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3. 메인 퀘스트 : 아빠 공략 (01)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콩나물 대가리를 퇴치한 뒤는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나는 퀘스트를 해치우는 데에 열중했다.
[일일 퀘스트]
[퀘스트 명 : ‘밥 잘 먹는 새나… 아니, 새 세계의 어린이!’]
[완료 조건 : 분유 먹기 (1/3), 이유식 먹기(1/3), 트림하기 (2/6).]
쪽쪽쪽!
열심히 젖병을 빨고.
“냠냠냠!”
이유식도 열정적으로 먹었다.
그러자 뾰롱뾰롱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마구 떠올랐다.
[퀘스트 완료!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그리고, 유모와 시녀들의 눈을 피해 쑥쑥 물약도 먹었다.
꿀꺽꿀꺽.
[성장치 +1]
한 가지 실수가 있었다면 쑥쑥 포션 먹는 걸 오빠 놈에게 들켰다는 거?
“뭐 먹는 거야, 리샤?”
“내꼬야.”
나는 쑥쑥 포션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
물약 병이 너무 커서 두 손으로도 다 안 가려졌다. 쳇.
오빠는 충분히 크잖아!
지금 난 두 살인데도 몇 달은 어려 보일 정도로 작고 발달도 별로라고!
이게 필요한 건 나야!
오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뭔가 불길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넓은 소파에 나랑 같이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러고는 무릎을 꿇고 나를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간절하게 반짝반짝하는 눈으로.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고양이 눈 같은데?’
연이어 꿀 떨어질 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였다.
“정말 오빠 안 줄 거야, 우리 리샤?”
‘그렇게 애기 게 뺏어 먹고 싶냐, 바보 오빠야.’
하긴 아무리 오빠라도 지금은 겨우 일곱 살짜리 꼬마였다. 철들려면 멀었지.
내가 봐줘야지 어쩌겠어.
한숨을 포옥 쉬자, 오빠 놈의 한심한 탄성이 들렸다.
“앗. 조그만 한숨 귀여워!”
2회 차 인생. 이제는 두 살.
그동안 귀엽다, 예쁘다, 사랑스럽다는 말은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젠 이골이 났다.
하지만 유모나 언니들이 해 주는 말은 조금 부끄럽고 마는데, 오빠 놈이 저러면…….
‘안 그래도 작은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없어지겠다!’
나는 크게 선심을 쓰기로 했다.
정신 연령이 몇 배는 위인 내가 봐줘야지.
이불 속에 숨겨 두었던 걸 꺼내는 척, 인벤토리에서 쑥쑥 포션을 하나 꺼냈다.
“예따. 아껴나떤거야.”
(옛다. 아껴 놨던 거야.)
딱 한 입만 먹었던 쑥쑥 포션 하나.
“거마어하라구. 에헴.”
(고마워 하라구, 엣헴.)
그러자 오빠 놈은 백합이 만개하는 듯이 환하게 웃었다.
“고마워, 리샤! 오빠한테만 특별히 주는 거지?”
“웅.”
고개를 꾸닥꾸닥했다.
오빠 놈이니까 준 거 맞다.
콩나물 대가리 같은 놈이었음 국물도 없었지.
나는 최대한 해사해 보이도록 웃었다.
“다 머거야대?”
(다 먹어야 돼?)
“응!”
나는 사악한 미소를 쑥쑥 포션을 마시면서 가렸다. 꿀꺽꿀꺽.
오빠는 희희낙락하며 쑥쑥 포션 병을 열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웁?”
보기 좋게 얼굴이 일그러졌다.
‘케케. 걸렸구나!’
쑥쑥 포션은 학부모들 사이에서 우리 아이 키 크는 포션으로 인기가 좋았지만.
반대로 아이들 사이에서는 악명이 높았다.
일명, ‘온갖 맛 나는 포션’.
오렌지 맛이나 초코 맛 등부터,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불닭 맛, 혹은 누구나 싫어하는 코딱지 맛 이런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맛이 걸릴지는 순전히 운이었다.
아이템 설명에도 안 쓰여 있고, 냄새로도 구분이 안 됐다.
맛을 봐야만 알 수 있었다.
내가 괜히 저걸 한 입만 먹고 인벤토리에 넣어 둔 게 아니다.
‘저거 걸레 빤 물 맛이니까!’
사실은 양배추 삶은 물 맛인데, 나는 걸레 맛으로 불렀다.
그리고 오빠도 아주아주 싫어하던 맛이다.
역시나 이번에도 오만상을 다 찌푸리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무해하고 귀여운 아기의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다.
“어빠, 다 머글꺼지?”
(오빠, 다 먹을 거지?)
그러면서 내 쑥쑥 포션을 쪽쪽 빨았다.
음. 맛있어. 이건 흑당 버블티 맛이네. 그리운 한국의 맛!
흑당 버블티 맛 포션을 원샷한 뒤에 다시 쐐기를 박았다.
