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자살헌터-319화 (319/400)

319화.  < 무간도(無間道). (1) >

1.

무료하다.

"......."

나는 눈을 깜빡였다.

깜빡, 거린 것과 동시에 손끝을 움직이려 해보았다. 움직였다.

아무런 문제 없이, 나는 고개를 들었고, 허리를 들었으며, 입술을 움직였다.

“김……, 공자……."

되었다.

말할 수 있었다. 나의 이름. 내 흔적의 좌표.

잃어버리지, 않았다.

"읏......!?"

그 순간, 격통이 머리를 쥐어짰다.

"욱......! 읏...!"

옆머리의 혈관이 지끈, 튀어나와 터질 것 같았다. 두통은 옆머리에서 앞머리까지 금세 전염됐다. 욱씬! 입술이 벌어지고, 침샘이 통제를 거부한 채 뻐끔거렸다. 입가로 흘러내리는 침을, 나는 간신히 손등으로 닦았다.

“흐윽……."

“아가씨! 괜찮으신가요!”

누군가가 벌컥! 뛰어들어왔다. 문소리와 발소리가 얽혔다.

다급함이 담긴 그 소음마저, 내 머릿속의 쇳덩이를 손톱으로 갉히는 양 시끄러웠다.

“웃…, 조용히……."

나는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좀, 소리를……."

“세상에. 머리에 열 좀 봐요.”

다행히 상대는 내 말을 알아들은 듯했다.

“주말에 약간 괜찮아지시나 싶었는데 아아, 어쩐담. 의사를 불러올게요."

“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아가씨. 바로 다른 아이들도 올 거예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가씨, 라고 불린 걸 보면 아마도 나는 여자가 된 거겠지.

그렇다면 ■■■■ ■■ ■■■의 원래 성별이 여자였던 걸까?

‘이상해.’

■■■■ ■■ ■■■에게 원래 성별 같은 것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말살 당했다. 탑에서 그 이름과 외형을 박탈했기에, 설령 나의 스킬로 트라우마를 엿본다 해도 알 수는 없다.

내 스킬 또한 탑에서 시전되는 것 아니던가.

‘어째서?’

나는 고통에 눈이 겨웠다.

‘대체 어떤 사람으로, 트라우마가 대체된…….'

그리고 고개를 들어 방안의 거울을 마주한 순간.

나는 신음을 흘리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입을 벌렸다.

"......."

달빛이 서러워할 은(銀)의 머리카락.

핏빛이 맴돌아, 마주보는 이를 섬칫하게 만드는 눈동자.

하지만 이마부터 턱선으로 이어지는 곡선은 너무나도 애달파, 끊어질 듯 말 듯한 곡예를 지켜보지 않을 수 없어, 인간들은 알지 못할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또한 그녀를 바라보는 것 이외엔 어떤 선택지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것은.

“라비엘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오늘 일어나시자마자 또 머리에 열이 오신 것 같아서….”

“본래 잔병치레가 많은 분이니까요. 괜찮습니다. 아마도 심각한 일은 아닐 겁니다.”

“어쩌지요? 마님께 말씀드려야 할까요?”

“걱정에 걱정을 끼얹는 격이 되겠지요. 일단 제가 진찰을 본 다음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2.

무료하다.

"......."

나는 정원의 분수가에 누워 멍하게 하늘을 올려봤다.

아무래도, 나는 사랑하는 여신님, 라비엘 이반시아가 된 것 같다.

그것도 라비엘이 아주 어릴 적.

“열두 살 정도려나……."

중얼거리는 이 목소리도, 한번 입안에서 굴절되어 들리는 것일 텐데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울림을 지니고 있다.

"으."

그저 혼잣말을 중얼거렸을 뿐인데도 어쩐지 부끄럽다. 꼭, 라비엘이 내 머리에 대고 귓속말을 속삭인 것 같아서.

어쩌지.

이거 남이 보면 자기 목소리에 자기가 반해서 창피해 하는 인간으로 보일 텐데, 그냥, 미친 인간이잖아.

내 부끄러움은 그렇다 쳐도 라비엘이 미친 사람으로 취급 받는 건 조금….

“그런가.”

나는 깨달았다.

“벙어리가 되는 수밖에 없는가….”

천재적인 해답이었다.

“하는 김에 눈도 감은 채 살아야겠군. 거울이야 보지 않으면 그만이다만, 그래서야 시녀들이 옷을 입힐 때 곤란할 터. 아예 안면에다 붕대를 묶고 지내는 것이 득책이다.”

“아가씨! 부, 분수가에 누워 계시면 안 되어요!”

멀리서 시녀가 허둥지둥 뛰어왔다.

