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1. 메인 퀘스트 : 환생 (03)
“헉! 아기님께서 일어나셨어!”
“세상에! 이런 기쁜 일이!”
“컥! 내 심장!”
뭔가 옆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어쨌든 겨우 일어난 덕분에 시야가 확 트였다.
나는 아기 방에 아빠랑 우명 삼촌(으로 추측되는 아저씨)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빠랑, 산도적 같은 아저씨. 그리고 중년의 인자해 보이는 유모 아주머니. 20대로 보이는 언니들 둘. 그리고 기타 등등.
아빠 바로 옆에 선 산도적 저리 가라 하게 생긴 아저씨를 보고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진짜 우명 삼촌이잖아!’
저 산도적이 형님하게 생긴 험상궂은 얼굴로 바보처럼 웃는 사람은 우명 삼촌밖에 없어!
우명 삼촌은 친삼촌은 아니다. 엄마 아빠 모두 형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와 거의 의형제처럼 지내던 팀원이 바로 우명 삼촌이었다.
“서나 같이 귀여운 딸 하나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는데!”
아들만 넷인 우명 삼촌은 늘 그렇게 말하며 나한테 수염 난 뺨을 비벼대곤 했다.
그래도 난 얌전하게 견뎠는데, 거칠한 뺨을 비비고 나면 삼촌이 늘 내 주머니 풍족하게 용돈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난 아주 세속적인 어린애였다.
그래서 삼촌이 신사임당 초상화를 몇 장 쥐여 주며 ‘아빠가 좋아 삼촌이 좋아?’ 하고 물으면, ‘삼촌!’ 하고 대답해서, 아빠의 여린 가슴에 스크래치를 내곤 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의 삼촌 역시 전생과는 외모가 조금 달랐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삼촌의 아우라는 그때와 같은 색이었다. 따듯한 초록 색깔.
아빠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도 타인의 아우라를 볼 수 있는 내 능력 역할도 컸다.
물론 그게 아니었다 해도 아빠는 알아봤겠지만.
어쨌든 기쁜 소식이 연달아 나를 덮쳤다.
‘세상에! 삼촌까지 살아 있다고?’
우명 삼촌은 아빠와 같은 전투에서 전사하셨다.
그런데 두 사람이 같이 살아서 눈앞에 있다니.
나는 너무나도 감격스러워서 멍하니 아빠와 삼촌을 번갈아 보며 서 있었다.
그러자 아빠의 안 그래도 딱딱한 얼굴이 더 굳었다.
조금 전이 대리석 정도로 굳었다면 지금은 화강암 정도로 굳은 느낌?
나는 혹시나 해서 두 팔을 뻗으며 외쳤다.
“빠빠?”
이놈의 발음.
혀 근육을 발달시키는 훈련이라도 해야 하나? 쪽팔려서 살 수가 없네!
하지만 내 혀짤배기소리에 아빠의 표정이 아주 미미하게 바뀌었다.
화강암에서 지점토 정도로?
표정 변화는 놀랄 정도로 적었지만, 아우라의 변화는 꽤 컸다.
어딘지 모르게 감격한 듯 눈에 띄게 일렁거렸다.
아빠는 참지 못한 듯 조심스럽게 나를 안아 들었다.
따스하고 든든한 품은 내가 기억하는 아빠 그대로였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이건 현실이다.
아빠가 살아 있다. 살아서 나를 안고 있었다.
꿈이나 상상 따위가 아니었다.
이 세계에서 눈뜨고 나는 처음으로 안도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이게 다 환상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앞섰는데, 이제는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손에 잡히는 아빠의 온기. 그리웠던 아우라.
이건 현실이다.
난 되찾은 것이다.
또 주책없이 눈물이 나오려고 해서 눈을 꼭 감아야 했다.
***
우명 삼촌이 아빠에게 말했다.
“폐하. 홀로 나가 보셔야 합니다. 명명식에는 맞추지 못했지만, 하스티아에서 사절이 와 있다 합니다.”
