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당장 성기사단을 소집해라.”
데서스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자신을 따라온 수행 사제를 불러 말했다.
“이미 절반은 대신전에 모여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하.”
“아니.”
데서스는 빠르게 황궁을 빠져나왔다.
“전원 소집하도록.”
수행 사제는 그의 귀를 의심했다.
전원이라니!
“방금 회의에서 황제 폐하의 동의를 받으신 겁니까?”
“아니. 그 머저리는 벨루아님을 등졌다.”
“…!”
황제에게 머저리라니. 보통 일이 잘못된 게 아닌 게 분명했다. 수행 사제는 고개를 숙였다.
“한데 성기사단의 전체 소집을 위해서는 황가의 동의가-”
“필요 없다.”
데서스의 단호한 말에 수행 사제는 흠칫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그가 내린 결정은 제국사에 남을 정도로 커다란 결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칫하면, 반역으로 몰릴 수도 있는.
황가와 벨루아교는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한 가지 규칙을 세웠다.
급한 전시 상황이 아니라면, 병력 ‘전체’ 소집은 서로의 동의를 받기로.
그러나 데서스는 수행 사제에게 변명할 생각이 없었다.
대신 그는 하늘을 가리켰다.
“지금보다 더 급한 전시 상황이 어디 있냔 말이다.”
마족들과 폭풍이 득시글거리는 하늘을.
“저 멍청한 황제가 세상을 멸망시키려 한다면, 우리가 인간들에게 보여 주어야겠지.”
“무엇을 말입니까?”
수행 사제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인간은 인간을 버리나,”
그리고 데서스는 확신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벨루아께서는 인간을 버리지 않음을.”
***
“그냥, 무소불위의 권력 정도?”
이 말을 들은 이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했다.
먼저, 이딘은,
‘합당하게 미친 인간….’
이라고 생각했다.
사고를 칠 거라곤 생각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칠 줄이야.
그리고 다른 귀족들은, 모두 저마다 눈을 마주치며 계산을 시작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이라.
가능할까? 저 황제가 과연, 자신의 권력을 내어 줄까?
만약, 내어 준다면-
“무…소불위?”
이 제국의 흐름은 어떻게 흐를까?
“네. 무소불위. 아무도 저를 건드리지 못하는.”
르네는 황제의 떨리는 목소리에도, 나긋하게 대답했다.
“참고로 헷갈리실까 말씀드리는 건데, ‘아무도’에는 황가도 포함이에요.”
르네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작게 두드렸다.
“그냥 저와 제 사람들을 아무도 안 건드려 주셔야겠어요.”
르네는 이제 대놓고 황제와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황제는 그 눈을 피하지 않고 그녀를 가늠하려 들었다. 두 사람은 한참이나 서로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먼저 입을 연 건, 황제였다.
“방금 말은 반역이라는 것 알고 있나?”
“글쎄요, 폐하. 제가 반역을 일으키고 싶었다면 여기서 이러고 있었겠습니까?”
그냥 손가락 몇 번 튕기면 끝날 일인데요.
르네는 말을 적당히 생략했지만, 그녀가 무엇을 생략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기에 모두가 긴장한 채로 황제의 대답만을 기다렸다.
“그대의 약혼자는 황태자이다, 르네 양. 그대의 모든 말은 황태자와 연관이-”
“아뇨.”
르네는 황제의 말을 잘랐다.
“제가 어떻게 살든 그건 황태자 전하와 전혀 상관없어요.”
“그대의 마음은 알겠지만, 그럴 수는 없네, 르네 양.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재상이, 허허, 웃으며 그녀를 타이르려 했다.
“왜냐하면 저, 파혼할 거거든요.”
물론 바로 실패했지만.
재상은 이제 아예 입을 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사람 앞에선,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상책 같았다.
“이제 전 공식적으로 황가와 아무 연이 없는, 그냥 제국민일 뿐이에요.”
사실 이 말을 제일 먼저 하고 싶었어.
나 진짜 걔랑 최대한 빠르게 파혼하고 싶었거든.
[<파도와 치유의 왕>님이 10년 묵은 체증을 날려 보냅니다!]
[<악랄한 피의 교주>님이 즐거운 마음으로 혈무를 춥니다!]
[<유혹의 군주>님이 그럼 이제 나랑 약혼하는 거냐며 설레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