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제 힘을 확인하고 싶다고 하셨죠?”
르네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거만하게 다리를 꼬았다.
“…그렇소. 공녀의 힘은 실로 믿을 수 없는 경지에 다다른-”
“어떤 걸 확인하고 싶은 건데요?”
“자꾸 말을 끊…!”
“아니, 말을 확실하게 안 하시니까.”
르네는 고개를 갸웃갸웃, 양쪽으로 얄밉게도 잘 기울였다.
“정확히 뭐를 확인하고 싶으신 거냐구요.”
“공녀의-”
“공녀 아니라니까.”
데서스는 르네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러나 르네는 전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여기서 만약 누군가가 한 명을 죽일 수 있다면 그게 누구겠어?
데서스도 그 사실을 알고는 있는지, 꾹 참고 말을 이었다.
“…그대의 능력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알아야겠소.”
“어디겠어요.”
“?”
“그렇게 벨루아, 벨루아 외치던 양반이 여기선 왜 안 외쳐? 벨루아겠지.”
“….”
데서스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이 공녀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하지 않소?”
“어라, 그 말은 벨루아께서 이렇게 강한 힘을 인간에게 절대로 주실 리가 없단 말씀? 그거야말로 신성 모독 아니에요?”
“….”
“그쵸, 전하?”
“정말 그렇게 들리긴 하는군.”
이딘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러나 실실 웃으며 르네에게 동의했다.
“교단의 의심은 합리적인 것이오, 르네 양. 실제로 이렇게 ‘비상식적으로’ 강한 힘은 마왕급이나 가능한 일이니까.”
이건 조금 찔리네.
“더군다나, 그 게헨나의 문은… 교황이라 할지라도 쉽게 상대할 수 있는 문이 아니오.”
르네는 볼을 살짝 씰룩였다. ‘쉽게 상대할 수 있는 문이 아니오.’?
그냥 상대를 할 수도 없겠지.
“설령, 그 힘이 마족과 계약한 것이 아니어도 문제요.”
그렇지, 이제 본심 나오셔야지. 르네는 여유롭게 고개를 까딱였다.
“르네 양의 힘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세상에 분란을 일으킬 수가 있소.”
“분란?”
“이를테면, 이 자리부터가 그렇지.”
데서스는 이딘 쪽으로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대가 황위 계승 다툼에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겠소? 이제는 일개 ‘평민’일진데, 그런 일은 없어야지.”
“….”
이번엔 이딘이 얼굴을 찌푸렸다. 감히 교단의 사람이 황궁의 일에 개입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설령 르네가 황위 계승 다툼에 과한 영향력을 끼쳐도, 그건 황실의 일이었다.
신전에서 끼어들 일이 아니었다.
“그래요.”
“…그렇다니, 그건 무슨?”
“아니, 구구절절 맞는 말씀이시라고요.”
“그 말은…?”
“그래서 아예 그 힘을 안 쓰기로 했어요.”
“뭐?”
“진심이오?”
이딘과 데서스는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동시에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걸 원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건 맞지만.”
이렇게 순순히 받아들일 줄은 몰랐지.
데서스는 차마 그렇게 말은 못 하고 기쁨에 코만 씰룩였다.
이딘만이 참담한 얼굴로 르네를 뚫어져라 볼 뿐이었다.
“원하시는 대로 저는 빠져 드릴게요. 아예 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지내면 되죠?”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데서스는 이제 기쁨을 감출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렇게 해 준다면 매우 좋을 것이오, 모두에게.”
데서스는 일부러 ‘모두에게’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그런데요, 이건 그냥 궁금한 건데.”
“…?”
르네가 살짝 뜸을 들이자, 데서스와 이딘은 눈을 가늘게 떴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럼 무슨 일이 생겨도 절대로 저한테 ‘힘’ 좀 써 달라는 말은 안 하시겠죠? 뭐 이를테면 몬스터 웨이브라거나.”
데서스는 피식, 웃었다.
“지금까지 우리 제국은 그대가 없어도 잘해 왔소. 당연히 그대 하나 없을 지라도 괜찮지.”
“교황 성하!”
이딘이 데서스에게 경고하듯이 말했다. 데서스는 너무나도 여유만만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나 르네는 그 여유가 같잖게만 보였다.
글쎄.
‘지금’까지야 잘해 왔겠지. 당해 낼 수 있는 위험만 겪었을 테니까.
‘앞으로도’ 그럴지는 모르는 거 아닌가?
“르네 양. 우리 황궁의 의견은 다르네. 우리는 그대의 힘이 여전히 필요해.”
“그럼 황궁 측에서 저분을 설득할 의지는 있고요?”
이딘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있지만, 황제는 교황과 정면으로 맞서지 못할 테니까.
“전하, 뭘 걱정하십니까. 신전 측에서는 언제나 적극적으로 제국을 도울 것입니다. 저런 출처도 모를 힘보다야, 수천 년의 역사가 증명하는 벨루아교의 도움이 더 확실하지 않겠습니까.”
데서스는 르네 쪽을 보며 싱긋, 웃었다.
나 참, 별. 수천 년의 역사?
내 성좌들도 수천 살 드셨어요. 그런데 이 양반들도 나잇값 못 하거든?
나이만 먹으면 단 줄 아나 진짜.
[<악랄한 피의 교주>님이 뭔가 억울해합니다.]
[<파도와 치유의 왕>님이 왜 갑자기 가만히 있던 우리의 뼈를 때리냐고 항의합니다!]
[<유혹의 군주>님이 외칩니다: 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