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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자살헌터-348화 (348/400)

348화.  < 만월항해(滿月航海)편. (5) >

5.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하게 되었냐면, 어. 친구가 나보고 계속 해오던 대로 하래잖아? 까짓거 우정을 걸고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다.

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느냐 묻는다면.

“저희의 참패를 인정합니다……."

세계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며 도시의 시장들을 무릎 꿇리고 있다.

“여기, 조공품으로 공물을 올리오니 부디 자비롭게 저희 도시를 굽어 살펴주소서……."

백 명의 시민이 나한테 동시에 거래를 걸었다. 거래 품목? 별거 없다. 나는 향후 6개월 동안 다시는 이 도시에 들리지 않고 그 대가로 시민들은 큰절을 바친다.

[항구도시 바타란이 당신에게 패배를 인정합니다.]

[이로써 당신은 6곳의 도시를 무릎 꿇린 거상이 되었습니다.]

[도시 시민들은 이번 거래에 매우 불만족합니다!]

[당신은 이번 거래에 매우 만족합니다.]

[이번에도 당신 혼자만 굉장한 이득을 보았습니다.]

나라는 이레귤러로 인하여 금천세계는 파탄이 나고 있었다.

비유하자면 일종의 기근.

내가 당도한 도시는 어김없이 시민들의 비밀이 폭로당한다. 견딜 수 없어진 시민들은 무조건적으로 항복하게 되며, 그로써 처절한 굶주림을 느낀다. 요컨대 도시에 흉년(凶年)이 들어버리는 거다.

[‘금화를 문 고양이’는 제발 멈춰달라고 비명을 지릅니다!]

졸지에 움직이는 1인 흉년이 떨어지자 [금화를 문 고양이]는 점점 더 궁지에 몰렸다.

벌써 6곳이나 되는 항구 도시가 함락당했다. 나를 막을 수 있는 존재 따윈 애석하게도 전무했다.

나한테 현상금이 내걸려 싸움 좀 할 줄 아는 작자들이 무더기로 덤빈 적이 있었다. 일곱 명으로 이루어진 용병들은 전원 호랑이 가죽 망토를 휘날렸다.

[중소 규모 상단 '싸움 좀 할 줄 아는 작자들'이 거래를 신청합니다.]

[1. 지금부터 30분간 서로 물리적 충격을 주고 받는 것에 양자가 동의한다.]

[2. 30분 후, 총 결산을 시행한다.]

[3. 결산 시행 시, 상대로부터 받은 물리적 충격의 양을 손해로 규정한다.]

[4. 상대에게 준 물리적 충격의 양을 이득으로 규정한다…….]

이곳은 금천세계. 싸움박질을 하기 위해서도 상호 동의가 필요하며, 그것을 규정하는 계약이 필요한 것이다.

결과?

굳이 말할 필요조차 있을까? 내 말은, 홀로그램 너머에서 상신은 여전히 눈물을 줄줄 흘렸으며 백작은 변함없이 감자칩을 깨작였다. 이보다 승패가 명확히 갈린 광경이 또 있으랴.

『여섯 번째 도시도 무난히 함락했구만. 경사일세.』

『냐옹…… 야아옹…….』

『이제 저 세계에 남은 도시가 몇이나 되는가? 일곱? 여섯? 설령 육백 개가 남았다 해도 시간 문제에 불과하다네.』

참고로 지금 이루어지는 대화는 녹화본이 아니라 실시간 영상이었다. 내가 도시를 하나 휩쓸 때마다 백작은 상신한테 거래를 걸어 ‘무언가’를 뜯어냈다. 이 실시간 대화 역시 약탈의 산물.

우리 탑의 경제 담당자께선 참 알뜰살뜰하시구나….

『슬슬 완패를 인정하시게. 여기서 더 발악해본들 자네의 천국이 망가질 뿐이야. 지금은 그래도 사왕이 자비를 베풀어 큰절만 받고 물러난다지만, 앞으로는 어찌 될지 나도 모르네.』

『도대체 저희가 당신들한테 무슨 잘못을 했습니냐!?』

고양이들이 분통을 터트렸다.

