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그러니까, 이 모든 사태의 시작으로 다시 돌아가면 이러했다.
“그러니까, 파티를 열고 싶다고?”
르네는 키릴을 몰래 방으로 불러, 대화를 시작했다.
혹시나 동생이 정신을 차리고 반성이라도 한 건가, 기대한 키릴은 혀를 찼다.
아직 정신 못 차렸군.
“그래. 되도록이면 빨리, 가장 성대하게.”
“너 진짜 정신 공작저에 두고 왔냐?”
키릴은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르네는 변하다 못해 정신이 나간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시기에 파티를 열고 싶어 할 리가 없었다.
“야. 암만 네가 미쳤다지만, 이 시기에 파티는 좀 아니지.”
“왜? 내가 사람 죽인 것도 아닌데?”
“직접 칼로 찌른 게 아니어도 죽인 건 죽인 거지.”
“아니야.”
“뭐?”
“내가 죽인 거, 아니라고.”
“하지만 리안이 유서에….”
“그거 조작된 거야.”
르네는 찻잔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누가 그런 걸 조작해?”
“진짜 걔를 죽인 진범이 조작한 거겠지.”
“내가 어지간하면 너를 도와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하면 나도-”
“이 일기장, 읽어 봐.”
그녀는 키릴에게 일기장을 건넸다. 그리고 키릴이 그걸 다 읽을 때까지 차나 홀짝였다. 키릴은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읽어 내려갔다. 르네는 조금 긴장했다.
키릴에게 일기장을 보여 주는 건, 모험이었다. 만약 이걸 보고도 믿지 않으면, 때려서라도 설득할 생각이었다.
원래 말이 안 통하면 주먹으로 하랬어.
“…이거, 진짜야?”
“그래. 다 진짜야.”
하지만 키릴이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 건지, 그의 얼굴은 어두워져 있었다. 일기장의 내용을 믿으려고 노력하는 눈치였다.
“이게 진짜 사실이라면, 왜 여태까지 우리한테 말을 안 했어?”
“말했어도 믿었을까?”
“당연히…!”
키릴은 거기까지 말하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아마 믿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계속 그래 왔으니까.
키릴이 르네를 믿기로 결정한 건- 얼마 되지 않는 일이었다. 심지어 지금도 완전히 다 믿는 건 아니었다.
르네가 무언가 바뀌었다는 것 정도만 믿는 것이었지, 그간 르네가 저지른 악행까지 부정하는 건 아니었다.
“형은 널 싫어하지만 그래도 마키어스라는 이름 때문에 결국 너를 어떻게 하진 못했지. 아버지는 애초에 너를 포기하셨고.”
키릴은 일기장을 꽉 쥐며 말했다. 르네는 묵묵히 그의 말을 들어 주었다.
“하지만 나는 형이나 아버지와는 달라. 나는 날 배신한 사람이 내 여동생이든, 마키어스든 간에 아무런 상관도 없어. 나는 절대로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키릴.”
르네는 구겨질 대로 구겨진 키릴의 얼굴을 보았다.
이 세계는 참, 어린애들까지 이렇게 불신의 늪으로 몰아넣었구나.
“그렇게 무게 잡아도, 별로 안 무서워.”
“너!”
키릴은 발끈할 대로 발끈해, 벌떡 일어섰다. 그의 얼굴은 치욕으로 붉어져 있었다.
하지만 르네는 하하 웃어 대며 그의 어깨를 꾹 눌러 다시 앉혔다. 에휴, 어린이.
“뭐 이렇게 힘이 세? 너 내가-”
“미안해, 놀려서. 그리고, 고마워.”
그제야 욕을 멈추지 않던 키릴의 입이 다물어졌다.
르네는 그의 어깨를 맞춰 주며, 말을 이었다.
“아직 다 믿기 힘든 거 알아. 그래서 파티를 열어 달라는 거야. 내 말을 증명할 수 있게.”
“야,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래? 네가 말하는 규모의 파티는 아버지나 형만 열 수 있잖아. 나는 고작해야 티파티나 작은 모임 정도라고.”
“왜?”
“왜냐니?”
“너나 나도 공작가 사람인데, 왜 안 되냐고.”
“그거야….”
키릴은 우물쭈물거렸다.
그거야, ‘아버지가 우리보단 형을 훨씬 아끼시니까.’ 정도가 진실된 대답이겠지만,
인정하기 싫었다.
키릴은 자신의 형을 인정하는 게 죽기보다 더 싫었다.
“그리고 형도 마음대로 열 수 있는 건 아냐. 아버지는 돈 낭비 싫어하셔. 그래서 형도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에 드는 경사가 있을 때나 그런 파티를 열 수 있었던 거고.”
르네는 키릴에게 열고 싶은 파티의 규모를 설명했다. 수도에 있는 모든 귀족들을 부르고, 기왕이면 지방 영주들까지 싹 다.
이름 좀 있으면 기사들도. 황족에게도 초대장을 전부 돌리는.
거의 이건 소공작의 생일 연회쯤 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키릴아.”
“왜.”
“너 솔직히 안테 싫어하지?”
“….”
르네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키릴의 옆구리를 찔렀다. 키릴은 속내를 들켜 당황하면서도 고개는 빳빳이 들었다.
“찌르지 마!”
“내가 그 안테 놈, 혼내 줄게.”
[키릴 마키어스의 호감도가 10 상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