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화 (62/137)

62화.

람디샤 제국 검술 대회 개전 날.

5년 만에 개최된 대회인지라, 제국민들의 관심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특히나 전 우승자가 세딘 안시라드였던 만큼, 이번 우승자는 누가 될지도 큰 관심사였다.

“이번에는 누가 우승자가 될까?”

“거야 뻔하지. 마키어스 소공작 아니겠나?”

“너무 뻔해서 재미가 없지.”

대부분의 도박사들은 마키어스 공작가의 소공작, 안테 마키어스가 우승자가 될 거라고 점치고 있었다.

“그래도 그 동생도 가망이 있지 않나? 최근에 익스퍼트 최상급에 진입했다는 말이 있던데.”

“그래 봐야 갓 진입한 정도야. 소공작은 오래전에 진입해서 소드 마스터가 목전이라잖아.”

위험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은 그 동생, 키릴 마키어스를 지목하기도 했지만 소수였다.

“하긴 그것도 그래. 근데 그 집안에 자식이 하나 더 있지 않았나?”

“뭐, 그 망나니 공녀? 거긴 볼 것도 없어. 검도 잡아 본 적 없다고.”

“이상하네, 분명 출전자 명단에서 본 것 같은데….”

“잘못 본 거겠지!”

그 외에도 유수의 후보자들이 있었지만 세딘처럼 대단히 눈에 띄는 이들은 없었다.

“아, 카시유 백작가에서는 별말 없나? 거기도 원래 검술 명가잖아. 현 백작도 우승자 출신이고.”

“거긴 딸 하나뿐인데, 몸이 너무 병약해서 답이 없다더라고. 뭐, 아까 보니 출전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긴 했는데 형식적인 것일 거야.”

“안됐군. 그 집안도….”

“데릴사위를 얻어서 후계를 보는 것밖엔 답이 없지.”

그렇게 아쉬움 반, 기대 반이라는 분위기 속에서도 대회는 시작되었다.

황궁이 소유한, 람디샤 콜로세움에서.

그러나 황가의 콜로세움임에도 불구하고 문 앞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어이, 거기! 후드를 올려 봐!”

콜로세움에는 두 개의 입구가 있었다.

하나는 귀족 전용 출입구, 하나는 평민과 기사 계층 전용 출입구였다.

이들이 감시하고 있는 입구는 후자였다.

“뭐? 이봐요. 이게 무슨 무례란 말이오! 우리는 대회 출전자로-”

“우린 마키어스 공작 각하의 명을 받들고 있을 뿐이다. 불만 있나?”

귀족 전용 출입구는 감히 손댈 수 없었지만, 평민들 정도야 마키어스의 이름 앞에서는 무력했으니까.

“…!”

이들은 마키어스 공작가의 가신들이었다.

원래는 마키어스 기사단의 기사들이 수행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사들은 전원 식중독을 핑계로 명을 받들 수 없다고 물러났다.

그 결과, 가신들의 기사들이 대신 나온 것이었다.

“공녀님이 아니야, 보내!”

“거기, 너! 너도 멈춰! 가면을 벗어라!”

마키어스 공작은 딱 한 가지의 명을 내렸다.

‘르네 마키어스의 출전을 막아라.’

최대한 다치지 않는 선에서. 그러나 무조건.

“여긴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죠, 대장?”

“아무래도 귀족 전용 입구를 쓰시려는 것 같습니다.”

“그쪽은 괜찮아. 마키어스의 인장이 달려 있는 마차나, 인장이 없는 마차는 이 근방에 오기도 전에, 무조건 막기로 되어 있으니까.”

“황태자 전하께서 공녀님의 출전을 직접 승인하셨는데, 이렇게 해도 괜찮은 겁니까?”

“황녀 전하께서 협력해 주고 계시니 괜찮다.”

‘대장’이라 불린 자는 매우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의 뒤에는 황녀 전하가 계신다.

“무엇보다, 황태자 전하께서도 고작 공녀님의 출전을 위해 마키어스와 척을 지고 싶지는 않으실 것이다.”

“하긴… 황위 계승 싸움에는 공작님의 힘이 필수적이니까요.”

말단 기사는 곧바로 납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황위에 대한 이시르의 집념은 제국 전체에서도 유명했으니까.

“그래. 아무리 연인의 요청이라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지.”

가신들의 리더는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무엇보다, 30분 후면 공녀님의 첫 대전이 시작된다. 첫 대전에만 불참하면 무조건 기권으로 간주, 탈락이야. 30분만 더 막으면 된다!”

***

한편, 마키어스 공작가의 대기실.

“형,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키릴은 매우 불만스러운 얼굴로 안테에게 말하고 있었다.

“르네가 뭘 잘못했다고 출전까지 막아? 아버지도 이해가 안 되지만 형은 더 이해가 안 돼.”

“그 애의 안전을 위해서이다.”

안테는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그러나 키릴도 여기서 물러날 순 없었다.

“형, 그 애… 우리 생각처럼 그렇게 약한 애가 아닐지도 몰라. 형한테 말은 안 했지만-”

키릴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뗐다. 사실 키릴은 은근히 눈치채고 있었다. 르네가 이전의 르네와는 다르다는 것.

르네가 절대로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 캐묻지 않았다. 하지만 멍청이가 아닌 이상 아예 모를 순 없었다. 세상 어떤 일반인이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으로 진입하는 방법을 안단 말인가?

하지만 키릴은 침묵했다. 르네가 숨기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한편으로는 헷갈리기도 했다. 그래도 르네와 같은 집에서 자랐다.

그 애의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그 애는 검을 잡긴커녕, 조금만 뛰어도 벅차했었다.