『저희는 그저 조그맣게 생업을 이어나갔을 뿐입니다! 냐! 이건 거대 성좌의 횡포이고 폭력입니다! 가만 있지 않겠습니다! 냐아! 정식으로 항의할 겁니다!』

『뭘 잘못했느냐고? 우선 내가 스킬을 하루에 정해진 횟수 이상으로 사용하면 머리에 고양이 귀가 돋아나는 패널티를 부여했군.』

『뭐가 문제임까! 고양이 귀! 귀엽지 않슴까!』

『또한 일정 횟수 이상으로 만물상점을 이용하면 고양이 꼬리가 생겨나는 패널티도 있었고 말일세.』

『고양이 꼬리는 인체학적으로나 진화론적으로나 완벽한 곡선을 자랑합니다! 이런 신의 산물을 뭣도 아닌 인간종한테까지 맛볼 기회를 줬다는 점에서 오히려 감사받아야 마땅함다!』

『세계평화라는 이름의 상품을 구매했더니 본인을 엿먹이지 않았나.』

『에이, 다 자란 어른이 진지하게 세계평화 같은 상품을 구매했다는 것부터 많이 깹니다. 철 좀 들어보라는 의미에서 문구를 넣었을 뿐이지 큰 의미는 없슴다. 냐. 그것도 경험이고 배움 아니겠습니까?』

고양이들이 열심히 양팔을 흔들며 호응했다.

『옳소!』

『맞는 말이다냐!』

『백작인지 백수인지 뭐가 고객이냐! 웃기지도 않는다! 우리야말로 스승이다!』

『감사해! 어서 우리의 존재에 감사해! 머리를 꿇고 스킬을 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 패널티를 부과해줘서 감사하다고 절해라! 절이다! 진심을 담아 큰절을 바쳐라!』

『고양이에게도 자존심이 있다!』

『냐! 냐! 냐!』

백작은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내가 왜 이 쌍냥이들을 조지려는 건지 충분히 이해했으리라 믿네, 김공자.』

친구야.

너 정말로 쌓인 게 많아 보인다….

"흠."

어느덧 밤이었다.

나는 일곱 번째 도시를 함락시키고 나서 지도를 펼쳤다.

이대로 백작이 말한 계획에 따라 수십 수백 개의 도시를 모조리 굴복시키는 거야 쉽다.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지 어려운 업적은 아니지.

다만.

“이상하네요.”

홀로그램 저편에서 백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말인가?』

“금화를 문 고양이……. 그러니까 상신이 안 보여서요. 제가 막 움직이는 거 같아도 계속해서 대도시들로 가고 있거든요? 방금 함락 시킨 일곱 번째 도시, 여섯 번째 항구가 이 세계에서 제일 번성한 도시였어요.”

금천세계엔 항구도시밖에 없다.

교역이 이루어지기 편하도록 일부러 이렇게 만들어진 것인지, 세계의 대부분이 물이다. 바다다. 자잘한 군도(群島)가 몰려 있고 해안선마다 마을과 도시가 들어서 있다.

내륙 같은 건 없다. 산은 있지만, 산에 마을이 놓이진 않는다. 어떠한 예외도 없이 [사람들이 사는 장소는 전부 바다에 접한 것]이다.

“전 제일 큰 도시에 가면 상신이 보일 줄 알았어요.”

『보인다? 보인다니?』

“말 그대로 눈에 보일 거라는 뜻입니다. 지난번 스테이지의 주인은 나무였거든요. 도시 하나를 덮고도 남을 세계수요. 천국이라면, 어디서나 신이 보여야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흐음….』

백작은 의아하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본 적 없으며,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거라는 기색이 눈썹과 눈썹 사이에 분명히 서려 있었다.

『신기한 발상이로군.』

“예, 뭐. 그래서 제일 큰 도시라면 상신의 본거지가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근데 아무리 샅샅이 뒤져도 없어요. 참, 이상하단 말이지.”

『지난번 스테이지가 특별한 것 아니었겠나? 신도 신 나름일세. 이것들은 아무도 모르는 멀리에다 아지트를 지어놓은 다음 낄낄거리며 인간들끼리 망하는 꼴을 구경하고 있을 거네.』

“그럴까요.”

