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4/218)

Level 2. 메인 퀘스트 : 성장 (07)

***

퍙! 퍙!

오빠 놈에게 <궁디팡팡>을 시전했더니, 진짜로 스킬이 활성화되었다.

[스킬 활성화. 스킬명 : <격려와 성장의 궁디팡팡!>]

[스킬 적용 가능 대상 : 루퍼스리안 루스템]

[스킬을 적용하시겠습니까?]

“웅!”

선심 크게 썼다, 오빠 놈!

이 스킬의 효과는 분명히 마력 회로 개방이었다.

전생에서 헌터의 각성은 곧 마력 회로를 여는 것.

헌터가 강해지는 것도 마력 회로를 강화하거나 더욱 확장하는 걸 의미했다.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마력이 더 많아지니까.

‘즉, 이 스킬을 쓰면 오빠를 빨리 각성시킬 수 있을 거야!’

……라는 내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오빠에게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파아앗!

내가 마력을 쓸 때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눈을 가리게 될 정도로 강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력 회로 개방(1단계)]

[마력 회로 랭크 : A]

마력 회로 랭크는 전생이랑 똑같다.

‘그럼 이번에도 잘 굴려 주면 S로 올릴 수 있겠군. 기록 경신을 시켜 볼까?’

내 생각이 들리기라도 한 건지 오빠는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아까 콩나물 대가리보다 서너 배 이상 강한 불꽃의 마력이 오빠의 주변에 일렁이기 시작했다.

‘태양의 마력이라더니 그래서 빛이나 불 속성이 대부분인 건가.’

뭐, 원래 전생에도 오빠는 불꽃을 다뤘으니까.

그런데 오빠의 몸 주변에서 일렁이는 불꽃 속에서 난 조금 이상한 걸 봤다.

날름거리는 불꽃 사이사이로 작은 아이스블루의 결정들이 반짝거렸다.

‘눈 결정……?’

그건 순식간에 녹아서 사라져 버렸다.

‘뭐지? 잘못 본 건가?’

어쨌건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이거였다.

“댜시 마래바. 꽁나무 뎨가리!”

(다시 말해봐. 콩나물 대가리!)

“……뭐?”

경악으로 넋이 빠진 노랑 대가리가 멍청하게 대답했다.

난 놈을 대놓고 비웃었다.

“뉴가 반부니래! 바네 반푸니도 앙대는 노미!”

(누가 반푼이래! 반에 반푼이도 안 되는 놈이!)

***

의기양양한 아기 황녀의 등 뒤로 노오란 병아리 날개가 기세 좋게 으쓱대고 있었다.

오줌싸개에, 반에 반푼이가 된 아키러스를 비웃는 듯.

그리고 또 태양석이 빛나기 시작했다.

아까 황녀가 빛나게 한 때보다는 덜하지만, 충분히 강한 빛.

루퍼스리안의 빛은 아키러스가 태양석을 빛나게 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밝았다.

이 수준으로 태양석을 빛나게 한 황족은 한 대에 많아야 한두 명이 고작이다. 없는 경우도 많았다.

즉, 그들이 대부분 황위 계승자가 되었다는 소리다.

황궁 안에서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태양석이 또 빛난다!”

“오, 오늘 벌써 두 번째야!”

“이번엔 대체 어느 분이?”

“황녀님 것과는 다르지만, 대공자님이나 대공녀님 때는 이 정도로 빛나지 않았잖아?”

다들 의아해했다.

황녀의 빛보다는 작지만 엄청나게 강한 빛이었다.

그리고 벨론드 대공의 두 자식들은 이 정도로 태양석을 빛나게 하지 못했다.

그건 결국 다른 황족이 자신의 마력을 각성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현재 황궁 안에 그럴 만한 이는 한 명뿐이다.

“설마 루퍼스리안 황자님?”

그리고 발 없는 말처럼 빠르게 소문이 돌았다.

“루퍼스리안 황자님이 태양석을 빛나게 하셨대!”

“설마? 다섯 살이 넘어서 마력 각성한 예는 거의 없지 않나?”

이것으로 직계 황족 두 명이 모두 태양의 마력을 각성했다.

그것도 두 사람 모두 지금까지 유력한 계승 후보로 점쳐지던 방계 황족들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증명해 냈다.

황위 계승 구도에 격변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소란을 전혀 모르는 아나트리샤는 오빠가 빛낸 태양석을 보며 진지하게 의심하고 있었다.

‘왜 자꾸 뭐만 하면 번쩍거려? 진짜 신성한 거 맞아? 그냥 사이키 조명 같은데?’

***

어두운 방 안.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황자가 마력을 각성한 게 사실이라고?”

“예. 예. 비 전하.”

벨론드 대공의 아내이자 아키러스의 어머니인 대공비 루도비카.

그녀는 충격적인 소식을 연달아 들어야 했다.

이미 명명식에서의 일로 황녀가 백치가 아니라는 소문이 슬슬 돌기 시작했다.

대공비는 아기 황녀를 무시하기 위해 병을 핑계 삼아 명명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거기서 아기 황녀가 말문을 트고 태양석까지 빛나게 해서 걱정이었는데.’

