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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화 (122/137)

122화.

“…게헨나의 문이라.”

대신전, 데서스 대주교의 집무실.

데서스는 아주 낮은 침음을 흘리고 있었다.

게헨나의 문이 어떤 것이던가. 벨루아께서 창조하신 위대한 것들의 부산물이자 찌꺼기들이 사는 마계의 문이 아니던가.

사실상 지옥의 문이라고 불려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문이었다.

벨루아교에 몸을 담은 사람이라면 그 문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퇴치해야 할 마족의 문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짜 퇴치할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 리도 없었다.

당연했다. 인간이라면 절대로 마족과 싸울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심지어 대주교급이나 되는 데서스도, 중급 마족 한 개체 정도나 간신히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상급 마족이나 귀족, 마왕급은 아예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급 마족이라 하더라도 한 번에 상대할 수 있는 건 두세 개의 개체 정도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데서스가 역대 대주교 중에서 손에 꼽히는 신성력 보유자라 가능한 일이었다.

“정말로 르네 마키어스가 그것을… 닫았다고 하셨습니까?”

그런데, 지금 고작 한 사람이 수천, 수만 마리의 마족을 학살했다고 말하는 건가?

“닫은 정도가 아니외다. 완전히 몰살해 버렸소. 열린 문틈 사이로 나온 모든 마족들을 단 두 번의 공격만으로-”

“고작 몇 마리 정도 빠져나온 게 아니고요?”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소, 대주교. 그건 아주 적게 잡아도, 수천 마리의 마족이었소.”

데서스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게 인간의 경지란 말인가?

“그 전에 드래곤이 한 번 공격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럼-”

“아니. 드래곤의 브레스도 확실히 강하긴 했소. 하지만 그 브레스조차도 모든 마족들을 정리하진 못했소. 하지만 공녀의 일격은-”

데서스의 맞은편에 앉은 귀족은 작게 몸을 떨었다.

그랬다. 그는 전의 대회의에 참석해, 모든 광경을 본 귀족 중 하나였다.

데서스의 착실한 두 눈과 두 귀이기도 했고.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갈라 버렸소.”

“하지만 소드 마스터라고 해서, 마족을 대할 때 특별히 더 강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고작해야 상급 마족 하나 정도를 상대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래서 문제인 것이지.”

그 귀족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그러니 지금 공녀가 ‘인외’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겠소?”

그랬다. 지금 고위 귀족들 사이에서는 르네를 ‘인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일부는 그녀가 진정 성녀였던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소.”

“성녀라고 하셨습니까?”

데서스는 얼굴을 확 구겼다. 단순히 르네가 ‘인외’급의 강자라고 불리는 것과, 성녀라고 불리는 것은 결이 달랐다.

“그렇소. 그렇지 않고서야 마족들을 상대로 그런 무위가 가능할까?”

“….”

데서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도 사실 성녀가 아니라면 그런 게 가능할지 의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설령 성녀라 할지라도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인가?

고작 인간 하나가 지옥의 문을 닫는다고?

“성녀가 아니라면 더 문제지. 그건…”

“교황의 권위조차도 흔들릴 정도의 공적이니까요.”

귀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녀 측에서는 뭐라고 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시끄럽게 일을 벌였으면, 아주 기세가 등등할 텐데.”

“그게….”

귀족은 떨떠름하게 입맛을 다셨다.

데서스는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아무 반응도 없소.”

“예?”

“그야말로 아무 말도 없단 말이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

수만 마리의 마족을 학살해 놓고, 아무런 생색도 없다고?

데서스는 믿기지가 않았다. 그건 보통 공적이 아니었다. 단순히 제국을 넘어서, 대륙 전체가 그녀의 발아래에 있을 수 있는 공적이었다.

그런데 왜?

“애초에 우리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공녀가 우리에게 말해서가 아니잖소. 우리가 그녀를 염탐해서 알게 된 사실이지.”

“…그렇다면, 왜 입을 다물고 있단 말입니까?”

“알 수 없지. 그저 자신의 공적을 과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걸 수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르네 마키어스가?

데서스는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몇 번 르네를 본 적이 있었다. 오만하고, 건방지며, 자신의 위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한 그 눈.

데서스는 그런 눈을 한 자가, 그렇게 겸손할 리 없다고 믿었다.

차라리 세딘 안시라드라면 말이 된다. 그는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르네 마키어스가?

데서스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분명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걸 겁니다.”

“그럴 수도 있지.”

귀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소?”

“예?”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셨나 보군, 대주교께선.”

“…?”

“하긴 그 무위를 직접 본 게 아니니 그렇겠지.”

귀족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데서스를 이해했다. 자신도 두 눈으로 직접 본 게 아니었다면, 데서스처럼 저렇게 안일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보았다.

보았기에 무시할 수 없었고, 보았기에 잊을 수 없었다.

“그 정도로 규격 외의 존재는 말이오, 대주교.”

“….”

“남모를 꿍꿍이가 있든, 남들 다 알게 꿍꿍이가 있든 아무 상관이 없소.”

귀족은 너털웃음을 내뱉었다.

데서스는 그제야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이제야 상황의 심각성이 피부로 와 닿는 것이었다.

워낙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으니까.

“막말로 지금 공녀가 황제에게 황위를 내놓으라고 해도, 그걸 막을 존재가 있긴 하냔 말이오.”

하지만 원래 현실은 책 속 이야기보다도 더 현실적이지 못한 것이다.

***

“왜 제국을 지배하지 않으십니까?”

수산나는 차를 마시다 말고, 그렇게 물었다.

“어엉?”

그리고 르네는 술을 마시다 말고 그렇게 대꾸했다.

“대마법-”

“그렇게 부르지 마, 제발.”

한 번 정도는 기분 좋았는데, 자꾸 그렇게 부르니까-

[<악랄한 피의 교주>님이 웃음을 참지 못합니다!]

[<유혹의 군주>님이 우쭈쭈 내 새끼 무려 대마법사시냐고 배를 부여잡습니다.]

[<파도와 치유의 왕>님이 우리 르네는 고작 대마법사 아니고 대왕 마법사로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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