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화 (64/137)

64화.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잊혀진 가문의 무명無名 도전자 때문에!

카시유 백작가는 확실히 검술 명가로 유명한 가문 중 하나였다.

단, 과거에.

현재까지도 그 이름을 높게 사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암암리에 한동안 봉문을 한다더라, 변변한 데릴사위를 데려올 돈도 없어 그대로 망하게 생겼다더라 하는 소문만 파다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었다.

모든 게 뒤집혔다.

그 이유는-

“카시유 백작님! 한번만, 한번만 문 좀 열어 주십시오!”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준비한-”

단 한 명, 이영 카시유 때문에!

“죄송합니다. 현재 백작님과 백작 영애께서는 어떤 방문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병약한 외동딸 하나 때문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던 카시유 가문은, 이제 위상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아직도 결투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그 결투가 끝나고 오셔도 늦지 않습니다.”

검술 대회의 가장 강력한 우승자 후보를 가진 가문으로.

아직 안테와의 결투가 남아 있긴 했지만, 그 경기장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모두 이영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일격에 수십 명, 아니, 수백 명을 쓰러트렸다. 그것도 목검 하나로.

일각에서는, 이영이 소드 마스터가 아니냐는 의문마저 제기되고 있었다.

“소드 마스터가 아니고서야, 그 무위가 말이 되나?”

“예끼, 이 사람아. 소드 마스터가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그렇게 흔하게 나오는 건 줄 알어?”

“어허. 어제 자네가 직접 못 봐서 그래. 나는 이 두 눈으로 직접 봤다고.”

소드 마스터라는 이름이 갖는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제국의 세 번째 소드 마스터!

“혹시 그 ‘이영’이라는 검사가 광룡을 무찌른 그 소드 마스터는 아닐까?”

“그거 아주 말이 되는 이야기구먼.”

“그 정도 실력은 되어야 드래곤을 무찌를 수 있겠지.”

“어제 검을 놀리는 솜씨를 봤나? 검이 아예 보이지도 않던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소드 마스터는 제국의 자랑이자 빛이 되었다.

고로 세 번째 소드 마스터에 대한 주목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검술 대회 우승자들은 대대로 소드 마스터이긴 했지….”

“그렇다니까. 이제 우리 제국도 세 번째 소드 마스터가 나올 때가 되긴 했어.”

이쯤 되자, 사람들은 또 한 가지 다른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그래. 마키어스 소공작은 조금…. 아쉬웠지?”

“그렇지. 좀 아쉽지.”

안테 마키어스가 아무리 대단한 검사라지만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다.

소드 마스터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아쉬울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소드 마스터로 보이는 새로운 도전자가 나타났다. 그러니, 사람들이 열광할 수밖에.

그리고 그 열광 속에서 유일하게 침체된 이들이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이냐!”

쾅.

흑단 나무로 만들어진 화려한 테이블을 내리치는 손이 있었다.

강한 힘에, 그 위에 있던 것들이 사방으로 쏟아졌지만 누구 하나 피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계집은 또 어디서 굴러먹다 나온 계집이란 말이야!”

마키어스 공작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카시유 백작가에서 초빙해 온 인물로, 실제로 가문에 입적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일시적으로 머무를 것이라 합니다.”

안테는 얼굴과 온몸에 튄 붉은 잉크에도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답했다.

초빙이라는 단어에, 공작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럼 결국 우승해도 그 가문의 영광이 아닐 텐데?”

“애초에, 가문의 이름을 빛내기 위해 초빙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럼 목적이 무어란 말이냐.”

공작은 키릴을 노려본 후에, 안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키릴은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못 박힌 듯이 서 있어야 했다.

안테는 두 사람 사이에서 몰래 한숨을 내쉰 후 대답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작가는 가신들의 반역과 만행으로 인해 봉문 직전까지 도달한 상태였습니다.”

“그건 알고 있다.”

