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5/137)

65화.

대망의 결승전.

안테는 잔뜩 긴장한 채로 검을 닦고 있었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얼굴에서 살기가 풀풀 풍겼다.

“형, 긴장했어?”

보다 못한 키릴이 물었다.

“헛소리.”

“형… 아까부터 같은 곳만 닦고 있는 건 알아…?”

안테는 그제야 검에서 손을 뗐다.

“긴장한 게 아니다. 다만….”

“지면 큰일 나니까 그러는 거지?”

키릴은 다 안다는 듯, 쓰게 웃었다.

“지지 않아야겠지.`”

“글쎄. 솔직히 인정하기 창피하지만 어제 나는 일격에 기절했었어. 아니, 사실 그건 일격도 아니었지. 형도 봤을 텐데?”

안테는 대답하지 않았다. 키릴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잘 알았다. 경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목도했으니까.

아주 찰나였지만, 그는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다.

“…못 봤다.”

“뭐야. 현실 부정이야? 내가 설명-”

“아니.”

안테는 고개를 내저었다.

“감히 내가 다 좇을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

키릴의 얼굴에 놀라움이 퍼져 나갔다. 안테가 이렇게 상대방을 인정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런 건 처음 보았다. 심지어 황태자 전하의 검에서도 본 적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래. 그랬지.”

키릴은 그 순간이 생각났는지, 가볍게 몸을 떨었다.

“나는 직접 맞았는데도 정말 그 움직임을 다 알 수가 없었다니까.”

“어디서 그런 괴물이 나온 건지 모르겠군.”

“카시유 백작이 데려온 거라면, 평민 출신이라는 거 아냐?”

“그렇겠지. 귀족이었다면 진작 이름을 떨쳤을 테니.”

어제의 그 인물은 최소 소드 마스터였다.

귀족 가문이 소드 마스터를 보유한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아예 가문의 위상과 작위가 달라지니까.

그러니 숨길 이유가 없었다. 아마 온 사교계에 자랑하고 다녔겠지.

“하지만 평민 출신이었어도 그렇게 흔적도 없이 숨어있을 수가 있나? 세딘 경도 평민 출신이긴 했지만 이미 이름을 날리고 있는 중이었다고.”

안테는 암담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나 정보가 없는 인물이라니.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위험했다.

그 소드 마스터의 진정한 위험은 단순히 힘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정보도 없다는 것. 그게 가장 위험한 것이었다.

“있잖아, 형.”

그때, 키릴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그러나 키릴은 계속해서 망설였다. 이걸 말해도 되는 걸까.

어제부터 계속 고민했지만, 아직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도 있느냐?”

안테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키릴은 원래 말을 아끼는 성격이 아니었다. 일단 말을 하고 수습은 나중에 하는 성격이었지.

“혹시 르네인 건… 아닐까?”

“뭐?”

안테는 피식 웃어 버렸다.

“그래. 그 아이도 마키어스니, 재능이 있을 수도 있겠지. 보아하니 마법도 혼자 수련한 모양이고.”

계속해서 모른 척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안테도 인정하고 있었다. 르네가 그들이 알고 있던 르네가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 아이가 소드 마스터인 게 말이 되느냐. 그런 실력은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안테는 냉정하게 말했다.

기억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검을 잡아 온 그도, 고작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었다. 검을 잡은 모습을 본 적도 없는 르네가 소드 마스터라고?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 아이가 카시유 백작과 무슨 인연이 있겠느냐.”

“…하긴, 그렇지.”

키릴도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우리끼리 고심한다 한들 소용없다. 오늘 결판이 난다면, 뭐라도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

“…뭐, 그렇겠지.”

부우우.

그때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들렸다. 두 형제는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이제 나갈 시간이네, 형.”

“다녀오겠다.”

안테는 검을 바로 쥐고, 천천히 막사를 나왔다. 그러자 키릴이 다급히 뒤에서 외쳤다.

“이기고 오라곤 못 하겠다. 그래도 일격에 기절하진 마!”

키릴의 진심 어린 응원에 안테는 실소를 흘렸다. 저것도 응원이라는 게 더 슬펐다.

“…그래.”

안테가 막사 밖으로 나오자 환호성이 들렸다. 그러나 그 환호성은 단순한 응원과는 달랐다.

모두가 원했다.

새로운 신예에게, 오래된 전통 강자가 무너지는 모습을.

마키어스의 소공작이라는, 범접할 수 없는 위인이 망가지는 모습을.

그것도 고작 평민 출신 입양아에게!

안테 또한 관중들의 기대를 알았다. 모두가 그의 패배를 원하고 있었다. 모두가 그의 절망을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물러날 수는 없다. 안테는 기어코 연단 위에 올라섰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결승전이네요! 마키어스 공작가의 소공작, 안테 마키어스! 그리고-”

사회자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나타나야 할 사람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카시유 백작가의 이영 카시유! 아직 올라오지 않으셨군요! 3초를 셀 때까지 올라오지 않으시면, 소공작의 우승입니다.”

사회자의 말에, 사방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뭐야! 공작가에서 농간이라도 부린 것 아니야?”

“그래! 그렇지 않고서야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가 나타나지 않을 리가 있나?”

“어이가 없네.”

“비겁하군! 이길 자신이 없어서 뒷공작이나 하다니!”

“꺼져라!”

“꺼져 버려! 비겁한 마키어스!”

