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2. 메인 퀘스트 : 성장 (03)
난 계속 행복 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오빠가 황자고 아빠가 황제라면 엄마는 황후다. 아빠가 바쁜 것처럼 엄마도 바쁠 게 틀림없다.
황후씩이나 되면 너무 바빠서 아이를 보러 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왜, 지구에서도 옛날 귀족들은 자식을 직접 키우지 않았다고 하지 않은가.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절대 그럴 성격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얼마 전 눈을 떴을 때가 내 생일날이라는 걸 뒤늦게 떠올렸다.
내 첫 번째 생일.
그날 아빠는 나를 데리고 명명식에 참석하셨다.
일곱 살짜리 꼬마인 오빠도 날 보러 왔다.
그런데 엄마가 왜 오지 않는 것인지…….
진작 이상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사실은 눈치챘지만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저녁, 오빠가 다시 내 방에 얼굴을 내밀었다.
혹시나 하고 물어봤다.
“암마? 암마 오디?”
(엄마 어디 있는지 알아?)
혀짤배기 발음에도 불구하고 오빠는 내 말을 알아들은 듯했다.
쪼그만 얼굴이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그 잔뜩 찡그린 얼굴은 울음을 참고 있어서 나오는 거였다.
일곱 살의 어린 오빠는 한마디를 외치고 복도로 달려가 버렸다.
“몰라! 바보!”
“…….”
나는 아기 침대를 잡고 멍하니 서 있었다.
분명히 뛰어가는 오빠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후, 으엥……!”
절로 울음이 새어 나왔다. 그것도 진심 어린 서러운 울음이.
아빠랑 오빠를 처음 본 이후로 다신 울지 말자고 결심했다.
이미 그때 두 번 울었으니까.
그래서 끝까지 안 울려고 했다. 아무리 아기 몸이라지만 내 알맹이는 어른이니까.
하지만 속으로는 적어도 한 번은 더 울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엄마 때문에.
엄마를 다시 만나면 틀림없이 울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래서 조금 자기 합리화도 하고 있었다.
‘여자는 환생해서 세 번만 우는 거야! 세 번까진 괜찮아.’
조금 기대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성장 포션도 배 터지게 먹고, 우유도 이유식도 많이 먹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엄마를 다시 만났을 때 조금이라도 건강하고 잘 자란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서.
“우에에엥!”
엄마 때문에 한 번은 더 울 거라는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이렇게는 아니었다.
난 엄마를 만나서 반가움과 감동으로 울고 싶었다.
다신 엄마를 못 볼 거라는 걸 깨닫고 슬프고 서러워서 울고 싶지는 않았다.
“으아앙! 암마! 암마!”
“아기님!”
유모 엘제가 달려와 당황하며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유모의 품에 안겨서 한참 동안 목 놓아서 울었다.
“음마아……!”
빌어먹을 시스템!
가족들을 돌려줄 거면 엄마도 돌려주지, 왜 엄마만……. 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진짜로 아기가 되어 버린 것처럼.
***
그 뒤로 나는 꽤 눈에 띄게 시무룩해져 있었다.
유모와 시녀들이 걱정할 만큼.
“입맛이 없으세요?”
“왜 이렇게 기운이 없으실까.”
어지간하면 유모나 시녀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진심으로 상심해 버렸으니까.
전생에서도 엄마의 전사 소식을 듣고는 나도 오빠도 며칠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다 큰 성인이었을 때도 힘들어 했으니 지금은 더할 수밖에 없었다.
“훌쩍.”
풀이 죽어 있자 유모와 시녀들은 날 달래기 위해 애를 썼다.
“자, 아기님. 여기 폭신폭신한 친구랍니다!”
“어때요? 귀엽죠?”
“물론 우리 황녀님이 제일 귀엽지만!”
매끄러운 공단으로 만들어진 토끼 인형, 복슬복슬한 양털로 만들어진 고양이 인형. 혹은 튼튼한 가죽으로 만들어진 강아지 인형.
하루 만에 내 방은 거의 동물원 수준의 인형들로 가득 찼다.
인형의 눈이나 코, 입, 옷이나 장식품엔 반짝거리는 보석이 붙어 있었다.
하나같이 엄청난 고급품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내 기분을 바꿔 주지는 못했다.
“……흐우.”
“아기님…….”
인형만이 아니었다. 온갖 종류의 장난감들도 방으로 날라져 왔다.
딸랑이, 모빌, 블록 등등.
장난감들은 인형보다 한술 더 떠서 귀금속들로 만들어져 있었다. 금, 은, 보석 등등.
번쩍번쩍하네.
그야말로 이 중에 네 취향 하나는 있겠지 싶은 노력이었다.
그리고 그중에…… 내 취향은 없었다.
‘난 알맹이는 스물다섯 살 어른인걸. 인형이나 장난감 갖고 놀 나이는 지났다고…….’
