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축하드립니다, 각하!”
“정말이지 저는 처음부터 소공작의 우승을-”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람디샤의 황궁.
연회장에서는 대회의 우승자를 위한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황궁 주최의 대회인 만큼 축하 파티도 성대했다.
수도의 귀족뿐만 아니라 온 제국의 귀족이란 귀족은 다 모인 듯했다.
“하하, 축하는 내가 아니라 내 아들이 받는 게 맞겠지. 안테, 이리 와서 인사드리거라.”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마키어스 공작가였다.
모든 귀족들이 공작에게 말을 걸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공작은 자신이 우승한 것처럼 온갖 아부를 즐기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소공작. 이제 더 이루실 게 없으시군요. 이렇게 어린 나이에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인 데다가 대회의 우승자이시니까요.”
“맞습니다. 혹시 아직 약혼자가 없으시다면, 제 딸아이와 한번 만나 보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정작 주인공인 안테는 이 파티의 어떤 것도 즐길 수 없었다.
그는 오히려 아까의 소란을 겪고도 태연한 공작이 소름 끼쳤다.
“죄송합니다. 아직은 생각이 없습니다.”
안테의 참담한 표정, 그리고 사교성이라곤 전혀 없는 대답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하하. 이놈이 여자에는 통 관심을 갖지 않으니….”
공작은 그런 안테의 어깨를 꽉 잡으며, 애써 분위기를 살려 보려 노력했다.
“아닙니다. 역시 검술에만 정진하는 소공작이시기에 우승도 하신 것이겠지요.”
“맞습니다. 오히려 대단하신 것이죠.”
다른 귀족들도 억지로 웃으며 안테를 치켜올렸다. 하지만 안테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정당한 우승자가 아닙니다.”
다시 한번 정적이 찾아왔다. 귀족들은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옆에서 잠자코 듣고만 있었던 키릴도 난감한 얼굴로 형을 보았다.
“잠깐 실례하겠소. 이놈이 겸손을 너무 떨어서… 안테, 이리 와 보거라.”
결국 참지 못한 공작이 안테를 끌고 발코니로 나왔다.
“정신이 나가기라도 했느냐? 거기서 감히 그런 말을 해?”
“진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공작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아까 황제 폐하의 하문에도 그딴 식으로 대답한 주제에, 무슨 염치로 네가 이 연회를 망치느냐?”
“….”
그랬다. 우승 당시 황제의 질문에, 안테는 그렇게 대답했다.
‘…우승자를 위한 연회에서 대답하겠다라.’
그렇게 말하는 황제의 목소리에는 흥미로움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어찌나 대단한 아들을 키웠는지, 공작!’
그때 마키어스 공작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나 안테만은 꼿꼿했다.
“이 파티에서 대답하겠다고? 정신이 나간 게냐?”
안테는 이 자리를 견딜 수가 없었다. 황제의 검을 받아들인 건, 황가와 척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충성을 바칠 상대를 택하지 못한 것도, 그저 가문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그래. 네놈은 축하받을 자격이 없다. 하지만 마키어스는 자격이 있다.”
공작은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마키어스 가문 역사상 단 한 번도 우승자를 배출하지 못한 적이 없었다. 네놈이 우승자가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어!”
“…우승자는 카시유 백작가의 그 영애가 되어야 했습니다.”
“영애가 아니야!”
짝.
불길한 마찰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안테의 고개가 돌아갔다.
공작이 분을 더 참지 못하고 손을 올린 것이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 알 수 없는 평민 계집년이 우승자가 되어야 했단 말이냐? 네가 아니라? 네놈은 억울하지도 않아?”
“…어떻게 감히 억울하겠습니까. 그녀가 가장 강했으니, 그녀가 우승해야 했습니다.”
공작은 한 번 더 손을 올렸다. 하지만 빨갛게 달아오른 안테의 뺨을 보고 이내 손을 내렸다.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안테는 한때 존경했던 아버지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물었다.
“아까 세딘 경이 말한 건 대체 뭡니까. 설마 이딘 황녀께서 말씀하신 것 외에도-”
“입조심하지 못해!”
공작은 안테의 얼굴에 대고 삿대질했다.
“황궁에는 벽에도 귀가 있다는 말, 아직도 모르느냐?”
이런 상황에도 그저, 본인만을 생각하시는 건가. 안테는 환멸을 느꼈다.
“네놈이 정 가문을 위해 비위 하나 맞춰 줄 수 없다면, 그래, 좋다.”
공작은 넥타이를 거칠게 풀며 말했다.
“하지만, 망치지는 마라. 여기서 네놈의 어리석음이나 반성해!”
쾅.
공작은 안테를 남겨 두고 발코니에서 나가 버렸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발코니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안테는 잠긴 문고리를 내려다보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이깟 문고리쯤, 얼마든지 부수고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용기가 없었다. 가문에, 아버지께 저항할 용기가. 그에게 주어진 명예와 권력을 버릴 용기가.
참아야 했다. 이 순간들을 참아야만 지키고 싶은 이들을 지킬 수 있었다.
안테는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제국의 달은 그에게도 공평하게 밝았다.
그 달을 보고 있자니 스스로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한심한 놈….”
그때,
“그거, 나한테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
그를 구하러 온 목소리가 있었다.
***
“그거, 나한테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
갑작스럽게 등장한 목소리에, 안테는 경악했다.
“르네?”
“안녕, 오라버니. 솔직히 말해서 진짜 한심하게 앉아 있긴 하네.”
[<악랄한 피의 교주>님이 너 그렇게 사람 뼈 때리는 말만 하면 안 된다고 조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