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5화 (125/137)

125화.

‘뭐야, 당신은?’

이영은 자신을 납치한 상대를 보았다.

다짜고짜 그녀의 팔목을 잡아챈 그 존재를.

처음에 그것은 그저 괴이한 존재처럼 보였다. 불타오르는 얼굴, 천사의 날개와 비슷하지만 완전히 뒤틀린 날개.

하지만 이내, 훤원과 바루나가 나타나 그 존재의 목에 검을 들이댔다.

‘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악마 놈이 감히 어디에 손을 대느뇨.’

‘내 계약자에게서 물러서, <유혹의 군주>.’

<유혹의 군주>?

괴상한 별명을 가지고 있네.

이영은 얼굴을 찌푸리며, 아직도 자신의 팔목을 놓지 않는 그 존재를 보았다.

뭔가 훤원이 악마라고 하는 걸 보면, 마족 계열인가 본데- 하는 상념에 빠진 그 순간,

‘너.’

<유혹의 군주>가 이영을 불렀다.

‘…왜, 왜요?’

이영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었다.

온 차원에서 제일 센 두 존재가 내 편이다, 이거야. 이제 나도 안 꿇린다고.

그러나 그런 이영의 모습은, 가련하게도 세 성좌들에게는 생쥐가 고양이 앞에서 고개를 드는 꼴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푸흡.’

웃음을 참지 못한 훤원이 결국 낄낄대며 웃었다.

‘아니, 왜 웃어요!’

‘커흠. 웃지 않았느니.’

‘웃었잖아!’

훤원은 이를 꽉 깨물고, 눈을 질끈 감으면서까지 웃음을 참았다.

바루나도 크게 다르지 않은 얼굴이었다.

오로지- <유혹의 군주>만이 어딘지 넋 나간 모습이었다.

‘일단 나와 계약하자꾸나, 어린 영혼아.’

그러나 오랜 삶의 시간이 헛된 건 아니었는지, 그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싫어요.’

다만 가차 없이 거절당했을 뿐이지.

‘…지, 지금 나를 거절한…?’

‘네.’

‘이 나를…? 나를…?’

<유혹의 군주>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는 이내 이영이 거절한 이유를 파악한 듯 했다.

불타오르던 얼굴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와우.’

온 차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 대신했으니까.

‘미안하다. 소개가 늦었구나.’

이영은 입을 벌리고, 이 말도 안 되는 미인을 쳐다보았다.

‘나의 이름은 아스모데우스.’

진명만 말한 건데도, 이미 수억 개의 설명을 들은 것 같은 효과였다.

‘나와 계약해 주겠느냐?’

아스모데우스는 그런 이영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생긋 웃으며 물었다.

‘…네.’

살다 살다 이런 미인은 처음이었다. 나 얼굴 안 보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나 얼굴만 보는 사람이었네….

‘이영?!’

훤원이 당황해서 넋이 나간 이영을 붙잡았다.

‘아니, 이놈이 어떤 놈인 줄 알고 이거를 덥석, 받아들인 것이느뇨? 설명이라거나, 그런 것들을 들어야지! 계약 조건도!’

아니, 얼굴이 개연성이고 설득력인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해요.

정말이지, 성좌명이 아깝지 않은 유혹 실력이었다.

이영은 너무나 당당하게 아스모데우스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당신의 얼굴이 이미 모든 이유네.

***

“르네의 운명은 사실 이미 많이 꼬아 버렸고….”

르네는 잔을 만지작거리며 채팅 창을 보았다.

-사실 이대로 가면, 시스템은 내게 여러 가지 벌을 내릴 거예요. 퀘스트에서 시킨 것만 하랬더니, 다른 짓만 하고 있으니까.

허무의 공간.

채팅 창 너머 세 성좌는 숨 쉬는 것도 잊고 르네의 입술만 보았다.

저 기특하고 가련한 아이가 하는 말만을 들었다.

“근데 그렇게 되면, 사실 뭐, 나도 나지만 여러분이 더 큰일이잖아.”

르네는 입술을 꾹, 깨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 500년간 그렇게 동고동락했는데. 아니지, 여러분이 일방적으로 나를 그렇게 500년간 도와주고 지켜 줬는데.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영면 하나만큼은 꼭 이뤄 줘야 하는 거잖아요.”

사람이 염치가 있으면 그래야지. 르네는 잔을 꼭 쥐었다.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그게 참 마음에 걸렸어, 나는.”

그리고 고개를 들어,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항상 곁에 있는 이들을 보았다.

-그러니, 허락을 구하고 싶어요.

세 성좌들도, 오롯이 자신들만을 마주하고 있는 계약자를 보았다.

-저, 퀘스트를 포기해도 될까요?

저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 혼자서 얼마나 앓았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

[물론이다, 이영.]

[진작에 우린 포기했느니. 저 혼자 땅 파다가 이제야 말하느뇨.]

[우리 이영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우린 무조건 이영이 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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