『틀림없네, 틀림없어.』

나는 홀로그램을 슬쩍 쳐다봤다.

『뭐, 뭘 꼬라보냐!?』

고양이들이 움찔거렸다.

『그런다고 무서워할 줄 아냐? 우린 너 같은 거 하나도 두렵지 않다냐!』

『진짜다! 우리가 그랜절 박고 저자세로 나갈 때 협상에 응하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 거다! 아아, 그때 그냥 얌전히 좋은 조건 받아서 끝낼걸 하고 말이다!』

『이미 엎어진 배임다! 국물도 없슴다!』

『국물도 없다! 국물도 없다! 국물도 없다!』

그 연호는 과연 어떨까 싶은데….

일단 겉모습은 고양이지만 저래 봬도 성좌다. 70층 권역을 다스릴 정도로 강력한 성좌. 혹시 고양이들이 표정을 관리하지 못해 티를 낼까 싶어 살펴봤는데, 역시나 그런 기초적인 실수는 없었다.

"......."

나는 찬찬히 주변을 둘러봤다. 쏴아아아. 부둣가에 접한 파도가 물결쳤다.

그러고 보면, 이 스테이지에 가장 처음 떨어졌을 때도 부둣가에 있었다. 비록 그때 나는 바다 쪽보다 길거리로 시선을 돌렸었지만. [모든 마을이 항구다]. 여기에 어떤 단서가 숨어 있지는 않을까?

“금화를 문 고양이. 금화를 문 고양이라. 금화(金貨)……."

고민에 잠겨 해변을 서성거리는데, 문득, 밤하늘에 떠오른 달이 보였다.

보름달이었다.

"......."

뇌리에 어떤 생각이 스쳤다.

나는 자칫 표정에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백작에게 말했다.

“니샤.”

『음? 자네가 내 본명을 부르는 건 처음이로군. 하긴, 파트리시아와는 진즉에 본명으로 부르는 사이가 됐다던가. 좀 늦은 감이 있을 정도일세. 이로써 자네는 파트리시아와 나를 본명으로 부르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네. 보통 나와 친한 사람은 파트리시아를 극혐하고 파트리시아와 친한 사람은 나를 경멸하는데, 자네는 참 특이해.』

“굉장한 영광이고요. 아무튼 니샤. 그쪽에선 지금 영화 관람하는 것처럼 저를 보고 있잖아요. 혹시 그거, [되돌려보기]도 가능합니까?”

『흐음? 글쎄. 아마 가능하지 않겠는가?』

백작이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두런두런. 내 쪽에선 홀로그램으로 잡히지 않은 사각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뭐. 당연히 [태고의 지팡이]랑 상담하는 거겠지.

얼마 안 가서 백작은 나를 돌아봤다.

『된다는군.』

“그럼 좀 번거롭겠지만 어젯밤이랑 그저께밤, 사흘 전이랑 나흘 전의 밤하늘 좀 봐줄래요?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감자칩을 씹는 것보단 생산적인 일로 들리는구먼. 좋네.』

백작이 부채를 들어서 슥슥 움직였다. 백작의 눈동자가 허공을 훑었다.

내 눈엔 안 보여도 백작에겐 지금 며칠 분량의 영상들이 비추는 거다.

“보고 계십니까?”

『다 띄워놓고 있네.』

“달을 확인해주세요.”

움찔.

고양이들이 일제히 내 쪽을 돌아봤다.

하지만 늦었다. 이제 표정을 관리할 필요가 없어진 나는 곧바로 말했다.

“달의 모양에 변화가 있나요?”

『........』

“혹시, 전혀 아무런 변화 없이 계속 보름달이진 않습니까?”

백작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미동조차 없군. 깨끗한 보름달일세.』

그러면 그렇지.

『냐옹! 생각해보면 지금 협상도 나쁠 거 같지 않다냐……!』

『무조건적인 항복에도 사실 잘 생각해보면 조건이 있지 않겠냐?』

『고객님! 이제부터 항복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겠슴다!』

고양이들이 허둥지둥거리기 시작했다. 백작은 영문을 알지 못해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나 나는 일절 신경 쓰지 않은 채 안력을 강화했다. 오러 주입. 인체의 한계를 뛰어넘은 시력으로 보름달을 올려보았다.

