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3. 메인 퀘스트 : 아빠 공략(04)
***
나는 꽤 자신감이 넘치는 태도로 움직였다. 짧은 팔다리를 열심히 흔들어서-.
쫑쫑쫑. 기세 좋게 걸었다.
“헛, 차, 읏, 차!”
‘나 꽤 컸다구!’
분유랑 이유식도 잔뜩 먹었고, 쑥쑥 포션도 많이 먹었다. 이제 젖병은 안녕 하기로 했을 정도다.
쫑쫑…, 쫑. 쉬지 않고 두 다리를 움직였다.
부지런히. 빠르게!
“후, 아우, 후!”
객관적으로 봤을 때 몸은 많이 자랐다. 힘도 제법 세졌고.
지구력도 늘었을 거다.
……아마도? Maybe?
쫑쫑…… 쪼옹?
으헉, 뭐지? 아기 신발이 사실 쇠로 만들어졌다거나 그런 거야, 설마? 무, 무거워!
절로 목마른 강아지 같은 소리가 튀어나왔다.
“헥헥헥!”
나는 어쨌건 제법 걸었다. 걸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10분 정도는?
그게 한계였다는 소리다.
“흐에…….”
나도 모르게 숨이 차고 다 죽어 가는 소리가 나왔다.
제법 컸다고 생각했음에도 여전히 짤따란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벽에 손을 대고 서서 숨을 고르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쯤이면 아마 황녀궁 정문쯤…….
‘아직 침실 복도도 못 지났어?!’
그렇다.
내게는 장거리 달리기처럼 길게 느껴졌는데, 실제로는 황녀궁의 내 침실 복도조차 다 못 나왔던 거다.
복도 끝 모서리까지 도착하지도 못했다.
‘이게 뭐야! 나 큰 거 맞아?’
잠시 좌절하는데, 오빠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두 팔을 뻗었다.
“안아 줄까?”
일곱 살짜리 꼬마의 팔이지만 어쨌건 지금 나보단 훨씬 컸다.
안락하고 굳세 보여서 아주 유혹적이었다.
저기 안겨서 가면 아주 편하겠지.
하지만 난 조금 전의 원한을 잊지 않았다.
“시로! 호쟈 가꼬야! 헥헥!”
오빠를 피해서 다시 쫑쫑쫑 걷다가 또 숨이 찼다.
어쨌건 나는 고집을 유지했다.
‘같이 가자고 두 번이나 말했는데, 싫다고 했잖아! 나 삐졌어!’
……라고 온몸으로 주장했다.
‘이제 와서 무슨! 흥!’
……도 숨기지 않았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던 오빠가 두어 걸음을 더 걸어서 내 앞으로 왔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시선을 마주쳤다.
“리샤.”
“훙.”
내가 눈을 돌리자, 잔뜩 풀 죽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안해. 오빠가 잘못했어.”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아까 쑥쑥 포션을 조를 때보다 더욱 간절하고 불쌍한 고양이 눈을 한 오빠 놈이 있었다.
“용서해 줘. 같이 데려가 줘. 응?”
응석을 부리고 애원하는 표정과 목소리.
‘그래, 반성하면 용서해 줘야지. 나는 마음이 넓으니까!’
……를, 이번에도 표정과 태도로 표현한 다음.
나는 고개를 꾸닥거리며 두 팔을 뻗었다.
그러자 울상이던 오빠의 표정이 확 펴진다.
오빠는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아직 어리지만, 그래도 나보다 훨씬 크고 탄탄한 오빠의 품에 폭 안기니…….
따뜻했다. 그리고, 세상 어떤 것으로부터라도 날 지켜 주겠다는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 든든했다.
오빠의 팔에 고개를 묻으며, 나는 사악한 미소를 감췄다.
‘좋아! 계획대로야!’
사실 혼자서도 충분히 아빠에게 갈 수 있었다.
물론 내 몸은 여리고 약해서 직접 걸어가는 건 무리긴 했다.
