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모든 이야기의 끝에는 사랑이 있대요, 르네.
리안은 매번 그렇게 말했고, 르네는 매번 코웃음 쳤다.
“어이없어. 시작부터 끝까지 사랑만 있으면 되지, 왜 끝에만 사랑이 있고 난리야. 그래서 이 이야기를 쓴 사람이 바보라는 거야.”
르네는 매일 그렇게 리안에게 투정을 부렸다.
리안, 내 이야기에도 사랑이 있을까?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 줄까?
나는 믿기지 않아. 누군가가 나를 사랑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언젠간 내 이야기에도 사랑이 있을 거라는 것을.
그러면 리안은 대답했다.
“물론이죠, 르네.”
이미 제가 르네를 사랑하고 있는걸요.
제가 언제나 르네의 이야기에 사랑을 새겨 넣을게요.
제가 당신의 이야기 끝에 꼭 서 있을게요.
리안은 그렇게 약속했고, 르네는 그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그리고 리안은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
리안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르네가 오고 있어.
그래서 그녀는 끝까지 싸울 수 있었다. 계속해서 꺼져 가는 의식과 의지에도 불구하고.
<탑의 주인>에 의해서 그녀의 영혼은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웠음에도 불구하고.
르네가, 오고 있어.
여기로.
나를 위해.
나를 구하러 오기 위해.
‘이 멍청아. 너는 왜 맨날 혼자 견디려 해? 너는 남의 편 잘 들어주면서, 왜 남은 네 편을 들어주게 하지 못해?’
‘…하지만…’
‘뭐가 자꾸 하지만이라는 거야? 너 나 무시해? 내가 그 정도 깜냥도 안 되어 보여?’
깜냥이라니. 생전 처음 듣는 단어. 역시 르네는 대단해. 모르는 게 없구나.
리안은 눈을 끔벅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요, 르네는 대단한 사람인걸요.’
‘아는데 왜 실천을 못 해?’
‘네?’
‘알면 알아서 의지하라고. 그, 그, 그, 뭐더라. 알면 행하라잖아!’
말을 더듬으면서도, 단 한 번도 흔들리지는 않던 사람.
리안은 그 사람을 보며 언제나 용기를 얻었다.
티끌 하나 없이 순수할 수 있는 사람.
그래서 당신은 그렇게 강할 수 있는 걸까?
그래서 당신은 내겐 없는 용기가 있는 걸까?
리안은 항상 그렇게 의문했고, 그 의문은 아주 나중에 풀렸다.
그건 순수함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그 이상의 이유가 있었다.
‘많이 기다렸지.’
‘…르네.’
서로가 서로의 용기가 되었기에.
르네는 다시 리안을 마주했을 때, 말했다.
‘내가 안 오려고 했거든, 정말. 나는 내 사랑을 찾았으니까. 이제 내 이야기에도 사랑이 있으니까.’
르네는 평소처럼 짜증 가득한 말투로, 하지만 온기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그런데, 나 참. 생각해 보니까, 나는 그게 참 짜증나고 억울한 거야.’
‘무엇이요?’
‘난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인데. 리안이 마음대로 내가 약속 안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그럼 좀 짜증 날 것 같은데?’
르네는 흥, 흥, 콧바람을 내뿜었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러 왔어, 리안.’
수만 개의 차원을 건너.
나의 모든 사랑을 포기하고 너를 구하러 왔어.
‘그러니 너도 이제 약속을 지켜 줘.’
내 이야기의 끝에, 함께 해 주겠다는 약속을.
***
“하지만 제게 무슨 일이 생겨도 르네가 저를 구해 줄 거니까요.”
“…!”
리안은 르네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이영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저와 르네가 이영을 구해 줄 거니까요.”
“…참 나. 너희가 무슨 힘이 있어서. 나 그렇게 안 약해.”
“응, 이영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죠. 제가 또 괜한 말을 했네요.”
리안은 헤헤, 웃어 버렸다.
“그럼 정말로 걱정할 일이 없잖아요, 이영.”
이영이라는 이름을 이렇게 진짜 목소리로 들으니까 기분이 묘하네.
그녀는 코를 찡긋거렸다.
“아쉽지 않아?”
“네?”
르네는 슥 리안의 무릎에 누우며 말했다.
“너한테 진짜 르네는 엄청나게 소중한 존재일 텐데, 아마 이번 생에는 보기 힘들 거잖아.”
그랬다.
리안과 르네의 오랜 전쟁이 끝나자, 진짜 르네는 선택을 해야 했다.
이영의 몸으로 살아갈지, 르네의 몸으로 살아갈지.
그리고 그녀는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선택했다.
‘미쳤니, 이영 본체? 난 절대로 안 돌아가! 난 네 몸으로 돌아갈 거야! 넌 그 몸에서 평생 살아!’
…참 야물딱진 녀석이었어.
르네는 앙칼지기 짝이 없는 그 목소리를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영혼 주제에 엄청 떽떽거리더라니깐.
그동안 미안해했던 게 아주 부질없어지고 좋았어, 그냥. 이럴 줄 알았으면 죄책감이고 뭐고 자시고 퀘스트 빠릿빠릿하게 깰걸.
[<파도와 치유의 왕>님이 그래도 그 덕분에 조심하며 살았기 때문에 시스템이 널 살려 둔 것이라 말합니다.]
[<유혹의 군주>님이 매우 격렬하게 동의합니다.]
[본체 눈치도 안 보고 막 살았으면 말이다, 아주 진작에 시스템한테 강제 회귀당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