“어서 오게.”

나는 원형분수의 돌턱에 누워 있었다. 햇빛이 쨍쨍해도 여긴 분수의 냉기가 스며들어 시원하거든.

라비엘은 시원한 기운을 좋아했다. 그녀와 생활할 때부터 안 사실이었다. 어릴 적에도 똑같았는지 몸이 본능적으로 서늘한 곳을 찾아 헤맸다.

“아니, 말이 잘못되었군. 느리게 와라. 숨이 떨어진다.”

“헥, 헤엑… 아이고, 아이고 죽겠네….”

“이미 떨어졌는가. 조언이 늦어버렸구나. 종자의 헐떡거림을 미처 챙기지 못했으니 주인의 부덕이다.”

“아, 아가씨이이…. 이런 곳에, 함부로, 누워 계시면! 제국 제일의 레이디로서, 품격이 의심받으세요…!”

시녀는 얇은 담요로 내 허리를 덮었다. 담요조차 최상급 감촉. 이반시아 가문은 돈을 아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공히 증명하려는 듯, 요까지 쓸데없이 사치스러웠다.

“그런가?”

“네!"

“하지만 잘 생각해보아라. 자네가 말한 대로 나는 제국 제일의 레이디다. 하지만, 제국 제일의 레이디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질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거듭 증명해 나가야 할 자격문서와 같다.”

“네?”

“만일 내가 최고의 레이디에 걸맞지 않다면, 자네가 말한 대로, 분수가에 한가로이 누워 있는 모습은 천박하게 보일 뿐이겠지. 내 그릇은 결국 그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만일 천박하지 않다면?”

“네에?”

“만약 내가 분수가에 누워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귀해 보인다면, 그것이야말로 나의 레이디력을 증명하는 일이다. 안 그런가?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입는 것도, 그저 살아 있는 것 자체에서 고귀함이 느껴져야 하는 것이 바로 제국 제일의 레이디다. 당연히 분수가에 누워 있는 모습조차 그림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 웅, 우웅……?”

“그러니 담요는 불요하다.”

나는 툭, 건드려서 담요를 분수에 흘려 보냈다.

“앗! 비, 비싼 건데……!”

“분수도 가끔은 담요를 덮고 싶겠지. 그보다는 나를 보아라.”

시녀는 어쩔 줄 몰라하며 내 명령을 따랐다.

시녀의 눈동자에 내 모습이 담겼다.

분수 돌턱에 누워, 한쪽 팔을 아래로 내린 채, 비스듬히 시녀를 바라보고 있는 나의 모습이.

"......."

“어떤가?”

“……고, 고귀하세요.”

“그림이 되는가?”

“네. 아가씨께선, 그림이시어요……."

“자네의 심미안에 묻지. 이 인물화의 허리에 갈색 담요를 덮는 것은 문화적 이득인가, 아니면 문화적 손실인가? 황궁의 복도에 그림을 걸어야 한다면 여기에 담요가 있어야 하는가, 없어야 하는가?”

“……어라? 없는 편이 더 아름답다……?”

“바로 그것일세.”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즉, 내가 제국 제일의 레이디로서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사실이 증명되었군. 황궁 벽면에 걸릴 수 있는 그림을 최대한 애써서 자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자네의 걱정도 불필요하다는 게 밝혀졌네.”

“응? ......으응?"

“어서 가라. 나는 조금 더 정원의 싱그러움과 분수의 물소리를 즐기고 싶구나.”

“아, 네……. 응? 응……?”

시녀는 연신 머리를 갸웃거리며 물러났다. 물러나는 내내 갸웃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니, 차갑게 식은 심장에서 조금은 유쾌한 기분이 멤돌았다.

아주 잠깐.

머리맡의 분수에서 졸졸, 물소리가 흘렀다.

"......."

무료하다.

"......."

무료하다.

"......."

무료하다.

"음......."

무엇일까.

이, 밑바닥 없이 가라앉는 따분함은. 아니. 밑바닥 그 자체인 따분함은, 대체.

“과연.”

이것이 라비엘의 유년기.

“나는, 세상이 재미없는 것인가.”

유년의 전체를 지배한 감정.

“책을 읽든, 사교계에서 떠들든, 검을 배우든, 무엇을 해도 보람이 느껴지지 않는군.”

하늘이 푸르렀다. 맑아서 하얀 구름이 적었다. 하지만 저런 창공조차 지금의 내 얼굴, 라비엘의 얼굴보다는 표정이 다채로울 것이다.

절대적인 무표정.

지금부터 살아서 밟을 수 있는 트랙, 선로(線路)가 몇 갈래 있다고 가정해보자.

