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1화 (121/137)

121화.

“….”

“….”

“….”

수도에서 이 기가 막힌 광경을 보고 있던 이들은,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상하다. 우린 분명히 황제가 황태자 파들 기 좀 죽이려 한대서 모인 것뿐인데. 잘못 들었나? 기가 죽는 건 저쪽이 아니라 이쪽이었나?

사실 대부분은 이 상황 자체를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중 몇몇 귀족들은 르네가 소드 마스터 ‘이영 카시유’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 몇몇 귀족들은 르네가 드래곤의 계약자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르네가 마키어스의 인간답게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이중 누구도 르네 마키어스가 드래곤보다 강하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아니, 누가 알았겠는가? 한낱 인간 따위가 드래곤과 비견될, 아니 어쩌면 더 월등할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껏해야 갓 소드 마스터가 된 인물. 운이 좋다면 세딘 안시라드와 비슷하고, 필경 이시르 폰 람디샤보다는 약할.

그게 가장 높게 쳐준 르네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지금 저 모습은… 이시르나 세딘은 아예 비교 대상조차 안 되지 않나?

지금 비교는 같은 인간끼리 하는 게 아니라, 드래곤이랑 해야 할 판이지 않나?

그러면… 최소한 르네 마키어스는 인간들 중에선 가장 강한 인물이라는 게 되지 않나?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르네 마키어스가?

정말로?

이렇게 너무 말도 안 되는 사실이다 보니,

그나마 이 상황을 ‘인정’하기라도 하는 쪽은 안테와 이딘밖에 없었다.

안테는 막내가 순식간에 세계 최강자가 되어 버린 것에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그대로 굳어 있었다.

‘저놈 자식…! 사고 치지 말랬더니…!’

분명 시선을 끌면 적이 생기니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 경고했는데.

아니, 근데, 저 정도의 무위면 적이 있어도 그냥 손짓 한 번이면 다 죽이겠는데.

지금 내가 쟤 걱정을 할 때가 아니라 적 걱정을 할 때인 건 아닐까?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안테는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그냥 좀 많이 강한 정도인 줄 알았던 내 동생이 알고 보니 세계 최강자?!

이런 웃음도 나오지 않는 생각이 드는 것을 애써 멈추기 위해.

이딘도 그렇게 대단히 달랐다고 할 수는 없었다.

다만 이딘은,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역시 내가 사람 보는 안목 하나는 괜찮다고.

‘적에서 이해관계가 맞는다면 아군이 될 수 있는 사이로 진작 돌려놔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제대로 초상 치르게 생기지 않았겠는가. 이딘은 자신의 탁월한 안목에 감탄했다. 어쩐지 아르웬이 그렇게 설설 기더라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아르웬이다. 역시 그녀는 아르웬과 르네 사이에는 더 많은 일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딘은 슬쩍 다른 귀족들을 둘러보았다. 르네와 애매한 사이인 그녀도 이렇게 등골이 서늘할 지경인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어서.

아니나 다를까, 이 자리에 있는 귀족들의 9할이 푸르죽죽한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다들 그간 르네에게 했던 짓이 있다 보니 자리가 편할 수 없었다.

이중에서 그녀와 가장 온건하게 지냈던 이도, 최소한 르네의 험담 정도는 해 봤을 정도니까.

심하면, 르네에게 발을 걸어 넘어트린다거나 실수인 척하고 와인을 드레스에 쏟은 이들도 있었고.

하여튼 간에 이중에서 그나마 르네에게 잘한 사람이 이딘이라면 말 다한 정도였다.

이제 그들은 너무 절망한 나머지, 아예 르네를 원망하기까지 했다.

아니, 이렇게나 강했으면서, 대체 왜 여태까지 힘을 숨긴 건데?

그리고 그 원망은 당연스럽게도 안테로 돌려졌다.

“공작 각하!!”

왜 너는 여태까지 말 안 했냐!

…라는 원망으로.

하지만 그들이 알아야 하는 게 있었다.

“흐음.”

이제 안테는 세계 최강자의 오빠였다.

그들의 사이가 썩 화목하고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어도, 너희보단 낫다 이거야.

“저와 제 동생에게 무슨 유감이라도?”

움찔.

그를 불렀던 귀족들이 움찔해서 입을 다물었다.

그도 그럴게- 지금 안테의 미소가 아주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귀족들은 애써 다시 고개를 돌렸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아니, 그럼 방금 그게 뭐였습니까?”

귀족들은 다시 수산나를 보았다.

그러나 수산나는 멍하니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황제가 직접 그녀에게 하문했다.

사실 이중에서 가장 심란한 건 황제였다.

눈에 넣으면 아주 아플 아들놈의 약혼자가 저렇게 대단한 인간이었다니.

이제는 황위를 물려주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지 않나.

그의 기분은 이제 아예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해야 할 질문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마할 경. 지금 저게 무엇인지 묻고 있지 않나.”

황제의 말이 들려오자 수산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는 회한과 짜증이 가득했다.

당연했다.

‘내가 왜 이런 놈들을 위해서 일하고 있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마법을 행하는 사람이다. 마법을 행하는 자치고 마법을 숭상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솔직히 마법사들은 벨루아 위에 마법이 있다고 믿는 이들이었다.

그런 사람이 방금-

“시간을 주십시오.”

마법 그 자체를 목도했다.

“제가 직접 가서 여쭤보고 올 테니까요.”

그런데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수산나는 황제의 허가가 떨어지기도 전에 벌떡 일어났다.

오랜만에 그녀의 심장이 뛰는 순간이었다.

아마도 성좌들 중 누구라도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번호표 뽑아라. 너는 르네의 9,889,789번째 팬 정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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