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자살헌터-308화 (308/400)

308화.  < 층층. (1) >

1.

“사왕님……. 아니, 공자 씨. 죄송하지만 말 한 마디만 하게 해주세요….”

“놀랍게도 약제사님에겐 말 한 마디가 아니라 백 마디 천 마디를 자유롭게 하실 권리가 있죠. 상대방이 너그럽게 들어준다는 전제에서요. 그리고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원래 좀 너그러운 사람입니다.”

“공자 씨 지금 병신이에요….”

약제사가 나를 진찰하고 30초 만에 꺼낸 말이었다.

“비하의 의미가 아니라 진짜로. 진짜 진짜 말 그대로 병신(病身)이요. 그냥 병신도 아니고 굉장히 병신이에요.”

“너무한데요.”

“그럼 전 단무지 할래요….”

“네?”

“웅?”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약제사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인간의 인지능력을 아득히 초월한 시간이 찰나 동안 흘렀다.

약제사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어떻게 이런 상태로 살아계실 수 있지요…? 전 지금 공자씨의 상태를 갖고 논문을 쓰라 해도 쓸 수 있어요. 이게, 팔이. 이렇게. 얍."

“꺄아아아아악!?”

“잘 꺾어지는 거 보이시죠? 커브가 아주 부드럽게, 이렇게. 얍. 되어서.”

“끼아아악훅으누앍꾸웨애애액!!”

“응. 뼈가 아작났어요. 생라면 뿌셔서 먹으면 포장봉지 아래에 부스러기들 남는 거 알지요…? 공자 씨는 지금 전신이라면 뽀시래기 상태예요…. 턱뼈랑 두개골까지 포함해서, 요.”

“기브업! 기브업! 알겠으니까 그만 좀 꺾어요! 나 죽어!”

“마치 자기가 살아있다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시체 주제에….”

살아있다고!

“일단, 치료는 해드릴게요.”

약제사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제 스킬은 부상의 정도가 심하면 심할수록 반동이 커요. 최대한 포션으로 치료를 보조하겠지만 그래도 고통이 엄청날 거예요...."

“어. 방금 고통을 레벨1로 따지면 치료에 동반되는 고통의 레벨은 어느 정도입니까?”

“슬라임한테 쳐맞고 엄살떨지 마세요.”

과연.

죽으라는 건가.

부끄러움 없는 생애를 보내왔습니다.

“공자 씨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요.”

“삶이냐 죽음이냐를 고르는 건 언제나 제게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한 번에 치료받으실래요? 아니면, 팔다리 십이지장 머리 어깨 발 무릎 발 나눠서 쪼금쪼금 치료받으실래요?”

“부디 차이점을 들려주시죠.”

“응. 죽음을 뛰어넘는 고통을 한 번에 뒤집어쓰고 말 건가, 죽을 정도의 고통을 여러 번 맛보는가 정도일까요…?”

“죽음이냐 죽음이냐의 선택지였나….”

필사즉사(必死則死). 또한 필사즉사(必死則死). 충무공조차 이런 동어반복적 선택지 앞에선 난감해지겠지. 절대로 병졸들한테 말해줄 연설이 못 된다. 아무리 애국심 투철한 병사라도 지옥조선을 외치며 도망칠걸.

“그래서… 뭘 고르실래요?”

“난 죽음을 택하겠다!”

“죄송해요. 어느 쪽을 말씀하신 건지 모르겠어요….”

“뭐, 회초리도 한방에 맞는 게 차라리 낫죠.”

나는 다년간의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말했다.

“그냥 시원하게 치료해주십시오. 잠깐 아프고 말렵니다.”

“네."

약제사는 주머니에서 유리 실린더를 꺼냈다.

해장국처럼 걸쭉한 붉은색 액체가 유리병 속에서 철렁거렸다.

“이제 누워주세요.”

누웠습니다.

“눈 감아주세요.”

감았습니다.

“그럼… 살아주세요.”

살았습니다.

“..넵?”

대답이 없었다.

나는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끼며 눈을 깜-----

2.

깜빡.

눈을 뜨니, 코앞에 보랏빛 눈동자가 보였다.

탑주(塔主)의 얼굴이었다.

-.......

탑주는, 무표정하게 눈을 내리깔고 중얼거렸다.

-……조금 곤란하네요.

자수정 씨?

-아직 이런 곳에 오시면 안 되어요.

예?

-돌아가주세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잠깐만.

그보다 여기 어디,

3.

"---허업!"

나는 벌떡 일어섰다.

뒷덜미가 축축했다.

“바, 방금 뭔가 리얼하게 사후세계를 체험한 듯한 기분이….”

“정신 좀 깼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로. 잿빛 거미가 옆자리 병상에 기대 누워 있었다.

그녀 역시 치료를 받았는지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정체불명의 빨간색 주스를 빨대로 빨았다.