“하여, 아직 가문이 건재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어이가 없군. 저 정도의 실력자를 데려오기 위해서라면 가문의 전 재산을 바쳐야 했을 텐데! 후안 카시유에게 그런 재산이 남아 있었단 말이냐?”

공작은 안테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내가 분명 그 가문에 재산 하나, 명예 하나, 사람 하나 남기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안테 마키어스.”

“…죄송합니다. 분명 멸문 직전까지 몰아세웠다고 생각했는데. 숨겨 둔 것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안테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애초에 진심이 아니었으니, 완벽하게 일을 처리했을 리가 없었다.

카시유 백작가는 명예로운 가문이었다. 그런 곳을 멸문시키라니.

끔찍한 명령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따라야만 하는 자신은 더 끔찍했다.

“네놈은 항상 그런 식이지!”

결국 공작은 안테의 뺨을 내리쳤다.

그러나 정작 헉, 하는 소리가 터져 나온 건 키릴 쪽이었다.

키릴은 바로 옆에서 뺨을 맞은 형의 모습에, 숨을 죽였다.

아버지가 안테를 지독할 정도로 몰아세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공작은 위계질서를 가장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차남 앞에서 장남을 대놓고 혼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안테에게 상냥한 아버지인 척했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방만한 결과가 무엇이냐!”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연기할 인내심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지지만 않았어도. 최소한 비기기라도 했어도, 형이 맞는 일은 없었을 텐데.

키릴은 이 모든 게 자신 탓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떨구었다. 형을 볼 면목이 없었다.

“한심한 놈들…. 네놈들이 이 마키어스 가를 이끌어 갈 거라는 생각만 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공작은 이를 부득 갈았다. 두 형제는 그저 묵묵히 공작의 분노를 받아 냈다.

“그래서, 그 계집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밝혀냈느냐? 정말 소문대로 소드 마스터인 건지. 만약 소드 마스터라면 여태까지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전부 알아내야 할 것 아니냐!”

“그건… 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전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무능한 놈.”

공작은 이를 부득 갈며 자리에 앉았다. 간신히 화를 참는 눈치였다.

“저번에는 익명의 영웅이 납시었더니, 이번에는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도 알 수 없는 계집이 우승 후보가 돼? 네놈들은 부끄럽지도 않느냐? 그것들이 판을 칠 동안 대체 뭘 하고 있었냔 말이야!”

공작은 결국 다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안테와 키릴은 눈을 질끈 감으며 모든 모욕을 들어야만 했다.

“르네 그 아이도 찾지 못하고! 키릴 네 놈은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 되어선 일격 하나 받아 내지 못하질 않나!”

그때 키릴의 눈빛이 변했다.

“가문이 이렇게 어지러운데 제멋대로 나돌아 다니는 꼴이란…. 계집들이란 어쩔 수 없는 것들이야.”

그래, 르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그 괴이한 말투,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말투.

그리고 검을 마주한 순간 느껴졌던 그 의지는 분명-

키릴은 자신이 떠올린 것을 말하려 했다. 하지만, 말하기 위해 고개를 든 순간 공작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키릴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마주친 그 두 눈이 탐욕과 경멸로 번들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한편, 카시유 백작저.

나이 든 카시유 백작은 르네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잊어.”

“예?”

그러나 르네는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잊는 게 도와주는 것이니, 잊어.”

“하지만….”

“애초에 내 이득을 위한 것이었다. 감사 인사를 들을 만한 일이 아니야.”

쩔쩔매는 카시유 백작에게 르네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백작은 여전히 르네의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의 첫 만남은 거의 충격에 가까웠으니까.

***

“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냐!”

며칠 전. 새벽.

백작은 백작저 뒤뜰에서 들린 굉음에 잠옷 차림으로 뛰쳐나와야 했다. 그런 굉음은 살다 살다 처음이었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건 뒤뜰의 광경이었다.

-마음껏 날뛰어라.

[스킬 발동! - 아수라검법 28식- 호행난주胡行亂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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