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세상에, 제 눈이 잘못된 건 아니겠죠?”
“저 두 사람이 춤을 추고 있다니요!”
“원수 사이가 아니었었나요?”
황태자와 마키어스의 수치가 춤을 추고 있다!
순식간에 파티장의 분위기가 시끄러워졌다.
그러나, 유일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세딘 안시라드였다.
그런 그에게 키릴이 다가갔다.
“아주 뚫어지겠습니다, 경. 제 동생에게 관심이라도 있으신지?”
그 말에, 세딘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아, 말실수였나?
키릴이 빠르게 수습했다.
“농담입니다, 농담.”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에 들어섰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세딘은 적당히 인사부터 건넸다.
“에이. 뭐 제가 한 것도 아닌데요.”
“…네?”
“르네가 아무 말도 안 해요?”
“그러니까, 영애께서 공자를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으로 올렸다는 말씀이십니까?”
“뭐… 대충은.”
키릴은 어색하게 웃으며 샴페인 병째로 들이켰다. 그때, 사람들이 한둘씩 그에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키릴 공자! 잠깐 저와 얘기 좀….”
“무슨 말이야, 공자께선 나와 먼저….”
“자자. 잠시만. 줄 좀 서 주시겠습니까.”
키릴은 안색이 파래져선, 몰려오는 사람들을 피해 도망갔다. 세딘은 홀로 남겨진 채로, 르네 쪽을 보았다.
소드 익스퍼트 중급을 최상급으로 올리는 비법이라니. 그런 비법이 있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귀족들이 전부 몰려오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귀족들만 몰려올까. 온 대륙에서 전부 몰려올 게 틀림없었다.
르네가 감당하지 못할 거라는 건 아니었지만….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거짓이어도 문제가 되고, 진실이어도 문제가 될 텐데.’
어떻게 처리하실까. 그는 의문을 품은 채 흐르는 샴페인을 닦았다.
“파티는 잘 즐기고 있어?”
르네는 멀리서 손님들을 하나하나 맞이하다가, 다시 세딘에게 돌아왔다.
“영애.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래?”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정말로 그런 비법 같은 게 존재하는 겁니까?”
르네는 세딘의 발치에 떨어져 있는 샴페인 조각을 구두로 밟았다. 그 조각이 사방으로 튀며, 파열음을 냈다.
“너도 그게 궁금했니?”
어쩐지 르네의 질문에 비웃음이 들어 있는 것만 같아, 세딘은 얼굴을 붉혔다.
“이제부터 알게 될 거야. 진짜로 존재하는지.”
그러나 르네는 비웃음을 담아서 말한 게 아니었다. 그녀는 씁쓸함을 담아 말한 것이었다.
“영애.”
세딘은 르네의 옆에 서려 했지만, 먼저 선수를 치는 사람이 있었다.
“오늘은 양보 좀 해 주겠나, 안시라드 경.”
“….”
이시르는 세딘을 가볍게 밀어내고, 자신이 르네의 옆에 섰다.
세딘은 차마 이시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영애께는 한낱 기사보다는… 황태자가 더 잘 어울리겠지.’
세딘은 처음으로 작위를 받는 것을 거절한 걸 후회했다.
이시르는 의기양양하게 세딘을 돌아봐 주곤, 르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뭐예요? 손 안 치워요?”
“우리의 작전을 위해서야.”
“어이가 없군. 손가락 다섯 개 다 부러트리기 전에 치워 줘요.”
르네는 어느새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이시르를 발견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굳이 더 내색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정말 작전이 시작될 차례였으니까.
‘내가 진짜 조금만 참아 준다.’
그녀는 샴페인 잔을 티스푼으로 두드려,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그럴 필요도 없었다.
르네의 어깨 위에 이시르의 손이 올라간 순간부터, 모두가 두 사람만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인정하긴 싫지만, 효과가 있긴 있네.’
르네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이시르를 노려봐 주었다.
이 능구렁이 같은 자식.