하지만 유모랑 언니들이 너무 전전긍긍하면서 애쓰는 게 보여서 언제까지 아예 무시할 수도 없었다.
‘내가 다시 백치가 된 건 아닌지 걱정되나 봐.’
안 좋은 소문이 나는 것도 싫었으므로, 힘이 안 나도 내야 했다.
“끙, 차!”
어쩔 수 없이 대충 가까이 있는 걸 집었다.
“어머, 그 블록이 맘에 드세요?”
“하스티아에서 보내 주신 선물이죠?”
“그래…….”
내가 장난감에 관심을 가지는 게 기뻤는지 유모의 눈이 다시 촉촉해졌다.
이 나이에 딸랑이나 인형 들고 노는 것보단 블록이 좀 덜 쪽팔릴 테니까.
블록은 세모, 네모, 원 등의 모양으로 깎은 조각과 그걸 끼워 넣을 수 있는 구멍이 뚫린 커다란 네모 상자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놀랍게도 블록도 본체 상자도 투명하고 서늘한 보석이었다.
‘아, 보석이 아닌가? 마력이 느껴지는데. 마력이 결정화된 거네.’
어딘지 모르게 친숙해서 손이 갔다.
‘몬스터한테서 구할 수 있던 마력석 비슷한 건가?’
전생에 헌터들은 몬스터를 잡아 마력석을 얻곤 했다.
그걸로 여러 아이템을 만들기도 하고, 동력원으로도 썼지.
완전히 같은 건 아닌 것 같지만 비슷한 느낌.
‘여기 황족은 아기 때부터 마력석으로 만든 장난감을 갖고 노는 건가? 엄청난데?’
대충 모양을 맞춰서 슉슉 넣고 있자니, 유모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어머나, 바로바로 다 맞추시네요!”
“역시 우리 황녀님은 천재가 틀림없어요!”
“황녀님 쪼꼬만 손가락! 쪽쪽 빨고 싶을 정도로 귀엽……!”
셀리나의 말은 우울함도 잠깐 잊을 정도로 오싹했다.
나는 블록을 쥐고 있던 손을 움츠렸다.
‘설마 진짜로 내 손 물고 빠는 건 아니겠지?’
난 셀리나를 좀 더 경계하기로 했다.
***
유모와 시녀들이 안심할 수 있게 밝은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지만 큰 소용은 없었다.
이들은 날 기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화려한 인형과 장난감. 맛있는 간식. 듣기 좋은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까지.
그런 노력에도 내 생각은 계속 한쪽으로만 쏠렸던 것이다.
‘엄마……. 엄마도 이거 보면 좋아할 텐데.’
‘엄마랑 같이 먹고 싶다.’
‘엄마가 불러 주시던 자장가 생각나.’
그쯤 되자, 유모가 참지 못하고 나섰다.
“황녀님, 황자님, 그러니까 오빠 보러 가실래요?”
내 눈이 번쩍 뜨였다.
“어빠?”
오빠. 전생의 안서운. 그리고 현생의 루퍼스리안.
그때도 지금도 하나뿐인 내 오빠.
그러고 보면 전생에 오빠는 엄마를 아주 많이 닮았었다.
지금은 엄마 얼굴을 모르니 알 수가 없지만, 이번에도 오빠는 엄마를 닮지 않았을까.
그리고 엄마의 전사 후 나와 오빠는 서로 의지해서 슬픔을 이겨 냈었다.
새삼 오빠가 보고 싶어졌다.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까! 까!”
가자, 가자!
짤뚱한 팔다리를 바동거렸다.
사실 축 처져 있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바보 오빠를 놀리다 보면 기분이 좀 나아지겠지.
그러고 보니 하루 넘게 내 방에 안 왔겠다? 벌을 주러 가야겠어!
그렇게 나와 유모, 시녀 언니들은 기세등등하게 황자궁으로 쳐들어갔다.
그리고 황자궁에서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맞닥뜨리고 말았다.
황자궁의 안뜰은 흙바닥 연무장이었다.
그곳에서 오빠와 몇 명의 소년들이 대치 중이었던 것이다.
일곱 살인 오빠보다 서너 살 이상 많아 보이는 소년들이었다.
그 가장 앞줄에 선 소년은 나와는 좀 다르지만 금발 머리를 하고 있었다.
치켜 올라간 눈매가 한눈에도 성격이 아주 더러워 보이는, 싹이 아주 노래 보이는 꼬마였다.
그 꼬마가 입을 열더니 짖기 시작했다.
“황자는 무슨 황자야. 황위 계승권도 없는 반푼이 주제에!”
“맞아! 대공자님 앞에 무릎을 꿇어!”
똘마니가 옆에서 같이 짖고 있었다.
그때 노랑머리 싸가지 꼬마가 한 번 더 왈왈댔다.
“엄마도 없고 마력도 없는 쓸모없는 놈이!”
뭐라는 거야, 저 콩나물 대가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