이 소문이 퍼지는 걸 막기 위해 대공비가 얼마나 애를 쓰고 있었나.

그런데 이젠 황자까지 마력을 각성한 것이다.

그것도 둘 다 그녀의 자식들보다 월등히 강한 힘을 증명했단다.

그것만으로도 경악스럽고 좌절하기에 충분한데.

더 충격적인 소식까지 있었다.

자랑스러운 아들이 황자궁에서 수치스러운 일을 당했다니.

황자 황녀가 작당하고 순한 제 사촌을, 아키러스를 핍박한 거다.

아들은 굴욕과 수치심에 방 안에 틀어박혔다.

대공비는 손수건을 눈물로 적셨다.

“대공가에 이런 수치가! 이를 어쩌면 좋을까.”

아들이 받은 상처를 걱정해서는 아니었다.

그로 인해 타격 입을 자신의 명예와 권력을 걱정했을 뿐.

그때 주황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귀여운 외모의 소녀가 다가와 대공비의 치마에 안겼다.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엄마. 제가 있잖아요.”

세실리아 역시 태양석을 빛나게 한 황족이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오히려 그녀의 빛은 제 오빠보다 강했었다.

“제가 전부 갚아 줄게요.”

소녀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

루퍼스리안 황자의 소식은 빠르게 황궁의 중심으로 향했다.

종종 기사가 아니라 도적이라 의심받는 광휘 기사단의 단장 기드온은 기쁜 소식을 직접 주군에게 알렸다.

“폐하! 황제 폐하! 보셨습니까? 태양석이 또 빛났습니다.”

집무실에서 기계처럼 정무를 처리하고 있던 카스톨트 황제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래. 두 번 빛나더군. 처음은 아나트리샤의 것과 비슷했다.”

“그건 황녀님의 빛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가 중요합니다!”

기드온은 잔뜩 호들갑을 떨었다. 그만큼 기쁜 일이었으니까.

“황자님께서, 루퍼스리안 황자님이 마력을 각성하셨습니다! 조금 전 태양석의 두 번째 빛이 바로 그것이라고 합니다!”

이 소식에는 얼음 같던 황제도 서류를 만지던 손을 잠시 멈췄다.

“루퍼스리안이?”

“예! 경하드립니다, 폐하!”

“경하드립니다!”

기드온과 시종장을 비롯해 주변의 신하들이 무릎을 꿇고 하례 인사를 올렸다.

그들은 대표적으로 벨론드 대공 일파의 독주를 견제하는 황제의 충신이자 심복들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벨론드 대공 일파의 오만함은 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황자에게는 마력이 없었고, 황녀는 백치라는 오해를 받는 상황.

벨론드 대공과 그 자식들에게 맞설 직계 황족이 없으니, 일개 신하에 불과한 그들이 직접 나서기도 힘들었다.

그 와중에 황제는 굳게 마음을 닫은 채 침묵할 뿐.

그런데 이제 모든 걱정과 불안이 싹 사라졌다.

황녀는 명명식에서 자신이 백치가 아님을 보여 주고 어마어마한 마력까지 증명했다.

그리고 이제 연달아 황자까지 강력한 마력을 각성한 것이다.

‘이제 벨론드 대공 일파도 앞뒤 안 가리고 나대지 못하겠지!’

그들이 환호작약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가장 기뻐해야 할 황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잠시 침묵하다가 이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다행이군. 태양의 책에 루퍼스리안의 이름을 정식으로 기록하도록 명해라.”

태양의 책은 황실의 계보도를 부르는 별명이다.

황족은 직계라도 태양의 마력을 증명해 내기 전까지는 계보도에 기록되지 못한다.

마력 없이 성인이 되는 순간 황족의 자격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한때 벨론드 대공이 그랬던 것처럼.

때문에 루퍼스리안은 지금까지 태양의 책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마력을 각성했으니 계보도에 이름을 올릴 자격을 얻은 것이다.

이는 곧 황위 계승권을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황제는 당연한 절차를 명령하고는 다시 서류에 눈길을 고정했다. 손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사단장과 시종장은 침묵 속에 시선을 교환했다.

‘폐하께선 여전히…….’

‘아직도 상처가 낫지 않으신 건가.’

황제가 계속 지금 같았던 건 아니다.

1년 전까지, 그는 냉혹하면서도 유능한 황제일 뿐만 아니라, 아내를 사랑하고 아들을 아끼는 남자였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황제의 마음은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일하는 기계처럼 자식들에게조차 눈 돌리지 않고 지내 왔다.

심장까지 얼어붙은 조각상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처럼.

‘그때’를 제외하면.

‘황녀님을 안아주셨을 때는 정말 놀랐지.’

황녀의 명명식.

그때 황제는 저를 향해 울며 팔을 휘젓는 딸을 안아 들었다.

1년 사이, 황제가 처음 보인 인간적인 반응이었다.

그 사실이 희망을 가지게 해 주었다.

어린 황녀가 황제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 주지 않을까 하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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