‘아무것도 없군.’

아쉽게도 달의 표면에선 무언가를 발견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진짜 달도 아니었다. 지구의 달과 다르게 이곳의 달은 표면이 깨끗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구체조차 아니라 평면이었다. 그저 달의 형상을 갖춘 무언가에 불과했다.

‘저기는 아지트가 아니다. 고양이들이 없어. 그렇다면…….'

나는 재빨리 주위를 훑었다.

나의 추론에 따르면,

1. 천국에는 천국을 다스리는 성좌가 있다.

2. 영혼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 성좌를 느낄 수 있고 볼 수 있다.

3. 이곳의 영혼들은 무조건 바다에 인접해서 산다.

4. 따라서, 성좌는 아마도 바다에 기거하고 있을 것이다.

만일 바다 그 자체가 성좌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73층의 성좌는 [고양이]다. [바다]가 아니다. 하물며 바다와 연관된 생물도 아니다.

혹시 심해에 사는 걸까? 바닷속 깊은 곳에 심해 기지를 건설했거나, 아니면 잠수함을 타고 다니는 것인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엔 영혼들이 언제나 성좌를 느끼거나 바라볼 수가 없다.

‘바닷가에서 쳐다보기만 하면 간단히 볼 수 있는 신.’

쏴아아아.

바다에서 물결이 쳤다.

‘심해도 아니고, 어딘가의 원해도 아니야.’

어두운 밤바다.

새까만 수면의 한복판에, 환히.

‘그저 사람이 사는 바닷마을이면 누구나 쉽게 보이는 것.’

만월(滿月).

밤하늘의 달이 하얗게 반사되고 있었다.

마치, 동그란 금화처럼.

"----과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찾았다.”

그리고 주저 없이 바다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첨벙, 잔물결이 일었다. 물결은 잔잔한 수준에서 더 거세지지 않았다. 첨벙. 첨벙! 나는 수면을 디뎌 보름달이 비친 지점으로 달려갔다.

『냐아아아아?!』

고양이들이 합창을 내질렀다.

『안 됨다! 안 됨다! 잠깐, 거래! 거래를 하자!』

『고객님! 백작님! VIP 손님! 앞으로 영원토록 모든 품목에 50% 할인을 해드릴게요! 이거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저희의 항복을 받아 주시면 안 될까요!?』

『60프로! 70프로! 80프로!』

『90퍼센트까지 할인해드릴 테니 제발 고객님 친구 좀 막아주세……!』

금화가 비친 수면을 향해 힘껏 다이빙하자, 놀랍게도 내 얼굴과 몸을 맞이한 것은 차가운 바닷물이 아니었다.

수면에서만 잠깐 물의 감촉이 느껴졌을 뿐.

곧이어 물 속과는 명확히 다른 중력이 나를 붙잡았다.

“와, 와, 왔다냐아아아아!?”

나는 탓, 지면에 착지했다.

바닷속 용궁 같은 건 없었다. 수면에 비친 달은 일종의 포탈이자 성문이었다. 수면의 달을 지나치면 그곳이 바로 상신이 군림하는 거처. [금화]는 [만월]이었으며, [금화를 문 고양이]는 곧 [만월에 사는 고양이]였다.

“비상사태! 비상사태!”

“어쩌면 좋냐……?”

“쪼, 쫄지 마라냐!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이제 전부 끝장임다!”

새하얀 공간에 고양이들이 모였다. 고양이들은 서로 바싹 붙은 채 오들오들 바들바들 떨었다. 알록달록 색색들이 고양이들이 서로 모여 덜덜 떠는 모습이란, 음, 심금을 울리는 구석이 없잖아 있었다.

"음."

나는 방긋 웃었다. 이래 봬도 난 우리 탑의 대표 또라이로 방문하게 됐다.

“안녕하십니까, 형제님들.”

그리고 또라이에겐 또라이만이 갖추어야 하는 양식미란 게 있는 법이다.

"혹시 도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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