아빠의 얼굴이 굳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아빠의 아우라가 눈에 띄게 동요했다.
“그래. 바로 가지.”
아빠와 헤어지는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뼛속까지 한국인의 영혼을 가진 나로서는 일하는 아빠를 막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젠 계속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이정도야!
그래서 나는 최대한 귀엽게 웃으면서 아빠를 배웅해 주었다.
“아바밧! 아이따!”
(아빠! 파이팅!)
“……,”
나는 아빠가 전생에서처럼 방긋 웃으며 나를 안아 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빠는 가만히, 침묵을 지키며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손가락이 잠시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손이 다시 나에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아빠는 그러다가 천천히 뒤돌아서 방을 나갔다.
나는 조금 아쉬웠지만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죽었던 아빠가 돌아왔는데 이 정도쯤이야!
어쨌건 아빠와 삼촌,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신하들이 우르르 나간 뒤 내 방에는 평화가 왔다.
방 주인인 나와 유모, 그리고 시녀들만 남았던 것이다.
유모는 아까 명명식에서도 나를 안고 있었는데, 두 시녀들은 지금 처음 본다.
현 상황 파악부터 차근차근 해 보기로 했다.
입을 열고 소리를 내 본다.
“아부앗! 뿌뿌!”
역시 제대로 된 말이 안 나온다.
지금까지 어른이 알아듣게 마하는 데 성공한 건 한 단어뿐.
“압빠!”
뭐, 그게 제일 중요한 거지.
사실 그것도 제대로 된 발음이 아니었다는 건 무시하기로 했다.
의미가 통했으니까 됐다.
나는 주먹을 꼭 쥐고 다짐했다.
‘좋아. 마왕을 잡고 얻은 인생 2회 차! 이번엔 잘 살아 봐야지!’
***
팔다리를 꼼질꼼질 움직여 보았다.
손인지, 한입 만두인지, 알감자인지 구분이 안 되는 걸 폈다가 쥐었다 해 보고.
아기 침대의 모서리에 기대서 앉았다 일어섰다도 해 보았다.
“끙…….”
방구석에 꽤 큰 거울이 걸려 있었기에 내 움직임을 거울로 확인하며 움직일 수 있었다.
“……차!”
끙차끙차 할 때마다 나는 반쯤 앉았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좀 억울했다.
내가 느끼기엔 몇백 킬로그램짜리 무게 추를 달고 전력으로 운동하는 기분인데.
거울 속의 꼬꼬마는 끙차끙차 엉덩이를 꿍싯거리기만 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
마력을 쓰면 다를 거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남들 눈이 있는 데서는 안 된다.
오늘 첫 생일을 맞은 아기가 마력을 써 봐라. 난리가 날 거다.
전생에서 너무 어린 나이에 각성했다가 큰 위협을 겪은 케이스를 많이 봤다. 유명한 만큼 보호자가 빵빵했던 난 아니었지만.
지금 여기 상황을 모르니 조심하는 게 최고다.
아까 명명식에서도 나에 대한 부정적인 말들이 꽤 들렸었고.
‘이따가 혼자 해 봐야지.’
아까 귀찮아서 대충 넘긴 시스템 메시지도 확인해 봐야겠다.
‘분명 보상이 어쩌고 마력 회로가 어쩌고 했었지.’
시스템 창 확인도 남들에겐 이상해 보일 수 있었다.
안 그래도 내가 백치가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돈다는데, 이상한 짓을 해서 부정적인 소문을 더 늘려 줄 생각은 없다.
당장 남들 눈앞에서 해 볼 수 있는 건, 내가 어느 정도로 움직일 수 있는지 확인해 보는 정도다.
지금처럼.
“끙—차!”
내가 열심히 운동인지 율동인지를 하는 사이, 시녀들은 숨넘어가는 소리로 자기들끼리 중얼거렸다.
“헉! 우리 아기님이 일어서셨다! 그, 그런데 너…, 너무 귀여우셔!”
“어, 어떡해요! 황녀님이 앉았다 일어났다를 하고 계세요! 얼마 전까진 그렇게 미동도 없이 계셔서 걱정이었는데.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하앙. 황녀님 엉덩이 좀 봐……!”
