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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자살헌터-347화 (347/400)

347화.  < 만월항해(滿月航海)편. (4) >

4.

[‘금화를 문 고양이’는 당신에게 제안합니다.]

성좌는 내게 말을 거는 한편 그동안 막후에서 벌어진 일에 관해서도 말해주었다.

무슨 일이냐고? 지금 이 순간에도 70층 로비에서 관전하고 있을 심판자. 백작에 관해서다.

성좌가 들려준 사정은 제법 놀라운 것이었다.

[‘금화를 문 고양이’는 당신과 당신의 심판자가 적당히 거래에 응해주기를 간절히 요청합니다.]

알고 보니까 백작 이 양반, 성좌를 상대로 흥정을 치고 있었다!

성기사가 사신(蛇神)에게 스킬을 받았듯 백작은 상신(商神)에게 스킬을 얻었다.

그리고 바로 이 상신이 여기 72층, 금천세계를 다스리는 성좌인 [금화를 문 고양이]였다고 한다.

‘하긴.’

나는 쉽게 납득했다.

우연의 일치라기엔 백작이 보유한 스킬들과 금천세계의 법칙들 간에 비슷한 점이 꽤 많았다.

‘백작은 거의 어떤 물건이든 흥정해서 스킬로 소환시킬 수 있지. 가격은 거래자 마음대로고. 뭣보다 [세계평화] 아이템을 구매해봤더니 [세계는 원래 평화로웠답니다!]라는 문구가 떴다던가…….'

한마디로 백작을 빡치게 하는 스킬.

백작이 심히 불만족함으로써 반대로 상신은 만족한다. 어디서 많이 본 꼬라지 아닌가? 저렇게 놀리고 약올리는 거야말로 사실은 스킬의 핵심이다.

즉.

“……백작이 당신한테 화가 굉장히 많이 쌓였을 거 같은데요.”

[‘금화를 문 고양이’는 제발 어떻게 좀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백작은 오랜 세월, 참으로 길고도 긴 시간 동안 상신의 스킬을 써왔다.

그때마다 놀림을 당했을 테고 실컷 약올려 졌겠지.

마치 내가 항구도시 레반타에 도착하자마자 굴욕을 받았을 때처럼, 아니. 그 비슷한 짓거리를 수 년이 넘도록 당했을 거다.

요컨대 백작의 현재 심리 상태는 ‘아 저에게 이런 스킬을 내려주시다니 어디 사는 누구신지 몰라도 참으로 감사드리옵니다’가 아니었다. 아니어도 한참 아니었다.

오히려 ‘그동안 어디 사는 뉘신지 몰랐는데 이제 알았으니 정말 잘됐군!’에 가까웠다.

한마디로 말해 드디어 불구대천의 원수를 만난 것이다!

[‘금화를 문 고양이’는 심판자가 자신을 뼛국물까지 쫙쫙 우려낼 기세라며 눈물을 흘립니다.]

당연하지만 백작은 이런 기회를 그냥 놓치고 떠나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백작은 먼저 상신과 연락할 수단을 찾았다. 스킬 덕분에 원한다면 어떤 물건이든 구매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검색창을 돌려본 결과, 상품 목록에는 [상신과의 전화 통화]라는 아이템도 있었다고 한다.

빙고.

무한에 가까운 아이템이 있는지라 검색 기능을 쓰지 않으면 절대 찾지 못했으리라.

아, 참고로 [상품 검색]도 유료 아이템이다. 그것도 월정액을 끊어서 사야 하는 필수 아이템이란다. 지난 수 년 동안 백작이 어떤 바가지에 씌이고 다녔을지 알 만하군.

『안녕하신가.』

백작은 거금을 써서 전화를 걸었다.

『네. 당신의 입안에 금화를 쳐넣어드릴 싱글벙글 고양이 상회입니다. 누구신지요?』

『본인은 사자세계의 백작이라 하는 상인일세. 소싯적에 스킬을 얻어 승승장구했는데 이제 보니 이 스킬을 자네가 만든 것 같네.』

백작은 자신이 심판으로 소환됐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대충 상황을 짐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호구짓을 당한 바로 그 순간 모든 진상을 파악한 것이다. 자신의 스킬, 금천세계의 법칙, 둘 사이의 유사성 등등.

그리하여 그녀는 자신의 스킬이 금천세계의 주인한테서 비롯했으리라는 것을 깨닫고야 말았다.

『그러시나요? 스킬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요?』

『고양이 만물상점이라네.』

『아, 맞습니다. 저희가 만들어서 배포한 스킬이네요.』

그 깨달음은 옳았다.

