기 자신]도 두근거렸다.
원래 독사는 아름다운 자연이나 웅장한 풍경보다 ‘이런 것’이 훨씬 좋았다. 사실 평범해 보이는 것이 사실은 대단했다, 든지. 숨겨진 힘. 숨겨진 지위. 숨겨진 설정. 숨겨진 흑막. 숨겨진 세계. 이런 ‘이야기’들에 항상 독사의 심장은 두근거렸다.
-어…….
심히 초롱초롱한 눈빛을 받게 되자 요정족 대장장이는 부담스러웠다.
-S급이 뭔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저희 대장장이는 별 볼 일 없어요….
-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숨은 과거지사를 가지고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거지?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가 가세가 기울어서 그냥 대장장이 일을 시작했을 뿐인데요…. 손님. 재능도 없고요. 태어날 때부터 내장형 근육 장착하고 나오는 지정족들이랑 제가 어떻게 쇠질로 상대가 되겠습니까…?
-에이, 딱 봐도 거짓말이구만.
-.......
-……진짜?
-딱히 손님한테 거짓말해봤자 푼돈 하나 생기는 거도 아니고요.
-.......
-저기, 뭐 주문해주실 게 아니면 나가주시는 게. 일하는 데 방해가 됩니다.
-.......
아무래도 진짜인 것 같았다.
독사는 이상하네, 이상하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대장장이 주변을 서성였다. 요정족 대장장이는 ‘재수 옴 붙었네요…’ 라고 한숨을 쉬었지만, 이윽고 독사의 존재를 무시한 채 계속 망치를 휘둘렀다.
까앙!
까앙!
까앙!
-.......
약간 떨어져서 망치질을 관람하던 독사는 툭, 입을 열었다.
-역시 똑같잖아.
독사의 시점에선 대장장이의 뒷모습, 요정족의 작은 등만 보였다. 잘 다듬어진 등근육과 균형을 맞춘 어깨근육, 팔근육이 쉼 없이 움직여 일했다.
-뭐, 가요?
-리듬. 간격. 세기. 다 똑같아. 간격이 어긋나는 망치질이 없어. 오러로 시간감각을 늘렸다면 뭐 어렵지 않게 똑같은 짓을 흉내 낼 수 있지만, 딱 봐도 오러는 없고. 그럼 감각으로 이런다는 건데.
-후욱. 후우우우, 흐우우…
독사는 눈을 찌푸렸다.
만일 눈앞의 요정족이 대장장이가 아니라 무의 길을 걸었다면, 그리하여 오러를 터득했다면 굉장히 준수한 전사가 되었을지 모른다.
-대단하지만, 무슨 의미지? 왜 그런 망치질을 고집하냐?
요정족은 등을 돌리지 않고 말했다.
-그래야 좀 재밌어지잖아요.
독사가 미간을 좁혔다.
-재밌어져?
-예. 일이요. 대장장이 일.
까앙!
-이게 얼마나 고달픈데요. 손님들이 집에 가져가서 편하게 식칼로 썰고, 도마에 대고, 망치로 못질하고…. 쓰려면 편하지만 만들려면 어려워요. 그냥 취미 삼아서 만드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이건,
까앙!
-제 직업이잖아요. 후우으으아!
-.......
-제길, 존나 일하기 싫네.
까앙!
-힘들어…
까앙!
-죽겠다.
까앙!
-죽고 싶다… .
까앙!
-죽어어어!
까앙!
망치질이 거듭해질수록 요정족 대장장이가 내뱉는 욕설도 거칠어졌다. 누군가를 향해서 뱉는 것 같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향해 뱉는 것 같았다.
독사는 할 말을 잃었다. 망치질 소리가 날카로워서 안 들렸을 뿐이지, 이 대장간은 시내의 어느 작업장보다 시끄러운 곳이었다.
-아, 과연. 그런 욕설이 마구 들리면 손님이 올 리가 없으니까, 절묘하게 망치질을 휘두르는 타이밍을 노려서 그때 욕하는 거로구만. 망치소리에 욕소리가 묻혀서 안 들릴 테니.
독사는 깨달았다.
-……미친놈이신가?
-손님, 아까부터 좀, 방해가 심하신데요. 슬슬 나가주셨으면.
과연 김공자가 만든 도시에서 살아가는 인종은 종족을 불문하고 별종들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며, 독사는 말했다.
-그러면 재밌대매. 표정은 별로 재밌어 보이지 않는데, 진짜로 재밌는 거 맞냐?
-그럼요. 이게 얼마나 잔재미가 있는데요.
대장장이가 목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원래 일은 힘들어요. 힘든 게 당연하고요. 심지어 제 종족이 뭔지 아시면 감이 오겠지만, 제가, 이 일에 알맞게 태어난 것도 아니거든요. 재능도 없는 셈이죠. 그런데 일을 하면서 욕지거리가 나오게 생겼어요, 안 생겼어요?
-뭐어….
-그래도 일하는데 즐거움이 하나도 없으면. 정말 하나도 없으면, 진짜, 죽을 거 같으니까.
까앙!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재미를 찾는 거예요.
까앙!
-뭐, 동업자들은 주말마다 어디 가서 휴양한다. 쉰다. 새로 생긴 대목욕탕에 가서 몸이나 푼다. 이번에 연기된 혈화극이 정말 끝내준다더라, 뭐다뭐다 말하면서 자기들 나름대로 풀던데. 전 잘 모르겠고.
까앙!
