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3. 메인 퀘스트 : 아빠 공략(07)
***
나는 아빠의 품으로 날아서 달려들었다.
설마하니 아빠가 날 밀어내거나 튕겨 내지는 않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아빠는 날 밀어내거나 막지 않았다.
폭.
나는 안전하게 아빠의 품에 안착했다.
두 손을 뻗어 나를 안아 들고서 스스로 더 놀란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아빠 품이다!
나는 헤헤 웃으며 아빠의 가슴팍에 뺨을 비볐다.
“아빠, 져아!”
“…….”
나를 안아 든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오빠나 유모, 우명 삼촌 같은 주변 사람들은 경악해서 그대로 굳어 있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오빠였다.
“리샤! 위험해!”
뭔 소리야.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앙 위허매! 아빠자나!”
나는 두 팔을 벌려 아빠에게 더 찰싹 달라붙었다.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매미처럼.
……아니, 이게 아니지.
아빠 품이 좋은, 작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처럼.
그때 투명한 푸른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나는 환하게 웃었다.
“데헷.”
“…….”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아빠의 눈이 떨렸다.
아빠를 둘러싼 아우라가 요동쳤다.
나는 아우라가 드러내는 감정을 알아보는 데에 익숙했다.
아우라의 색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아우라의 움직임은 주인의 감정을 드러내 준다.
분노하면 불꽃처럼 이글거린다거나, 기쁘면 환하게 빛나는 것처럼.
지금 아빠의 아우라는 부드럽게 일렁이며 나를 감싸 안았다.
저 아우라의 움직임이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애정. 걱정. 보호.’
아빠의 아우라는 날 볼 때면 늘 이랬으니까.
전생에도, 지금도.
‘내 생각이 맞았어. 여전히 아빠는 날 사랑해.’
확신하고 있던 사실이지만 다시 확인하니 가슴이 따스해졌다.
약간 안도하게 되기도 했다.
오빠의 반응이나 주변의 태도를 보고 아주 조금이지만 불안감을 가졌던 것이다.
만일 정말로 전생과 달리 아빠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상상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이젠 괜찮다!
불안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날 안은 채 침묵하던 아빠의 입술이 열렸다.
“나는…….”
하지만 문장은 힘없이 이지러져 제대로 된 의미를 만들지 못했다.
떨리는 눈으로 날 보던 아빠는 결국 제대로 된 말을 끝내지 못한 채.
나를 오빠에게 안겨 주고 멀어지려 했다.
“압빠…!”
내 조그마한 손이 아빠의 엄지손가락을 잡았다.
두 살짜리 아기치고도 작은 손은 아빠의 손가락을 겨우 쥘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자 아빠가 눈에 띄게 흠칫했다.
“…….”
아빠는 자신의 손가락을 꼭 쥐고 있는 내 손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투명한 푸른색의 눈동자가 슬픈 기색을 담고 나를 향한다.
그때, 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왜 저렇게 날 볼 때마다 슬프고 미안해하는 눈빛을 하시는 거지?’
짐짓 차가운 눈빛을 가장하면서도, 슬픔과 아픔을 다 숨기지 못했다.
이건 분명히 전생과 달랐다.
‘아빠가 날 볼 때마다 슬퍼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역시 무언가, 내가 모르는 일이 있는 걸까.
내가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오빠가 날 안은 채로 뒤로 물러섰다. 때문에 내 손안에 잡혀 있던 아빠의 손가락은 맥없이 미끄러졌다.
그러자 아빠는 천천히 뒤돌아서 본궁으로 돌아갔다.
그 뒷모습이, 마치 스스로 감옥으로 들어가는 죄인의 모습 같았다.
오빠가 나를 안은 채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괜찮아. 리샤.”
그렇게 말하는 오빠가 제일 안 괜찮은 것 같아서, 오빠의 손을 토닥여 주었다.
그러면서도 내 시선은 아빠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빠의 아우라가 슬프게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젠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나와 오빠에 대한 애정.
그 위를 짙은 슬픔과 죄책감이 가득 뒤덮고 있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도.
‘아빠는 여전히 날 사랑해.’
아빠의 속내는 내가 알던 그대로가 맞다는 걸 확인했다.
그렇다면 내가 무서워할 건 이제 없었다!
이제 남은 건 하나.
유턴 따윈 없이, 직진뿐이야!
***
황녀와 황자가 다녀간 다음 날.
본궁 황제의 집무실은 늘 그렇듯 쓸쓸한 고요함 속에 남겨져 있었다.
얼어붙은 호수 밑바닥 같은 차가움과 침묵.
그 속에서 서류를 넘기는 소리, 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만이 들려오곤 했다.
그런데 평소와는 조금 다른 것이 있었다.
“…….”
