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어떤 증거이지?”
이딘의 말에, 르네는 <파도와 치유의 왕>이 발견한 흔적을 보여 주었다. 그러자, 이딘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 이유는-
“이게… 무엇이지?”
그게, 뼈였기 때문이었다.
“사슴의 뼈입니다.”
“사슴의 뼈 같은 게 어떻게 증거가 된다는 말인가?”
“이 뼈에는 강력한 성력이 느껴지거든요.”
르네는 뼈의 일부를 빠르게 맞춰, 사슴의 뒷다리 모양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무릎 부분을 가리켰다.
“이 부분이 보이십니까?”
“사슴의 무릎으로 보이는군. 하지만 전혀 이상한 부분은 느껴지지 않는데.”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이 사슴은 덫에 걸려 무릎이 완전히 박살 났던 사슴이거든요.”
“…무릎이 박살 났었다고?”
이딘은 그 뼈를 만지며, 읊조렸다.
“네. 하지만 어떤 힘에 의하여 완벽하게 복원이 되었죠. 흔적도 없이요. 알아보니, 그 정도의 성력을 가진 사람은 아주 드물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런 성력을, 고작 사슴에게 쓰는 사람은 더욱 드물고요.”
“….”
“강한 성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리고 한낱 미물에게 그 성력을 아낌없이 쓰는 심성을 가진 사람. 그런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저는 한 명밖에 안 떠오릅니다만.”
혹시나 싶어 그 부근에 사제들이 왔다 갔는지도 <파도와 치유의 왕>에게 조사를 부탁했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 부근에는 어떤 사제도 다녀간 적이 없었다.
이딘은 한참이나 생각에 잠긴 얼굴로 생각하다가, 갑자기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흥미롭군. 영애.”
“저도 동의합니다, 그래서 이 증거는-”
“아니. 그 증거 말고. 그대 말이야.”
“…저요?”
“성녀가 돌아오길 가장 바라지 않는 사람은 그대일 텐데, 그대가 이렇게 열성적으로 찾는다는 게.”
이딘의 말에는 명백히 뼈가 있었다. 그러나 르네는 대답하는 대신에 몸을 숙이고, 상대방을 가늠했다.
“저는 리안이 돌아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글쎄, 성녀가 돌아오면 그대는 내쳐질 텐데도?”
“내쳐진다니. 그런 일은 없어요.”
말도 안 되는 말에, 르네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이딘은 의외라는 듯이 눈을 살짝 동그랗게 떴다.
“설마 내 오라버니가 그것도 말해 주지 않은 건가?”
“무슨 말을…?”
“오라버니와 리안 카리스의 약혼은 단순한 약혼이 아니야. 신전과 오라버니의 밀약 그 자체였지. 모후의 세력이 약한 황태자와, 황실의 힘을 빌려 신전을 장악하려는 교황의 밀약.”
이건 또 못 들어본 얘긴데. 르네는 잠자코 이딘의 말을 들었다. 이시르는 왜 이런 걸 숨겼지?
“지금이야 그 중심축인 리안이 사라졌으니, 황태자가 새로운 연인을 들여도 교황 성하께서 아무 말씀도 못 하시겠지. 하지만 리안이 돌아와도 과연 그럴까?”
“….”
“그리고, 내 오라버니가 황위 대신에 그대를 택할까?”
그건 장담을 못 하겠는데. 아니, 솔직히 절대 아닐 거라는 확신까지 들었다.
르네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어 가만히 있었다.
‘함부로 입을 열어선 안 된다.’
젠장. 이시르에게 그런 사정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 했어. 준비를 완벽하게 못 한 내 잘못이야.
[<악랄한 피의 교주>님이 그냥 다 때려 부수고 당신이 황제를 하면 어떻겠냐고 권합니다.]
[<파도와 치유의 왕>님이 그냥 남주는 세딘으로 하자고 화를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