‘황제의 부인이 된다. 황후가 되어 황제를 꼭두각시로 만들어 제국을 가지고 논다. 아니면, 귀족들의 파벌을 긁어모아 이반시아의 이름을 내걸어 반역한다. 새로이 건설된 제국을 호령하며 이십 년의 천하를 누린다.’

아마도 그것이 라비엘이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선로의 최대한도.

‘무엇이든 가능하군.’

나는 그 중 어느 것을 선택해도, 우연한 불행이 끼어들지 않는 한, 성공할 수 있음을 직감했다.

‘작금의 황제 폐하는 성군이다. 굳이 반역을 도모해야 할 까닭이 없어. 폐하의 무릎 아래에서 열심히 일하는 신민들, 이반시아의 땅에서 매 계절 곡괭이를 휘두르는 영민들의 모습은, 과히 흡족하다.’

나는 그 풍경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잘 알지 못하는 명화(名皇)를 볼 때처럼, 아름답다고 느낄 뿐, 재미는 없지만.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그대로 지켜주고 싶다]는 감정만은 이 심장에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제국을……. 정확히는 제국의 만민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을 견디게 되는 것인가.’

의미가 있겠지.

단지.

‘지루하구나.’

따분해서 견딜 수 없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명화에 얹은 먼지를 털어내고, 색채가 보존되도록 작업하며, 이 그림을 망치려 드는 무뢰배를 잡으며, 훔치려 드는 도둑을 죽인다.

그뿐.

인생의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 정해진 삶.

“어이.”

퐁당.

분수의 수면에 물결이 쳤다.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보면, 정원 한복판, 금발의 남자아이가 조약돌을 든 채 씩 웃고 있다.

“부인.”

"......."

나는 무표정하게 입술을 열었다.

“아직 부인이 아닙니다. 전하.”

“그럼 부인 예정.”

“제가 전하를 황제 예정이라 부르면 무례하지 않겠나이까?”

“서로의 무례를 받아주는 것을 나는 부부의 덕목이라 안다. 받아주지 못하면, 뭐, 첩실을 들이게 되겠지. 그런 미래를 바라는가?”

“솔직히 상관없사옵니다.”

“내 부인 예정은 참 심장이 차가운 여인이로다.”

금발의 소년은 제법 그럴싸하게 한탄했다.

이 제국의 유일무이한 적자(觸子). 제국의 후계, 황태자.

20년 전부터 내 약혼자로 내정된 남자이기도 했다.

태어나기 전부터, 라는 얘기다.

‘이 또한 선로인가.’

금발의 선로가 떠들었다.

“끝끝내 일어서서 예를 표하지 않는군. 나를 보고도 누워 있는 사람은 어마마마를 제외하고 그대가 처음이야.”

“서로의 무례를 받아주는 것이 부부의 덕목이라 하셨기에.”

“오. 그럼 내가 좀 더 무례하게 나가도 괜찮겠군.”

황태자는 내 손목을 잡았다. 손목은 딱 알맞은 서늘함으로 식혀져 있어서, 황태자가 붙잡자 체온이 옮았다. 아마 그대로 붉은 자욱이 되어 내 손목에 남겠지.

“가세.”

“어디로 말입니까?”

“어디든. 뭐, 솔직히 말하면 아바마마께서 자네한테 아양을 좀 떨라는군. 이반시아 가문한테 잘 보여둬서 나쁠 거 없다는 얘기지. 나도 동의하네. 어차피 떨 아양이면 제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레이디한테 떠는 편이 이득 아닌가?”

“말은 잘 하시는군요. 장차, 화(禍)가 될 것입니다.”

"응?"

소년이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무슨 소리인가?”

“말은 즉흥적이나 즉흥적인 말이 낳은 행동은 길이 자취를 남깁니다. 이 자취까지 고려하는 것을 책임이라 부릅니다. 말은 한 번 입을 열고 닫을 때까지만 말이어서, 책임을 지기 위해선 행동도 뒤따라야 하는 법입니다. 전하께선 말을 잘 하시기에 자취도 그만큼 길어질 텐데, 감당하실 수 있으렵니까.”

“......?”

과연.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있는 힘껏 어른을 흉내내고 있는 황태자이지만, 그렇다고 인생의 맥에 닿아 있는 충고까지 이해할 수는 없다.

그건 어른이거나 천재여야만 이해할 수 있으니까.

안타깝게도 황태자는 둘 중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꼭 재상 같은 말투로군. 뭐, 됐나. 나는 부인 예정한테 과외를 받으러 온 게 아닐세.”

“하옵시면?”

