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다시 한번 물어볼게.”
그녀는 남자의 가슴을 찌르는 손끝에 힘을 모았다.
“대답 여하에 따라 당신과 당신들 족속 모두의 운명이 결정될 거야.”
이대로 한 번만 더 찌르면-
“왜 따라왔어?”
남자는 물론이고, 주변의 생명들을 모두 즉사시킬 만큼의 힘을.
“르네.”
의외로 그런 르네를 저지하는 건, 할란이였다.
남자는 오히려 입 하나 뻥긋 못 하고 굳어 있었다.
“진정하고 힘 조절해라.”
할란은 ‘균형의 수호자’답게, 불필요한 살생을 걱정하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힘이 개방되면 이 일대가 전부 몰살될 테니까.
“얘가 대답하면.”
그러나 남이 말한다고 들을 르네였다면, 애초에 이런 힘을 드러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남자는 할란의 말에 안심했다가, 르네의 대답에 다시 얼굴이 죽어 버렸다.
“르네.”
“얘가, 대답하면.”
르네는 절대로 마음을 바꿀 기색이 없어 보였다.
차라리 분노한 것 같았다면, 설득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은-
“…대답해 주거라, 인간.”
아무 감정도 없는 허무 그 자체였다.
이런 존재는 어떤 것으로도 돌릴 수 없다.
차라리, 이쪽이 마음을 돌리길 바랄 수밖에. 할란은 한숨을 쉬고 남자에게 고갯짓했다.
그러나 남자는 굳은 나머지 입을 여는 방법마저 잊은 것 같았다.
결국 할란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할란은 남자의 이마에 손을 댔다.
그러자 남자의 눈이 풀리면서, 입이 벌어졌다.
“황태자…와 용병…왕이 사라진 후로… 감시하기로 해서…”
“나를?”
르네는 허, 하고 웃어 버렸다.
간이 제대로 부으셨구만. 아직 좀 덜 맞았나?
“그래서… 따라왔…는데… 외간… 남자와 있어서… 증거를… 잡으려고….”
“증거를 잡아서 뭐 어쩌려 했는데.”
“다시… 황태자… 부르려… 했….”
보통 악질이 아니었다.
르네는 안 봐도 알 것 같은 줄거리에 이를 악물었다.
대충 르네에게 불륜이라며 협박해서, 이시르와 세딘을 부르도록 하려 했겠지.
그러다가 몬스터들에게 붙잡혔을 것이고.
솔직히 그러든가 말든가 상관은 없었다.
문제는.
이제 이 망할 놈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였다.
“르네. 이 인간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할란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뭘 어째.”
르네는 망설임 없이 손을 휘둘렀다.
할란은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섬광이 내리쬐고-
“!”
남자가 쓰러졌다.
“르네!”
“왜 자꾸 불러 대.”
내 이름도 아닌데. 르네는 망설임 없이 남자의 다리를 밟고 앞으로 나아갔다.
할란은 한숨을 쉬고 남자를 힐끗 보았다.
죽지 않았다.
그저 기절한 것뿐.
마지막 순간에 르네가 자비를 베푼 것이었다.
“기억은 안 지워도 되겠느냐.”
“내버려 둬.”
이젠 뒷수습할 기분도 안 드니까. 르네는 손을 휘적였다.
[스킬 발동! - 축지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