“리샤가 트뼈리 쥰곤데. 다 안 머그묜 미오할 꼬야!”
(리샤가 특별히 준 건데, 다 안 먹으면 미워할 거야!)
스물다섯도 더 넘은 나이의 처자가 하기엔 손발이 좀 오글거리는 말이지만.
어쨌든 몸은 두 살짜리 애기인걸!
이 정돈 괜찮아!
“…….”
귀엽고 깜찍한 동생의 협박을 들은 오빠 놈의 얼굴색이 노래졌다.
다른 선택의 여지 따윈 없었다. 오빠는 코를 막고 걸레 맛 포션을 원샷했다.
오만상을 다 쓰는 오빠를 보며 나는 손뼉을 치고 웃었다.
“꺄하! 꺄우!”
포션 들어간다, 쭉, 쭉쭉쭉-!
괜찮아. 몸에 좋은 거야. 오빠 키가 전생보다 1cm는 커질 거라고!
그렇게 난 성공적으로 오빠 놈에게 엿, 아니…… 포션을 먹이는 데에 성공했다.
“아쌰!”
오빠는 포션 원샷하고 30분 가까이 귀여운 얼굴을 잔뜩 찌그리고 있었다.
유모가 가져다준 레몬 사탕을 하나 나눠 주고 나서야 겨우 원래대로 돌아왔다.
덕분에 한쪽 볼때기가 퉁퉁해져서는 헤실헤실 웃고 있는 게 영락없이 일곱 살짜리 꼬마다.
기분이 묘했다.
전생에 오빠는 늘 나보다 나이가 많았으니까.
이렇게 나보다 훨씬 어린(?) 오빠를 보는 건 이상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애기라서 언제 크나 몰라.’
그러니까 쑥쑥 포션도 나눠 준 거다.
저번에 보니까 콩나물 대가리한테도 당하고, 자기 궁의 시종들에게도 무시당하던데.
‘전생에도 그러더니 약해 가지고 여기저기 당하고 다니기만 해서 어떡해.’
역시 내가 강하게 잘 키워야(?)겠다.
‘그러고 보니 오빠는 교육 같은 거 안 받나?’
오빠는 거의 내 궁에서 살다시피 했다.
해가 뜨면 달려와서 나랑 같이 밥 먹고 하루 종일 놀다가, 잘 때가 되어서야 유모에게 재촉을 받으며 돌아갔다.
‘명색이 황자인데 제왕학이라든가 뭔가 배울 거 많지 않아? 나야 아직 아기라서 없겠지만.’
혹시 땡땡이치고 있는 거 아냐?
나는 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빠, 헉시 때때이야?”
“응? 땡땡이?”
“겅부!”
오빠는 백합꽃이 피는 것처럼 환하게 웃었다.
“아니. 그런 거 없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기억이 났다.
전생에도 오빠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저렇게 웃곤 했다.
진심을 다 해서 예쁘게.
그러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자기가 뭐라고 물었는지도 까먹었다.
그런데 나한테는 통할 리가 있나!
나는 두 팔을 퍼덕거리면서 엄하게 외쳤다.
“앙대! 고진말! 때때이!”
“아니라니까아―.”
오빠는 애교를 붙여 말끝을 늘여댔다.
어디서 또 수작을!
나는 더더욱 엄하게 외쳤다.
“압빠가 이눔 하꼬야!”
(그러다가 아빠한테 혼난다!)
그러자 바보처럼 헤실거리던 오빠의 표정이 싹 굳었다.
내가 잠시지만 깜짝 놀랄 만큼 차가운 표정이었다.
***
놀라서 굳은 여동생의 표정을 보고, 루퍼스리안은 자신의 실수를 눈치챘다.
소년은 능숙하게 표정을 바꿨다.
가면을 갈아 끼우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었다.
비록 늦게 마력을 각성했어도 태양신의 축복을 받은 루스템의 혈족은 대대로 조숙했으니까.
덕분에 거의 버려졌던 소년이 마력도 없이 견딜 수 있었던 거기도 했다.
황자궁에 홀로 방치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때에도 어린 동생은 루퍼스리안에게 하나뿐인 기둥이었고 안식처였다.
지금처럼 대화를 하고 눈을 맞추는 건 상상도 못 할 상태였지만.
태어난 이후 1년간 아나트리샤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었으니까.
숨만 쉬는 인형처럼 아기 침대에 누워 있기만 했어도.
루퍼스리안은 그런 상태의 동생을 보기 위해 계속해서 황녀궁에 드나들었다.
“네가 오빠니까, 아가를 지켜 주렴.”
오지 않을 수 없었다.
아기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늘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큰 위안이었으니.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족.
그런데 지금은 저렇게 활달하게 웃고, 기고, 걷고, 말을 했다.
오빠를 골려 주겠다고 머리를 굴리는 건 꿈처럼 기뻤다.
그야말로 존재 자체가 축복이고 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