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1. 메인 퀘스트 : 환생 (05)
황족 다이아수저 생활은 처음이지만, 전쟁은 충분히 경험한 나다.
게이트를 넘어온 몬스터 중에는 그림자에 숨어들어 오는 놈들도 있었고.
헌터 중에는 자기 혼자 살겠다며 동료를 몬스터에게 팔아넘기려는 놈도 있었다.
멸망을 기쁘게 받아들이자는 미친 사교도들까지.
그야말로 미친놈 퍼레이드.
이 정도야 가뿐하지.
만약을 대비해서 살짝 마력을 일으켜 보았다.
마력 회로가 2단계로 활성화된 덕분인지 마력은 자유롭게 움직였다.
이 정도면 암살자 한둘은 껌이다.
하지만 침입자의 발소리는 내 생각이 과한 설레발이라는 걸 알려 주었다.
도도도!
이렇게 보폭 작고 귀여운 발소리를 내는 암살자는 없을 테니까.
다다다 달려온 기척은 곧 내가 누운 아기 침대에 매달렸다.
끙끙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내 눈앞에 빼꼼하고 작은 얼굴이 나타났다.
작고 귀여운 꼬마.
물론 지금 나보다야 훨씬 크지만.
내가 잘 아는 얼굴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이 움직였다.
“어빠?”
오빠?
***
이미 나와 오빠가 헌터계의 다이아수저라는 건 설명한 바 있었다.
그러니 다들 당연히 우리 남매의 각성 등급이 S일 거라 믿고 기대했다.
그 기대가 얼마나 컸냐면…….
나보다 6개월 먼저 각성한 오빠의 첫 등급이 A로 뜨자 국가 단위로 대놓고 실망했을 정도다.
나중에 자기 노력으로 S급으로 올라가긴 했지만, 그때 오빠의 마음고생이 진짜 심하긴 했던 모양이다.
농담과 진담을 섞어서 이렇게 자주 말하곤 했으니까.
“나는 우리 집안의 열등생이라니까.”
오빠보다 6개월 늦게 각성한 내가 각성 등급을 S로 받은 것도 한몫했을 거다.
사실 A급도 대단한 건데.
다시 생각해도 사람들이 좀 너무했다.
저 때 오빠가 잠시 땅을 파며 방황을 했었다.
내가 라면 끓여 달라니까 싫다고 뻗댔을 정도로.
“잘난 S급인 네가 직접 끓여 먹어!”
“그치만 오빠 불꽃으로 끓여야 면이 꼬들꼬들한데…….”
참고로 오빠의 마력은 화염계 속성이라 가스레인지로 끓인 것보다 오빠가 끓인 라면이 맛있었다.
아무튼 엄마 아들이 저렇게 어설픈 방황을 해대자, 우리 강인한 어머니께선 즉효 처방을 내리셨다.
“네가 몸이 많이 편하구나.”
그리고 오빠를 데굴데굴데굴 굴리셨다.
오빠의 짧은 방황 겸 반항은 1년 만에 S급으로 역대 최단기간 승급을 이루면서 끝났다.
덕분에 나는 1년 만에 더 강해진 화력으로 끓인 오빠의 라면을 행복하게 맛볼 수 있었다.
그 뒤, 오빠는 늘 랭킹 5위권 안에서 빠지지 않는 헌터로 이름을 날렸다.
오빠가 나타난 전장은 늘 꺼지지 않는 불로 뒤덮였고.
그래서 염제(炎帝)라는 어울리지 않는 멋들어진 별명도 얻었다.
“어때? 간지 나지? 부럽지? 케케케!”
저땐 진짜로 얄미웠다. 조금 부러워서 더 얄미웠다.
누군 망나니인데.
그래서 아주 패 줬다. 야무지게.
“아악! 살려 줘! 오빠 죽는다!”
“이 정도에 죽을 정도로 약하면 우리 오빠 자격 없거든?”
“……하하! 하나도 안 아프네. 우리 서나 주먹이 솜방망이네!”
“……오빠 입에서 피 나.”
“적당히 하렴. 서나야. 그러다 내 아들 죽는다.”
“이, 정도로 안 죽어요, 엄, 크헥!”
“넹! 엄마!”
하지만, 우리 가족의 행복은 그다지 길지 못했다.
마왕 소환으로부터 3년 전 어머니가 전사하시면서 흔들렸고.
마왕 소환 직후 오빠가 나를 지키겠답시고 제 몸을 방패 삼았을 때 완전히 무너졌다.
짜증 나고 얄밉지만 그래도 오빠였다.
엄마까지 전사하신 뒤에는 세상에 단둘만 남은 가족.
나보다 약하면서도, 오빠는 늘 내 앞에서는 어른 행세를 하려고 했다.
아무리 강하든 얼마나 많은 몬스터를 죽였든 간에, 나보다 약한 주제에.