뭔가 좀 이상한 소리도 들린 것 같지만 무시하자.
아무튼 거울 덕분에 내 바뀐 외모도 확인 가능했다.
가족 사진첩에서 본 어릴 때 모습과 거의 비슷했다.
조금…… 더 귀엽나?
어쨌든 머리 색이랑 눈 색 정도 빼면 거의 비슷하다.
내 머리 색은 아빠를 닮아서 빨간색이 도는 오묘한 금빛이었다.
눈은 아빠와는 다른 청보라색. 여기서 아빠는 짙은 푸른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더 예쁜데. 기왕이면 아빠 눈 색까지 닮을 것이지.’
어쨌건 이건 내가 선택한 게 아니니 어쩔 수 없지.
아빠와 삼촌의 사례를 보고 내 모습까지 확인하니 이제 알 것 같다.
지구에서의 영혼을 그대로 가지고 환생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외모는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했고, 아우라는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었다.
나의 경우엔 능력까지도 그대로 가지고 있으니까.
‘기억을 가진 건 나뿐인 것 같지만. 아직은.’
현 상황을 정리하자, 한 가지 희망이 부풀어 올랐다.
‘엄마, 오빠……, 가족들을 다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아빠는 이미 다시 만났다.
남은 건, 마왕 소환 3년 전에 전사한 엄마.
그리고……, 나를 지키다가 죽은 오빠.
13년 만에 우리 가족이 완전체로 다시 모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떠오르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소리치고 말았다. 두 팔을 번쩍 들고.
“앙따따따!”
(환생 대박!)
손을 놓자 균형이 무너져서 내 몸은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고는 그대로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꽁!
뒤통수가 아기 침대 모서리에 부딪혔다.
옆에서 다시 자지러지는 소리가 났다.
“헉! 황녀님!”
“궁의, 궁의를 불러! 어서!”
“폐하께 아뢰어라!”
***
“꺄악! 너무 잘 어울리세요!”
“하스티아에서 온 선물 중에 이걸 눈여겨보길 잘했다니까.”
“어쩜 이렇게 귀여우실까…….”
시녀들이 잔뜩 들떠서 꺄꺄거리고 있었다.
다들 별보다 반짝이는 눈을 하곤 뺨에는 홍조가 가득했다.
정작 유모와 시녀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있었지만.
“하아…….”
이유는 간단했다.
‘이게 대체 무슨 꼴이야!’
스물다섯 살 처자에게는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지금 내 모습 때문이다.
레이스와 리본이 가득한 옷이나 아기자기한 모자 때문은 아니었다.
그건 포기했다. 아까 명명식 때 입고 있던 꼬까옷부터가 그 꼴이었으니.
거기에 한 가지 민망하기 짝이 없는 소품이 더해졌다.
아까 내가 ‘환생 대박!’을 외치다가 뒤로 넘어간 걸 보고 시녀들이 놀란 결과물이었다.
다치지도 않았는데 궁의를 불러 진찰을 받게 하더니.
“황녀님께서 머리를 부딪히셨습니다! 크게 소리가 났어요! 황녀님이 잘못되면 각오하세요!”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서야 혼비백산하던 유모와 시녀들은 잠잠해졌다.
아니, 조용해진 건 아닌가.
또 넘어지면 안 된다고 앙증맞은 꿀벌 모양 머리쿵 방지 베개를 내 등에 매 놓았으니까.
“이제는 넘어지셔도 안심이에요!”
동글동글한 꿀벌의 머리가 내 뒤통수에, 까만 줄이 그려진 오동통한 꿀벌의 궁둥이가 내 등에 딱 붙어 있었다.
한술 더 떠서 하얗고 동그란 날개 두 장까지!
‘이 나이 먹고 머리쿵 방지 베개라니! 쪽팔려!’
“이어!” (싫어!)
……이제 내게 쪽은 없다.
이미 다 팔려 버렸기 때문이다. 따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