사방에서 야유와 욕설이 쏟아져 내렸다. 목표는 안테와 마키어스 공작가 전체였다.

“…대체 무슨…!”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키릴도 당황해서 벌떡 일어섰다. VIP석에서 관람하던 공작의 표정도 매우 좋지 않았다.

오로지 안테만이 평정을 지키고 있었다. 안테는 온 세상이 자신에게 욕을 하든 말든, 사회자에게 말했다.

“카운트다운을 하시오.”

사회자는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해 어색하게 웃었다.

“그, 그럼 카운트다운을 하겠습니다. 3, 2, 1…. 끝입니다! 이영 카시유 도전자는 기권으로 간주되어 실격되었습니다! 따라서 올해 제국 검술 대회 우승자는 안테 마키어스! 안테 마키어스 소공작입니다!”

우우우.

관중들은 연단 위로 쓰레기를 던졌다. 누구도 새로운 우승자의 탄생을 축하하지 않았다.

마키어스 공작가도 기뻐하지 못했다. 모두가 참담한 마음으로 침묵하고 있었다.

그때,

“조용.”

우승자를 기다리고 있던 황제가 일어섰다.

마법사들은 저마다 오브를 들어 황제의 목소리를 키웠다.

“조용히 하라.”

황제의 무거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경기장에도 적막이 찾아왔다.

“마키어스 소공작. 우승을 축하한다. 비록 전투 한 번 없는 우승이지만.”

황제의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안테는 역사상 최초로 검 한 번 들지 않고 우승한 우승자였다.

어제의 난전에도, 오로지 안테만이 참여하지 않고 뒤로 물러서 있었으니까.

“그래도 그대의 강함을 의심하는 자는 없을 터.”

황제는 손을 까딱였다. 가까이 오라는 신호였다. 안테는 황제의 앞까지 다가간 후, 한쪽 무릎을 굽혀 예를 표했다.

“만약 여기서 그의 강함을 의심하는 자가 있다면 나오라. 그리고 직접 맞서라! 그를 이기는 자에게 우승자라는 이름을 주겠다!”

황제의 말에, 잠깐 수군거림이 일었으나 금세 가라앉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안테의 강함을 모르는 자는 없었으니까.

안테에게 돌을 던진 이들 중에도 안테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아무도 없는가?”

황제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한 후, 검을 빼 들었다.

“그렇다면 이번 검술 대회의 우승자이자 제국을 대표하는 검사가 될 이는-”

그리고 안테의 어깨 위에 올려 두었다.

“안테 마키어스, 그대이다!”

수치로 떨고 있는 그 어깨 위에.

“이제 충성을 바칠 이를 택해라.”

황제는 양팔을 벌려 자신의 뒤에 있는 두 사람을 가리켰다.

왼쪽에는 이시르가, 오른쪽에는 이딘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묘한 표정이었다. 안테는 먼저 이시르를 보았다.

그 얼굴은 자신을 선택할 거라 자신하는 것 같기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 조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떤 쪽이든 재수 없는 인간인 건 매한가지지. 안테는 고개를 돌려 이딘을 보았다.

‘정말로, 정말로 황녀 전하의 편에 서 계셨던 겁니까?’

며칠 전, 안테는 이딘의 제안을 받자마자 공작에게 달려갔다.

‘입조심하지 못하겠느냐? 벽에도 귀가 있거늘!’

‘대답해 주십시오. 제가 방금 듣고 온-’

‘전부 사실이다.’

공작은 쯧, 혀를 찼다.

‘황녀 전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행해라. 그분의 뜻이 즉 우리의 뜻이니.’

‘아니요.’

‘뭐?’

공작은 항상 했던 것처럼 이를 악물고 안테의 턱을 잡았다. 그러나 그렇게 들어 올린 안테의 얼굴은-

‘각하의 뜻이 즉 모두의 뜻이 되어야만 하시는 거잖습니까.’

악에 받쳐 있었다.

안테는 온 힘을 다해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상황을, 이 감정을 참기 위한 마지막 발악이었다.

핏발 서린 눈에, 공작조차도 흠칫할 정도였다. 그러나 망설임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내 공작은 한 번 더 일갈했다.

‘감히 네가 내게 그런 말을 해?’

‘이게 정말로, 가문을 위한 것입니까?’

안테는 다 쓸려 나간 희망을 보내며 한 번 더 물었다.

‘그저 각하를 위한 것이 아닙니까?’

그때 대답이 무엇이었더라.

어떤 대답이었든, 최악의 대답이었겠지.

혀끝에 비릿함이 감돌았다. 입술을 물어 난 피의 맛인지, 아비를 물어 난 피의 맛인지 알 수 없었다.

“소공작, 선택하라.”

황제가 한 번 더 그를 불렀다. 이제는 정말로 대답해야 했다. 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한단 말인가?

평생 충성을 바쳐 온 가문? 아니면, 단 한 번이라도 지키고자 했던 양심?

선택해야 했다. 안테는 세딘이 아니었다.

그는 세딘처럼 자유롭지 못했다. 세딘처럼 충성을 바치지 않겠다고 말할 순 없었다.

차라리 세딘처럼 고금에 드문 실력자라면 다른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테는 고작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었다. 이걸로는 부족했다.

고작, 이것으로는.

그러니 지금은 대답해야 한다.

안테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답했다.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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