그리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여기까지 오신 이유에 대해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너희들을 부른 이유에 대해서도요.
“아마 다들 제 오라버니, 키릴의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 진입을 축하해 주시러 온 거겠죠. 그러니 저는 먼저 키릴에게 한 잔을 바치고 싶네요.”
르네는 키릴에게 윙크를 한 후에, 잔을 들어 보였다.
키릴은 억지웃음으로 화답해 주곤, 고개를 숙였다.
“오늘 다들 제게 궁금한 게 많으시더군요. 특히나 어떻게 키릴이 소드 익스퍼트 중급에서 최상급으로, 두 단계나 올라갔는지에 대해서요.”
그녀는 키릴과 세딘 쪽을 한 번 돌아봐 주곤, 다시 말을 이었다.
“항간에서는 제가 바로 그 비법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녀는 사실 지금 기분이 최악이었다.
아무리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게 당연하다지만, 리안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수가 있을까.
‘그동안 르네를 비난한 것도, 진짜로 리안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비난하고 싶은 사람이 필요해서였겠지.’
르네가 약하니까. 어떻게든 짓밟으려고. 그녀는 발밑에 있는 유리 조각을 흘깃, 보았다.
르네는 말하자면 이런 유리 조각이었다. 투명하고 예쁘지만, 또 쉽게 부서지는.
“그 소문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그냥 짓밟히지 않고, 이렇게 위험한 잔재를 남기는 법이지.
“정말 그게 사실이었다고?”
“하지만 그런 게 있을 리가….”
“거짓말이겠죠!”
그녀의 말에 점점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르네는 한참이나 말을 잇지 않으며, 그 파장을 즐기고 있었다. 보다 못한 누군가가 대놓고 그녀에게 물어보기 전까진.
“그럼, 그 비법을 좀 저희에게도 공유해 주시죠.”
“글쎄요. 제가 왜 그래야 하죠?”
“…!”
그녀의 단호한 거절은 아까보다 훨씬 더 큰 소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 비법을 제가 아무에게나 공유할 순 없죠. 그렇지 않나요? 무려 ‘최상급’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인데요.”
“분명 마키어스 영애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무에게나 공유할 수 없다는 데엔 동의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어떻게 믿을지부터 얘기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키릴에게 속성으로 배운 바에 의하면, 이 세계에서 최상급은 정말 엄청난 경지라고 했다.
평민이라면 단숨에 귀족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 정도로.
‘근데 그럼 왜 세딘은 여태 기사야? 걘 소드 마스터잖아.’
‘원래는 제국 측에서도 후작 작위를 주고 싶다고 했었어. 안시라드 경은 스스로 선택한 거야. 기사로 남겠다고. 그것도 방랑 기사로.’
‘뭐? 왜?’
르네의 입장에서는 왜 굴러 들어온 복을 차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그녀도 명예욕 같은 건 없었지만, 그래도 준다는 걸 거절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건 나도 모르지. 네가 직접 물어봐.’
‘그럴 생각이었어.’
보면 볼수록 이상한 애란 말이지. 르네는 그녀만 쳐다보는 세딘을 애써 무시했다. 그리고 이시르를 잡아당겨, 자신의 옆에 세웠다.
“영애…?”
“전하께서 증명해 줄 거예요. 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그 말에 잠깐 정적이 휘몰아쳤다. 그러나 그 정적은 폭풍의 전조였다. 누군가가 침묵을 깨자마자 사람들은 벌떼처럼 이시르에게 몰려왔다.
“전하, 그 말이 사실입니까?”
“그럼 전하께서도 마키어스 영애 덕분에 소드마스터가 된 건가요?”
“그 비법이 대체 뭐죠?”
“직접 보셨나요?”
이시르는 여유롭게 그들에게 하나하나 웃어 주며 대처했다. 사람들을 대하는 데에는 이골이 난 르네조차도 감탄할 정도였다.