고요함 속에서 규칙적으로 들리던 소음이 멎었다.
늘 기계처럼 일정한 박자로 움직이던 황제의 손이 우뚝 멈춰 있었다.
두 눈은 어딘가 먼 곳을 보는 듯했다.
시종장 웨인 백작은 놀라움을 숨긴 채 황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난 1년 반 가까이 황제는 오로지 제국 유지를 위한 기계처럼 살았다.
정무 외에는 인간적인 즐거움과 행복은 조금도 좇지 않았다.
황제는 그간 본궁 최상층에 위치한 본인의 침실에 발걸음 하지 않았고, 집무실 곁방에 마련된 작은 침실에서 최소한의 수면만을 취했다.
원래 황실의 가족들이 모이는 정찬이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있어야 하지만, 그는 시종들이 집무실로 가져온 소박한 식사만을 했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곁에서 지켜보기에는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굳게 얼어붙어 있던 일상에 조금이지만 분명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
오늘 아침부터 테이블 위의 서류는 거의 처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황제가 집무실을 지키고는 있었으나 조금도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소리다.
황제가 저리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지금 서류 위에 놓인 무언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오늘 아침 집무실에 앉은 이후부터였으니, 그러느라 아무 일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황제의 손가락으로부터 정확히 세 뼘 떨어진 곳에 놓인 자그마한 토끼풀 세 개.
시종장 웨인 백작은 그게 어째서 지금 저기 있는 건지 잘 알았다.
직접 목격했으니까.
오늘 아침.
언제나와 같이 침묵 속에 가라앉아 있던 집무실의 공기를 혀짧은 소리가 다 깨부쉈던 것이다.
“압빠! 압빠! 여러주떼여!”
콩콩!
창문을 두드리는 작은 소리가 울렸다.
마치 얼어붙은 호수 표면을 두드리는 봄의 여린 손길처럼.
황제는 눈을 크게 뜨고 굳어 버렸다.
시종장은 황제가 막기 전에 재빨리 달려가 콩콩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천사 날개를 달고 있는 아기 황녀가 동동 떠서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외쳤다.
“아빠, 안냥! 죠은 아침!”
황제는 여전히 소금 기둥처럼 굳어 있었다.
그 앞으로 동동 날아온 황녀는 흙투성이인 작은 손을 내밀었다.
“선무!”
황제가 손을 내밀어 받지 않자, 황녀는 흥흥대더니 작은 손을 활짝 펼쳤다.
그러자 서류 위로 초록색 풀 몇 쪼가리가 흙과 함께 떨어졌다.
황제가 한창 검토하고 있던 서류 위로.
글자 위로 토도독 떨어진 건 세 잎 클로버 세 개였다.
커다란 것 하나, 중간 것 하나, 마지막으로 자그마한 것 하나.
아기 황녀는 활짝 웃으며 외쳤다.
“이거언- 압빠! 요건 어빠! 그리고오- 요기 쩰 짜근 곤 나!”
까르륵, 웃는 소리가 마치 아침의 햇살처럼 부서졌다.
시종장은 절로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황녀는 그야말로 태양신이 직접 내려보낸 아기 천사처럼 밝고 사랑스러웠으니까.
그의 눈에도 그런데, 하물며 친아버지의 눈에는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런데도 황제는 지그시 올라가려는 입매를 억누르고 있었다.
오래 모셔 온 시종장은 그가 지금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는 걸 억누르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어찌 보면 다행히, 달리 보면 불행하게도, 황녀의 방문은 거기서 끝났다.
창밖에서 황자의 비명 같은 소리가 울렸던 것이다.
“리샤! 어디 갔어!”
“가께, 어빠!”
황녀는 한마디 대답도 없이 굳어있기만 한 부친에게 손을 팔랑팔랑 흔들어 인사했다.
그리고 들어올 때처럼 동동 떠서 창문 밖으로 날아가더니 곧 사라져 버렸다.
갑자기 들이닥쳤다 사라져 버린 봄바람처럼.
“…….”
황제는 그때부터 계속 저 상태였다.
딸이 떨어뜨려 두고 간 세 잎 클로버 세 개를 뚫어져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차마 건드리지도 못하고, 치우라 하지도 못한 채.
서류의 글자를 읽거나 종이를 넘기지도 못했다.
그때였다.
열린 창문으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온 것은.
휭-.
아주 약한 바람이었다. 따로 무게가 될 만한 걸 서류 뭉치 위에 올려 두지 않아도, 종이 한 장 흩어지지 않을 정도로 미약한 바람.
하지만 황녀가 두고 간 세 개의 토끼풀 중, 가장 작은 것은 그 미약한 바람을 견디지 못했다.
“아!”
가장 작은 세 잎 토끼풀이 팔랑, 날아올랐다.
황제의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