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0. [System Error!]
하늘에 새카만 구멍이 뚫려 있었다.
부서진 땅에서는 화산이 폭발하고 용암이 흐른다.
다섯 바다 중 둘이 마왕이 불러낸 지옥의 불꽃에 말라 버렸고.
여섯 대륙 중 둘이 마룡의 독액으로 오염되었다.
그야말로 지옥도의 광경.
이 지독한 그림 속에 살아 숨 쉬는 생명은 없었다.
아니, 아예 없는 건 아닌가.
내가 있으니까.
아직은.
그럼에도 확실한 사실이 있었다.
‘아, 세상이 진짜 망했네.’
전 세계에서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튀어나온 대재앙은 멸망의 전조에 불과했다.
인류의 절반이 전멸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본론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마왕 소환.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한 존재인 마왕이 지구에 강림했다.
그 앞에 인류 최강이라 여겨지던 헌터들은 코끼리 앞의 개미처럼 짓눌려 죽었다.
내 이름은 안서나.
멸망 후기에 각성한 헌터들 중에서도 최강이라 불렸던 1인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최강자라는 이명에 걸맞은 업적을 이뤄 냈다.
앞에 있는 남자가 그 증거였다.
심장에 칼이 박힌 채 피를 토하고 있는 남자.
한때 누구보다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였던 남자와 같은 얼굴을 한 괴물.
인류는 그를 절망과 혐오를 담아 이렇게 불렀다.
마왕.
“날 믿고 기다려 줘, 서나야.”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했다.
그는 내 믿음을 지키지 못했다. 나를 배반했으니까.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남자는 죽었다. 저건 그의 얼굴을 한 괴물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하나 남은 가족이었던 오빠를 죽인 원수가 아닌가.
놈의 심장에 박혀 있던 부러진 칼을 뽑아 들었다.
이 간단한 동작이 이렇게 힘겹다니.
핏빛으로 물든 놈의 눈동자가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크헉! 서, 크륵……!”
놈의 입이 피거품을 토해 냈다. 뭐라고 말하려는 것 같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칼을 휘둘렀다. 피가 튀고, 놈의 목이 허공을 날았다.
인류를 거의 멸망시킨 마왕의 최후치고는 허무했다.
순간.
빌어먹을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퀘스트 완료!]
[퀘스트 명: ‘멸망의 화신을 죽여 세상을 구하라’]
저건 우리가 마왕이라 이름 붙인 멸망의 화신이 소환되었을 때, 생존한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퀘스트였다.
퀘스트 완료하면 뭐해.
이미 살아남은 사람이 없는데. 마왕은 죽였어도 세상은 망했는데.
욕설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을 수 있었다.
시스템에 욕하면 안 돼서 참은 게 아니다. 지금 입을 열었다간 피를 토할 게 분명해서 다물고 있는 것뿐이지.
아무리 나라도 이 상태에서 피를 더 토하면 분명히 죽을 테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도 죽는 건 똑같으려나. 몇 분 일찍 가나 늦게 가나 정도의 차이겠지.’
간신히 퀘스트를 완료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나도 죽기 5분 전이고 말이지.’
“쿨럭! 쿨럭!”
절로 무릎이 꺾이며 입과 코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결국 이렇게 죽는 건가…….’
점점 눈앞이 흐려졌다.
그때, 시스템 메시지가 갱신되었다.
[System Error!]
[업적 보상(Error!)을 수령하시겠ㅅ#@$=?]
뭐야 저 시뻘건 글씨는?
죽을 때가 되니 눈이 침침해져서 그런가. 글씨가 다 깨지고 색도 이상해 보인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한탄했다.
“세상이 멸망했는데… 보상이 무슨 소용이야……?”
그러자 더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다.
[$#% 그래서 *7& 싫어& #@나야?]
누구 약 올리냐?
으득, 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 그래도 악으로 버텨서 여기까지 온 몸이다.
젖 먹던 힘까지 다 뽑아내서 시스템 창을 향해 손을 뻗었다.
“X발! 보상 내놔!”
얼마나 대단한 보상이길래 이따위로 구나 보자!
[보상 수령 중…]
그리고 내 25년 인생 중 가장 짜증 나는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보상 : ?%$#& ]
몸이 한계에 달했는지 눈앞이 까맣게 물들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항의조차 제대로 입 밖에 내뱉을 수 없었다.
‘그래서 보상이 대체 뭔데, 시스템 X새끼야!’
당연히 시스템 X새X의 대답은 없었다.
‘가만 안 놔둘 거야, 시스템 개새X! 내가 다시 눈만 떠 봐라. 다 부숴 버리고 말겠어!’
하지만 내가 다시 눈을 뜨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