『지금 전화 걸어주신 고객님은……. 어머나. 포인트 쌓인 거 좀 봐! 엄청난 우량 고객님이시군요. 언제나 싱글벙글 고양이 상회를 이용해주셨군요. 혹시 저희 상회의 서비스에 감사차 인사를 주신 건가요?』

『오. 물론일세. 본인은 그대한테 굉장한 감사를 느끼고 있다네.』

『별말씀이에요! 참고로 지금 고객님이 사용하고 있는 전화 통화 아이템은 시간별로 요금이 부여됩니다. 처음 1분은 공짜고요. 이후 이용할 경우에는 1분마다 별도의 통화요금이 붙습니다. 이 점 양해해주세요.』

백작은 느긋하게 경고했다.

『지금 그쪽이 지배하는 세계로 사왕이 갔다네.』

『네?』

『본인은 사왕이 합격했는지 불합격했는지 판단하는 심판자일세. 말하자면 사왕이 그쪽 세계에 영원히 짱 박혀서 돌아다니도록 할 건지 말 건지는 전적으로 본인의 소관에 달렸다고 할 수 있군.』

『실례지만 무슨 말씀인지 좀…….』

『오오, 걱정하지 말게나. 곧 알게 될 테니.』

뚝.

백작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통화를 끊었다.

이 시점에서 나는 골목을 전전하고 있었다. 음습하게. 처절한 굶주림에 몸부림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골동품 상점에 들어갔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백작은 소파에 누워 감자칩을 씹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전화기가 나타나 따르르릉! 울린 것도 그 때쯤이었다.

『백작일세.』

『네, 고객님. 알려주신 정보는 저희 측에서 확인했고요. 저희가 연락드리기 전에 미리 말씀해주신 점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뭘. 돈 내고 한 일인데.』

『아, 고객님. 통화 아이템을 구매하시는 데 쓰인 비용은 저희 측에서 환불해드리기로 했습니다. 추가 요금도 저희 쪽에서 부담하겠고요. 미리 배려해드리지 못한 점 진심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짧은 시간 사이에 상신은 제법 말투가 정중해졌다.

『그래서 말씀입니다만, 고객님께서 전화를 걸어주신 이유는 저 사왕이라는 분의 스테이지 클리어 여부에 관해 거래하시고 싶기 때문이라 짐작합니다만. 맞는지요?』

『얘기가 빨라져서 좋구만.』

『어떤 대가를 원하시나요?』

『빨라져서 좋다만 아직 내가 원하는 템포는 아닐세.』

『예?』

『조금 뒤에 다시 통화하지.』

백작은 통화를 끊었다.

이 시점에서 나는 골동품 상점을 집어삼킨 뒤 길거리를 휩쓸고 있었다. 그 우아한 자태는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가 쬐끄만 생쥐 떼거지를 이끌고 위풍당당 보무하는 것과 같았다.

피리 부는 사나이와 다른 점이라면 이 생쥐들은 자기들끼리 싸웠으며, 강물에 뛰어드는 대신 서로 캐삭빵을 신청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캐삭빵은 거리를 뛰어넘어 순식간에 온 도시로 유행되고 있었다.

따르르르릉!

『백작일세.』

『혹시 그동안 저희 상회를 이용해주시면서 마음이 상하시거나, 저희가 피치 않게 무례를 저지른 점이 있다면 정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고객님.』

담당자의 목소리는 다급해졌다.

『저희 쪽에서 지금 책임자를 가능한 한 빠르게 찾고 있습니다. 고객님을 전담한 상회원은 즉각 전근 조치될 예정이고요, 이외에 따로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바로 들어드리겠습니다.』

『괜찮군. 실로 빠른 조치일세.』

백작의 입안에서 감자칩이 달콤하게 부서졌다.

『하지만 내 템포는 아니야.』

뚝.

온 도시에 유행하기 시작한 캐삭빵은 시장 관저에 이르러 정점을 찍었다. 관저를 지키던 경비병들은 서로가 서로의 임금을 훔치고 있었다는 사실이 폭로되어 자중지란을 일으켰고, 이게 웬일이냐며 헐레벌떡 뛰어나온 시장은 이게 웬일의 정체라고 연인한테 뒤통수를 후려맞았다. 두 시장 부부의 명예를 위해 내가 폭로한 비밀이 무엇이었는가는 말해두지 않겠다.

따르르르르르릉!!

미친 듯이 전화가 울렸다.

『백작이네만.』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이제 좀 얘기가 통하는구먼.』

『지금 저희 상회 일동 전원이 대가리 박고 있습니다! 저 지금 그랜절 박은 채 전화드리고 있습니다, 고객님! 의심스러우면 당장 화상 통화 연결해드리겠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전화 통화는 화상 통화로 업그레이드됐다. 백작의 눈앞에 펼쳐진 홀로그램 속에선 정말로 수십 명…… 아니, 수십 마리의 고양이가 그랜절을 박고 있었다.