하루아침 만에 그렇게 강한 사람이 되었다고는 믿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날 아침, 르네가 검술 대회에 출전하겠다고. 나도 마키어스라고 말한 순간. 그 순간 키릴은 더 이상 진실을 외면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사실 그 애는 그렇게 무력하지 않다는 것. 어쩌면-

“안다.”

“뭐?”

“그 애가 약하지 않다는 것, 알고 있다고.”

안테의 대답에 키릴은 입을 떡 벌렸다.

“그런데도 그 애의 출전을 막는 거야? 대체 왜?”

“키릴.”

안테는 한숨을 쉬더니 결국 키릴 쪽으로 돌아앉았다.

“그 애가 제 한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약한 놈들로부터는.”

안테의 눈에는 오랜 고민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 제국 전체를 봐라. 지금은 혼란스러운 시기야. 황태자 전하와 황녀 전하께선 거의 대등하게 싸우고 계시다. 최근, 황태자 전하께서 공적을 세우셔서 그쪽으로 조금 기울어지긴 했지.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황제 폐하께선 황태자 전하를 경멸하신다.”

고위 귀족들이라면, 황제의 황태자를 향한 증오심을 모르지 않았다.

이딘이 여러모로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버티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건 알고 있지만.”

“황태자 전하께선 적이 너무 많아. 우리가 중립을 지킨 것도 그 때문이었다. 누가 이길지 감히 점칠 수 없기 때문에.”

“하지만 르네는 이미 황태자 전하와 한배를 탔어! 이미 중립을 지키기엔 늦었다고.”

키릴은 거세게 항의했다.

“그 애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아직까지는. 리안 카리스 성녀의 대체품에 불과하지. 왜냐고? 그건 그 애가 그저 망나니이기 때문이야. 마키어스의 수습 불가능한 망나니.”

“…!”

“그 수식어가 오히려 그 애를 지켜 주고 있단 말이다. 어쭙잖은 강함이 아니라!”

안테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나라고 그 애의 답답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줄 아느냐?”

얼마 전, 이딘이 그를 불러냈을 때 안테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 버렸다.

사실 마키어스 공작가는 단 한 번도 ‘중립’이었던 적이 없다는 것. 언제나 이딘의 편이었다는 것.

아니, 정확하게는 더 큰 ‘존재’의 편이었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너무 커다란 게임판 속 작은 경기들일 뿐이라는 것.

이런 커다란 게임 속에서 르네 정도의 장기 말은 언제든지 버려지고, 또 치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안테는 알았다.

“하지만 그 애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저 ‘망나니’로 존재해야만 한다. 존재감 없는.”

“….”

키릴은 결국 고개를 떨구었다. 형이 그렇게까지 많은 것을 생각하고 계산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키릴 역시 귀족 사회와 황가의 잔인함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피부로 와닿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방금 안테의 눈에서 키릴이 본 것은 강한 두려움이었다.

세상에서 무서운 것 하나 없어 보이던 형이 무서워하는 것.

그건 키릴조차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게 정말로 그 애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 생각해? 그 애의 날개를 꺾어 버리는 것?”

그러나 키릴은 확신이 필요했다.

동생의 미래를 꺾어 버리는 것이 유일하게 그 애를 지킬 수단이라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니까.

그 질문에 안테는 한참이나 말없이 검만을 내려다보았다. 검에는 단 하나의 이름만이 새겨져 있었다.

마키어스.

그가 지켜야 하는 이름이었다. 이 이름 앞에서 안테는 자유롭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마키어스의 사람들을 지켜야 했다.

“…그래.”

안테의 대답에 키릴은 답답하다는 듯이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탁자를 뒤엎어 버렸다.

“이게 뭐야, 대체. 제국에서 가장 강하다는 마키어스가, 고작 그 애 하나를 못 지켜서 쩔쩔매는 게 말이 돼?”

“….”

“이러려고 검을 수련한 게 아니었어. 그 거지 같은 시간들을 견뎌 낸 게 아니었다고!”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내가 소공작이 아니라, 공작이 된다면. 이 가문의 결정권자가 아버지가 아니라, 내가 된다면.

안테는 뒷말을 조용히 삼켰다.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서늘해졌다. 단 한 번도 품어 본 적 없는 불충이었다. 그러나 안테의 마음속에선 어느 순간부터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내가, 내가 이 집안을….

-다음은, 제드 남작가의 차남, 테오도르 제드! 그리고 마키어스 공작가의 장녀, 르네 마키어스입니다!

그때, 막사 바깥에서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마키어스 공녀께서는 불참이시군요. 어쩔 수 없지요. 마키어스 공녀는 기권 처리가 되었습니다! 테오도르 경께서는 부전승으로 다음 경기에 진출합니다!

예견된 결과가 들려오고, 안테와 키릴은 침통한 신음을 흘렸다.

“이제 만족해, 형?”

“…어쩔 수 없었다.”

-다음 경기는, 마키어스 공작가의 차남인 키릴 마키어스 공자!

키릴은 찝찝한 얼굴로 일어섰다.

“내 차례네.”

“상대방은 카시유 백작가의 영애이다. 그분은 몸이 좋지 않아서 못 나와. 부전승일 테니 적당히 얼굴만-”

-그리고 상대는… 와, 이거 상당히 재미있네요! 이번에는 검술 명가들의 결투입니다! 원래는 카시유 백작가의 장녀인 세렌 카시유 영애께서 나와야 하지만 병환으로 인해 나오지 못하신다고 합니다.

“이거 너무 쉽게 이기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네.”

“배부른 소-”

-그래서 대리 출전을 신청하셨습니다!

“!”

“!”

-그리하여 마키어스 공자의 상대는, 카시유 백작가의 차녀, 이…영 카시유! 이영 카시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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