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9/218)

Level 3. 메인 퀘스트 : 아빠 공략(05)

***

“이게 무슨 소란인가?”

익숙한 목소리. 내 고개가 그쪽으로 팍 하고 돌아갔다.

본궁의 3층 창문에 익숙한 인영이 서 있었다.

당연히 그 인영의 주인은 본궁의 주인인 아빠였다.

마력으로 시력을 강화한 덕분에 아빠의 표정도 자세히 보였다.

눈 밑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미미하게 미간이 찌푸려져 있었다.

‘일하는 게 많이 힘드신가?’

그럼에도 아빠의 미모는 열일하고 있었다.

일에 찌들어 보이는 게 아니라 우수에 잠긴 걸로만 보였던 것이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압빠!”

작은 조가비 같은 양손을 펼쳐 파닥거렸다.

그러자 아빠의 미간에 잡힌 주름이 더더욱 깊어졌다.

신선하다 못해 낯선 광경이다.

‘아빠가 날 보고 얼굴을 찌푸리다니!’

당연히 전생에 아빠는 날 볼 때마다 늘 웃곤 했다.

저러다가 얼굴 근육이 전부 분해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바보같이 풀어진 표정이었지.

내가 잠시 과거의 추억에 젖어 있는데 아빠의 축객령이 이어졌다.

“돌아가거라. 이곳은 어린애들 놀이터가 아니다.”

나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화를 냈다.

“찌러! 압빠!”

나와 아빠 사이에 팽팽한 대치가 이어졌다.

아빠는 여전히 차가운 눈으로 나를 보았고.

나는 두 팔을 바동거리며 아빠를 올려다보며 외쳤다.

“아나죠!”

내 앙탈에 아빠의 표정이 더더욱 심각해졌다.

그러자 우명 삼촌(기드온)은 나와 오빠를 바닥에 내려놓고 아빠를 설득하려 나섰다.

“폐, 폐하! 황녀님 황자님이 일부러 본궁까지 오시지 않았습니까. 잠시라도 안으로 들이셔서 돈독한 시간을 보내시는 게…….”

아빠는 말없이 나와 오빠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는 차가운 어조로 대꾸했다.

“장난할 시간은 없다. 돌아가도록.”

절로 작은 어깨가 움츠러들 정도로 냉기 가득한 목소리.

나를 끌어안은 오빠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귓가에서 오빠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그렇지.”

오빠는 실망한 기색조차 없었다.

짙은 체념만이 묻어날 뿐.

‘대체 아빠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아빠가 나랑 오빠한테 이럴 리가 없는데!’

오빠의 반응을 보면 아빠가 이런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는 소리다.

“신경 쓰지 마, 리샤. 나랑만 재밌게 놀자.”

오빠는 분명히 내가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하며 달래고 있었다.

혹시 본궁에 오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이 때문일까.

당장 짐작이 가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엄마와 관련이 있는 걸까.’

난 잘 알았다.

엄마가 아빠를, 그리고 아빠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아무리 2회 차라지만 그 사랑꾼 영혼을 그대로 가진 채 환생한 아빠가 저렇게 변해 버릴 만한 이유는 엄마의 부재 외에는 떠올릴 수 없었다.

그때였다.

뾰롱뾰롱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System Error! 잘못된 접근입*&(^%!]

뭐, 뭐야?

내가 당황할 사이도 없이 메시지가 마구 갱신되었다.

[표시 가능한 메시지만을 출력합니다.]

[$%^ 퀘스트]

[퀘스트 명 : ‘아빠 공략’]

[설명 : 당신의 아버지인 카스톨트 황제는 1년 전의 %$#■#& 사건으로 깊은 마음의 ^%^■^습니다. 자식들을 멀리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얼어붙은 아빠의 마음을 녹여 가족*&■ 되찾기로 한발 더 나아가세요.]

이게 뭐야?

오빠 때 준 퀘스트에서는 내용이 다 보였는데.

게다가 퀘스트를 받았을 때 이미 완료가 되어 있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번엔 어떻게 해야 한다는 설명이 없다.

아니, 아예 제대로 쓰여 있는 게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빌어먹을 시스템!’

언젠가 시스템을 한 대 패 주고 말 거다.

