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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el 1. 퀘스트 : 환생 (01)

아니, 벌어졌다. 나는 다시 눈을 떴다.

시야에 들어오는 건 꼬물거리는 쪼끄마한 손.

‘뭐야, 대체?’

비명을 지르려 해도 나오는 건 어이없는 옹알이였다.

“으부?”

그때 친절하게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띠링띠링 떠올랐다.

[의식 로딩 성공!]

[당신은 환생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렇다. 나는 난데없이 아기로 환생한 것이다.

‘혹시 이게 마왕 잡은 보상이라든가, 그런 건가?’

어차피 개고생만 실컷 하고 소중한 이들은 전부 잃고 끝난 인생이었다.

마왕까지 처치해 줬는데, 이 정도 보상은 해 줘야지!

나는 내 장점을 살려서, 상황을 최대한 나에게 유리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런 성향은 전생에도 고난을 이겨 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곧 이 상황의 한 가지 단점을 깨달았다.

몸이 너무 작아!

팔다리는 관절이 있긴 한가 싶을 정도로 짧았고, 작고 통통한 소시지 같은 손가락은 힘을 줘도 잘 움직이지가 않았다.

‘이 손으로는…… 시스템 X새끼를 패 버릴 수가 없잖아!’

나는 분노의 일갈을 날렸다.

“아부아!”

***

내가 환생하고 눈 뜬 곳은 뭔가 중요한 의식이 한창 진행 중인 연회장이었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색색의 머리 색, 눈 색을 가진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순간적으로 내가 유럽 어딘가 왕실이 남아 있는 데에 환생했나, 싶었지만 곧 그럴 리 없다는 걸 떠올릴 수 있었다.

‘응. 거기도 다 박살 났으니까.’

애초에 마왕 죽일 때 지구상에 살아 있는 생명체가 나뿐이었으니 불가능한 일이다.

그때 나를 안고 있던 여자가 난처하게 중얼거렸다.

“우리 착한 아기님이 왜 이러실까요. 이러신 적이 없는데.”

얼굴에 ‘유모’라고 써 놓은 것 같이 생긴 사람이다. 마침 내뱉는 대사도 그렇고. 그렇다면 지금 난 유모가 붙을 정도의 신분이라는 건가?

그 때 주변에서 뭔가 불온한 시선이 느껴짐과 동시에 불쾌한 말들이 들려왔다.

“황녀님, 아직도 저렇게 작으시다니, 절대 첫 번째 생일을 맞은 걸로는 안 보이세요. 우리 아이가 6, 7개월일 때와 비슷하신걸요.”

“게다가 아까 황녀님 눈빛 보셨어요? 유모와도 시선을 제대로 못 맞추시던데……, 정말 머리에 문제가 있으신 게 아닐까요.”

지구 어떤 곳의 언어도 아닌데,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잠깐, 그럼 나 황녀야? 개꿀인데?’

하지만 마냥 기뻐하기엔 뭔가 좀 이상했다.

‘근데 어떻게 감히 황녀님 앞에서 저따위로 말하는 거지?’

내 의문은 이어지는 누군가의 험담으로 해결될 수 있었다.

“아무리 태양석을 빛나게 할 강력한 마력이 있으면 뭐하겠어요. 백치인 황족이 무슨 쓸모가 있어서.”

아하. 내가 백치라고 소문이 나 있었던 모양이다.

헛소문…, 이라고 하기엔 의외로 사실일지도 몰랐다.

오늘이 내가 태어난 지 만 1년이라고 했다.

그러면 한국 나이로는 이미 두 살이라는 이야기.

그런데 나는 오늘 겨우 눈을 떴다.

게다가 ‘의식 로딩 성공’이라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면.

‘태어난 직후부터 내내 거의 인형 같은 아기였던 거 아냐? 의식이 없었으니까.’

그러면 백치라는 소문이 도는 것도 당연한 일이긴 했다.

‘물론, 그따위로 말한 인간들을 그냥 놔둘 생각은 없지만!’

나는 다시 한 번 분노의 사자후를 내질렀다.

“꺄우! 아우우!”

(니네들, 다 죽었어!)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건 아기의 칭얼거림뿐.

그리고 이에 대한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우리 아이도 명명식 때는 더없이 의젓했는데, 루스템의 황족답지 않으세요.”

“맞아요. 루스템의 황족들은 대대로 태양신의 축복을 받아 조숙하시고, 강대한 마력을 타고나시는데.”

“아직 어리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좀…….”

“황녀께서 보채신다고 명명식을 멈출 수는 없잖아요.”

누가 짠 것처럼 나에게 부정적인 말들뿐.

그 사이에서 일부지만 내 편을 드는 사람들도 있긴 했다.

“세상에, 귀여우셔라!”

“어쩜 저리 영민해 보이실까요.”

보는 눈이 있는 사람들이네!

그런데 자기들끼리 부정적으로 쑥덕거리던 인간들이 우리 편(?)에게 시비를 걸기까지 했다.

“아부가 심하시네요. 누가 봐도 성장이 느리신데 말이에요.”

나는 짤따란 두 손을 허우적거리며 화를 냈다!

“아우!”

그러자 찰떡같이 알아듣고 우리 편 아줌마가 말했다.

“……부인의 말을 다 알아들으시는 것 같네요. 황녀께서 역정을 내시잖아요.”

“설마요! 부인이야말로 확대 해석이 과하시군요. 황녀께 문제가 있다는 건 잘 알려져 있잖아요?”

갈등이 본격적으로 점화되려는 찰나.

낮은 목소리가 홀 안을 짓눌렀다.

“루스템의 새로운 혈통에게 이름을 내리겠다.”

“……!”

“아나트리샤. 아나트리샤 루스템. 이것이 황녀의 이름이다.”

내가 잘 아는 목소리였다. 13년 만에 듣는 그리운 목소리.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다시 보리라 상상도 못한 사람이 서 있었다.

험담하던 사람들이나 시스템 따위에 대한 분노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리고 2회 차 인생에서 처음으로, ‘말’이 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압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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