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4. 돌발 퀘스트 : 일단, 오빠부터? (02)
오빠는 눈매를 가늘게 접어서는 사르르 웃었다.
사람을 홀리는 듯한 미소.
누누이 말했지만 오빠가 저러는 건 뭔가 찔리거나 숨겨야 할 게 있을 때 버릇이다.
오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
하지만.
“아.”
나는 고개를 흔들어서 오빠의 손길을 피했다.
“리샤…….”
시무룩한 오빠의 목소리.
하지만 나는 넘어가지 않았다.
짤따란 두 팔로 팔짱을 끼고, 오빠보다 높이 날아올랐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도록.
이번에도 어설퍼서 팔짱이라고 하기 어려웠지만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오빠 놈을 추궁하는 게 먼저지!
“왜 아놔써? 어졔도. 오느더.”
(왜 안 왔어? 어제도. 오늘도.)
오빠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더 환해졌다.
아니, 나한테 혼나고 있는데 왜 더 좋아하는 거야?
“오구오구, 오빠 보고 싶어서 일부러 온 거야?”
다시 손이 내 머리 부비부비를 노리고 슬금슬금 다가왔다.
나는 허공에서 빙글 돌아서 피했다. 어딜!
오빠의 어깨가 축 처졌지만, 알바냐!
내 질문에 대답을 안 했잖아!
어디서 수작을 부리고 있어!
오빠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좀 혼자 수련할 게 있어서 그랬어.”
수련? 무슨 수련?
내 의아한 눈빛에 대답이 연이어 나왔다.
“태양의 마력을 각성한 지 얼마 안 됐잖아. 그걸 수련해 보고 있었어.”
그렇게 말하며, 오빠 놈은 배시시 웃었다.
트레이드마크나 마찬가지인 여우 같은 웃음.
전생에도 자기가 곤란한 상황일 때 꼭 저렇게 웃곤 했다.
저 웃음에 홀랑 넘어간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지.
하지만 나한테는 통할 리가 없었다.
여전히 볼을 잔뜩 부풀리고 팔짱을 낀 채 추궁을 계속했다.
“훙. 구치만 마룍 포빨 가툰거 하나 더 엄써짜나!”
(흥. 그렇지만 마력 폭발 같은 거 하나도 없었잖아!)
마력 사용을 연습해 봤다면 당연히 마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서 폭발도 시켜 봤을 거다.
하지만 그런 기색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내 마력 감지 능력은 지금도 전생과 큰 차이가 없었다.
즉, 오빠 놈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추리 완료!
“고진말하믄 미오!”
당당하게 외쳤다.
이게 오빠에게 얼마나 효과가 좋은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오빠의 눈꼬리가 축 처졌다. 잔뜩 늘어뜨려진 여우 꼬리 같은 눈매가 가증스러웠다.
“진짜라니까. 우리 리샤는 오빠 못 믿어?”
어떻게 믿겠어.
약하면서 함부로 몸을 날려서 죽어 버린 주제에.
그래 놓고, 이번에도 콩나물 대가리 앞에서 또 비슷한 짓 해 놓고.
내가 눈을 땡그랗게 부라리자 오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사실 삐진 거 맞아.”
“훙?”
“리샤가 폐하만 좋아하고 찾아가니까 삐져 있었던 거야.”
살짝 투정 부리듯 입을 삐죽이 내밀고 있다가, 곧 사르르 눈매를 접으며 웃는다.
이, 이 여우 자식이!
“근데 리샤가 먼저 와서 선물도 주니까 풀렸어. 됐지?”
별로 이상할 것 없는 말이었다.
실제로 나도 삐져서 안 오는 건가 하고 있었으니까.
오빠 놈은 내 허리띠 리본에 대롱대롱 매달린 바구니를 보고 화색을 했다.
“와, 샌드위치네. 우리 리샤가 오빠 주려고 가져온 거야?”
그러자 엘제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주방까지 직접 가셔서 만들게 하신 거랍니다. 햄이랑 고기를 잔뜩 넣으라고 일부러 이야기도 하셨어요.”
“황송해서 어떡하지.”
오빠 놈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바구니를 받아만 들고 먹지 않았다.
아마 평소였다면 바로 먹어 보였을 거다.
식사 중에 나에게 졸라서 한 입 먹여 달라고 할 때면 바로바로 입에 넣으면서 보란 듯이 방긋 웃었으니까.
자기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가 먼저 선물해 준 걸, 이렇게 가만히 두고 보고 있을 리는 없다.
역시 뭔가 이상해.
나는 팔짱을 여전히 풀지 않았다.
“머거 바.”
그러자 순간이지만 분명하게 오빠 놈의 눈에 난처한 빛이 스쳐 갔다.