-높은 산을 보면 왜 난 작은데 넌 높냐, 지금 나한테 시비 거냐, 같은 생각이 들고. 아름답다는 명산지 놀러 가서 둘러봐도 영 저랑 동떨어진 뭔가 같아서 덤덤하고. 아, 이, 일하는 데 죽을 거 같은 거…… 죽겠는 거. 사기(死氣)가 안 떨어져요. 안 없어져.
까앙!
-죽겠네.
까앙!
-그래도, 죽으면 안 되니까.
까앙!
-약간 약간 재미 붙일 구석을 찾는 겁니다. 귀인족 손님은 뭐 대단한 것처럼 칭찬해주셨는데… 전 그냥 살려고 재미보는 거예요. 보세요. 까앙! 봐요. 까앙! 똑같은 리듬으로 치면 뭔가 재밌잖아요. 아직 덜 만들어진 음악 같기도 하고. 까앙! 안 그래요?
그제야 대장장이는 고개를 돌렸다.
요정족은 활짝 웃고 있었다.
화로에 벍게 붉어지고 숯검댕이가 묻은 얼굴로.
-재밌죠?
-.......
그 순간.
-아, 이게 꽤 어려운 일이라니까요. 순간을 계속 맞춘다는 게. 막 저의 도전욕구를 불러일으켜요. 아무도 안 하는 저 혼자만의 경기랄까.
독사는.
그가 심장에 품어놓은 [자기 자신]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자신이 누구인지는 이미 깨우친 자가, 한 명의 작은 대장장이를 보고 더 깨우쳤다.
-경기 규칙도 다 있어요. 비 올 때는 조금 느릿하게.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이 팔이 움직이고 이 피가 맥박치는 그 순간까지, 칼에 담고 싶은 것이 과연 무엇인지.
천무문(天武門)의 문주는 깨달았다.
-안개가 낄 때는 망치질을 더 느리게 해서 청취가 있게. 왜. 안개 낀 도시에서 저 멀리 까앙, 까앙, 쇳소리가 들려오면 뭔가 운치 있지 않아요? 도시가 우는 거 같잖아요. 안개가 우는 거 같기도 하고. 그런 것도 좀 재밌죠. 멋있고. 전 명산이나 절경 같은 것보다 그런 게 더 재밌어요.
비명을 지르는 백성이 아니었다.
굶주림에 폐가 파여 손톱을 할퀴는 인간이 아니었다.
상처가 치유받아, 똑같은 상처를 지닌 자들끼리 웃을 때--- 그 웃음이 퍼진 공기 역시, 가깝기는 하되 아니었다.
-뭐. 이만하면 살 수는 있겠죠.
견디는 자들.
-죽고 싶지만.
견디기 위해서 즐거워지는 이들.
-살수는 있습니다.
그 행복.
행복이 될 수조차 없는 찰나의 즐거움.
하루, 하루, 견디도록 자신의 어느 일부분을 망가트리면서까지 버티는 것.
죽을 것 같다고 혼잣말하면서 한숨을 쉬고, 미소를 짓는 것.
의지.
살아남자는 것.
-.......
독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행복을 구차한 수작질이라고 깔보는 것은 쉬웠다. 영원히 문제를 해결해줄 수단이 되어주지 못하여, 당신은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그저 행복을 연기(延期)할 뿐이고, 따라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내어 진정한 재능에 몸을 던지라는 조언 등도 쉽게 꺼낼 수 있었다.
당신의 인생이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쉬웠다.
-꽤 재밌어 보이는구만.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나도 한 번 해봐도 괜찮겠냐?
제아무리 비루한 행복이라도 그것은 한 톨의 행복이고.
설령 아주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질 미소라도, 그것은 미소다.
이 세상에 틀림없이 존재했고, 존재하며, 존재할 무언가다.
살아있고 살고 싶다는 증거다.
-에. 손님이요?
-귀인족이잖냐. 힘 잘 써.
-이거 힘으로만 되는 게 아닌데….
-아, 일단 한번 줘봐. 나 돈도 많아. 여기 주머니 올려놓을 테니까 뭐 문제 생기면 야장(治匠)이 알아서 갖다 쓰라고.
누구나 일을 한다.
누구나 괴롭게 일을 한다.
누구나 괴로움을 버티려 즐거워진다.
따라서 이 행복은 지금 이곳이 아니더라도 언제, 어느 때,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펼쳐져 있을 것이기에, 능히 마천(魔天)에 버금가는 하나의 하늘이 되어서 세상을 감쌀 수 있으리라.
-으싸!
독사는 웃통을 까고 망치를 꾹 쥐었다.
-좋아! 함 해볼까!
자연의 풍광을 노래하기엔 내가 너무 먼 곳에 떨어졌다. 마냥 행복하여 밀밭에 퍼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검에 담아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범인(凡人)의 행복이라면.
조금 더 노력할 뿐이고, 조금 더 발버둥 칠 뿐이며, 아주 약간 행복할 뿐이지만, 그 약간의 행복이 없으면 곧바로 죽어버릴 것처럼 힘들어서. 어떻게든 행복해지려고 계획을 세우고, 머리를 짜고, 실행하여, 활짝 웃어 기뻐하는, 행복이라면.
-대장간 일은 처음이지만! 할 수 있다! 아자!
검에 담아낼 수 있었다.
담아내고 싶었다.
독사는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맨 아름다움, 심장에 닿는 울림, 세상에 보이고 싶은 풍경, 정(正)이 이곳에 있음을 알았다.
-어차피 이 몸은, 남아도는 게 시간이거든!
까앙!
쇳소리가 울렸다.
까앙!
쇳소리가 울렸다.
까앙!
쉿소리가,
까앙!
울렸다.
까앙!
울렸다.
까앙!
울렸다.
까앙!
까앙!
까앙!
까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