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 (33/137)

33화.

람디샤의 수도 라마스, 시라 길드 앞.

대륙 최고의 정보 길드이자 용병 길드인 시라 길드 앞에는 인파로 바글바글했다. 모두 이유는 한 가지였다.

광룡 할란 퀘스트!

시라 길드에서 내건 퀘스트이긴 하지만, 시라 길드도 직접 참전한다는 말에 힘 좀 쓴다 하는 용병들이나 방랑 기사들은 모두 시라 길드로 달려갔다.

왜냐고?

당연했다. 시라 길드에는-

“안시라드 경! 안시라드 경!”

세딘 안시라드가 있으니까.

용병왕이자 시라 길드의 수장, 그리고 대륙에 얼마 없는 소드 마스터.

그런 세딘이 직접 출정한다는 말에 사람들은 광분하기 시작했다.

세딘 안시라드가 이끄는 원정대라면, 얼마나 그 규모와 실력이 대단할까!

당연히 가장 성공할 확률이 높은 원정대였다.

“바론 상단에서 왔습니다. 제발 저희의 제안 좀 들어주십시오!”

“잉가라 백작께서 보내셨습니다. 저희 백작께서는-”

“저희 황혼 용병단은 경을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습니다. 얘기라도 한 번…!”

문제는.

바로 그 세딘 안시라드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데에 있었다!

세딘은 ‘나 또한 출정할 예정이오. 제국민들을 위해.’ 라고 발표한 후 시라 길드에 처박혀서 나오질 않았다.

돈 좀 있다는 상단주들이나 명성 좀 있다는 기사들, 귀족들이 방문해도 세딘은 모두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러자 소문은 더욱 무성해지기 시작했다. 안시라드 경이 직접 사람을 하나씩 골라서 원정대를 꾸린다더라.

그런데 그 원정대 수준이 대륙을 제패할 정도라더라. 재야의 고수들을 전부 불러모아서 아예 기사단을 만든다더라….

이러니 명예욕 좀 있다하는 이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제발 저희를 좀 데려가 주십시오!”

“그저 발닦개로 쓰셔도 됩니다! 그냥 원정대에 참여만 할 수 있다면…!”

밤낮으로 울리는 간절한 외침에, 결국 세딘은 못 이기는 척 모습을 드러냈다.

무려 퀘스트를 낸 지 일주일 차, 세딘 또한 출정한다고 발표한 지 사흘 차였다.

“안시라드 경이다!”

“안시라드 경!”

“혹시 황태자 전하께서도 함께 출정하십니까?”

“원정대의 구성은-”

고막이 떨어질 것 같은 아우성에도, 세딘은 덤덤하게 손을 들 뿐이었다.

“그만.”

그 말 한 마디에, 순식간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원해서 다문 건 아니었다.

세딘의 목소리에 기세가 실려 있어, 완전히 기가 꺾인 것뿐이었다.

그러나 세딘은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도 만족했는지 말을 이었다.

“이미 원정대의 인원은 다 채워졌소.”

“예?”

“아니, 대체 누가…. 사흘 밤낮을 이 앞에서 새웠지만, 쥐새끼 한 마리 들어가는 걸 못 봤습니다만!”

불만 어린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럴 것이오. 그렇게 명령했으니까.”

“예? 하지만 방금 원정대 인원은….”

“원정대 인원은 나, 세딘 안시라드를 포함해서 단 셋뿐이오.”

“!”

믿을 수 없는 말에 좌중이 서로 눈만 마주쳤다. 지금 세딘 경이 무슨 소리를 한 거지?

미친 건 세딘 경이냐, 나냐?

아니지, 너냐?

“한 분은 여러분이 예상했다시피 이시르 황태자 전하요.”

“역시!”

“황가에서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겠지….”

그랬다간 제국민들의 지지가 땅에 떨어질 테니까. 사람들은 조용히 수긍했다.

