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화 (28/218)

Level 4. 돌발 퀘스트 : 일단, 오빠부터? (04)

[System Error! $#*&≒▦€]

아오, 저놈의 시스템 에러!

진짜 날 잡아서 시스템을 털어야 하나?

[■□ 외부의 %$ 시스템*( 방해…*&^!%]

이건 또 무슨 헛소리야? 시스템이 진짜 컴퓨터도 아니고 해킹이라도 당하는 거야?

내가 황당해하는 사이 오빠의 상태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윽! 으윽……!”

한쪽 마력만 날뛰고 있었는데, 이제 두 종류의 마력이 동시에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강력한 마력의 폭주는 일곱 살의 어린 몸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셌다.

작은 몸이 빵 터져 버릴 가능성마저 있었다.

방법은 하나뿐.

나는 오빠에게 달려들어, 짤따란 두 팔로 오빠의 머리를 꼭 끌어안았다.

‘내가 마력을 나눠 받아서 안정시켜야 돼!’

오빠의 비명이 들렸다.

“안 돼! 리샤!”

동시에 열화보다 뜨겁고 한겨울의 바람보다 차가운 마력의 흐름이 내 작은 몸에 쏟아져 들어왔다.

***

제도에서 먼 동쪽 지방.

불길한 어둠이 하늘을 덮었다. 구름 사이에서 요란한 천둥이 천지를 울린다.

홀덴 백작 영애는 우울함을 곱씹으며 저택 가장 구석진 곳의 아기방으로 향했다.

어린 생명이 자라는 곳이라기보단, 무덤처럼 무거운 고요함만이 자리할 뿐인 곳.

자신이 낳은 아이가 그곳에 있건만 조금의 기대감이나 기쁨을 가질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저런 반푼이를 낳다니.’

그녀가 인생을 바꾸기 위해 무리해서 낳은 아이는 조금도 쓸모가 없었다.

그 ‘일’이 성공하고, 아이가 태어나던 날 태양석이 빛났을 때.

홀덴 영애는 이제 자신의 인생이 태양처럼 빛날 줄만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기는 제대로 자라지 않았다.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았다. 배고파하지도 않고, 잠들지도 않았다.

살아 있던 적 없는 인형처럼 그저 요람에 누워 숨만 쉬는 것이 전부였다.

그녀가 수도를 떠나 영지로 내려온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저런 ‘결함품’을 황궁에 내놓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녀를 원조해 주고 있는 벨론드 대공에게 들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 아이의 상태를.

대공이 알게 되면 그녀는 언제 버려져도 이상하지 않은 처지였다.

신기하게도 아기는 죽지 않았다. 사랑해 주긴커녕 제대로 돌보는 이도 없건만.

그것이 도리어 소름 끼쳤다.

‘내가 낳은 게 정말로 사람일까.’

이런 생각이 들 만큼.

때문에 홀덴 영애는 하녀들에게 아기를 맡겨 놓고 거의 들여다보지 않았다.

오늘 하녀가 창백한 얼굴로 달려오지 않았다면 직접 발걸음하는 일은 없었으리라.

괴괴한 방 가운데에 낡은 요람이 놓여 있었고.

거기에서 아기는 울지도 않은 채 인형처럼 누워 있을 터였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요람 한가운데 자그마한 인영이 보였다.

콰광!

천둥이 대지를 때리자, 불길한 빛이 유리창을 찔렀다.

덕분에 영애는 요람 가운데에 덩그러니 앉은 아기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다.

기이하게 번뜩이는 아기의 선홍빛 눈동자가 제 어미를 똑바로 보았다.

겨우 두 살밖에 안 된 아기로는 보이지 않는 소름 끼치는 눈빛이었다.

***

시종장 웨인 백작은 묵묵히 황제의 시중을 들었다.

그는 능숙하게 실망한 티를 감추었다.

황녀가 삐져서 돌아간 뒤 황제는 바로 집무실로 복귀했다.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았고, 여전히 업무만 보는 기계일 뿐이라고 우기는 것처럼.