조금 전 복도에서 아장거리다가 헥헥거린 건 연기가 아니었다.
아무리 지난 몇 달간 빠르게 자랐어도, 나는 겨우 두 살. 만으로는 아직도 한 살이다.
게다가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나이보다 작아 보인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아직도 덜 자란 아기.
마력을 써서 몸을 강화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일시적일 뿐이다.
지금 내 약한 몸을 마력으로 오랜 시간 강화하면 며칠은 앓는 정도를 넘어서서, 꽤 심한 내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오빠와 처음 재회했을 때, 흥분해서 침대 위로 끌어 올리느라 마력을 썼다가, 며칠간 근육통에 시달렸을 정도다.
그래서 지금까지 신체 활동을 할 때마다 마력의 도움을 받는 건 나름대로 자제했다.
마력으로 내 몸을 강화해서 아빠가 있는 곳까지 직접 걸어갔다간 큰일 날 수 있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난 전직 S급 최강의 헌터였다구!’
마력으로 몸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그냥 방출해서 몸을 띄우면 그만이다.
그러면 지금 내 작고 여린 몸에도 타격이 적다.
물론 마력 소모는 엄청나겠지만 상관없는 일.
‘마력이야 전생만큼은 아니라도 지금도 넘치니까.’
그런데 안 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오빠가 날 데리고 가게 하려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2회 차의 오빠는 아빠에 대해 거부감을 보였다.
이걸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어떻게 되찾은 가족인데!’
그래서 나는 메소드 연기를 펼친 것이다.
‘나 오빠한테 삐졌어!’
……를 온 힘을 다해 행동과 표정으로 표현하고.
그리고 무리인데도 혼자서 걸어가려는 갓 태어난 사슴 같은 걸음걸이의 아기를 연기…, 아, 이 부분은 연기가 아니었지만.
‘내 예상대로 재깍 넘어오셨군!’
나는 오빠의 품속에서 히히 웃었다.
‘예나 지금이나 오빠 패턴은 전부 내 손 안에 있다니까.’
그리고 새삼 깨달았다. 아빠 아들은 꽤 좋은 이동 수단이다.
특히 나처럼 작고 약한 아기에게는, 더더욱.
“가쟈!”
이랴, 이랴!
“네이. 네이.”
내가 10분 넘게 뽈뽈 거리면서 겨우 걸은 거리를, 오빠는 대여섯 걸음 만에 주파해 버렸다.
***
“어이쿠! 이게 누구십니까! 황자님! 아니, 황녀님까지!”
루퍼스리안은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오랜만이오, 광휘 기사단장.”
광휘 기사단장 기드온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기드온이라고 불러 주시라니까요. 황자 전하. 태양의 마력 각성, 진심으로 경하드립니다.”
그는 기사답게 군례를 올렸다.
우쭐할 법도 하건만, 루퍼스리안은 얼음처럼 냉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건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누가 보아도 겨우 일곱 살로는 보이지 않는 의젓함이다.
벨론드 대공의 두 아이가 태양의 마력을 각성했을 때, 얼마나 오만방자하게 굴었는지는 유명했다.
여러모로 대조적인 모습.
‘역시 폐하의 아드님! 꼭 닮으셨군!’
기드온은 카스톨트 황제를 소년 때부터 모셔 왔기에 어린 시절 황제의 모습을 잘 알았다.
기드온의 눈이 자연스럽게 루퍼스리안의 품에 안긴 자그맣고 사랑스러운 아기에게 닿았다.
보송하고 보들보들해 보이는 병아리 솜털 같은 머리카락.
사파이어와 자수성을 녹인 물감을 섞어서 칠한 듯한 오묘한 청자색 눈동자는 동글동글했다.
명명식 때에는 안쓰러워 보일 정도로 말랐었는데, 지금은 뺨도 팔다리도 제법 포동포동했다.
기드온의 커다란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우리 황녀님은 더더더 귀여워지셨군요! 그새 엄청 크신 것 같습니다!”
