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1. 메인 퀘스트 : 환생 (04)
싫다고 외치며 손을 좌우로 흔들자, 등에서 동그란 꿀벌 날개가 팔랑팔랑거렸다.
그러자 유모와 시녀 2인방은 가슴을 부여잡고 신음했다.
“크흑! 너무 귀여우셔!”
“시, 심장이 아파……!”
시녀 언니 중 하나는 진짜로 고통스러운 듯 심장이 있는 쪽을 부여잡았다.
아까 다른 언니도 심장이 어쩌고 했던 거 같은데. 혹시 이 세계에서는 협심증이 감기처럼 흔한 건 아니겠지.
그때였다. 더더욱 쪽팔리는 물건을 유모가 내게 들이밀었다.
어마무시하게 흉측한 물건을!
“자아, 아기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쪽쪽이에요!”
동그랗고 말랑거리는 공갈 젖꼭지는 오래 썼는지 닳아 있었다.
그리고 손잡이에는 분홍 리본이 앙증맞게 붙어 있었다.
그 너무나도 귀여워서 도리어 흉악한 쪽쪽이가 물려졌을 때.
나는.
“퉤엣.”
-하고, 뱉었다.
선의를 베푼 유모랑 언니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머리쿵 베개도 쪽쪽이도 견디기 힘든 굴욕이지만.
하지만 어느 쪽이 더 싫냐면 말할 것도 없다.
‘쪽쪽이라니! 쪽쪽이라니! 이건 인간의 존엄성 문제란 말야!’
내가 쪽쪽이를 뱉자, 유모와 시녀 언니들은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헉! 쪽쪽이 싫으세요?”
“아기님이 쪽쪽이를 거부하시다니!”
“유일하게 좋아하시던 쪽쪽이를!”
유모가 당황을 수습하고 내게 다시 쪽쪽이를 내밀었다.
또 뱉기는 좀 그래서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이어! 아이아야!”
(싫어! 난 아기 아냐!)
내 귀로 듣기에도 제대로 알아먹을 수가 없는 발음이었다.
그런데도 용케도 유모와 시녀들은 알아들은 듯했다.
“싫으세요?”
“쪽쪽이 필요 없으세요?”
“아기님 크셨으니까요?”
나는 고개를 꾸닥거렸다. 내가 생각해도 차마 끄덕거렸다고 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유모랑 시녀 언니들이 너무 놀란 것 같아서 조금 미안했다.
‘그치만, 진짜 진짜 싫은데…….’
유모와 시녀들 눈이 그렁그렁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바닥에서 데굴거리는 쪽쪽이가 보였다.
‘그래도 뱉은 건 너무했나? 다시… 물어야 하나……?’
내가 잠시 존엄성 포기를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세 사람이 갑자기 기쁨의 눈물을 보였기 때문이다.
“세상에 쪽쪽이가 필요 없으시대요!”
“이렇게 강력한 의사 표현이라니!”
“어허어어엉!”
그때. 유모와 시녀 언니들의 주의를 더더욱 강하게 잡아끄는 일이 발생했다.
꼬르륵! 꾸륵!
요란하게 내 배꼽시계가 울린 것이다.
그걸 듣고 유모와 시녀들이 울던 것도 잊고 오두방정을 떨었다.
“세상에! 배고프세요?”
“그러고 보니 벌써 맘마 시간이……!”
유모가 기쁨으로 붉어진 눈시울을 가볍게 훑더니 나를 안아 올렸다.
“오늘은 명명식도 있어서 더 체력을 많이 쓰셨을 텐데, 이 유모가 먼저 신경을 못 썼네요. 죄송합니다, 아기님.”
유모는 나와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내가 옹알이를 하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이상하게 감동했다.
아니, 거의 감격하는 느낌이다.
특히, 쪽쪽이를 뱉는 나쁜 짓(?)까지 했는데, 그걸 도리어 더 기뻐하고 있었다.
왜 저러지?
잠시 고민에 빠져 있는데, 유모가 분유를 타서 나에게 젖병을 물려 주었다.
“웅…….”
이것도 머리쿵 베개나 쪽쪽이만큼이나 부끄러웠다.
젖병이라니!
‘어른의, 그것도 S급 헌터의 자존심이 있지. 젖병…은…….’
하지만 쪽쪽이처럼 거부하기에는…… 우유 냄새가 너무 유혹적이었다.
고소한 냄새에 절로 입이 움직였다.
쪽쪽쪽.
‘마, 맛있어!’
입에 음식이 들어가자, 지금 내가 많이 배고픈 상태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손을 뻗어서 젖병을 직접 잡고 먹기 시작했다.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구!
“어머! 직접 들고 싶으세요? 쪽쪽이도 필요 없다고 하시고. 어쩜…….”
“황녀님이 벌써 다 크셨네요. 크흡.”
“저는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요.”
유모의 눈이 또 촉촉해졌다. 두 시녀 언니들도 손수건을 꺼내서 눈물을 찍어 내기 시작했다.
아니, 젖병 직접 잡고 먹는 거 가지고 왜 난리야? 돌까지 맞았으면 아기라도 이쯤은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마력을 쓴 것도 아니고.
좀 황당해하고 있는데 이들이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 감격하는지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아기님이 너무 늦되셔서 걱정이 컸는데…….”
“눈도 제대로 못 맞추셨고, 목을 가누시는 것도 너무 느리셨으니까요. 이유식은 엄두도 못 냈고 유모님 젖도 거의 안 드시고, 그나마 드시는 분유도 너무 자주 토하셨으니……, 정말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아, 하긴 내가 백치인 줄 알고 있었겠구나.
