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6화 (106/137)

106화.

카리스 백작령.

그곳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카리스 백작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카리스 백작가는 리안 카리스라는 거물이 나오기 전에도, 이미 꽤 명성 있는 가문이었다.

수도와 꽤 가까운 큰 영지가 그를 증명했다.

다만, 빈곤했을 뿐.

무능한 데다가, 빚만 질 줄 아는 카리스 백작 덕분에 카리스 백작가는 착실하게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신의 은총과 사랑을 듬뿍 받은 리안이 태어나자 판도는 금세 뒤집혔다.

벨루아교는, 신전이 성녀를 홀대했다는 말이 나오길 원치 않았다.

그래서 백작가의 빚을 모두 갚아 주고,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애초에 리안의 존재만으로 많은 헌금을 받았기에 무리도 아니었다.

그러나 대신 백작은 정치계와 사교계 모두에서 철저하게 멀어져야만 했다.

리안의 명성에 누를 끼칠까 걱정한 교단에서, 백작가 전체의 활동을 제한한 것이다.

그래서 카리스 백작의 불만은 매우 커져 있는 상태였다.

특히나, 자신의 동의도 없이 리안이 마키어스 소공작과 약혼하려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더더욱.

“아무리 그 애가 성녀라지만, 이건 너무한 일 아니오!”

쨍그랑-!

카리스 백작은 거센 손길로 와인 잔을 밀쳤다.

최고급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사치스러운 잔은, 맥없이 깨지고 말았다.

카리스 백작 부인은 참담한 심경으로 유리 파편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 또한 자신의 남편이 얼마나 무능하고 탐욕스러운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힘이 없었다.

애초에, 이 백작가에 힘이 있는 사람 자체가 없었다.

오로지 목소리만 큰 백작이 있을 뿐.

“어딜 계집아이가, 제 가문과 상의도 하지 않고! 이 아비와 상의도 하지 않고 약혼을 하려 한단 말이오!”

딸의 실종 때에는 이렇게 목소리 한번 내지도 못했으면서.

하다못해 교단에, 수색 한 번이라도 더 해 달라는 말도 못 하던 인간이.

백작 부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리안이 워낙 영특한 아이니, 알아서도 잘했겠지요.”

“영특해 봐야, 계집아이 아니오! 어딜 귀족가 영애라는 게….”

카리스 백작은 이를 부득, 갈았다.

만약 리안이 이딘 황녀의 궁에 머무는 게 아니었다면, 진작 찾아가서 단단히 혼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딘 황녀의 궁에 있다가…

“더군다나 또 실종이라니! 몸가짐을 어떻게 하면-”

“보리스!”

“…!”

백작 부인의 일갈에, 백작은 움찔했다.

“당신의 딸이에요. 성녀이기 전에 당신의 딸이라고요. 어떻게 말을 해도…!”

카리스 백작은 얼굴을 확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말은 그렇게 해도, 자신의 말이 심했다는 건 알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당신은 화도 나지 않나요? 마키어스 공작가에서 또 우리 아이를 괴롭혔다는데. 그 공녀가 또 우리 아이에게 파티장에서 창피를 줬다는데!”

당연히 백작도 그 소식은 들은 상태였다.

그 일 때문에 약혼이 흐지부지되었던 거니까.

그러나 백작은 영 맹숭맹숭한 반응이었다.

“뭐, 화가 난다고 해서 내가 어떻게 하겠소.”

“항의라도 해야지요!”

백작 부인은 버럭, 화를 냈다. 그러자 백작도 움찔했다.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항의를 한단 말이오?”

“뭐라도 해야지요. 우리 집안이 힘이 없어 황가도, 공작가도 우리 리안을 핍박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거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백작은 떨떠름하게 혀를 찼다.

“부인. 내 부인의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오. 하지만….”

백작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 애는 우리를 잊은 게 틀림없소. 그러니 우리도 그 애를 잊는 게 맞지 않소?”

백작은 나름대로 자신의 부인을 설득하려 했다.

얼마 후면, 황궁에서 보낸 사람들이 온다.

그중에서 이시르 황태자와, 마키어스 공작가에서 보낸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건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리안이 그들과 척을 졌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곧 마키어스에서 사람을 보낼 것이오. 몬스터들의 습격을 대비해서라는군.”

백작은 애써 침착한 척, 말했다.

“리안 그 아이는, 우리 영지가 어려울 때조차도 얼굴을 비추지 않잖소. 하지만 그분들은 우리를 도우러 오고 있고.”

백작의 입장은 이러했다. 돌아올지 안 돌아올지 알 수 없는 딸보다는, 당장 그들을 도우러 오는 공작가의 눈치가 보였다.

더군다나 몬스터 웨이브라니.

리안의 실종으로 인해 신전의 지원이 눈에 띄게 줄어든 지금, 백작가는 몬스터 웨이브를 막을 힘이 전무했다.

“…자식은 부모를 잊어도, 부모는 자식을 잊을 수 없어요.”

당신은 아닐지 모르지만.

백작 부인은 조용히 울분을 삼켰다.

그녀의 남편은 입만 살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딸을 핍박한 사람에게 제대로 복수할 예정이었다.

카리스 영지를 구하러 오는 것이어도 상관없었다.

이깟 영지, 그녀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의 딸, 리안은 오롯이 그녀의 딸이었다.

그래서 백작 부인은 복수의 칼을 갈았다.

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

카리스 백작령 초입.

몬스터 웨이브가 있을 거라는 소문 때문에 분위기가 흉흉해진 와중.

‘아니, 그런데 저 공녀는 왜 여기까지 온 거요?’

‘낸들 아나.’

‘다른 분들이야 능력이 있지만… 저 공녀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혼자 태평한 사람이 있었다.

“흐아암.”

다 들려 이것들아. 졸려 죽겠네.

르네는 입을 있는 대로 벌려서 하품을 했다.

“…공녀는 참….”

그 옆에서, 이시르가 질린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제가 뭐요.”

불만 있어?

르네는 이시르를 노려봐 주곤, 말 위로 엎어졌다.

[<유혹의 군주>님이 나는 저 아이의 마음 다 이해한다며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파도와 치유의 왕>님이 격렬하게 동의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