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이제 와서, 후작위를 달라?”
이시르는 조소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충실한 충견이라고 믿었던 세딘이, 사실은 그의 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개였으니까.
그것도 ‘르네 마키어스’의 개.
“…원래 제게 주실 것이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자네가 거절했지. 그건 잊었나?”
세딘은 묵묵히 시선을 내리깐 채 서 있었다. 이시르는 약혼반지가 끼워져 있는 왼손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마치, 세딘에게 보라는 듯이.
그건 명백한 도발이었다.
“아직 약혼을 하신 건 아니실 텐데요.”
“하지만 모두가 약혼했다고 생각하지. 그게 중요한 거 아닌가?”
“아닙니다만.”
세딘은 그 도발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만약 주실 수 없으시다면 다른 제국에 부탁하겠습니다.”
“하!”
이시르는 짧게 숨을 내뱉었다. 그도 왜 세딘이 이제 와서 후작위를 달라고 하는 건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한 번 소중한 걸 빼앗겨 보니, 지위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깨달았다 이건가?’
고작 방랑 기사가 제국의 황태자에게 대들 순 없어도, 후작은 이를 드러낼 순 있다 이거겠지.
그 속셈이 너무 뻔히 보여, 작위를 주기가 싫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세딘은 대륙에 얼마 없는 소드 마스터였으니까.
만약 그가 다른 제국으로 귀화한다면 부황은 이시르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황위 계승 전쟁에서 밀릴 게 불 보듯 뻔했다.
‘이딘 그 애가 그 기회를 놓칠 리가 없지.’
그렇다고 이대로 순순히 작위를 주자니,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질 않았다.
결국 이시르는 입을 뗐다.
“조건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얼마 전부터 북쪽 변경에 수상한 움직임이 보인다는 보고가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수상한 움직임이라 함은?”
이시르는 서류 더미에서, 보고서 한 장을 찾아내 세딘에게 건넸다.
“몬스터의 수가 급증하고 있고, 전염병과 기근이 생기고 있다는 변경백의 보고서이다. 이걸 본다면 대충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흑마법입니까?”
“아마도.”
“그럼 한낱 검사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신전이 끼어들어야 하는 일 같습니다만.”
세딘의 조곤조곤한 항의에, 이시르는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알고 있다. 하지만 신전 측에서 워낙 겁이 많으셔서 말이지. 자네가 그들과 동행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고 왔으면 좋겠는데.”
“이 일만 끝나면, 바로 작위를 주시겠다 약조하시는 겁니까.”
“그래.”
단, 그 일이 끝났을 때 네가 원하던 사람은 내 손에 들어와 있겠지만.
이시르는 속내를 완벽하게 감추며 손을 내밀었다. 세딘은 마뜩잖다는 얼굴로, 그 손을 마주 잡아 악수했다.
“준비를 끝내면,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래야 할 거야. 겨울이 오고 있으니.”
세딘은 대답 대신에 간단한 목례만 하고 떠나려 했다. 하지만 문을 나서기 직전, 이시르가 그를 멈춰 세웠다.
“르네 마키어스가 자네에게 그렇게 큰 의미였나?”
“…어떤 대답을 바라시는 겁니까?”
“솔직한 대답.”
세딘은 뒤돌아보지 않은 채로 문만을 응시했다. 큰 의미냐고.
그는 르네를 떠올렸다.
그녀는 그에게 큰 의미일까.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생각보다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오는 그 사람은 세딘에게 큰 의미일까.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왜?”
“다만, 전하께 그 분이 갖는 의미보다는 크리라고 생각합니다.”
달칵.
세딘은 이시르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집무실을 나가 버렸다.
이시르는 잠깐 세딘의 대답을 곱씹다가,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래. 세딘이 옳긴 했다.
별 의미도 없는 사람이었다. 거짓된 애정을 연기하는 게 처음인 것도 아니었다.
황위를 위해서라면 르네가 아니라 누구와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이렇게 거슬릴까.
다른 사람의 것인 반지를 낀 그 손은 왜,
거슬리지 않았을까.
***
[퀘스트 창]
<메인 퀘스트- 적응2>
당신은 이제 람디샤 제국의 황태자, 이시르 폰 람디샤의 연인(?)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당신과 이시르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도사리고 있다. 완벽하게 명예를 회복하고, 이시르를 지키시오.
클리어 조건: 명성 수치 0 도달.
클리어 보상: 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