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3. 메인 퀘스트 : 아빠 공략 (06)
***
“……!”
시스템이 미친 건지 에러 메시지가 끝나지를 않았다.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안 그래도 전생에 마왕을 잡은 직후 시스템 에러가 뜰 때부터 이상했다.
원래 시스템 메시지는 이렇게 눈 아픈 빨간색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메시지가 전부 시뻘겋게 변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이젠 안구 테러냐! 아우! 눈 아파!’
다행히 눈을 감으면 메시지가 보이지 않아서 테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여린 시신경이 받은 충격은 그대로였다.
난 잠시 눈을 쉬게 해 주며 충격을 삭였다.
두 주먹으로 눈을 한참 비비적거리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니까…….
눈앞이 정상이다. 겨우 시스템 에러가 잠잠해진 모양이다.
두 손도 떼어 냈다.
그리고 난, 경악했다.
“아! 깜따기야!”
눈을 감았다 떴더니 예상 못 한 사람이 코앞에 와 있었던 것이다.
‘아, 아빠?’
아빠가 왜 여기 있어?
아까 저기 3층에 있었잖아!
게다가 난 아빠가 다가오는 기척도 못 느꼈다.
그런데 어느 틈에?
역시 우리 아빠, 마력 컨트롤은 최고…, 는 아빠 자랑은 좀 미뤄 두고.
이게 대체 뭔 상황이래?
조금 전까지 나랑 오빠를 냉정하게 쫓아내려던 아빠는 왜 갑자기 여기로 날아와 있는 거며.
그리고 뭣보다…… 주변 분위기가 요상했다.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울 것 같은 표정의 유모 엘제.
창백한 표정으로 나와 아빠를 번갈아 가며 보고 있는 우명(기드온) 삼촌.
무엇보다.
‘뭐야, 오빠? 갑자기 왜 그래? 미쳤어?’
오빠의 기세가 심상치가 않았다.
왜 갑자기 오빠가 아빠를 노려보고 있는 거지?
게다가 내가 잘못 감지한 게 아니라면…….
‘왜 마력을 끌어 올리고 있는 거야, 이 바보 오빠야!’
내가 당황한 사이, 여전히 차가운 아빠의 목소리가 청각을 자극했다.
“눈이…, 빨갛군.”
응? 그야, 시스템에 안구 테러를 당해서 눈을 비비느라…….
하지만 이런 사정을 말할 수 있을 리 없다.
환생 이후 여러 실험의 결과, 시스템이 내 눈에만 보인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아빠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살짝 손을 움직였다.
희고 기다란 손가락이 내 앞머리를 건드렸다.
아마도 눈가를 만져 보려고 한 게 아닐까.
그 시도가 실패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함부로 만지지 마십시오, 폐하.”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
오빠가 날 안은 채 뒤로 물러나서 아빠의 손이 닿지 못하게 한 것이다.
오빠는 거의 씹어 뱉듯이 말하고 있었다.
“본인이 울려 놓고는 이제 와서 신경이 쓰이십니까?!”
엥?
이게 뭔 소리야?
어리둥절해 있는 건 나뿐이었다.
다들 안타까움 가득한 시선으로 나와 오빠를 보고 있었다.
누구도 대놓고 말하진 못했지만, 아빠에게는 원망과 비난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대충 이런 느낌의 시선들이었다.
‘어쩌면 저렇게 냉혹하실 수가…….’
‘이렇게 작고 여리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뽀짝한 우리 아기 황녀님을!’
‘아기님을 울리시다니! 용서 못 해!’
그나마 아빠가 황제라 원망의 시선 정도로 끝났지.
엑스트라 1이 그랬으면 다들 득달같이 칼 들고 달려들었을 기세였다.
물론 그중에서도 최고로 흉흉한 기세를 보이는 건 오빠였다.
겨우 일곱 살짜리가 왜 살기를 풍기는 건데?
아니, 그런 건 언제부터 할 줄 알았던 거야?
게다가 아빠라구!
오빠는 아빠를 찔러 죽일 듯한 눈으로 노려보더니.
나를 안아 들고 몸을 돌렸다.
“리샤가 울어서 달래 주어야겠습니다.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말은 정중한데 어투는 얼음 바늘이 푹푹 박혀 있는 것 같다.
두 눈은 살기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나는 뒤늦게 이게 뭔 상황인지 깨달았다.
‘그러니까, 다들 내가 울었다고 착각한 거야?’
나는 그냥 시스템의 안구 테러 때문에 잠깐 고생한 것뿐인데.
남들은 그걸 알 리가 없으니 그렇게 오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물리적으로 눈이 아파서 찔끔 눈물이 났고.
그래서 눈을 비빈 것뿐인데.
남들이 보기엔 아빠의 냉혹한 말을 듣고 상처받아 운 불쌍한 아기로밖에 안 보일 거다.
‘이런 광경 보면 나라도 그렇게 오해하겠다!’
안 돼. 이대로면 이상한 오해만 받고, 성과도 없이 돌아가게 될 거야.