“내가 너보다 다섯 살은 많거든, 까불지 마!”
기억도 별로 없는 아빠를 대신하고.
또 빈자리를 잊기 힘든 엄마를 대신하려는 것처럼.
내가 열 살짜리 어린아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하고, 늘 지키려 들었다.
그때도.
“서나야!”
나를 밀어낸 오빠의 몸을 검은 가시가 꿰뚫었다.
퍽! 퍼퍽!
연이어 몇 개의 가시가 더 달려들었고, 뜨거운 피가 내 얼굴에 튀었다.
그 꼴로도 오빠는 웃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불꽃을 피워 올려서 갓 소환된 마왕에게 달려들면서 이렇게 외쳤다.
“도망쳐! 빨리!”
그게 오빠의 유언이었다.
그때 나는 동료였던 이들을 믿은 대가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래서 오빠를 구하지도 못했고, 막지도 못했다.
오빠의 마지막 공격은 사교도들의 마왕 소환지 일대를 전부 불태웠으나, 갓 소환된 마왕을 죽이진 못했다.
잠시, 며칠 정도 시간을 버는 게 고작이었다.
그렇게 내 하나 남은 가족마저 곁을 떠났다.
***
안 어울리게 귀여운 파란 눈동자가 나를 보고 끔뻑거렸다.
조금 짜증이 났다.
‘이번엔 눈은 아빠 닮았네.’
저 찰랑찰랑한 은발은 또 뭐야.
전생에 기분 내키면 온갖 염색을 다 하고 다녔지만, 저런 머리 색을 한 적은 없었다.
근데 잘 어울리는 게 더 짜증 났다.
파란 눈이나, 오밀조밀 귀여운 이목구비랑.
특히 젖살이 안 빠진 볼따구가 아주 토실토실했다. 콕콕 찔러 보고 싶게 생겼다.
잘 먹고 잘 살았나 보지?
오빠도 아빠나 우명 삼촌, 나와 같은 경우였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머리 색, 눈 색 등 몇 가지가 달라졌지만, 가족을 못 알아볼 수는 없었다.
외모랑 안 어울리게 시뻘겋게 일렁거리는 영혼의 빛, 아우라도 똑같다.
동글동글한 얼굴과 상기된 뺨, 작은 두 손. 더 동그란 파란 눈이 다 귀여워서 짜증 났다.
가슴께에서 뭔가가 울컥거리고 눈가가 뜨끈해졌다. 그게 너무너무 짜증이 났다.
‘짜증 나!’
사실 제일 짜증 나는 건 나였다.
엄마 아들을 다시 만났다고 반갑고 기뻐서 울 것 같다는 게 진짜 싫고 자존심이 상했다.
아마 전생의 웬수라고 쓰고 오빠라고 읽는 인간은, 내가 울먹거리는 걸 보면 10년은 두고두고 놀려 먹을 일로 생각할 텐데.
“히잉…….”
절대 안 울려고 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울음이 흘러나왔다.
귀엽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데 어려서 어쩔 수 없이 귀여운 오빠 놈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뭐야, 왜 울어? 나 아무 짓도 안 했는데?”
‘했어! 했다고! 그것도 엄청난 짓을 저질러 버렸어!’
나는 반가움과 짜증과 쪽팔림, 분노를 조그만 두 주먹에 잔뜩 담았다.
꽉!
온 힘을 다해 2회 차에서 재회한 오빠 놈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겼다.
“우왁!”
그리고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으에에엥! 으아아앙!”
“악! 이거 놔! 아파! 아프다고!”
“아으아거아어야! 이아하아!”
(아프라고 한 거다! 이 화상아!)
마력까지 써서 온 힘을 다해 당겼더니, 아직 어린 오빠 놈의 몸이 달랑 들려서 아기 침대로 올라왔다.
“으어어?!”
난 울며불며 외쳤다.
“아이에에! 야하우엥끼엥! 아앙? 쥬그려우아에에엥……!”
(누가 그런 짓 하래! 약한 주제에 왜 끼어들고 그래? 죽으려고 작정했어?)
안 그래도 짧은 혀로 구현하기엔 너무 긴 말이었다.
마지막은 그냥 아기 울음소리가 되었다.
나는 계속 울면서 엄마 아들놈의 등짝을 팡팡 후려쳤다.
“우에에엥! 히엥, 흐앙! 으아아앙앙!”
(죽어 버려! 아, 아니, 벌써 죽었지! 아니, 또 죽지는 말고!)
“아아악! 으악! 아팟!”
전생과 비슷한 광경이, 이번에도 재현되었다.
나는 오빠의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두 눈이 퉁퉁 붓도록 울면서도, 웃었다.
엉덩이에 털 따위, 나라지. 뭐!
‘되찾았어!’
아빠에 이어 되찾은 것이다. 오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