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화 (120/137)

120화.

이번에는 제국이 뒤집혔다.

지옥문이 열리기 직전이었으니까!

사실, 르네가 게헨나의 문을 만들고 있던 바로 그때.

황궁에서는 대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그것도 무려 황제 주선 하에.

이딘 황녀와 수도에 남아 있는 모든 유력 귀족들이 전부 참석한 회의였다.

회의의 안건은 하나였다.

몬스터 웨이브.

그러나, 회의에 참석한 이들은 모두 진짜 안건을 알고 있었다.

명령 불복종 중인 황태자와 용병왕, 공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안 그래도 눈엣가시 같던 황태자 파를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기회였다. 황제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그건 이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자리에 모인 귀족들의 상당수는 즐거운 마음으로 모여,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심기가 불편한 사람도 있었다.

예를 들면,

“…지금 제 동생이 잘못했다 이겁니까?”

안테 마키어스 공작이었다.

“분명 황태자 전하께서 르네에게 명령을 내리신 거겠지요. 르네가 이런 일을 종용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공작-”

“저희 애는 그렇게 똑똑하고 치밀하고 능력 있는 애가 못 됩니다. 그냥 살아 있는 게 다행인 아이한테, 무슨 흑막이라는 누명이라도 씌울 생각이십니까?”

뭔가 이상한데.

뭔가 이상한데 또 트집을 잡기 힘든 논리에, 귀족들은 더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 누군가가 카리스 영지에 심어 둔 수정 구슬이나 보자고 제안했다.

황태자가 뭘 하고 있는 건지나 보자고.

이번엔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안테조차도.

안 그래도 르네와 연락이 닿지 않아, 슬슬 그도 불안하던 차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황제의 명령이 떨어졌다.

카리스 영지에 심어진 수정 구슬의 화면이, 황궁 대회의실의 한쪽 벽면을 크게 메웠다.

모두가 커다란 화면으로, 카리스 영지의 울창한 숲을 구경하던 와중에-

“저건 뭔가?”

누군가가 한쪽을 가리켰다.

휙.

모두들 그가 가리킨 곳을 보았다.

그러자, 정말 뭔가가 보이는 것 같았다.

“무슨 문처럼 생겼는데요.”

“아니, 그냥 허공인데 무슨 문인가? 커다란 새겠지.”

황제는 황실 마법사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자 황실 마법사는 수정 구슬을 움직여, 그 ‘무언가’에 가까이 가도록 했다.

그러자-

“….”

“….”

“….”

말 그대로 지옥의 문이 그들의 눈앞에 드러났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또 아무도 저게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논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으니까. 저게 무엇인지.

모든 것이 타고 남은 도시가 저러할까, 싶은 잿빛의 색.

인간이 아니라 오로지 악마만이 열 수 있을 것 같은 무게의 문.

그러나 그 모든 것들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아아아아

문에 새겨진 채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절규하는, 악마들과 인간들이었다.

분명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저 끔찍한 비명만은 심장을 파고 들어오는 듯 했다.

단 한 번도 기가 꺾이지 않던 황제조차도 기가 질리는 광경이었다.

이 절망적인 광경 속에서, 그나마 단 하나 다행인 것은.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이성을 되찾고 입을 연 건, 이딘이었다.

“수산나 경.”

“…예, 전하.”

황실 마법사, 수산나 마할은 간신히 대답했다.

“저것이…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오?”

휙.

대회의실에 있던 모든 이들이 수산나를 쳐다보았다. 제발 부인해 달라는 얼굴로.

그러나 수산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분명 그것일 텐데, 인정하는 순간부터 재앙이 일어날 것 같았다.

“…저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전하. 제가 직접 본 적이 없을 뿐더러….”

인류사에서 저걸 본 사람이 없을 걸요. 대체 누가 저런 것을 본 적이 있단 말입니까? 그런 놈은 저 안에 있겠죠.

수산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매우 냉철하고 이성적인 마법사였다.

“하지만 대책을 세워야 함은 분명해 보입니다.”

“저게… 대책을 세울 수나 있는 그런 것이오?”

옆에서 조용히 공포에 질려 있던 귀족 하나가 읊조렸다.

인간이, 저런 것에 대항할 수나 있다고?

그 의문은, 순식간에 모두의 마음에 전염되었다.

“잠깐!”

그때, 아까 가장 먼저 문을 발견한 이가 손을 들었다.

“문 앞에 사람이 있소!”

“…사람?”

마족이 아니라?

모두들 의문을 삼켰다. 그러나 수산나는 빠르게 수정 구슬을 이동시켰다.

그러자, 정말로 사람이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옆에 드래곤도 있는데?”

드래곤과 사람이었다.

우당탕탕.

그때, 누군가가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쓰러질 정도로 급하게.

“마키어스 공작?”

안테 마키어스였다.

안테의 옆에 있던 이는, 당황해서 안테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안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영상에만 집중했다.

“왜 그러는…?”

“마키어스 공녀군.”

모두의 의아함에 대답한 건, 안테가 아니라 이딘이었다.

이딘은 눈에 이채를 띠었다. 이거 일이 흥미롭게 되고 있는데.

“그럼, 그 옆에 드래곤은…”

“나를 물 먹였던 드래곤이고.”

아무도 차마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모두가 영상 속 두 사람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대체 저 둘은 저기서 무얼 하고 있단 말인가?

“열립니다!”

그때, 지옥의 문이 아주 조금씩 열리고-

“오, 벨루아시여.”

“저게…. 저게 다 전부 마족입니까?”

“세상에.”

말 그대로 마魔가 강림했다.

수천만 마리의 마물과 수만 개체의 마족들이 아주 작게 열린 문틈으로 나오려고 발악하고 있었다.

그 모습도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라, 모두가 입을 틀어막을 뿐이었다.

“잠깐, 혹시 소, 소리도 들을 수 있소?”

“아, 네.”

수산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이젠 소리도 생생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아유. 참 많아, 그치? 물량 공세 한다고 전부가 아닌데.

가강 먼저 들린 건, 졸음 가득한 목소리였다.

누가 봐도… 르네 마키어스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안테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을 수가 없었다.

***

다시, 카리스 영지.

할란은 이게 다 보여 주기를 위한 연극임을 알면서도, 질릴 수밖에 없었다.

누가 연극을 이 규모로 한단 말인가.

-…너는 어이하여 긴장이라는 것을 하지 않느냐.

“아, 거, 다 잔챙이들인데 뭘 걱정하란 거야.”

이게 정녕 드래곤과 인간이, 지옥의 문을 앞에 두고 나누는 대화가 맞나?

“그리고 이미 다 허가도 받았으니 괜찮아!”

-…대체 어디에 허가를 받았다는 것이냐.

“제일 높은 애한테 받았어! 원래 직속으로 맨 윗대가리 찌르는 게 최고거든!”

너 사회생활 다시 배워야 할 것 같은데.

할란과, 수도의 귀족들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그야말로 시공간, 종족을 뛰어넘는 공감대 형성이었다.

그러나 르네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 이 게헨나의 문은, <유혹의 군주>의 영지와 이어지는 문이 아니었다.

일부러, <유혹의 군주>와 가장 사이가 좋지 않은 대마족의 영지와 연결해 둔 것이었다.

물론, <유혹의 군주>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르네는 힐끔, 채팅 창을 보았다.

허락을 받긴 받았는데, 진짜 괜찮은 거 맞겠지?

[<유혹의 군주>님이 그깟 마물 몇 놈과 잔챙이 마족 몇 정도는 청소되는 게 더 낫다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내 휘하의 아이들도 아니고, 내 적의 아이들이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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