“그럼 나머지 한 명은 대체 누구입니까? 그 나머지 한 분도, 소드 마스터입니까?”

“그렇소. 할란과 겨루기 위해서는 최소한 소드 마스터 경지 이상에 오른 자여야만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오.”

세딘의 설명에 모두들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냥 용도 아니고 광룡이었다.

심지어 드래곤 중에서 가장 강하며 가장 성격이 나쁘기로 유명한 레드 드래곤인데.

소드 마스터가 아니라면 브레스 한 번에 녹아내릴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제국에는 소드 마스터가 단둘뿐이지 않습니까. 타국에서 영입하신 겁니까?”

“그렇지는 않소.”

“하면, 최근에 소드 마스터가 된 사람입니까? 결국 안테 마키어스 공자가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사람들은 일리가 있는 추측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안테는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차기 소드 마스터 후보였다.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에 진입한지도 꽤 되었고, 마키어스의 재능이야 워낙 유명한 것이었으니까.

“소공작께서 재능이 대단하시긴 하지만, 그분은 아니오.”

“그럼…?”

데구르르. 사람들의 눈이 세딘으로 쏠렸다. 그럼 대체 누구란 말인가?

“내 스승님이오.”

세딘은 매우 자랑스럽다는 듯, 딱 한 마디만 내뱉었다.

사실 구구절절 우리 르네 님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하고 자랑하고 싶었지만.

그런 건 르네가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예에?”

“아니, 스승님이 있으셨단 말입니까!”

“소드 마스터를 키운 소드 마스터라니. 대체….”

그리고, 별로 공유하고 싶지도 않고.

발칵 뒤집어진 좌중을 보며 세딘은 비릿하게 웃었다.

***

“화나셨습니까?”

르네와 세딘은 말라파 접경 지역, 마지막으로 광룡 할란이 발견된 도시인 카시드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래. 그냥 이 퀘스트를 깨지 말까 생각했을 정도로.”

수도에서부터 출발한 뒤 내내 세딘은 르네의 눈치를 봤지만, 르네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분노를 뿜어냈다.

세딘은 르네의 화를 풀어 주기 위해 슬쩍 자신의 머리카락을 르네에게 가져다 댔지만,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런 걸 드시면 탈 납니다.”

르네가 그 머리칼을 잘근잘근 씹어 먹었으니까.

“대체 무슨 생각으로 공고에 그런 보상을 쓴 거야?”

“어차피 그 퀘스트를 깰 수 있는 건 르네밖에 없으니까요.”

“그럼 더더욱 문제지! 난 사람을 노예로 쓰거나 하지 않으니까!”

“자발적 노예인데, 마음대로 쓰셔도 됩니다.”

이게 위험한 소리를 하고 있어. 르네는 세딘의 머리카락을 찰싹 때렸다.

“그리고,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를 ‘스승님’이라고 발표한 거야? 그냥 익명의 누군가라고 말하라 했잖아.”

“르네는 그냥 익명의 누군가일 수 없습니다.”

저만의 누군가일 순 있어도. 세딘은 뒷말은 살짝 삼켰다.

르네는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세딘의 머리카락을 놓아준 후, 세딘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아주 난리 났던데. 재야의 소드 마스터. 소드 마스터를 키운 소드 마스터라고.”

“소란을 원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그것도 맞긴 한데. 나는 도시 단위의 소란을 원했지,

대륙 단위의 소란을 원한 건 아니거든?

르네는 어쩐지 점점 일이 커지는 것 같아, 막막해졌다.

“미리 말하는데, 나는 그 보상 안 받을 거야. 세딘.”

“상관없습니다.”

“…진심이니?”

“네. 제가 르네의 말을 거역했던 적이 있었나요?”

르네는 세딘이 그랬던 적이 있나, 생각해 보았다.

세딘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단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렇게 쉽게 수긍하니 오히려 의심스러웠다.