“저잣거리에 새로운 가게가 생겼다는군! 다과 가게라던데. 이국풍의 다과가 잔뜩 있고, 제철 딸기가 들어와서 아주 맛있다고 하네!”

“……다과라면 본가에서도 바로 준비할 수 있습니다. 내오라고 할까요?”

“아아, 전혀 모르는군. 이 예정. 전혀 몰라!”

호칭이 부인에서 부인 예정으로, 이제는 예정인가.

“주방에서 내오는 다과 따윈 그저 봉사의 증거물에 불과하지 않나! 나는 봉사를 바라는 게 아니야. 자유민과 자유민 사이의 적합한 교류…. 그렇지 . 자유로운 장사를 바라는 걸세!”

“신민들은 전하와 저를 보고 도리어 자유롭다 부러워할 것입니다.”

“서로 부러워하는 사이군. 이상적인 군민(君民) 관계야!”

말을 안 듣는다.

그보다 이 남자,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그럴듯한 문장만 주워담아 흩뿌리는 것에 불과하다.

“자아, 자아! 이미 마차도 구해놨네. 황실 마차도 자네 가문의 마차도 아니라 그냥 상단에서 빌려온 마차일세. 아무도 우리란 걸 알아 보지 못할 거야!”

그럴 리 없다.

자신의 은발은 고귀한 이반시아의 상징. 다과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종업원이 당황하며 무릎을 꿇고, 주인장이 헐레벌떡 뛰어나와 허리를 숙이는 광경이, 라비엘의 머릿속에선 용이하게 상상되었다.

그런가.

“전하의 뜻대로 하소서.”

“오오! 그래도 말이 통하는군, 예정!”

선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이다지도 간단한가.

“가게에 들리고 난 다음엔 시장에 가세! 후우. 자랑은 아니지만 난 이미 황도에서 열리는 6일장과 3일장, 심지어 상설 시장까지 전부 돌아다닌 몸이야. 이쪽 방면으로는 자네보다 월등한 전문가라 할 수 있지.”

“예."

그저 조금 멍청해지면 된다.

“기대되는군요.”

“기대하게나!”

이 남자와 같이 있으면 인생이 흔들리는 느낌이 든다.

나에게 익숙한 것, 내가 오늘 보내게 될 일상, 먹을 것과 마실 것, 잠자는 곳, 모든 선로가 뒤흔들리며 비틀어진다.

그것은 ‘재미있다’고 말할 것까진 못 되었으나.

틀림없이, ‘신선하다’고 평가할 만한 무언가였다.

“자아! 예정! 이쪽이다, 이쪽!”

잠시만이라도 나 자신을 잊을 수 있다.

그 정도이면 어디인가?

자신의 삶에서, 그 정도라면, 마음을 줄 이유가 되지 않을까.

“굉장하군. 제철 딸기라는 건 이렇게나 맛있었나? 자, 예정도 먹어보게. 음. 이다음엔……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바다. 어떤가? 바다에 가세.”

나한테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므로.

잊는다는 것.

자신 같은 인간에겐, 언제나 망각이 제일 어려웠다.

“너무 어두워서 바다가 보이지 않는군….”

“전하.”

그렇다.

"음?"

나는 이 인생에 만족하기로 했다.

무료하지만. 무료하기 그지없으나.

“전하를 사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 드디어……."

“하오나, 조건이 있사옵니다.”

때로는 태양이 아니라, 수면에 비친 달빛만으로 만족하고 살아야 하는 삶도 있다.

“저만을 사랑하소서.”

"......."

수면도 달빛을 비추려면 잔잔해야 한다.

나는 다만 이 세상에 조용해질 것을 요구하기로 했다.

“첩을 들이지 마소서. 눈길조차 주지 마옵소서. 전하의 마음에서 사랑이 가능하다면 그 가한 사랑을 오직 저한테만 허락하시고, 만일 사랑이 불가능하다면, 그 노력을 저한테만 쏟으소서.”

"......."

“그렇다면 아마도 저는 전하의 곁에 머무를 수 있을 것입니다. 전하를 보필하여, 제국을 보국하고, 만인을 보민할 수 있겠지요. 전하. 저만을 사랑하실 것임을, 약조해주실 수 있겠나이까?”

소년은 입을 다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그럴싸함으로, 소년은 밝게 말했다.

“물론!”

"......."

“오직 부인만을 사랑하겠네!

그래.

세상에 기대를 걸어보는 것도 좋겠지.

적어도, 분수에서 졸졸 흐르던 물소리보다는--- 저 보이지 않는 바다에서 메아리치는, 끝을 모르고, 밑조차 모르는, 파도의 물소리가 조금은 더 서늘하니까.

[당신을 죽인 적의 트라우마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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