절대 깨지지 않는 얼음 석상 같던 황제가 황녀의 말과 행동에는 조금씩 흔들림을 내비쳤다.

그 자체가 의미 있는 변화라 시종장은 희망을 가졌다.

황제가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고.

그래서 인간으로서의 기쁨과 가족을 되찾게 되기를.

충신은 다른 무엇보다 진심으로 주군의 행복을 바랐으므로.

하지만 황제는 다시 집무실로 돌아와 하던 일을 반복했다.

평생을 줄에 묶여 산 번견처럼.

줄 길이 밖의 세상은 제 것이 아니라는 것처럼.

황녀가 아버지에게 던진 자그마한 변화는 없다고 주장하는 듯이.

‘역시 안 되는 건가.’

그때였다.

황제의 깃펜이 서류를 찢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시종장이 의아해 고개를 들었을 때.

황제의 놀란 눈이 창 건너편을 향해 뚫어져라 고정되어 있었다.

‘저곳은…… 분명히 황자궁 방향인데?’

그때 본궁 꼭대기에 장식된 태양석이 빛나기 시작했다.

시종장은 아연해졌다.

벌써 몇 번째 보는 광경인지 모르겠다.

‘설마, 이번에도 황녀님이신 건가?’

그리고, 시종장의 눈이 경악으로 벌어졌다.

“폐하?!”

***

뜨겁다. 그리고 차갑다.

인두로 지지는 것 같았고, 동시에 얼음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오빠의 마력 양은 객관적으로는 많은 편이다.

A급 마력 회로를 구성하는 두 마력이 동시에 날뛰고 있으니 당연하다.

일반적으로는 A랭크 마력 회로 두 개를 가졌다고 해도 바로 S랭크 판정을 받진 못한다.

즉, 지금 오빠는 양쪽 마력 회로의 질이 모두 엄청나게 좋다는 소리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는 힘들지 않아야 했다. 그것도 S+ 랭크로 활성화된 이번 생의 마력 회로를 고려한다면.

그러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하나 있었다.

지금 내 몸은 너무 작고 어렸다.

겨우 두 살.

몇 마디 말을 웅얼거리고, 걸음마를 조금 하는 게 전부인 어린애.

게다가 난 신체적인 발달은 아직도 느리고 약한 편이었다.

아무리 깨어난 뒤 잘 먹고 잘 자고, 쑥쑥 포션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크고 있었어도.

또래에 비해서도 작고 약한 몸은 그대로였던 거다.

“으윽!”

아파.

잇몸을 깨물어 비명을 억눌렀다. 피 냄새가 났다. 겨우 정신을 잡아 놓을 수 있었다.

“리… 샤…, 위험…….”

겨우 일곱 살 몸의 오빠는 폭주를 이기지 못하고 기절했다.

의식이 없는 와중에도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물러나면 폭주한 마력은 어린 육체를 갈가리 찢어 버릴 거다.

‘절대 안 돼!’

겨우 되찾은 오빠다.

이번 생에는 일곱 살까지밖에 못 살게 놔둘 순 없었다.

절대! 절대!

이번엔 환갑 넘기는 꼴을 꼭 보고 말 거야!

그때 꼭 생일빵을 갈겨 주고 말 거다!

“으으윽!”

두 종류의 마력이 역류했다. 오빠가 의식을 잃으며 마력을 억누르던 최소한의 제어력도 사라져 버린 거다.

여기서 나까지 기절하면 나와 오빠는 물론이고, 주변에 있는 이들도 전부 위험해진다.

작고 여린 몸이 으스러질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정신력으로 버텨 냈다.

내가! 내가 누군데! 이 정도를 못 버틸까!

일주일 넘게 물 한 모금 못 먹고 잠도 못 자면서 싸운 적도 많았다.

마지막 전투는 무려 한 달을 끌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겼다. 어떻게든 버텨 냈다.

멘탈 싸움이야말로 내 가장 큰 강점이었다.

“이 엉더능 꺼미야!”

(이 정도는 껌이야!)

