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3/218)

Level 1. 메인 퀘스트 : 환생 (02) 

“압빠!”

단순한 옹알이나 울음이 아니었다. 누구라도 알 수밖에 없는 선명한 의지를 가진 ‘말’.

경악한 시선이 황녀에게로 집중되었다.

지금의 단 한마디가 주는 충격은 거셌다.

당연한 일.

소문대로 황녀가 백치라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었으니까.

***

나 안서나는 헌터계의 금수저, 아니, 다이아몬드 수저였다.

최초로 순수 S급 헌터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순수 S급이었으니까.

‘순수 S급’은 각성하자마자 등급이 S로 분류되는 헌터들을 뜻하는 은어였다.

내 어머니는 물리 강화계 최강이라 불리는 S급 헌터였고.

아버지는 마력 특화계의 최고라 여겨지던 S급 헌터였다.

두 분 다 각성 때부터 등급이 S였던, 순수 S급.

S급은 희귀하지만 각성 등급부터 S인 건 더더욱 희귀하다.

그 드문 순수 S급끼리 눈이 맞을 확률은 더더더욱 낮다.

이 희박한 확률의 커플 사이에서 태어난 행운아(?)들이 나와 오빠였다.

이 조합이 얼마나 주목을 받았으면, 우리 남매가 각성을 채 하기도 전에 우리 집안 별명이 이랬을 정도다.

‘S급 집안.’

이 주변의 기대 때문에 오빠가 좀 고생하긴 했지만, 반쯤 농담이던 저 별명은 진짜가 되었다.

가족 구성원 네 명 전원이 S급 헌터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내가 아빠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은 기억이 13년 전인 이유는 간단했다.

아빠는 내가 열두 살 때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빠에 대한 기억은 몇 없었다.

“서나야, 우리 딸!”

늘 웃으면서 나와 오빠를 안아 주셨던 것.

그리고 마법으로 나를 10m 넘게 들어 올려 둥개둥개를 해 주다가 엄마에게 등짝을 맞곤 하셨다는 거 정도?

벌써 13년간 듣지 못한 목소리였다.

기억도 많이 흐려져서, 다시 듣더라도 절대 알아듣지 못할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빠 목소리다.

저 얼굴 역시 아빠였다. 머리 색 눈 색 등은 조금 달라졌지만, 그래도 아빠라는 걸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의 아우라는 전생과 똑같았다.

절대 다른 사람일 수 없었다.

아빠는 울고불고 난리 치는 나를 향해 두 손을 뻗었다.

조금 어색하게.

나와 오빠를 안아 주는 데 아주 능숙했던 과거의 아빠와는 다른 태도.

하지만 분명히 아빠였다.

우리 아빠.

내 아빠.

눈가가 뜨끈해졌다. 눈앞이 흐려진다.

나는 13년 만에, 세상이 한번 망하고 난 뒤에야 겨우 다시 만난 아빠의 넓은 가슴에 안겨서 애처럼 울어 버렸다.

“아바바! 아브아앙! 으아앙!”

스물다섯 살 어른으로서는 쪽팔리는 일이었다. 그것도 최강의 S급 헌터에겐.

하지만 겨우 첫 생일을 맞은 아기에게는 별로 부끄럽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까짓것 지금 난 아기니까 괜찮아! 안 쪽팔려!’

난 재빠르게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난 애기니까!

“흐에엥. 으엥……!”

“아나트리샤?”

아빠의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덕분에 나는 이때 실수로 퀘스트 보상 창을 건드린 것도 몰랐다.

[보상 수령 승인.]

나에 대한 험담을 하던 아줌마가 어떻게든 나를 깎아내리려 애쓰는 것도.

“조, 조금도 의젓하지 않으시네요. 대공자, 대공녀께선 명명식 때 어찌나 의젓하셨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그녀는 이미 방계 황족에게 줄을 댄 귀족이었다. 그렇다고 간 크게도 황제 앞에서 황녀의 험담을 하는 것이 용인될 수는 없겠지만.

어쨌건 이때 난 아빠를 본 감격으로 살짝 정신을 놓고 있었고. 덕분에 이런 알림창이 뜬 것도 뒤늦게 알았다.

[보상 : 마력 회로 개방(2단계)]

[*퀘스트 난이도(SSS급) 추가 보상으로 전생의 능력이 그대로 전승됩니다.]

[*원 마력 회로 랭크 : S]

[*추가 보상으로 마력 회로의 랭크가 한 단계 상승합니다. 최종 랭크 : S+]

내가 눈치를 채든 못 채든, 그 효과는 확실했다.

전신의 마력 회로가 강화되며 2단계로 활성화되었다.

그리고.

전생과 다르게 기현상이 뒤따랐다.

내 몸이 빛을 내뿜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이 빛은?”

“잠깐만 1년 전에도 분명 이런 빛을 봤는데!”

그때 누군가가 창밖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기 밖을 보세요! 태양석이 빛나고 있어요!”

과연 그대로였다.

창밖, 황궁의 가장 높은 곳에 박힌 금색의 돌.