그 깜찍괴랄한 풍경엔 과연 백작도 0.5초 동안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상신은 바로 고양이였다. 그것도 고양이 한 마리가 아니라 수십 마리! 수십 마리의 고양이가 상회를 일궈서 일하는 곳이 바로 [싱글벙글 고양이 상회]였으며, [금화 문 고양이]였다.

하지만 백작은 깜찍한 외견에 속아 저것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너그럽지 않았다. 그러기엔 이 스킬에 여태껏 당한 인생이 너무도 카카오 99.9% 쳐컬릿스러웠다.

『장관이로군. 절경이야. 아무쪼록 계속 쳐박고 있게나.』

『냐! 냐! 냐.!』

『이쯤 되면 파악했겠네마는 저 친구는 또라이일세. ‘개’에 ‘더’라는 의미가 있고 ‘쌍’에 ‘더욱더’라는 뜻이 있다면 능히 개쌍또라이라고 부를 만하네. 이제 귀하들은 이 개쌍또라이를 영원히 금천세계에 풀어놓을지 말지가 내 기분에 달렸음을 알 것이야.』

이 타이밍에 시장 및 항구도시 주민 전원은 광장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그랜절을 박고 있었다. 신과 신민,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이가 머리를 박았으니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장담하건대 저 친구가 보름만 그쪽 세계를 돌아다닐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귀하들은 정말로 알고 싶지 않을 것이네. 하지만 나는 알고 싶구만.』

『냐……! 냐……! 고객님, 부디 자비를!!』

『우선 이 대화를 모두 녹음하고 녹화하여 사왕에게 보여주게나. 자고로 나의 치부는 숨기는 법이고 남의 치욕은 대대손손 사방팔방 오대육주 내우주 외우주 멀티 유니버스까지 널리 퍼트리는 법이라 했네. 나는 이 고락을 친구와 나누고 싶군.』

그리하여 나는 현재, 내가 없던 곳에서 벌어진 대화를 2160p 초고화질 홀로그램 영상으로 구경하게 되었나니. 이것 또한 사건의 전말이라면 전말이었다.

『나의 조건은 간단하네. 꿇게. 박게. 이미 박고 있다면 더 박게나. 내게 영원한 충성을 맹세함으로써 영원한 굴종을 감당하게.』

『냐, 냐아…… 그것은…. 아무리 그래도…….』

『물론 본인은 귀하들의 입장을 이해하네. 이빨이 부러져도 아직 잇몸이 남았다는 기상이야말로 사람의 근성이니 말일세. 그러니 본인은 귀하들의 잇몸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줄 용의가 있어.』

홀로그램 저편에서 백작이 쪽, 손가락을 빨았다.

감자칩 부스러기의 단짠맛을 즐기는 얼굴이었다.

『사왕. 미안하네만 거기 떨어지자마자 클리어를 인정해주겠단 약속은 취소하겠네.』

백작은 고양이보다 더 고양이 같은 미소를 지은 채 정면을, 내가 서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내 개인의 욕심뿐만 아니라 탑 전체의 이익을 위해 내린 결단이니 부디 이해해주길 빌지. [싱글벙글 고양이 상회]를 복속시킴으로 써 우리 탑이 얻을 이득에 관해서는 굳이 해설할 필요조차 없으리라 믿네.』

어어.

『자네는 어쩌면 적당히 깽판을 치고 상쾌해지길 원할지 모르겠네만 내 생각은 조금 다름세. 이번 기회에 혼쭐을 내주고 싶군. 물론 자네는 나의 친구이니 내 개인적 원한에 관하여서도 깊은 관심과 애정을 표해주리라 믿네. 뭐, 솔직히 관심과 애정이 없어도 상관없네. 어차피 그대가 거기서 영원토록 썩을 건지 말 건지 결정하는 사람은 본인 아니던가? 썩기 싫으면 협조하게.』

이 고양이가….

『어차피 협조할 거라면 신나게 협조하게나. 그거야말로 자네의 특기 아닌가? 항구도시에서 그대가 펼친 또라이짓은 잘 보았네. 하지만 나는 자네의 또라이가 강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 세계에 기세를 떨칠 또라이임을 확신해. 모쪼록 내가 ‘만족스러운 협상’을 이뤄낼 때까지 그대는 그대가 해오던 짓을 앞으로도 계속 해주면 좋겠군.』

홀로그램 너머의 홀로그램에선 고양이들이 그랜절을 박고 있었다. 알록달록 고양이들이 덜덜 떨었다.

『말하지 않았는가. 자네는 좋은 친구라고.』

백작은 아무렇지도 않게 싱긋 미소를 지었다.

『우리의 우정이 반만년이 지나도록 타의 모범이 되는 역사로 길이길이 전해지도록 노력하세.』

고양이들이 냐오오옹,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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