그러자 기드온을 알아본 듯 아나트리샤가 작은 손을 흔들었다.
“우…, 아찌! 안냥!”
“오오! 절 알아보시는 겁니까?!”
찌잉. 기드온은 진심으로 감동했다.
“이 기드온 감동했습니다! 역시 우리 황녀님뿐이에요!”
기드온은 커다란 덩치를 잔뜩 구겨서는 작은 루퍼스리안과 더더더욱 작은 아나트리샤 앞에서 재롱을 피우기 시작했다.
“우루루루, 까꿍! 황녀님!”
“꺄하! 꺄우!”
아나트리샤는 환하게 웃다가 기드온의 수염을 잡아당겼다.
“어이쿠! 마음에 드십니까? 잘라드릴까요?”
그러자 꺄꺄거리던 아기가 갑자기 정색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중 가장 또렷한 발음으로 대꾸했다.
“싫어. 필요 없어.”
“…….”
기드온은 여린 마음에 진심으로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치유력이 아주 좋은 타입이었다. 몸이든 마음이든.
금세 웃어넘긴 기드온은 되려 너스레를 떨었다.
“다음엔 면도를 잘하고 오겠습니다!”
“웅!”
기드온의 솥뚜껑 같은 손보다 절반은 작은 아기의 머리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어이쿠, 똑똑하셔라!”
그는 두 팔을 뻗으며 물었다.
“제가 황녀님을 좀 안아 봐도 될까요?”
그러자 무덤덤하던 루퍼스리안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안 되오. 위험해.”
“네? 제가 이래 봬도 제국 제일의 기사입니다! 절대 황녀님을 떨어뜨릴 일은 없습니다!”
그러자 루퍼스리안은 동생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으며 대꾸했다.
“리샤의 피부는 아주 약하오. 기사단장의 철사처럼 거친 털은 리샤의 여린 피부를 상하게 할 게 틀림없소.”
기드온은 서글픈 표정으로 털이 무성한 제 손등을 보았다.
그리고 갓 오븐에서 꺼낸 푸딩보다 여려 보이는 황녀의 피부도.
불행하게도 황자의 말은 아주 논리적이었다.
멈칫거림도 잠시. 다시 말하지만 기드온은 아주 회복력이 빠르고, 유연성이 좋은 사람이었다.
육체적으로도. 그리고 특히 정신적으로.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외쳤다.
“그럼 황녀님을 안은 황자님을 제가 안아 보면 되겠군요!”
“……뭐, 라고?”
기드온의 솥뚜껑 같은 손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루퍼스리안의 양쪽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번쩍 들어 올리는 움직임이 아주 가벼웠다.
아나트리샤는 퍼뜩 무언가를 떠올렸다.
‘이거, 사자 왕 나오는 애니메이션에서 본 자센데?’
전생 어릴 때 보았던 만화 영화의 한 장면이 연상되는 구도.
만화 영화의 원숭이 손에 들린 아기 사자처럼 루퍼스리안의 발이 달랑달랑거렸다.
기드온은 ‘핫핫핫!’하고 웃으며 황녀를 안은 황자를 둥개둥개 했다.
“하하하! 이렇게 하면 한 번에 두 분을 안는 셈이죠! 일석이조가 아닙니까! 하하하하!”
“…….”
이런 굴욕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차라리 아키러스 놈이 무릎을 꿇으라고 모욕할 때가 지금보다 나았다.
루퍼스리안의 푸른 눈에 희미하지만 살기가 돌았다.
그러나.
“꺄아! 꺄우우우! 꺄륵! 아찌 져아!”
아나트리샤가 너무 좋아하고 있었다.
“…….”
루퍼스리안은 동생의 기쁨을 방해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황족의 존엄성을 일부 포기하기로 했다. 동생을 위한 크나큰 결단이었다.
루퍼스리안은 온몸에서 힘을 풀고 기드온의 손길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무력한 고양이처럼.
“꺄하!”
아나트리샤의 환호성이 본궁 안마당을 울렸다.
그때였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들린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