“그럼 애초에 왜 쓴 거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으니까요.”

“뭘 알려?”

“당신의 옆에는 제가 있다고.”

세딘의 당당한 대답에, 르네는 그만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걸 알리고 싶었다고? 대체 왜?

“…굳이… 왜?”

르네의 물음에 세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살포시,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을 뿐. 르네는 더 묻길 포기하고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퀘스트에 대해서나 더 자세히 얘기해 보자. 그 광룡, 진짜 있는 거긴 해?”

“네. 어쭙잖은 걸로 속이는 건 오히려 자충수이니까요.”

“하지만 나타난 시기가 너무 절묘한데.”

혹시 네가 깨운 거니?

르네는 차마 뒤의 질문은 하지 못했다. 세딘의 눈이 침착하게 미쳐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아서.

저 자식은 진짜 진심이다. 진심이야. 건드리지 말자.

“시작부터 너무 큰 퀘스트를 지른 건 아닐까, 우리?”

그러니까, 나는 좀 차근차근 명성을 쌓는 쪽을 기대했는데 말이야. 르네는 혀를 찼다.

“어지간한 퀘스트로는 주목받을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세딘은 냉정했다.

그는 정보 길드를 운영하고 있기에, 르네의 악명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고 있었다.

차마 르네에게 말할 순 없었지만-

‘여론 조사 결과, 현재 르네에 대한 여론은… 가히 제국을 팔아먹은 자에 가까웠다.’

그런 악명을 덮으려면 어지간한 것으로는 안 된다.

그래서 세딘은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이 퀘스트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르네의 능력이라면 해치우는 게 어렵지 않을 겁니다.”

“네 능력이라면?”

“제 능력이 궁금하십니까?”

“아니, 그 광룡의 능력이 궁금한 거지. 비교군이 나 자신이면 솔직히 짐작이 잘 안 되거든.”

이 세계에선 나와 비견될 수 있는 존재가 별로 없을 테니까. 르네는 시큰둥하게 답했다.

“그렇습니까….”

세딘은 어쩐지 조금 뚱한 얼굴로 답했다.

“어렵긴 하겠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자신 있나 보네.”

“르네를 위해서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공시키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게 더 무섭다. 르네는 세딘의 마음을 애써 무시했다.

“이시르는 차후에 합류한다고?”

“…네.”

이시르의 이야기가 나오자, 세딘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썹 하나를 찡그렸다.

“다 해치운 다음에 합류하겠다는 건가? 걔도 참 걔다.”

“원래 그런 인간이었습니다. 염치도 없고, 양심도 없죠.”

“그런 것 같아. 나는 걔를 정말 왜 좋아했을까?”

“…이젠 안 좋아하시니까. 그럼 된 거죠.”

“그런가?”

르네는 흐음, 하며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진짜 르네가 돌아오면, 다시 이시르에게 홀라당 넘어가 버릴 텐데.

“그 반응은 어떤 의미십니까? 다시 황태자 전하께 마음이 가신다는 뜻이십니까?”

“아니. 난 절대 아니지.”

S급 헌터 김이영은 절대 아닌데, 르네 마키어스는 잘 모르겠다 이거지.

솔직히 걔 전적 생각하면, 돌아오자마자 일단 이시르한테 달려갈 것 같은데? 르네는 세딘의 눈을 피했다.

“…저는, 안 됩니까?”

“뭐?”

세딘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귀에 꽂혀 왔다.

“저는 염치도 있고, 양심도 있는데.”

이거 봐라. 르네는 모르는 척, 그녀의 손을 가져다 자신의 뺨에 대는 세딘을 흘겨보았다.

암만 봐도 이거, 사람 여럿 울렸을 솜씨야. 위험해. 르네는 손을 슬쩍 빼내며 모르는 척했다.

그러나 세딘은 그런 그녀의 손을 다시 붙잡고 물었다.

“그럼 왜 저는 안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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