태양신이 자신의 자손이자 초대 황제 루스템에게 내린 보물.

태양석.

그 돌이 어마어마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분명 지금은 밤인데도 갑자기 대낮이 된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찬란한 빛.

이때의 나는 몰랐지만, 이 현상은 내 마력이 루스템의 역사상 가장 강력하다는 걸 보여 주는 증거였다.

“이, 이럴 수가……!”

내 험담을 하던 아줌마는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절로 다리에서 힘이 풀려 꼴사납게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의 얼굴은 절망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이 광경의 의미를 모르는 이는 홀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딱 한 명이 있었다.

13년 만에 만난 아빠 품에 안겨서 옷을 더럽히고 있는, 이 일의 원흉(?)인 나.

내 머리통보다 커다란 손이 어색하게 등을 토닥거리는 감촉을 느끼면서, 나는 아빠의 가슴팍 옷자락을 다 적시면서 울어재끼고만 있었다.

“쿨쩍.”

콧물까지 묻히지는 않았다. 절대. 절대.

***

“훌찌럭.”

아. 쪽팔려.

애기처럼 앵앵대다가 정신이 든 건 한참이 지나서였다.

손인지 만두인지 모를 쪼그만 걸로 눈을 비비적거리다가 깨달았다.

‘여기 어디지?’

장소가 바뀌었다. 명명식인지 뭔지가 끝나고 다른 곳으로 옮겨진 듯했다.

지금 나는 온통 금색이랑 붉은색으로 번쩍거리는 방에 누워 있었다.

‘이게 내 방인가?’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이 눈이 아플 정도로 화려했다.

너무 번쩍거려서 진짜 아기라면 놀라 경기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인기척이 없었다.

더럭 겁이 났다. 덥석 행운의 보상이라고 반겼던 이 모든 일이, 사실은 다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히 마왕을 처치한 직후 죽었다.

그런데 다시 눈을 떴더니 아기가 되어 있고, 오래전 죽은 아빠를 다시 만났다.

아무리 시스템이라 해도…… 말이 안 되잖아.

차라리 지금 내가 죽기 직전에 주마등을 보고 있다는 게 더 가능성 높지 않나.

어쩌면 시스템이라는 놈이 이런 말도 안 되는 환상을 잠깐 보여 주는 걸지도 몰랐다. 보상이랍시고.

마왕을 앞에 두고도 두려움을 느껴 본 적 없는 난데, 이 가능성은 너무나도 무서웠다.

‘아무리 그래도 줬다 뺏는 건 너무 하잖아!’

“아쁘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려 했다.

안 울려고 했는데 결국 또 빼앵거리는 소리가 나왔다.

“아브흐아앙!”

아 쪽팔려.

왜 내 몸인데 맘대로 안 되는 거야!

근데 서러워! 무서워!

그때, 익숙한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

무뚝뚝하게 굳은 입매가 내가 기억하는 아빠와는 조금 다른, 하지만 분명한 아빠의 얼굴이.

정신이 좀 드니 확실하게 차이가 보였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보다 좀 젊어 보였다.

‘그리고 머리가… 신기한 노랑이네?’

붉은색이 감도는 금색 머리카락이었다.

아빠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주변에 물었다.

“이번에도 날 부른 게 맞는 건가? 그리 들렸는데.”

누가 옆에 있나?

그러자 아빠가 선 곳의 맞은편에서 남자의 대답이 들려왔다.

“틀림없습니다, 폐하. 아까 명명식이 있던 홀에서도 ‘아바마마’라고 선명하게 부르시면서 폐하께 안기시지 않았습니까!”

아바마마라고 한 건 아닌데.

그냥 아빠라고 한 건데.

혹시 귀가 먹은 사람인가?

“경하드립니다, 폐하! 제국의 홍복입니다!”

아니, 진짜 아바마마라고 말했다고 해도 저렇게 각 잡고 축하까지 할 일인가?

‘아, 다들 내가 백치인 줄 알았다고 했지. 그럴 만하긴 하네.’

그런데 어째 이 사람의 목소리도 귀에 좀 익숙했다. 뭐지?

“게다가 조금 전 태양석의 빛은 눈이 있는 자들이라면 다 보았을 겁니다. 이로써 황녀님에 대한 의심의 시선은 완전히 사라질 겁니다!”

꽤 오래전에 들은 목소리가 떠올랐다.

“역시 우리 똑똑한 서나! 삼촌이 더 좋아, 아빠가 더 좋아? 삼촌이지? 우쭈쭈!”

우명 삼촌?

눈이 번쩍 뜨였다.

진짜 우명 삼촌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한 발을 내디디기로 마음먹었다. 나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이 세계에 있어서는 큰 한 걸음……, 아니, 이게 아니지.

아무튼 손을 뻗어 아기 침대의 모서리를 꾹 잡았다.

그리고 이게 사람 다리 맞나 싶게 짧고 오동통한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번쩍 일어섰다.

저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기 위해.

“흐잇쨔!”

내 입에서 이상한 신음이 울렸다.

‘……쪼, 쪽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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