왜 있잖은가. 원래 기계가 잘 고장 났을 때는 몇 대 두들겨 주면 고쳐지고 하잖아.

‘그러면 틀림없이 시스템 에러도 고쳐질 거야!’

그때,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연이어 메시지가 갱신되었다.

[완료 조건 : 카스톨트 루스템의 #$%@^%!%@?]

[$%[email protected]!§■▦■■▒……?]

얼씨구.

순간. 눈앞을 시뻘겋게 빛나는 에러 메시지들이 가득 채웠다.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

으악! 깜짝이야! 이게 갑자기 무슨 테러야! 눈 아파!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올려 두 눈을 가렸다.

하지만 조금 늦어서, 아기의 여린 시력에 에러 메시지 세례는 좀 타격이 있었던 모양이다.

눈물이 찔끔 맺혔다.

***

“돌아가거라. 이곳은 어린애들 놀이터가 아니다.”

카스톨트 황제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을 때, 루퍼스리안은 놀라지 않았다.

상처를 받지도 않았다.

저런 반응일 거라는 걸 이미 예상했고, 기대를 접은 지 이미 1년도 더 지났으니.

다만 걱정되는 건 하나였다.

루퍼스리안의 시선은 자신의 품에 안긴 여동생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리샤가 상처받으면 안 되는데.’

자신은 이미 익숙하니 괜찮았다. 괜찮아졌다.

하지만 아나트리샤도 과연 그럴까.

루퍼스리안조차 부친의 외면이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동생이 없었다면 상처를 극복할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 작고 여린 동생은 오죽할까.

그래서 차라리 아나트리샤가 아버지라는 존재를 모르길 바랐다. 그게 더 낫다고.

교묘하게 그렇게 유도하기도 했다.

늘 옆에 붙어서 아버지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화제를 돌렸다.

처음에는 가능할 듯 보였다.

황제는 자식들에게 관심을 아예 끊고 있었고.

그동안 남매는 궁인들의 손에 자라다시피 했으니까.

‘그때’ 갓 태어난 아기였고, 얼마 전까지 백치로 오해받을 정도로 아팠던 아나트리샤다.

자신과 궁인들만 조심하면 먼저 아빠의 존재를 떠올리거나 찾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차라리 찾아오지도 않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예 황제를 없는 존재처럼 생각하고 자라는 게 나을 테니까.

그러면 여동생은 다치지 않을 수 있다고,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자신이 틀렸다.

“압빠하테 가꼬야!”

여동생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영특했다.

아나트리샤는 겨우 명명식에서 한 번 본 아버지를 잊지 않았던 거다.

그리고 그의 생각보다 따스하고 정이 깊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저를 찾지 않는 아버지를 직접 찾아올 만큼.

그랬는데.

그런데, 황제는 이 아이의 착하고 애달픈 마음까지 배반한 거다.

루퍼스리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품 안의 아나트리샤는 크게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귀여운 청보라색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분홍색으로 상기되었던 통통한 양 뺨이 파랗게 질렸다.

아이가 이런 얼굴을 하는 건 내내 곁을 지킨 루퍼스리안조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원인이자 가해자가 아버지라니. 슬프고 억울했고, 또 무엇보다 화가 났다.

품 안의 작은 몸도 루퍼스리안과 같은 감정인지 충격과 슬픔으로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소년은 살기 가득한 눈으로 자신의 아버지이자 황제를 쏘아보았다.

‘내게도 모자라서, 감히 리샤에게까지!’

그것만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때.

아이의 자그마한 두 손이 제 눈을 가렸다.

루퍼스리안은 보고 말았다. 소중한 여동생이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크리스털보다 빛나는 작고 귀중한 물방울이 이슬처럼 맺혔다. 너무나도 서글프게.

소년의 눈에 새파란 불꽃이 튀었다.

“이젠 리샤에게까지 상처를 주는 겁니……?!”

루퍼스리안이 막 분노를 터뜨리려던 찰나.

소년은 분노할 타이밍을 빼앗기고 말았다.

팟!

눈앞에 갑자기 장신의 남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3층 창문에서 한 남자가 소리도 없이 뛰어내려 그들의 앞에 섰던 것이다.

루퍼스리안과 아나트리샤의 아버지, 카스톨트 황제.

“……!”

조금 딸과 아들에게 축객령을 내린 당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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