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5/218)

 Level 4. 돌발 퀘스트 : 일단, 오빠부터? (01)

동동.

커다란 리본이 달린 신발을 신은 작은 발이 허공에 동동 떠 있었다.

엘제와 시녀들은 안절부절못하며 아기 황녀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마자! 여기여써!”

작은 손가락이 확신에 찬 태도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은 정확하게 황자궁을 가리키고 있었다.

모냐가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딱 한 번 가 보셨는데 정확하게 기억하시다니! 우리 아기님은 영특하기도 하셔라!”

그녀의 말대로, 아나트리샤는 딱 한 번 가 본 길을 정확하게 찾아가고 있었다.

작은 손에는 무릎과 원피스 자락을 흙으로 더럽혀 가며 찾은 세 잎 클로버 두 줄기를 들고서.

주변에는 루퍼스리안 몫의 아침 식사가 담긴 바구니가 둥둥 떠 있었다.

황녀는 바구니 손잡이에 제 원피스 허리 매듭을 묶었다.

덕분에 아기가 움직이는 대로 바구니도 졸졸 따라갔다. 주인을 따르는 강아지처럼.

시녀들이 바구니를 들겠다고 했지만 황녀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앙대. 삐져쓸 테니까 지쩝 가꼬 가꼬야.”

(안 돼. 삐졌을 테니까 직접 가져갈 거야.)

삐졌을 거라고? 그 얼음 같은 황자가?

상상도 가지 않는 말에 시녀들은 반신반의하며 황녀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황자궁에 도착했을 때는, 시녀들은 물론이고 아나트리샤까지 놀라고 말았다.

“징차 암도 엄써?”

황자궁이 텅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

나나 시녀들의 오해가 아니었다.

“정말 아무도 없는데요?”

“하녀나 허드렛일하는 하인들도 안 보여요.”

분명 저번에 왔을 때는 이렇지 않았다.

태도에 문제가 있긴 했어도 직계 황족의 궁에 걸맞은 숫자의 인력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텅 비어 있다시피 했다.

시종장의 말이 사실인 모양이다. 궁인을 싹 다 돌려보내고 있다고 했었지.

‘그래도 진짜 하인 하나도 없이 텅텅 비워 놓은 거야?’

왜 시종장이 나에게 부탁을 했는지 알겠다.

이렇게 주변에 사람을 하나도 안 두고 있다니.

생활을 돌봐 줄 사람도 없는 상황 아닌가.

겨우 일곱 살짜리가!

전생에는 나도 오빠도 지금처럼 곁에서 돌봐주는 사람들이 있진 않았다.

하지만 엄마 아빠가 워낙 바쁘셔서 시터나 도우미들은 있었다.

게다가 그때는 온 가족이 한집에서 살았는데, 지금은 그때 집보다 몇 배나 큰 궁을 혼자서 쓰는 상황.

그런데 주변에 돌봐 줄 사람이 하나도 없다니!

말이 안 된다.

‘아니, 밥은 제대로 챙겨 먹은 거야? 씻는 거나 잠자리는? 성질난다고 황자궁을 비워 놨으면 하던 대로 내 궁으로 재깍재깍 오든가!’

나는 분노와 온갖 걱정이 머리끝까지 차올라서 텅 빈 황자궁 안 곳곳을 찾아다녔다.

“어빠!”

콩나물 대가리를 교육해 줬던 연무장엔 당연히 없었다.

“어빠?”

식당도 텅텅 비었고.

“오디써!”

의상실과 욕실도 당연히 없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사람이 없다 보니 궁 곳곳에 관리가 안 된 티가 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몇 달, 몇 년이라도 지나면 진짜 버려진 궁 느낌이 날지도 모르겠다.

아니, 왜 이러고 있는 거야?

금수저도 아니고 다이아몬드 수저를 타고났잖아!

그러면 아무리 호강을 누려도 모자랄 텐데.

이게 뭐야, 대체!

난 분통이 터져서 홀 가운데에서 빽 외쳤다.

“야!”

야, 이 2회 차 화상아!

홀 안에 메아리가 윙윙 울렸다.

야-, 야-, 야-.

그때 머리 위에서 익숙한 대답이 들려왔다.

“리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번쩍 고개를 들자, 원형 계단 위에서 고개를 빼꼼하게 내민 오빠의 얼굴이 보였다.

평소와 다를 것 없었다.

아니, 늘 하얗던 뺨이 조금 상기되어 있나?

아주 작은 차이였다.

그런데 왜 내 눈에는 평소와 달라 보이는 걸까.

아우라의 색이나 움직임도 평소와 큰 차이가 없는데.

그런데도 알 수 없는 위화감과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대로 휭 날아올라 오빠의 코앞으로 달려갔다.

“대다비 느져짜나!”

(대답이 늦었잖아!)

그러자 오빠는 환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잔뜩 흐트러뜨려 놓았다.

“하하. 오늘도 귀엽네, 우리 리샤?”

나한테 잔뜩 삐져 있을 거라는 예상은 틀렸다.

오빠는 여전히 다정하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뭐지, 이 위화감은?

그때 오빠가 내 손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손이 왜 이렇게 더러워. 설마 황녀궁의 시녀들까지 이런 것 하나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건……!”

오빠의 아우라가 분노로 일렁거렸다.

하지만 오빠는 곧 입술을 꾹 깨물더니 감정을 억눌렀다.

뭔가를 많이 참는 듯한 반응이다.

그리고 내 손에 묻은 흙먼지와 마른 풀잎 따위를 제 소매로 조심스레 털어 내 주었다.

‘오빠 옷이 더러워지는데.’

하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는 태도였다.

그러다가 내가 계속 꼭 쥐고 있는 토끼풀을 보고 물어본다.

“이건 뭐야?”

자그마한 세 잎 토끼풀 하나와 훨씬 더 작은 아기 세 잎 토끼풀 하나.

나는 다른 손으로 큰 토끼풀과 오빠를 번갈아 가며 가리켰다.

“이곤 어빠!” (이건 오빠!)

그러자 오빠의 눈이 커졌다.

이번엔 아기 토끼풀과 나를 번갈아 가며 가리켰다.

“요곤 리샤!” (요건 리샤!)

그리고 토끼풀 두 개를 함께 쥔 주먹을 불쑥 내밀었다.

“어빠 선무!” (오빠 선물!)

오빠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혹시… 직접 따 온 거야? 그러느라고 손이 지저분해진 거고?”

나는 고개를 꾸닥꾸닥했다.

“웅!”

오빠는 두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내가 내민 세 잎 클로버 두 개를 받아들었다.

아빠에게, 그리고 오빠에게 준 것이 세 잎 클로버인 이유는 간단했다.

‘전생에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이 아마…… 행복이었지.’

아빠와 오빠에게 가장 주고 싶은 것이 그것이니까.

그리고 두 사람이 내게는 행복이었기 때문에.

두 번째 세계에서도 통하는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 마음만은 같았다.

오빠는 깨끗한 손수건을 꺼내어 내가 준 선물을 소중히 감싸서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 희게 웃었다.

“고마워, 리샤. 이건 내 보물 2호야. 평생 소중하게 간직할게.”

“보무 이로는 몬데?”

(보물 1호는 뭔데?)

그러자 오빠는 더더욱 환하게 웃었다. 너무 맑아서 투명하게 보일 정도의 미소.

“당연히 우리 리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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