“야. 네가 데려온 힐러 쩔더라. 1년 꼬박 요양해야 될 게 1주일로 줄었어. 우리 탑으로 고용하고 싶을 정도야.”

“어, 뭐. 약제사가 좀 사기이긴 하죠……. 잠시만요. 일주일이요? 일주일이 지났어요?”

“네가 닭대가리 같은 비명을 지르고 173시간 31분 26초가지 났으니 대충 일주일이라고 퉁쳐도 무방하겠지.”

세상에.

[반짝이는 용사님의 무사 귀환에 안도합니다.]

침대에 놓인 성검이 우우웅 떨었다.

말도 안 돼.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을 뿐인데.

그 잠깐 사이 일주일 흘렀다는 것이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어떻게 됐습니까?”

“뭐가? 내 인생? 쓰레긴데.”

“그게 아니라. 제가 당신을 쓰러트리고 포로로 잡은 것까진 기억이 잘 나요.”

나는 잿빛 거미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영광스러운 순간도 잠시. 지나치게 부상이 심해서 전장을 이탈해야만 했다. 어떻게든 우리 세계와 연락을 취해 약제사를 불렀고, 바로 그날 치료를 받았다.

……치료?

과연 그걸 치료라고 부를 수 있을까.

새로이 개발된 , 고도의 암살 방법 아닐까.

아무튼.

“저희의 결투랑 별개로 전투의 승패는 아직 안 갈렸잖아요.”

그렇다.

마탑은 자신들의 수장인 장로를 잃었다. 반마동맹이 승기를 잡았다고 볼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거미들은 끝까지 항복을 거부하고, 다섯 채의 첨탑에 틀어박혀 농성하였다.

당연히 반마동맹은 기세를 몰아 첨탑들을 포위.

지루하고 피곤한 공성전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 공성전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가 물은 것이다.

“뭘 기대하는지는 알겠는데.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어.”

잿빛 거미가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사로잡히는 바람에 애들이 많이 당황했을 거지만. 항복은 별개의 문제거든. 아마 패색이 결정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상 절대 백기를 안 들 거야.”

“제가 장로님의 목숨을 걸고 협박한다 해도 말입니까?”

“그럼 물론 흔들릴 애들은 흔들리겠지.”

잿빛 거미가 피식거렸다.

“그런데 넌 안 그럴 거잖아.”

“뭐. 그건 그렇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탈출해서 두 번째 싸움을 노린다든지 그러시진 않을 거죠?”

“존나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인데……. 됐어. 아무리 치사하고 비겁한 짓에 당했다 해도 결투는 결투고 시험은 시험이야. 네가 날 죽이려 든다면 모를까, 지금은 얌전히 포로로 있어줄게.”

이중 삼중으로 봉인마법이 걸려서 어차피 탈출하기도 어렵고, 라고 잿빛 거미는 중얼거렸다.

의외로 패배에 덤덤한 모습이었다.

“아. 혹시 배후령한테 잘 보이려고……."

“진짜 뭬질래?”

“강한 부정은 역으로……."

“강한 부정이지. 죽일놈아.”

“끼아아아아악!!”

“흐야아아악!?”

방금 일어난 사태에 대해 묘사하자면, 잿빛 거미는 붕대에 감긴 다리를 들어 내 허리를 쳤고, 아직 완치되지 않은 나의 갈비뼈가 비명을 질렀다. 마찬가지로 완치되지 않은 잿빛 거미의 다리뼈가 으스러졌다.

멋진 하모니였다.

결과적으로 나는 허리를 감싼 채 헉헉거렸으며 잿빛 거미는 다리를 붙잡은 채 낑낑거렸다.

"우우욱... 우으...."

“개… 씨앙……."

병실에 두 사람의 신음이 흘렀다. 서로 어리석음을 탓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순수하게 매우, 매우, 고통스러웠다.

정말로 아프면 말이 안 나오는 법.

배후령은 뭐 이런 녀석들 있냐는 눈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너희 혹시 바보냐?

“검제가 그러는데 일만오천백십 년 전부터 당신만을 사랑했대요….”

-진짜 뒈질래!?

“오. 역시 천생연분.”

나는 고통을 뒤로 했다.

그것이 인생이므로.

잇츠 마이 라이프... by 김공자.

[반짝이는 오늘따라 용사님이 용사님한다며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봅니다.]

전신이 고통스러워서 그렇단다. 이해해주렴.

“어쨌든, 싸움은 아직 안 끝났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지.”

“음. 실례지만 이미 상황 종료 아닙니까? 우두머리가 잡혔고 포위까지 당했잖아요. 여기서 뭘 더 어떡해야 패색이 결정적이라고 인정 한대요?”

“글쎄. ……흐응.”