발악하듯 외치면서 전력으로 마력을 끌어냈다.

내 마력으로 오빠의 마력 전체를 감싸서 강제로 안정시키려는 거다.

위험하지만 즉시 효과가 있고, 오빠에게 타격이 적은 방법이다.

내 마력에 감응해 머리 위에서 태양석이 빛나기 시작했다.

온 세상을 덮을 듯 강렬한 빛.

그 가운데에서 어쩐지 누군가의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

익숙하고 그리운 사람의 모습.

하지만 본 게 맞는지 확인할 여유는 없었다.

내 의식도 거기서 끊겼기 때문이다.

***

루스템 제국의 황궁 바로 옆에 위치한 벨론드 대공저.

벨론드 대공비 루도비카는 귀족 부인들의 아첨에 둘러싸여 있었다.

지난 1년여간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유력한 차기 황위 계승자 둘을 낳은 어머니이므로.

눈치가 빠른 이들은 진작부터 벨론드 대공 일가에 줄을 댔다.

황제는 이를 알면서도 묵인했다.

벨론드 대공 부부는 황제의 태도를 이렇게 해석했다.

‘황제도 아는 거지. 제 반푼이 자식들이 황위를 이을 재목이 아니라는 걸.’

그런데 근 몇 달 사이에 당연하던 구도가 무너져 버렸다.

황녀의 명명식 이후, 대공저에 찾아오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던 것이다.

눈도장을 찍겠다고 기웃거리던 이들이 사라지고.

매일같이 드나들던 선물과 초대장이 반 토막 나더니 점점 줄어들었다. 숫자도, 질도.

덕분에 벨론드 대공저는 한산해지고 말았다.

마치, 황후궁의 주인이 건재하던 때처럼. 황제가 자식들에게 무심해지기 전의 과거로 돌아간 듯.

이유는 단 하나였다.

‘황녀가 백치가 아니다!’

‘게다가 황자가 태양의 마력을 각성했다!’

철새들은 단번에 대공자와 대공녀가 계승권 3, 4순위로 밀렸다고 판단을 내렸다.

벨론드 대공가를 썩은 동아줄로 보고 다른 곳으로 갈아탄 것이다.

얼마나 치욕적이었던가.

하지만 그것도 며칠 전까지의 이야기였다.

화려한 공작새처럼 꾸민 귀부인들이 대공비의 곁에서 열심히 아첨을 떨었다.

“역시 대공비 전하의 안목은 따라갈 수 없네요.”

“당연하죠! 대공자님과 대공녀님을 저렇게 훌륭하게 키워 내신 분이신걸요!”

유난히 호들갑 떨고 있는 이는 로낭스 후작 부인이었다.

대공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황녀의 명명식이 지나고 가장 먼저 태도를 바꿨던 주제에.’

로낭스 후작 부인은 벨론드 대공 부부에게 붙어 황녀의 명명식 때 황녀를 깎아내리다가 망신을 당한 사람이다.

그런데 명명식 날 황녀가 백치가 아니고 역대급의 강력한 마력을 가졌음을 증명하자.

후작 부인은 뻔뻔하게 태도를 바꾸어 어떻게든 황녀궁에 줄을 대려 애쓴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이를 듣고 대공비는 얼마나 분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후작 부인의 노력은 성과를 보지 못했다.

황녀궁의 궁인들 대부분이 충심으로 황녀를 보호하려 했기 때문이다.

황자궁에도 접근했지만 이쪽은 다른 의미로 접근이 어려웠다.

벨론드 대공 일파에 자청해서 정보를 제공하고 아첨하던 궁인들이 전부 쫓겨난 뒤.

궁이 아예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황자가 보내는 사람마다 내쫓으니 옆에 사람을 심거나 선물을 보내거나 알현 요청을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래도 철새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이 어떻게든 황녀와 황자에게 접근하려 애쓰는 사이, 대공저는 한눈에 비교될 만큼 한가해졌다.

이는 대공 부부와 자식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다.

그런데 이삼일 전에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오며, 상황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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