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2화 (92/137)

92화.

세진이 현관으로 들어오기 직전, 이영은 옵션 창을 띄웠다.

그리고 손가락을 [(1). 이대로 김이영으로 남기]로 향했다.

그러나 그 순간,

“이영아, 나 왔어.”

세진이 한 번 더 이영을 불렀다.

이영은 어쩔 수 없이 옵션 창을 껐다.

“아, 안녕…?”

반말 써도 되겠지? 이영은 어색하게 하하, 웃으며 고개를 내밀다 그대로 굳었다.

“세딘…?”

“응?”

“이게 어디서 혀 짧은 소리야. 성인 된 지 한참 된 애가.”

강 여사가 이영의 등짝을 찰싹, 때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틀림없었다. 초록색 눈 대신에 검은 눈이 자리 잡고 있었고, 서구적인 외모 대신에 한국적인 외모에 더 가까웠지만-

“오늘 몸 안 좋았다며. 그래서 왔어.”

세딘이었다.

이영은 그대로 굳어서, 아예 움직이질 못했다.

아니, 네가 왜 여기에서 나와…?

“아유, 세진아. 잘 왔어. 이리 와. 밥부터 먹자.”

강 여사는 황급히 세진을 자리에 앉혔다.

“얘, 이원아. 밥상 세팅 좀 해.”

“예예….”

이원은 휘적휘적 일어나서 강 여사를 도와 밥상을 다 차렸다. 이영의 아빠, 김 부장도 숟가락 세팅을 마친 후 강 여사를 자리에 앉혔다.

“내가 할게. 당신은 앉아서 세진이랑 놀아 줘.”

“그래 그럼. 오늘은 당신의 날.”

이럴 땐 아주 그냥 환상의 커플이셔.

이영은 자기 없이도 잘 굴러가는 가족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영아. 괜찮은 거 맞아?”

그때, 세진이 이영을 불렀다.

아니, 들어 보니까 목소리도 똑같네. 이영은 당황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응….”

“너는 왜 갑자기 세진이한테 내외해? 평소엔 아주 죽고 못 살았으면서.”

이원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내외하긴 뭘….”

그거야 진짜 내외하고 있으니까!

이영은 이를 깍 깨물었다.

“오늘 정말 컨디션 안 좋아 보이네. 열나나?”

세진이 이영의 이마에 손을 올려 두었다.

“열은 안 나는데. 밥 잘 챙겨 먹고 다니는 거 맞지? 혹시 누가 요즘 괴롭혀?”

“아, 아니.”

“너한테 뭐라고 하는 사람 있으면, 나한테 말해 주기로 한 거. 안 잊었지?”

이거 어째 데자뷔가 느껴지는데.

“쟤 아주 잘 살고 다녀. 쟤가 누구한테 괴롭힘당하고 살 성격이야? 걱정 말아라, 세진아.”

강 여사가 쯧, 하고 혀를 찼다.

“그런 거보단 둘이 날은 언제 잡을 건지나 말해 봐.”

날?

무슨 날? 장날?

“아, 저는 이영이가 편한 날이면 언제든 좋습니다.”

무슨 날인데. 왜 나만 안 알려 주는 건데.

“사람은 너무 많이 부르지 말고. 조촐하게 하기로 했다고?”

“네. 이영이가 그게 편하다고 해서요.”

설마 지금.

“그래. 너네 둘이 좋다는 대로 해야겠지. 식장은 다 알아봤고?”

“네. 제가 어제 계약하고 왔어요. 이영이 왔다 갔다 하면 피곤하니까요.”

“아유. 진짜 세진아. 우리가 무슨 복이 있어서 너 같은 애가 들어왔을까.”

내 결혼식 얘기야?

***

이해도 잘 안 되는 결혼식 준비 이야기와, 어마어마하게 큰 다이아몬드 반지 이야기가 끝나고 나니 모두 밥을 다 먹은 후였다.

“참외 깎아서 가져다줄게. 둘이 들어가서 놀아.”

김 부장님의 싱글벙글한 대사 후,

“방문 좀 열어 두는 거 잊지 말고.”

강 여사님의 걱정스러운 말까지.

전부 환장, 대환장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홀린 듯 이영은 세진과 방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이영은 아까부터 계속 그녀를 압박하는 제한 시간 시계를 힐끗, 보았다.

00:04:31

거 되게 살벌하네.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어서 선택해야 해.

“혹시 내가 섭섭하게 한 거 있어, 이영아?”

“응?”

이영은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세진은 이영의 손을 잡아당겨, 침대에 앉혔다.

그리고 본인은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오늘 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 식사하는 내내 말도 거의 없었고.”

“그런 건 아냐.”

그냥 네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내가 아는 애랑 너무 닮아서 그런 거지.

이영은 차마 하지 못할 뒷말을 삼켰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세진은 이영의 손을 자신의 뺨에 대었다.

정확히, 세딘이 자주 하던 행동이었다.

“나에겐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는 거, 알고 있지?”

“….”

너무 똑같잖아.

이게 어떻게 다른 사람이라는 거야?

00:02:13

“세진아. 만약에.”

“응.”

“어제까지 알던 나와, 오늘부터의 내가 다른 사람이라면.”

하지만, 어떻게… 같은 사람이 다른 세계에 동시에 있을 수가 있어?

“어떨 것 같아?”

왜 내가 이런 얘기를 하고 있지? 알지도 못하는 애한테?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너는 항상 같은 질문을 하는구나.”

“응?”

내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고?

이영은 당황해서 되물었다.

그러나 이내 깨달았다.

아.

르네도 같은 심정이었겠구나.

그 애도 항상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어디에도 마음을 주지 못했겠구나.

그 애도-

“그리고 나는 항상 같은 대답을 할게.”

이 애를 좋아하면서.

00:00:58

“네가 어떤 사람이든, 어떤 사람이 되든.”

확신을 주지 못했겠구나.

세진은 이영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서서히 고개를 들어 올려 미소 지었다.

“또 어디에 있든, 언제든.”

그 미소는 정확히 세딘과 같아서,

“나는 너와 함께할 거야.”

00:00:03

이영은 결국 다시 한번 옵션 창을 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선택지로 손가락이 옮겨졌다.

(2). 르네 마키어스의 몸으로 돌아가, 퀘스트를 마저 깨기.

로.

00:00:00

[띠링!]

[특별 옵션 선택 완료!]

[옵션 (2)를 선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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