이 오해를 어떻게든 해야 해.
‘뭔가, 뭐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두 손을 파닥거리며 외쳤다.
“냐 아누러써! 하나두 아누러써! 압빠 죠아!”
(나 안 울었어! 하나도 안 울었어! 아빠 좋아!)
그러자 주변의 분위기가 더더욱 요상해졌다.
***
“냐 아누러써! 하나두 아누러써! 압빠 죠아!”
아기는 제 작은 마음의 상처를 애써 감추고서 씩씩하게 외쳤다.
아기의 눈가가 붉었다. 누가 보아도 조금 전까지 울었다는 티가 팍팍 나는 모습.
그 상태로 힘주어 활짝 웃자 도리어 안쓰러워 보였다.
“압빠 때무네 운고 아냐!”
누가 봐도 무리해서 꾸미고 있는 씩씩함이었다.
겨우 두 살짜리 아기가.
게다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아버지를 도리어 감싸고 있었다.
다들 안쓰러움과 안타까움, 사랑스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황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불쌍하신 황녀님!’
‘아버지라는 분께서 어쩌면 이리도 매정하실 수가!’
‘폐하를 감싸시다니, 어쩌면 이렇게까지 다정하신 분이 계실까.’
‘천사다! 지상에 천사가 내려왔다! 태양신께서 자신의 천사를 지상에 내려보내신 게 틀림없어!’
누구보다 가슴 저리게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건, 단연 루퍼스리안이었다.
소중한 동생이 상처받은 것도 화가 나고 슬픈데, 도리어 저를 상처 입힌 아버지를 감싸고 있었다.
모두가 아이의 눈물을 보았고. 눈가가 발그레하게 부어 있건만.
루퍼스리안은 이를 악물고 동생을 힘주어 끌어안았다.
“괜찮아, 리샤. 오빠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할 필요 없어.”
물론 아나트리샤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냐! 아니라고! 안 울었다고! 괜찮은 척이 아니라 진짜 괜찮단 말이야!’
루퍼스리안은 얼음 조각처럼 굳어 있는 아버지를 한 번 더 노려보고 나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아나트리샤는 깨달았다.
‘이대로면 아빠는 하나뿐인 어린 딸을 내쫓으려다가 울린 쓰레기가 될 거야!’
내쫓으려고 한 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울리진 않았다.
본인이 안 울었으니까.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루퍼스리안의 품에 안겨 다시 황녀궁으로 반품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 루퍼스리안의 기세를 보아하니, 앞으로 본궁으로 오는 건 어떻게든 방해하려 들 게 분명했다.
‘그건 안 돼!’
‘아빠 공략’이니 뭐니 하는 메인 퀘스트가 아니라도, 이대로 아빠와 멀어질 수는 없었다.
아나트리샤로서의 2회 차 삶이 시작된 덕에 가장 기쁘고 행복한 게 있다면 당연히 하나였다.
‘어떻게 되찾은 가족인데!’
절대 이대로 갈 수 없었다.
“시러! 압빠하테 가꼬야!”
파아앗!
눈부신 금빛이 아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리, 리샤?”
루퍼스리안은 품에 안긴 동생의 무게가 사라지는 걸 느끼고 놀랐다.
아기의 몸이 둥실, 허공으로 떠올랐다.
따스한 회오리바람이 불어와 주변을 감쌌다.
그 움직임을 따라 병아리 솜털 같은 아기의 금발이 살랑살랑 흔들렸고.
등 뒤에 매달린 분홍색 나비 날개가 파라락파라락 움직였다.
마치, 그 날개로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녀 셀리나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삼켰다.
“요, 요정! 요정이시다!”
하지만 마력에 조예가 있는 이들은 알아볼 수 있었다.
아기 황녀가 엄청난 마력을 외부로 방출해서 공중에 떠 있다는 걸.
사람을 허공에 띄울 정도의 마력은 일반적인 검기나 실드에 비해 훨씬 많은 마력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그런 마력을 방출하다 보면 주변을 초토화시키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지금 아나트리샤의 주변은 고요했다.
바람이 좀 거칠게 불어 나뭇잎이 흩날리는 게 전부.
기드온은 경악했다.
“세상에! 아무리 루스템의 축복받은 혈통이시라지만, 저만한 마력 방출과 컨트롤은 폐하께서도 성인이 되어서나 가능하셨는데!”
그리고 현 황제 카스톨트의 마력은 근 5대 안에 비교할 이가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그 이상의 힘을, 지금 저 작은 아기 황녀가 보이고 있었다.
겨우 두 살짜리가!
만인의 경악한 시선은 알지 못하는 듯, 허공에 둥둥 떠 있던 아나트리샤는 한 방향으로 돌진했다.
“압빠!”
저도 모르게 카스톨트 황제는 두 손으로 아기를 받아 들고 말았다.
울면서 상처받아 놓고도 저를 향해 안겨 오는 자그마한 딸을.
차마 밀쳐 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