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화르륵.
불의 입맞춤에, 동공이 열리고 새로운 불씨가 터져 나왔다.
-르네.
할란이 눈을 뜬 르네를 보고 미소 지었다.
아주 잠깐 의식을 잃은 것인데, 이렇게 반가울 수가.
그러나 반가움이 무색하게, 르네는 건방진 코웃음을 쳤다.
…코웃음?
할란은 당황해서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아유, 나 참. 사람 자고 있는데 사심 채우기는, 도마뱀.”
-사심이라니! 어찌 그런 망발을…!
“아유, 됐어. 됐어. 변명 넣어 둬. 이미 네 흑심은 모두 눈치챘으니까.”
-흑심?! 흑심이라고 한 것이느냐, 방금? 너는 어찌…!
할란은 누가 불 아니랄까 봐 확 붉어진 얼굴로 항의하려 했다.
하지만 르네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옆을 돌아보았다.
당연하게도, 세딘은 아직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회복하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겠지.
르네 같은 경우는 할란과 <유혹의 군주> 양측 모두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깨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할란이 자신의 생명력의 많은 부분을 넘겼고, <유혹의 군주>가 자신의 힘을 태워서 그녀의 영혼을 찾으러 왔기 때문에.
세상 무서울 게 없는 두 존재가 그녀 하나를 위해 희생했기 때문에.
그러니 이렇게 받은 목숨, 헛되이 쓸 수가 없었다.
르네는 순간 훅,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았다.
이게 다-
“이 빌어먹을 놈아.”
저 자식 때문이었다.
르네는 온몸을 꺾으며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탑의 주인>을 노려보았다.
리안의 몸으로, 모든 고통을 받아 내고 있는 그를.
-리안이 싸우고 있다.
할란이 두 손으로 르네의 눈을 가렸다.
그러자, 그가 보는 것이 르네에게도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아주 거대한 어둠에 맞서 싸우는-
“…저게 리안이야, 설마?”
아주아주 작고 파리한 빛.
-그러하다.
이런 미친.
르네는 인상을 팍 쓰고 있었다. 애초에 이거 밸런스가 안 맞는 싸움이잖아.
턱없는 분투인데, 어째서 너는-
“대체 어떻게… 저렇게 강할까.”
고작 20년 남짓하게 살아온 네가, 몇백 년을 산 나보다 강하게 느껴지네.
리안.
-물론 저 아이도 강하기는 하다.
“…?”
-하지만 잘 보거라.
할란은 손을 살짝 움직이더니, 더욱 큰 세계를 그녀에게 보여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저게 뭐야?”
르네는 당황해서, 뒷걸음질 쳤다.
할란의 손이 풀리고, 다시 그녀의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방금 그거, 뭐였어?”
르네는 잔뜩 흔들리는 눈으로, 할란의 팔을 잡았다.
“뭐였냐고 묻잖아!”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하지만 저 애가 왜, 어떻게 저기에 있어!”
르네는 뒤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그곳엔, 리안이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리안은 혼자 싸우고 있지 않았다.
“어떻게 르네가 저 안에 있는 거냐고!”
할란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줄 알고 보여 준 것이었다.
그러나 할란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도 알 수 없었으니까.
그저, ‘지금의 르네’와 아주 많이 비슷한- 그러나 확연히 다른, 영혼 하나가 저 안에 있다는 것만 알 뿐.
그리고 그 영혼이 리안과 함께 <탑의 주인>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것만 보일뿐.
르네는 대답 없는 할란에 화가 나, 다시 한번 입을 열려 했다.
그러나 그때,
[<악랄한 피의 교주>님이 채팅 창을 뒤흔듭니다!]
[<악랄한 피의 교주>님이 그건 내가 대답하겠노라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