“자, 이제 전하를 너무 귀찮게 하지 마시고, 제게 다시 집중해 주세요. 제가 그 비법을 아예 숨기겠다는 건 아니에요. 소수의 분들께는 살짝 공유할 용의가 있거든요. 단.”
그녀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뜸을 들였다. 이시르와 눈을 마주쳐 주는 건, 보너스였다.
“단…?”
“제 조건을 들어줄 준비가 되신 분들만 받아들이겠습니다.”
“그 조건이 뭐죠?”
“진실.”
르네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진실.
그 말만큼 서늘하고 무서운 것이 있을까. 그녀는 진실처럼 웃었다.
“제게 진실을 말할 준비가 된 사람만, 오세요. 그럼 제가 책임지고 그 대가를 치러 드리죠.”
사람들은 르네의 말을 믿어야 할지 긴가민가하며, 어쩔 수 없이 물러섰다. 그러던 와중에, 그 어수선한 분위기 속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저런, 마키어스 영애. 또 거짓말인가요?”
걸려들었다.
르네는 목소리의 주인공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르네가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었던, 하지만 절대로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다.
탈리아 키프로스.
‘일기장에 무려 다섯 번이나 나왔어. 그것도 대부분 르네를 자극하거나, 부추긴 사람으로.’
무슨 속셈으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꽤 영리한 애야. 그녀는 잠자코 탈리아가 하는 모양을 보고 있었다.
“입만 열면 거짓말, 또 거짓말. 그게 마키어스 영애가 아니던가요? 왜 다들 이렇게나 쉽게 속으시죠?”
탈리아의 말에, 이시르와 르네에게 달려들던 사람들이 멋쩍게 돌아서기 시작했다.
그제야 다들 그간의 르네의 행적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전하께서도 어떻게 또 마키어스 영애께 속으신 건진 모르겠지만, 다들 좀 그만 속아 주셔요.”
“제가 언제 거짓말을 했다고 하는 건가요, 키프로스 영애?”
“리안 영애의 죽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더니, 사실은 엄청난 상관이 있었잖아요. 유서에 언급될 정도로.”
처음으로 파티에서 리안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그 이름에 순식간에 수군거림마저 얼어붙었다.
“이상하네요. 저는 상관없다고 한 적 없는데.”
“…네?”
“제가 계속 그랬잖아요. 암살자 보낸 사람 나라고. 키프로스 영애가 그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옮기셨으니 기억하실 텐데요. 아닌가요?”
탈리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로 그녀가 옮긴 게 맞았으니까.
사람들은 그제야 흥미로운 기색을 내비치며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동안은 르네가 일방적으로 당해서 재미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꽤 선전을 하고 있는 게 신기해서였다.
“그건 예전이고, 이번에 진짜 죽음은 관련 없다고…!”
“직접 들었어요? 제가 제 입으로 그렇게 주장한 걸, 직접 들으셨나요?”
“….”
당연히 아니었겠지. 르네는 리안이 죽자마자 바로 지하 감옥에 갇혔는데 어떻게 들었겠어.
“궁금해지네요. 그럼 대체 언제 그 말을 들으셨을까? 제가 리안의 죽음에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 것을?”
당연히 예전에 들었겠지. 르네가 사실 그 수많은 암살 시도는 내가 한 게 아니라고 리안에게 고백하는 그 순간에 들었겠지.
그것도 몰래.
“…제가 뭔가 착오가 있었나 보네요.”
“아뇨. 착오가 아닐걸요. 키프로스 영애는 머리가 아주 좋은 사람이니까 그런 걸 헷갈리진 않았을 거예요. 그쵸? 직접 들은 거죠. 제가 리안의 죽음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말하는 그 순간을.”
“착오예요. 그 점은 여러분께 죄송해요. 제가 잠시 헷갈렸나 봐요.”
탈리아는 다시 평정심을 되찾았는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그리고 애교 있게 주변 사람들에게 사과까지 했다.
정작 사과받아야 할 사람은 르네였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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