시녀들이 울먹이며 말하자, 마찬가지로 눈이 빨개진 유모가 분위기를 환기했다.
“이 기쁜 날에 눈물을 보여선 안 되지요!”
“예, 유모님.”
“이제 우리 아기님이 백치가 아니라는 걸 온 제국민이 다 알 거예요!”
그러자 유모가 시녀들을 야단쳤다.
“백치라니! 어찌 황녀님의 전속 시녀가 그런 말을 입에 담는 겁니까!”
그러자 시녀는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유모님.”
“저희는 너무 기뻐서, 그만.”
내가 심하게 늦된 아이였다면, 저렇게 감격하는 것도 이해할 만했다.
대놓고 말은 못 했겠지만 내심 진짜 백치일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하던 와중에 내가 하루 만에 확 변해 버린 거니까.
나는 힘차게 젖병을 빨면서 씩 웃었다.
‘걱정 마, 유모, 시녀 언니들! 그딴 소리는 쑥 들어가게 해 줄게!’
전생에서 S급 헌터들에게는 멋진 별명이 하나씩 붙었다.
바보 같은 오빠조차 염제니 플레임 프린스니 뭐니 하는 별명으로 불렸으니까.
그런데 나를 부르는 별명은 딱 하나였다.
‘S급 망나니.’
빨리 커야지.
빨리 커서 다 패 버릴 거야!
나를 백치니 뭐니 한 인간들 가만 안 두겠어!
쪽쪽쪽!
힘차게 젖병 빠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
“우유를 이렇게 많이 드시다니, 처음이에요.”
배가 오동통해질 때까지 우유를 먹고 나자 절로 트림이 나왔다.
“끄윽.”
“어머. 트림도 빨리하셨어요.”
“이제 정말 괜찮으신 거네요. 돌이 다 될 때까지 등 두드려 드리지 않으면 다 토하셨는데.”
“혹시 이유식도 드실 수 있을지도 몰라요.”
“드디어……!”
유모와 시녀 언니들의 눈이 또 촉촉해졌다.
다들 진짜 고생했구나.
안 크는 아기 인형을 돌보는 느낌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사소한 거 하나만 해내도 저렇게 감격하는 거고.
음. 아기 인생 개꿀.
우유 먹고 트림만 잘 해도 이렇게 칭찬받는다니.
역시 날로 먹는 게 최고야. 늘 새로워. 짜릿해.
1회 차 인생 때는 개고생 해서 마왕까지 해치웠으니, 2회 차 정도는 좀 쉽게 가도 되겠지.
좋아, 배도 좀 채웠겠다.
머리가 좀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나를 계속 성가시게 하던 놈을 처리할 마음이 드디어 들었단 소리다.
시야 구석에서 깜빡거리고 있는 시스템 메시지를.
[일일 퀘스트 완료]
[퀘스트 보상을 수령하시겠습니까?]
일일 퀘스트?
오호라?
‘좋아. 빨리 확인해 보자.’
그전에 일단 유모랑 시녀 언니들을 내보내야지.
내가 이상한 짓 한다고 또 걱정하는 건 싫으니까.
나는 방 안에 혼자 남기 위해 작전을 시작했다.
입을 크게 벌렸다가 닫았다.
“아함.”
시녀 언니들은 또 꺅꺅거리기 시작했다.
“꺄아! 하품하셨어요!”
“병아리 입! 너무 귀여우세요!”
시녀들의 소란을 나무라면서도 유모도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졸리시군요, 우리 황녀님. 코 하고 낮잠 잘까요?”
유모는 나를 아기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 준 뒤, 배를 토닥거려 주었다.
따뜻한 손길이 기분 좋았다.
너무 좋아서……, 하마터면 진짜로 잠들어 버릴 뻔했다.
……절대 깜빡 잠든 건 아니다. 절대!
아무튼 내가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자, 그들은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다.
눈을 반짝 뜨고, 입가에 흐른 침을 슥슥 닦았다.
‘좋아. 드디어 혼자 남았다.’
나는 시험 삼아 짤따란 팔을 움직여 보았다.
전생에서 시스템 창은 이렇게 건드리면 확인이 됐었는데.
“끙……!”
그런데 손이 너무 짧았다. 아깐 어떻게 건드린 거야!
뭐, 시스템 확인하는 방법이 이것만 있는 건 아니니까.
말로 해도 된다.
“시슈!” (시스템!)
잠잠. 아무 반응이 없다.
이 몸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팔만 짧은 게 아니라 혀도 짧았다.
아까 아빠 소리는 어떻게 나온 거야, 대체!
다시 열심히 입술과 혀를 움직여 보았다.
“시슈! 씨슈!”
시스템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씨쓔떼!”
……여전히 감감무소식.
꼭 전생에서 겪은 상황 같았다.
음성 인식 AI에게 아무리 명령을 내려도 제대로 못 알아듣던 상황 말이다.
-죄송합니다. 다시 정확하게 말씀해 주세요.
이런 안내 음성만 나와서 나를 빡치게 하곤 했던.
왜 환생해서까지 그 기분을 느껴야 하는 거지?
내가 잠시 회의감에 빠져 있을 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끼익. 조심스레 문이 열리는 소리.
처음엔 유모나 시녀가 다시 돌아왔나 했다. 내가 하도 ‘시슈, 시슈!’거려서 시끄러웠을 테니까.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발소리가 아까 유모나 시녀들이랑은 다르다.
‘아, 혹시 그건가? 황족을 노린 암살자, 뭐 그런 거?’
난데없는 이벤트에 내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