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그리하여 마키어스 공자의 상대는, 카시유 백작가의 차녀, 이…영 카시유! 이영 카시유입니다!
“이…영?”
안테와 키릴이 동시에 읊조렸다.
“그런 이름은 들어 본 적 없어…!”
키릴은 당황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카시유 백작가의 사정은 당연히 키릴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쉽게 이기리라고만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카시유 백작가에는 외동딸 하나뿐이라고 들었다. 양녀라도 들였다 이건가.”
안테는 의심스럽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이상했다.
카시유 백작가에서 입양을 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었다.
원칙적으로, 대회에 친자만 나올 수 있다는 말은 없다. 후계가 마땅하지 않은 귀족 가문에서는 종종 쓰는 편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데려온 이들은 크게 뛰어나지 못했다.
“뭘 신경 써. 대충 구색 맞추기겠지.”
“그래. 네 말이 맞겠지.”
안테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키릴의 말이 옳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마음이 이상했다.
…기우겠지. 이 불안감은.
“일단 나가 볼게.”
전후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이든, 지금 일어서지 않으면 실격이었다. 키릴은 몸을 일으켜 막사 밖으로 향했다.
“키릴.”
그때, 안테가 그를 불러 세웠다.
“왜?”
안테가 자신을 부를 줄 몰랐기에, 키릴은 당황하며 뒤돌아보았다.
“카시유 백작가는 명예로운 가문이다. 심하게 대하지 말고 그들의 명예를 지켜 주어라.”
“내가 그것도 모를 것 같아? 나를 대체 뭘로 보는 거야?”
키릴은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애 취급도 하루 이틀이지.
“그리고.”
“뭐, 또!”
“이겨라.”
그러나 이어진 안테의 말은 더욱 의외의 것이었다. 키릴은 잠깐 할 말을 잃고 멍하니 형을 보았다.
“…다니까.”
“뭐라고 했지?”
“거기서 지켜보고나 있어.”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들 이상해지고 있다니까. 키릴은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막사를 나왔다.
“와아아!”
어떤 것이 먼저랄 것도 없이, 쏟아지는 환호성과 햇살. 그 사이에서 키릴은 연단 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후드를 깊게 눌러쓴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러나 후드 같은 건 놀라운 게 아니었다. 정말로 놀라운 건-
“안 올라오고 뭐 해?”
그 사람의 검이었다.
***
‘하필 또 상대가 키릴이일 건 또 뭐람.’
다시 한 시간 전.
마키어스 공작가의 가신들이 르네를 한참 찾으러 밖을 뒤지고 있을 때- 르네는 이미 경기장 안에 있었다.
그것도 카시유 백작가의 막사 안에.
“바깥은 난리군.”
“들리십니까?”
세딘은 르네에게 후드를 입혀 주며 물었다.
“응. 다 들리지. 원한다면 수도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어.”
대신 소음 때문에 정신이 나가겠지만.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건, 스스로를 위해서였다.
“내 상대는 누구니?”
“아.”
세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후드의 끈을 묶었다.
“키릴 공자입니다.”
“뭐?”
르네는 세딘의 손을 찰싹 때렸다.
“일부러 말하지 않았구나, 세딘.”
“말한다 해서 달라질 게 있을까요.”
“세딘.”
“르네의 출전조차 막으려는 이들입니다. 왜 그들의 사정을 봐주시는 겁니까?”
“키릴과 안테는 이 일과 관련 없어. 그 애들은 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이야. 결국 내 출전을 막는 건 공작… 아니, 아버지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섭섭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르네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세딘이 이 상황 전체를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건 진작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도, 방관자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르네는 후드 아래에서 세딘의 눈을 응시했다. 초록색 눈이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약한 것을 죄로 치지 않아.”
가끔씩 보이는 저 서늘함이 진짜일까, 아니면-
“그건 르네가 너무 좋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싫니?”
“…어떻게 르네를 싫어하겠습니까.”
항상 보여 주는 이 다정함이 진짜일까.
“르네를 방해하는 것들을 싫어할 뿐이죠.”
둘 다 진짜인 것 같기도 하고.
“세딘.”
“다 묶었습니다.”
세딘은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화사하게 웃었다.
[<악랄한 피의 교주>님이 저거 아주 위험한 놈이라며 경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