“지금은 배가 불러서.”
나는 잔뜩 험상궂은 얼굴을 했다.
“시죵쟝 할부지가 요기에 음식 앙 들가따고 해써!”
물론 식재료나 음식까지 안 들어왔는지는 확인 안 했다.
하지만 나는 감으로 때려 맞혔다.
오빠 놈의 표정이 굳었다.
“쓸데없는 짓을…….”
저 불만 가득한 중얼거림은 틀림없이 시종장을 향한 것이렷다.
‘진짜 이틀 내내 굶은 거야?’
한국인의 영혼을 가진 나에게는 너무 충격적인 사건이다.
전장에서도 맛없는 전투 식량일망정, 식사는 꼭꼭 챙기던 게 한국인 헌터들인데.
마왕의 마력에 오염된 식물을 보고도 김치 담글 수 있을지 진지하게 나랑 상의한 적도 있으면서!
‘한국인의 영혼에 사과해!’
나는 그렇게 속으로 외치며, 샌드위치를 오빠 놈의 입에 들이밀었다.
“머거!”
“리샤. 오빠는 괜찮다니까.”
나는 빼앵 외쳤다.
“시러어! 머거! 머겅! 한 번, 아니 두 번 머겅! 굴므묜 시러! 우엥!”
눈물을 짜내어 우는 척까지 했다.
어딜 내 앞에서 배를 곯으려고! 내가 그 꼴을 볼 줄 알아?
내가 난리를 치자 어쩔 수 없이 오빠는 입을 벌렸다.
한 입, 두 입.
오물오물 고기 가득 샌드위치를 받아먹었다.
조금 깨작거리는 것 같아서 짜증 나지만 지금은 잘한다 잘한다 해 줘야 했다. 그래야 더 먹이지.
“아구, 짜란다. 잘 멍는다.”
나는 상으로 샌드위치 안 든 손으로 머리를 쓰담해 주었다.
등 뒤에서 시녀들이 웃음 참는 소리가 들리지만 무시했다.
쪽팔리는 거고 뭐고, 일단 애 밥부터 먹여야 할 거 아냐!
그리고.
“웁!”
“……!”
헛구역질하며 다 게워 내는 오빠를 보고 깨달았다.
오빠 놈이 고기를 못 먹다니. 뭔가 이상했다.
뭔가가 크게 잘못된 게 틀림없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
시녀들은 입을 막은 채 눈앞에서 벌어지는 귀여운 광경을 두 눈 가득 담고 있었다.
두 살짜리 아기 황녀님이 오빠가 굶는 게 걱정된다며 찾아와 직접 샌드위치를 먹여 주고 있었다.
“아구. 짜란다. 잘 멍는다.”
그것도 한 입 먹을 때마다, 잘한다며 머리를 쓰담쓰담해 주면서.
뭔가 바뀐 듯한 이상한 상황이지만, 둘 다 만족하고 있는 것 같으니 상관없는 일이다.
특히 시녀들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황녀님이 귀엽고 장하시니 문제없음!’
그런 귀엽고 훈훈한 구도에 갑작스러운 이변이 왔다.
“웁!”
루퍼스리안 황자가 갑자기 구토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황자님?”
“괜찮으세요?”
아기 황녀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시녀들은 가져온 음료를 황자에게 권하며 달래려 했다.
“자, 이걸 드세요.”
“급하게 드시다가 체하신 모양이에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황녀님.”
그러나.
황자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기 시작했다.
“우욱! 떠, 떨어져!”
두어 입 겨우 먹은 음식을 게워 내더니,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위험…….”
황자는 제 어깨를 감싸 안고 푹 주저앉았다.
그리고 온 힘을 다 짜낸 듯한 처절한 어조로 외쳤다.
“리샤를 데리고 나가! 어서!”
명백히 자신들을 향한 명령이었다.
시녀들은 경악하여 굳을 사이도 없이 민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엘제는 재빠르게 두 팔을 뻗어 가슴께 정도 높이에 떠 있는 아기 황녀를 안으려 했다.
“황녀님!”
하지만 아나트리샤가 한발 빨랐다.
아기의 몸이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갔고, 유모의 손은 허공을 쥘 뿐이었다.
“으윽!”
황자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울리고.
일곱 살짜리 작은 몸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운 붉은 빛과, 날카로운 흰색의 빛. 그것들은 서로를 공격하듯 거세게 밀려 나오고 있었다.
시녀 중 셀리나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저 마력은…! 게다가 이건 마력 폭주의 전조!’
드물고 아주 위험한 현상.
그리고 그 근원인 제 오빠를 향해, 아기 황녀가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안 됩니다, 아기님!”
셀리나의 비명이 불길하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