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5. 메인 퀘스트 : 아빠 함락 (02)
오빠와의 아웅다웅이 끝난 건, 내가 깨어난 걸 알고 유모가 들어온 뒤였다.
유모와 시녀들이 달려와 나를 안고 울고불고하는 신파 타임을 2차로 가진 뒤.
겨우 평화를 되찾으려는 찰나.
꼬르륵.
오빠 놈의 배에서 들린 소리가 내 날카로운 청각을 자극했다.
“웅? 꼬륵?”
“아. 괜찮아. 리샤.”
엘제가 바보처럼 웃는 오빠 놈을 걱정했다.
“아기님이 앓으시는 동안 식사도 거의 안 하셨으니 배가 고프실 만하죠. 식사를 준비해 오겠습니다.”
오빠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냐. 괜찮아. 안 먹어도 배 안 고파.”
입은 그렇게 말하지만 오빠 놈의 몸은 솔직했다.
꼬록, 꼬로록!
나는 턱, 하고 침대 울타리를 집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다리에 힘을 주었다.
“끄응……차!”
엉덩이가 꿍싯꿍싯 움직인다. 어째 몇 달 전 첫 걸음마 때보다 더 힘들다. 나흘 내내 앓았다니까 당연한가.
그렇게 악전고투 끝에 난 승리했다. 당당히 두 발로 서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울타리에 기대야 겨우 서 있을 수 있는 건 비밀이다)
그리고 오빠 놈을 손가락질하며 근엄하게 외쳤다.
“앙대! 그름 모써!”
(안 돼! 그럼 못 써!)
“응?”
“어리네는 굴므묜 앙대!”
(어린애는 굶으면 안 돼!)
K-영혼 소유자 주제에 어디서 밥심을 거부하려고!
***
아기 침실 안을 혀짤배기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어리네는 굴므묜 앙대!”
……라고, 황녀님께서 근엄하게 말씀하셨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 호통을 들은 당사자인 루퍼스리안 황자도 겨우 일곱 살짜리니까.
하지만 그게 루퍼스리안의 허리께 정도 오는 두 살배기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언밸런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목격자들의 머릿속을 강타한 공통 소감이 있었다.
‘귀여워어어엇!!!’
다들 아기 황녀의 치명적인 귀여움에 몸을 떠는 사이.
추상같은 명령이 앵두같이 작은 입술 사이로 터져 나왔다.
“밤 머거!”
절대로 저항할 수 없는 귀여움이었다.
루퍼스리안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얌전하게.
“넹.”
“마니 머겅! 두 번 머겅!”
“네. 네.”
그렇게 오랜만에 남매가 함께하는 식사 시간이 시작되었다.
루퍼스리안은 5일 만에 제대로 하는 식사였다.
처음 이틀은 마력 폭주 때문에 몸 상태가 안 좋아서.
그 뒤 사흘 동안은 동생에 대한 걱정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했다.
한창 자랄 나이에 배를 곯았더니, 괜찮다며 고사하던 것과 달리 막상 음식을 보자 의욕적으로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엘제의 무릎에 앉은 아나트리샤는 그걸 흐뭇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엘제는 당황했다.
‘왜 복스럽게 먹는 조카를 보는 것처럼 흐뭇한 표정이신 거지?’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아나트리샤는 두 살 아기니까.
그 아기의 몸속에 있는 것이 K-영혼이라는 걸 엘제가 알 도리는 없었다.
오랜만의 식사 타임은 루퍼스리안만이 아니었다.
아나트리샤도 엘제가 매 준 턱받이를 하고, 곱게 간 고기가 든 콘 크림 수프를 야무지게 떠먹었다.
“마시써!”
거의 접시째 마셔 버리면서 아나트리샤는 새삼 깨달았다.
‘웅? 이상하게 몸 상태가 좋다? 마력 폭주를 잠재운 여파에서 회복하려면 열흘은 더 앓아야 할 텐데.’
전생에는 상황이 워낙 막장이라서 온갖 경험을 다 했었다.
당연히 그 경험 리스트에는 마력 폭주나, 그에 대한 대처도 들어 있었고.
그 경험에 비추어 보면 지금 아나트리샤의 회복은 경이적인 수준이다.
‘마력 컨트롤과 치료술에 어지간히 뛰어난 사람이 도와준 게 아니라면…… 이렇게 빨리 회복하는 건 불가능해.’
아나트리샤의 시선이 음식을 아구아구 먹어 치우고 있는 오빠를 향했다.
“웅? 애구래? 리샹?”
볼이 터지도록 우겨 넣고 묻느라 발음이 다 뭉개진 바보 오빠는 제외다.
애초에 마력을 각성한 지도 얼마 안 되었고 폭주한 당사자가 아닌가.