잿빛 거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이쪽을 힐끗거렸다.

“뭐,  지금쯤이면 결착이 났으려나.”

어딘지 모르게 눈빛이 불길했다.

“……뭔데 그러세요?”

“우리 마탑은 수십 개의 세계에 촉수를 뻗고 있다. 꼬맹아. 오랜만에 대군을 소집하긴 했지만 그게 전력(全刀)은 아니라는 소리지. 첨탑에 틀어박혀서 농성하는 아이들이 본대라면, ‘유격대’라고 부를 만한 애들은 또 따로 있어."

“여기서 농성으로 시간을 끄는 동안 유격대가 너의 세계를 공격했을걸.”

뭐라고?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네가 온 세계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지. 네가 경계심 많은 두더지처럼 지하에 숨었으니까. 하지만, 일주일 전에 너는 힐러를 불렀다. 그때 우리 아이들이 네 세계의 좌표를 특정했을 거야. 네놈이 기절한 사이에 말이지!”

잿빛 거미는 꼴 좋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한방 먹인 듯이.

“왓 더……."

“아아. 검제의 꼬마야. 너는 확실히 강해. 인정해주겠어. 하지만 이번 기회에 알아둬. 전쟁에선 너 한 명만 강하다고 해서 이길 순 없어.”

잿빛 거미는 쯧, 쯧, 혀를 차며 주먹을 흔들었다. 아마 손가락을 좌우로 까닥거릴 생각이었을 거다. 하지만 붕대가 벙어리 장갑처럼 되어 있어서 그만 실패한 것이다.

"너는 나를 포로로 잡았지만, 우리는 너의 세계 그 자체를 인질로 삼았다. 네가 여느 50층 클리어 헌터들처럼 평범한 싸이코패스라면 그래서 뭐 어쩔 거냐고 나오겠지. 그런데 넌 착해. 또라이지만 착하지."

“이럴 수가……."

“그래. 사왕. 너의 선함이야말로 네 발목을 잡은 거다.”

“어떻게 이리도 어리석은 작전을 쓸 수가 있나……."

"......음?"

잿빛 거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튼 좋은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해라. 뭐, 나도 악마는 아니야. 넌 아직 어리고 앞날이 창창하니까. 결투의 패배를 진지하게 받아준다는 의미에서 적당히 무승부로 쳐주마. 일승. 일패. 멋진 경험이 되겠구나.”

“그러게요. 정말 멋진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인걸요.”

“……뭐냐? 여유로운 척은. 어디 네 세계의 사람들이 살려달라 구해달라 애원하는 모습을 보고도 그리 여유로울 수 있는지 지켜봐주마.”

다음날.

“우고르.”

쿠웅, 하고 진동음이 울렸다.

“웬 날파리들이 앵겨서 좀 거칠게 때려잡았다.

땅바닥에는 기절해버린 거미들이 수십 명.

하나같이 지휘관급의 마력을 보유한 자들이었다. 그들의 지휘 아래 움직였을 기타 거미들, 약 육백 명의 유격대는, 건물 바깥에 단체로 묶여 있었다.

우부르카는 팔짱을 끼고 우뚝 섰다.

“될 수 있으면 대화로 쌍방의 오해를 풀고 싶었지만 말을 안 듣더군. 주먹을 쓸 수밖에 없었다.”

“슬프구나.”

“그것 또한 인생이다. 별 문제는 없는가, 애비여?”

“오우.”

나는 병상에서 감자칩을 우물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

옆자리 침대에서 잿빛 거미는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살짝 죽을 것처럼 아프다는 거만 빼면 완전 괜찮단다. 아들.”

“평소와 딱히 다를 바도 없군.”

“뭐, 평범한 나날이지. 바빌론엔 큰일 없냐?”

“큰일은 없다. 우고르. 작은 일들만 있지. 얘네 말고도 온갖 잡세계에서 잡상인들이 몰려들고 앉았었거든.”

“저런. 그래서?”

“아무리 우리 세계가 신삥이라도 이제는 슬슬 소문이 퍼졌을 터. 학습능력이 있는 것들이면 더는 함부로 바빌론을 넘보지 못할 거다.”

“흐음."

나는 감자칩 봉지를 내려놨다.

잿빛 거미를 돌아보면서.

“그렇다네요.”

“아무튼 좋은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하세요. 뭐, 저도 악마는 아닙니다. 장로님은 연세도 있으시고. 멋진 결투를 보여주셨다는 의미에서 적당히 배려해드리겠습니다. 저는 일승. 그쪽은 일패.”

나는 방긋 웃었다.

“멋진 경험이 되겠네요!”

잿빛 거미는 천천히 자신의 머리를 감쌌다.

그리고 우주를 저주하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누가 나 대신 이 새끼 좀 때려줘……."

힘내세요.

인생은 아름답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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