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화 (43/137)

43화.

안테 마키어스는 평생 흠 하나 없는 인생을 살았다.

제국에서 가장 고귀한 가문.

제국에서 손에 꼽는 무위.

얼굴, 인격, 평판 하나 떨어지는 게 없이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는-

몇 안 되는 진짜 귀족.

그 수식어가 안테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흠을 굳이 하나 찾자면, 역시 그의 동생 르네 마키어스였다.

르네는 어렸을 때부터 참 딱했다.

그래, 딱했다.

르네는 잘하는 것 하나 없었다. 얼굴이 제법 예쁘긴 하지만, 그런 건 오히려 르네의 성격만 나쁘게 했다.

르네는 특별히 머리가 좋지도, 특별히 검에 소질이 있지도 않았다. 제국 최고의 검술 명가라는 마키어스의 피를 이었음에도 그랬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착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모든 것에서 뒤떨어졌다. 모든 면에서 안테와 정반대였다.

그래서 그녀의 아버지, 마키어스 공작은 르네를 아무것도 모르는 마리오네트로 키웠다.

‘얼굴이 예쁘니, 적당히 키워 황가나 다른 공작가에 보내면 될 일이다.’

마키어스 공작은 르네가 너무 똑똑해지면 다루기도 힘들다고 공부도 최소한으로만 시켰다.

르네가 더 공부하고 싶다 말해도-

‘르네, 그러지 말고 드레스 살롱에 가서 드레스를 맞춰라. 입고 싶은 건 다 입어. 너를 꾸미는 데에 더 집중하려무나. 머리 아프게 공부 같은 걸 해서 무엇 하느냐. 그런 건 네 오라비들이나 시키렴.’

그렇게 달랠 뿐이었다.

어렸을 때의 안테는 뭣도 모르고 르네를 부러워했다. 르네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웃기만 해도, 예쁜 드레스만 입어도 칭찬을 들었으니까.

그는 매일 연무장에서 구르고, 새벽엔 가문을 잇기 위한 후계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르네는 편하게 달콤한 것이나 먹으며 쉬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안테는-

“하지만 그건 옳지 않습니다, 각하.”

르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그건 네가 판단할 게 아니다, 안테.”

“하지만 저는 그 원정대에 참여한 적이 없습니다.”

“내가 그걸 몰라서 이러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마키어스 공작저, 공작의 집무실.

“그럼 왜 그 익명의 영웅이 저라고 소문을 내시는 겁니까?”

“그게 너였어야 했으니까!”

마키어스 공작은 안테에게 역정을 내고 있었다.

“네 놈이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만 올랐다면, 그 영웅은 네가 되었을 것이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 알 수 없는 평민의 스승 따위가 아니라!”

제국의 빛이라고도 불리는 소드 마스터, 세딘을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 알 수 없는 평민’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마도 각하뿐일 겁니다.

안테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의 아버지는 안테가 아직도 소드 마스터가 되지 못한 것을 매우 부끄러워했다.

심지어 마키어스 공작 본인도 결국 소드 마스터는 되지 못했음에도.

특히나 그의 분노는 세딘이 소드 마스터가 되자, 더 격렬해졌다.

“그 평민도 소드 마스터가 되었는데, 너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 온 가문이 너의 경지 하나만을 위해 돈과 시간을 쏟아붓고 있는데!”

“…면목 없습니다.”

안테가 순순히 고개를 숙이자, 공작은 그제야 한숨을 쉬며 분노를 누그러트렸다.

“그러니 너는 입 다물고 있어라. 우리도 대놓고 네가 익명의 영웅이라 발표하진 않을 것이다. 적당히 암시만 하고, 누가 물어보면 부정하지 않을 뿐.”

“하지만 황태자 전하나 안시라드 경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예전이라면 그랬겠지.”

마키어스 공작은 조소를 흘렸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네 동생이 모든 것을 바꾸지 않았느냐. 그 쓸모없었던 것이.”

“….”

쓸모없었던 것.

분명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들었던 말인데 지금은 구역질이 났다.

안테는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참기 위해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갑자기 황태자의 애인이 되질 않나, 그 평민 놈과 염문설을 뿌리질 않나…. 그 애가 드디어 가문이 물려준 자산을 쓰기로 한 것이지. 그 얼굴 말이다. 전에는 쓰라고 해도 도통 고집스럽게 쓰질 않고, 영지에 처박혀 있더니만….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마키어스 공작은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사실 안테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의문이긴 했다.

르네는 갑자기 너무 변해 버렸다.

그것도, 아주 이상한 방향으로.

지금의 르네는 마치….

“뭐, 일단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니 내버려 둬야겠지. 너도 그 애를 잘 지켜봐라. 언제 또 사고를 칠지 모르니.”

자신이 원하던 이상향 그 자체가 된 것 같았다.

***

르네는 오랜만에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잘은 모르겠지만 퀘스트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 이대로라면 금방 깨고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악랄한 피의 교주>님이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유혹의 군주>님이 이런 거 꼭 말하면 죽는다고 혀를 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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