아나트리샤는 통통한 볼에 작은 손을 대고 골똘히 고민에 빠졌다.
옆에서 셀리나가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황녀님이 볼 콕! 볼 콕! 뺨이! 뺨이 폭 들어갔어요! 너무 귀엽…… 크흑!”
“꺄악! 정신 차려 셀리나! 아기님이 앓으시느라 살이 내리셔서 볼살이 빠지셨어! 볼콕 했을 때 눌리는 깊이가 0.5쥬르-카르(=mm) 줄으셨다고! 이 정도로 기절하면 안 돼!”
셀리나의 말도 이상한데, 모냐의 태클도 핀트가 89도쯤 어긋나 있는 것 같았다.
아나트리샤는 의도적으로 못 들은 척했다.
저쪽에 신경 쓰면 뭔가 지는 것 같았던 것이다.
***
나도 오빠도 배를 채우고 나자 겨우 여유가 생겼다.
조금 전부터 시야 구석에서 깜빡거리던 메시지에 신경을 쓸 수 있게 된 거다.
[돌발 퀘스트 완료!]
[퀘스트 명 : ‘내 안의 검은 용이…!’]
[보상을 수령하시겠습니까?]
당연히 Yes지.
엘제가 가져다준 꿀을 넣은 우유 잔을 받아 들면서, 자연스럽게 보상을 확인했다.
[보상 : 경험치 #@%&%, 재화 *&^% (기본)]
“…….”
하마터면 오빠랑 엘제가 있는걸 까먹고 욕할 뻔했다.
그나마 서브 퀘스트나 돌발 퀘스트 보상은 잘 줬잖아.
또 오류냐?
진짜 시스템 창 아예 꺼 버릴까. 그리고 아예 평생 안 열어 버릴까.
어차피 환생도 다 했고.
설명도 제대로 못 해, 보상도 맨날 에러만 나는데. 쓸모가 없잖아! 쓸모가!
내 협박을 읽은 건지, 다시 뾰롱뾰롱 메시지가 떠올랐다.
[추가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수령하시겠습니까?]
[추가 보상 : 스킬석 (A급)]
내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래. 이제야 좀 일을 제대로 하는구만.
나는 웃으며 보상을 받았다. 그리고 놀라고 말았다.
‘이, 이건?’
***
내 인생 모토는 간단했다.
‘생각이 끝나기 전에 행동에 옮겨라!’
이 모토는 2회 차에도 그대로 유지 중이었다.
나를 안고 있는 오빠의 부루퉁한 목소리가 들렸다.
“꼭 가야 돼, 리샤?”
“앙!”
내가 또 화내는 기색이자 오빠 놈은 풀이 죽어서 얌전히 의무를 다하기 시작했다.
나를 안아서 본궁까지 옮기는 셔틀 역할 말이다.
며칠 전 같으면 오빠는 잔뜩 훼방을 놓았을 거다.
다른 일을 들먹이며 화제를 돌리거나, 자기는 빠지겠다고 하거나.
하지만 아까 내가 한마디를 하자 오빠는 그대로 순한 양이 되었다.
“아야야. 아포. 거끼 힘드러.”
(아야야. 아파. 걷기 힘들어.)
“…….”
덕분에 나는 아주 편하고 빠르게 본궁으로 향할 수 있었다.
아빠의 집무실은 몇 번 가 봐서 아주 익숙했다.
그곳으로 가는 와중에 나는 처음 보는 이들과 마주쳤다.
몇몇 시종들이 작은 트롤리를 나르고 있었다. 그들이 향하는 방향은 아빠가 있는 집무실 쪽이었다.
나는 오빠를 톡톡 쳐서 멈추게 했다.
“모야?”
나와 오빠를 보고 시종들은 멈춰 서서 인사했다.
가장 앞에 선 이는 화려한 자주색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이었다.
“황자, 황녀 전하를 뵙습니다.”
허리를 굽히는 태도가 꽤나 뻣뻣했다.
오빠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왜 황후궁의 부시녀장이 여기 있는 거지?”
황후궁의 부시녀장이면 엄마 아래서 일하던 사람인가?
나는 조금 호의를 가지고 부시녀장을 보았다.
혹시 전생에 인연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서기도 했다.
지금도 아빠랑 같이 일하는 우명 삼촌처럼.
하지만 외모도 아우라도 내 기억에는 없었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황후 폐하의 빈자리를 대신해 내궁 살림을 맡고 있다 보니…….”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들던 부시녀장과 눈이 마주쳤다. 어두운 갈색 눈동자.
아우라의 빛깔도 움직임도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
‘흠. 뭔가 찜찜해. 좀 자세히 봐야겠는데.’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새로 얻은 스킬을 써 보기로 했다.